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atbomb Sparketti - 고기폭탄 발파게티
"왜 또 나야?"
레스터가 핸드폰에 대고 언성을 높였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불편할 정도로 너무 느긋한 존의 대답이었다.
"그야 네가 가장 한가하니까."
사실이었다. 주로 택시운전을 하고 남는 시간에 글쓰기와 번역을 한다고는 했지만, 존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들이 봤을 땐 거의 반백수나 마찬가지였다. 더구나 택시운전마저도 다른 기사들이 콜을 먼저 채가는 바람에 하릴없이 거리를 쏘다니고 있을 뿐이었다. 존과 그 친구들을 돕는 것을 '일'에 포함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리고 너도 재밌어하잖아."
그것도 사실이었다. 사람을 죽이는 일은 존이 담당하고, 죽이지 않는 일은 주로 레스터가 도맡기 때문이었다.'주로'라는 표현에서 보듯이 레스터 외에도 존의 일거리를 도와주는 사람은 많았지만, 존은 이상하게 레스터가 거들어주는 쪽을 선호했다. 다만 그 이유는 밝히지 않았다. 언젠가 레스터와 친한 누군가가 존과 술을 먹다가 우연히 들은 적은 있다고 했다. '편리해서'라나? 그 사람도 그 이상은 듣지 못했기에 레스터는 자신이 도대체 어느 쪽으로 편리한 것인지 지금까지도 알지 못했다.
"재미를 떠나서 사람이 죽는 일이잖아."
"나쁜 놈을 죽이는 게 왜?"
"그래도 사람이라고!"
"나쁜 놈이 착한 놈을 죽이게 놔두는 건?"
"그거야 당연히-"
"'경찰의 역할'이라고 하겠지, 그 다음에는. 그러면 나는 '이 바닥에 제대로 된 경찰이 어딨어?'라고 물을 테고, 너는 '선량하고 정직한 경찰도 분명히 있어'라고 말하겠지. 그 다음은? 내가 뭐라고 반박했었지? 부패경찰 이야기를 했던가?"
존이 앞질러 이야기하자 레스터는 할 말을 잃었다. 그는 화를 내기보단 즐기고 있었다. 애초에 레스터가 뭐라고 말했는지 전부 기억하는 것만 봐도 레스터의 의견을 묵살하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존은 자신이 '어떤 일'을 하는지 매우 잘 알고 있었고 굳이 포장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의 논리는 간단했다. "나는 사주받은 대로 사람을 죽인다. 수요가 있으니 계속할 뿐이다." 물론 '사주를 받더라도 거절할 권리가 있다'는 말이 붙었다. 어쩌면 존에게도 자신의 일에 대한 긍지, 아니, 인간성이 남아 있는 것이 아닐까. 굳이 잔말이 많고 뒷처리도 허술한 레스터가(본인도 이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거들어주길 원하고 자신의 철학(?)에 대해 쓴소리를 하면 받아쳐주는 것은 자신이 제대로 된 인간인지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하고 레스터는 생각했다. 물론 못난 녀석을 옆에 둠으로써 생기는 상대적인 우월감을 느끼고 싶어서 그런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뭐야, 나보다 머리가 좋으면서 기억을 못하는 건가?"
레스터는 존의 적절한 비아냥을 듣고 현실로 돌아왔다. 이럴 때는 똑같이 응대하는 게 최고다.
"그러면 나보다 그 바닥에 대해 잘 알고 계시는 휘태커 선생님께서는, 제게 무엇을 시키려고 그러십니까?"
"크핫, 알기 쉬운 녀석. 난 그래서 네가 마음에 들어."
대체 어떤 구석이 마음에 든다는 건지는 아직도 모른다.
"아무튼 잘 들어. 아서 W. 스콧이라는 사람을 찾아가서, 어떤 녀석인지 조사해 봐. 주소는 문자로 보내줄게. 아, 그런다고 잡아서 패거나 죽이진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시켜."
존은 진심으로 놀란 건지 잠시 말이 없었다.
"의외네. '내가 그런 짓을 할 것 같아?'라고 말할 줄 알았는데."
"안 하면 죽일 거잖아?"
침묵. 아까보다 훨씬 긴 침묵이었다. 그제서야 레스터는 자신이 실수를 했다는 걸 깨달았다. 레스터가 말하려는 찰나, 존이 먼저 말했다.
"뭐, 죽고 싶으면 그러든지."
