원래 생각없이 사는 인간이라 시간이 지나가는 것 자체에 별로 의미를 두지 않지만, 이번 주말과 주초는 좀 이야기가 다릅니다.
먼저 주말 -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셨습니다. 친할아버지 돌아가신 이후로 친척과 관계된 장례식은 두 번째인데, 여러가지 이유가 겹쳐서 그렇겠지만 친할아버지 장례식 땐 안 나던 눈물이 나고 일손이 부족해서 그런지 바쁘게 돌아다녔네요(막상 다른 친척들이 다 해서 저는 부조금만 받았습니다만). 솔직히 가장 슬픈 건, 외할머니와의 추억이 별로 없다는 겁니다. 할머니 특유의 목소리와 조금이나마 농사를 지으시던 모습 등이 기억나긴 하지만 너무 단편적인 기억이라 더더욱 아쉬워요. 물론 사람인 이상 잊어버릴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와서 그 정도밖에 기억나지 않는다는 건 더 빨리 잊어버리게 된다는 뜻 아닙니까. 자주 찾아뵙지도 않고 이런 소리 하는 것도 위선이지만.
그리고 장례식 때문에 번역 일정의 반절이 날아가버려서 저 먼저 동년배 친척의 차를 얻어타고 집에 와서 밤을 새가며 작업을 했습니다. 첫 날은 좀 설렁설렁 했는데, 일정을 하루 정도 착각하는 바람에 둘째날은 밤을 새야 했습니다. 결국 오늘(18일) 오전 9시에 작업을 마치고 지금(오후 5시)까지 자다 일어났네요. 그 와중에 대체 몇 끼니를 거른 건지. 이번 작업은 수입이 많을 것 같아서 그나마 괜찮을 것 같지만, 형광등이 남아나지 않을까봐 걱정입니다. 최근에 방 형광등이 나가서 아버지와 함께 갈았는데, 리모델링 하면서 다같이 갈았음에도 제가 워낙 저녁과 새벽에 작업을 하다보니 평상시보다 수명이 더 일찍 줄어들어서 나갔던 거더라고요. 그래서 신나게 혼나고(...) 형광등을 간 거죠.
그렇게 정신없이 5일이 지나간 것 같습니다. 모든 일이 그렇지만 장례식은 더더욱 어색하네요. 하기 전에도, 하는 중에도, 하는 후에도.
그거 알아? 혼자 있고 싶어하는 사람은 이유야 어쨌든 고독을 즐겨서 그러는 게 아니야. 사람들한테 계속 실망해서 먼저 세상에서 모습을 감추는 거야. - 조디 피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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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댓글
SiteOwner
2018-04-18 20:51:51
그런 일이 있었군요.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
부고를 받고 장례식을 치르는 일이란 정말 무서운 일입니다. 살아오면서 그런 일을 자주 겪었지만 절대로 익숙해질 수 없고, 마음에 큰 상처가 남는 일이니...
저희집의 경우는, 친가 쪽이든 외가 쪽이든 할아버지는 이미 제가 태어나기도 한참 전에 고인이었고, 할머니는 솔직히 언급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더 이상 쓰다가는 제 근본을 욕하는 것 같고, 그냥 없는 사람으로 치기에는 겪었던 서러움과 해악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라 딜레마가 있으니 그러합니다.
저에게도 말씀하신 그 상황과 비슷한 게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바쁘고 혼란스러웠을텐데 이렇게 근황을 남겨주신 데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Lester
2018-04-23 23:14:25
다른 일보다 가장 충격이죠, 장례식은. 저와 별다른 추억이 없는 할아버지와 외할머니의 장례식도 이러한데,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어떨지 문자 그대로 상상하고 싶지도 않네요. 그나마 일을 하면서 떨쳐버리긴 했습니다만, 그것도 금세 끝나버리니까 다시 공허하네요. 가뜩이나 취업활동 준비도 잘 안되는데...
마드리갈
2018-04-19 19:56:54
외할머니의 장례식, 그리고 뒤이은 번역작업...고생 많이 하셨어요.
너무 자책하지 않으셨으면 해요.
그리고, 저도 잠시나마 명복을 빌도록 할께요.
형광등을 교체하셨군요. 이 기회에 LED로 전환하셨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네요. 소비전력이 확실히 적으면서 광질 자체가 좋은데다 수명도 훨씬 기니까요.
Lester
2018-04-23 23:16:22
위로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LED가 좋다는 얘기는 듣긴 했는데, 리모델링을 한 지 되긴 했지만 이미 있는 형광등 케이스나 구조에 맞추자니 많이 애매해요. 케이스만 있는 게 아니고 유리로 감싸고 있거든요. 그래서 그것들을 버리고 새로 하자니 돈이 나가는데다, (이런 말 하기 그렇지만) 아버지가 돈 나가는 일을 가장 싫어하셔서...
대왕고래
2018-04-22 23:42:42
저는 할머니와 큰아버지가 돌아가셨죠. 고모부도 돌아가셨고 이모부도 돌아가셨어요.
환갑을 못 넘기고 돌아가신 분들이 있죠. 게다가 저한테는 전부 잘해주셨던 분들이시다 보니 안타깝기도 해요.?
그래서인지 레스터님이 어떤 기분이셨을지 공감이 되어요. 같이 명복을 빌겠습니다.
Lester
2018-04-23 23:17:35
장례식이건 아니건, 자신에게 잘해주던 사람과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는 슬픔이 슬픔 중에서 가장 큰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