아까처럼 한바탕 설전이 벌어질 것과는 달리, 존은 거기까지 말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말투나 어조를 보아하니 협박은 아닌 것 같았다. 아니, 원래 그런 말투라서 협박일 수도 있었다. 생각을 계속해도 답이 나오지 않자, 레스터는 결국 존이 보낸 문자에 나온 장소로 향했다.
워딩턴 스트리트는 세간에 알려진 것처럼 정말 거지들이 사는, 다리 밑 하수구 같은 동네는 절대 아니었다. 하지만 안쪽으로 갈수록 질보다 양을 위해 밋밋하게 지은 똑같은 건물들이 작게 모여 있는 것을 보면 빈민촌이라는 것을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스콧은 그 중 하나에 사는 것 같았다. 레스터가 도착한 35번지는 2층 건물이었는데 1층에는 꽃가게가 있고 2층에 사람들이 사는 모양이었다. 레스터가 우편함에서 이름을 확인하고 스콧의 집 문을 두드렸지만, 응답이 없었다. 맞은편 집(2층에는 집이 2개밖에 없었다)을 두드렸지만 마찬가지였다. 레스터는 2층에서 내려와 1층에 있는 꽃가게에서 수소문을 하기로 했다.
"저기요."
"네, 갑니다-"
가게 안쪽에서 껄렁하게 생긴 흑인 청년이 걸어나왔다.
"저거, 이름은 모르겠는데 보라색 꽃 주세요."
"라벤더입니다."
청년은 첫인상과 달리 유식하고 친절하게 나왔다. 레스터가 무작정 질문부터 하지 않고 꽃을 사서 환심을 샀기 때문에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물론 물건을 사줘도 고자세로 나오는 부류도 있었지만 다른 곳에 가서 물어보면 그만이었다.
"참, 여기 2층에 사는 스콧 씨 말인데요."
"그래? 아서 형에 대해 취재하러 온 거야?"
흑인 청년이 더욱 친절해졌다. 스콧을 형으로 여기는 것, 취재하러 왔냐고 궁금해하는 것. 같은 말이라도 어느 쪽에 초점을 맞추냐에 따라 방향이 달라질 수 있었다. 레스터는 '형'에 대해 물어보기로 했다.
"그 형이 어떤 사람이길래요?"
"우와, 완전 성자가 납셨지, 우리 동네에. 처음에는 나도 백인이나 공무원이라는 얘기를 듣고 엄청 재수없다고 생각했지. 왜, 그런 곳에 있는 놈들은 다 그렇잖아? 그런데 아니더라고. 동네의 봉사활동에도 적극적이고, 본인이 거리 개선 프로젝트를 시작해서 주도했어. 그 형이 아니었으면 나도 풀(마약)이나 팔다 총 맞고 죽었을 거야."
"그야말로 위인이군요."
"그렇지? 나도 그렇게 생각해. 아, 갑자기 혼자 떠들어서 미안해요. 로널드 잼프Ronald Zamp입니다. 아시겠지만 아서 형의 동생은 아니에요. 하지만 워낙 친근해서."
스콧과 무슨 관계냐고 물었다가 화라도 내면 어떡하나 걱정했는데, 이렇게 먼저 털어놓은 것을 보면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당사자를 만나봐야 어떤 사람인지 직접 판단할 수 있었기에, 레스터는 스콧의 행방을 물어봤다.
"어디 보자... 이 시간이면 교회에 갔을 거에요."
"교회요? 금요일인데?"
"뭘 모르시는구나. 우리 같은 동네 사람들에겐 교회가 모임 장소이고 식당이고 클럽이에요. 아서 형은 또 봉사활동하러 간 거지만."
"그렇군요. 어디에 있죠?"
"제가 따라갈게요. 이 동네가 워낙 복잡하거든요. 기자님, 차 있죠?"
잼프는 레스터를 완전히 기자로 알아본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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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을 길게 써야겠다 생각을 해도, 어디서 끊을지 막막한 것도 있고, 분량을 생각만큼 뽑아내기 힘든 것도 있고 어렵네요. 일단은 이런 식으로 주인공이 큰 행동을 두 개 정도 했다 싶으면 끊을 생각입니다.
그거 알아? 혼자 있고 싶어하는 사람은 이유야 어쨌든 고독을 즐겨서 그러는 게 아니야. 사람들한테 계속 실망해서 먼저 세상에서 모습을 감추는 거야. - 조디 피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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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댓글
마드리갈
2018-04-30 15:51:09
요즘 슬럼가 관련으로 조사를 하는 게 좀 있다 보니, 워딩턴 스트리트의 모습이 잘 연상되네요. 사실 어느 정도 규모가 되는 도시의 슬럼가는 작중에서 표현하신 것처럼 다리 밑 하수구같은 동네의 모습이라기보다는 일단은 여느 시가지와 비슷한 듯 하면서 퇴락한 느낌이 드는 동네같은 경우가 더욱 많으니까요. 일단 악취 같은 건 안 나겠네요. 게다가 꽃집도 있으니 바람의 방향에 따라서는 꽃향기도 느껴질 것 같고...
역시 타인의 사정을 탐문하고 다니는 사람이라면 기자 아니면 탐정이라고 여겨지겠죠. 그런데 최소한 탐정같이 보이지는 않았나 보네요. 하긴 범죄나 불륜 등에 관련된 사항이 아니니 그렇게 보였던 걸까요?
Lester
2018-04-30 23:37:10
말씀하신 대로 대도시의 슬럼가는 프루이트 아이고처럼 뭔가 멋져 보이지만 실상은 시궁창인 경우도 많죠. GTA4를 접하고 나서 안 사실이지만, 프로젝트Projects였던가? 우리나라의 대형 아파트처럼 지어놓았지만 빈민들이 모여 사는 건물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은 개인주택이 있어야 부자 취급을 받으니까요. 어쨌든 말씀하신 대로 꽃향기가 느껴질 것 같다는 말은 '노력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뜻이겠죠. 하지만 애석하게도, 작품 전개에 따라서는 빈민가가 늘어날 수도 있습니다(…).
케이스 바이 케이스라고 봐야겠죠. 영화나 드라마의 영향인지는 몰라도 목격자들이 신분증만 꺼내면 술술 불어대는 경우가 많습니다만, 세상에 준법시민만 있는 것도 아니고 진도를 빨리 빼야 할 의무는 없으니 목격자와의 크고 작은 대립도 넣어볼 생각입니다. 참고로 레스터는 탐정같은 행동은 하지만 탐정은 아닙니다. 저 세계관은 면허제거든요. 뭐 탐정 보조라고 한다면 어느 정도 말이 되려나? (자세한 건 저도 모릅니다;;;)
SiteOwner
2018-05-03 20:28:38
경제학에서 말하는 세이의 법칙이 생각납니다.
Supply creates its own demand. 즉 공급이 수요를 창출한다는 의미인데, 살인청부 등과 같은 위법한 일이라도, 누군가가 손을 빌려줄 용의가 있다면 계속 이어질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하셔도 좋습니다.
빈민가라고 해서 처음부터 빈민가로 탄생할 필요는 없겠지요. 사실 선진국 대도시의 빈민가 중에는 과거 도시규모가 작았을 때에는 시 외곽의 평범한 주거지역이었다가, 도시가 확장되면서 그 지역을 건너뛰어 개발이 일어나면서 남겨지고 뒤처지게 되어 형성된 곳이 꽤 있습니다. 그런 곳은 과거에는 나름대로 꿈과 로망을 안고 도시로 이주했던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었을텐데...그래도 묘사하신 워딩턴 스트리트는 꽃가게도 있고, 교회가 사교활동의 중심인 것을 보니 그 로망이 마냥 사라져 있는 답없는 곳만은 아니라는 게 보여서 그 점에서는 다행이라고 여겨집니다.
Lester
2018-05-05 18:06:18
저는 반대로 수요가 공급을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비단 작중의 살인청부만이 아니라 세상만사와 모든 발전이 그러니까요. 다만 살인청부같은 범죄는 자신들을 '필요악'이라며 미화시키는 데 쓰이고 있지만요.
저도 슬럼가나 빈민가가 왜 있을까 궁금하긴 했는데, 말씀대로 '건너뛰는' 이유를 생각해 보니까 답이 나오더라구요. 지자체의 예산 문제도 있을 것이고, 발언권이 강한 사람들의 이해관계도 있을 것이고... 그렇게 하나하나 잊히다 보니 빈민가가 되었을지도. 작중에서는 그 대안(?)으로 빈민들의 자립을 내세우고 있지만, 여기에 이래저래 '구린' 방법들이 있다 보니 정상적인 대안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