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신칸센차량 형식에 대한 간단한 해설에 이어, 이번에는 일본국유철도 및 JR 재래선 차량형식에 대한 이해를 위해 여객차량 관련으로 몇 가지를 다루어볼까 싶네요.
일본은 1872년 철도를 도입한 이래 관설철도 및 민설철도가 병행하는 구조를 이어오고 있어요. 단 미국과 같이 소수의 메이저 철도회사들이 전국을 분할하는 형태는 일시적으로 있었을 뿐, 철도건설 붐으로 전국규모의 네트워크의 기틀이 잡혀 주요 민설철도가 관설철도로 인수합병된 이후로는 전국규모의 관설철도 및 각 지역별 민설철도가 공존하는 형태가 자리잡혀 오늘날까지 내려오고 있고 있어요.
이런 역사가 있다 보니 일본의 관설철도 차량형식은 복잡다단하다가 운영주체의 개편 등으로 큰 변화를 겪게 되었어요. 그 중에서도 두드러지는 것은 1928년, 1959년 및 1987년 이후.
일본의 관설철도 운영주체는 1871년에 창설된 공부성철도료(工部省鉄道寮)를 필두로, 1885년에는 내각직속 철도국으로, 1890년에는 내무성 외국(外局)의 철도청으로, 1892년 체신성 외국으로 개편되었다가 바로 다음해인 1893년에 체신성 내국으로 편입되어 체신성철도국(逓信省鉄道局)으로 재편되는 등 단기간에 빈번히 개편되었어요. 이것은 20세기가 되어서도 개편주기가 다소 길어졌을 뿐, 1906년에 제국철도청(帝国鉄道庁)이 신설된 직후 1908년에는 체신성철도국과 제국철도청이 통합되어 내각철도원(内閣鉄道院)이 설립되고, 1920년에 철도성이 출범하였다가 전시체제하인 1942년에는 철도성이 체신성과 통합되어 운수통신성(運輸通信省)으로 재편되는 역사를 거치게 되었어요. 이후 이 체제는 1949년 6월 1일부터 독립채산제의 공기업으로서 일본국유철도(日本国有鉄道, JNR)가 출범하면서 1987년 3월 31일까지 반세기 가까이 존속했어요. 그래서 1928년에는 철도성 체제에서, 1959년에는 일본국유철도 체제에서, 그리고 1987년 이후에는 JR 각 회사 단위로 차량형식의 개편이 일어나게 되어요.
사실, 차량형식의 기반은 이미 꽤 오래전부터 고안되어 있긴 했어요. 단지 체계라고 하기에는 느슨한 게 문제.
기반은 카타카나 2-4개 및 1-5자리 수의 조합인데, 이 체계는 1906년 국유화 이전의 통칭 잡형객차(雑形客車) 및 여러 지역의 사설철도 전차에도 이미 적용되던 방식이었어요.
이를테면 국철 호데1형전차(国鉄ホデ1形電車, 이후 데하6250형으로 개칭), 국철 데하유니43850형전차(国鉄デハユニ43850形電車) 같은. 이런 형식이 1928년부터는 신규발주품의 경우 국철○○계전차, 국철○○계객차 등의 형식번호로 개정되고, 기동차는 이 형식을 엄밀히 따르지는 않고 카타카나 2-3개 및 2-5자리 수의 조합, 그리고 1928년 이전에 쓰였던 "형(形)" 과 1928년 이후 신설된 "계(系)" 가 공존하는 형태로 이어지게 되어요.
단 이것도 사철매수차의 경우는 이 규칙이 적용되지 않는데, 대체로 카타카나 2-3개, 1-3자리 수, 그리고 기존의 형식명에 쓰이던 용어인 "형(形)" 으로 재명명되어 신규발주 여객차량과는 구별되는 체계로 이행했어요.
제2차 세계대전의 패전을 맞이한 일본은 철도에서도 큰 변화를 맞이하게 되었어요.
일단, 일본 각지의 주요 철도시설 및 차량이 미국의 전략폭격으로 상당수 소실되었는데다, 전시상황에서 대충 급조한 철도차량이나 1926년 이전에 제조된 목제차량의 신뢰성 문제가 끔찍한 인명사고로 이어지는 일도 잦았어요. 증기기관차가 달리다가 보일러가 터진다든지, 전기계통 불량으로 통근전차가 화재를 당했는데 승객이 탈출하지 못해 열차에 갇힌 채로 죽는다든지 하는 대참사가...
게다가, 육군 및 해군이 해산되면서, 갈 곳 없는 유능한 기술인력들이 생업전선에 뛰어드는데, 이들을 대거 받아들인 곳이 철도계였어요. 그리고 군 출신의 기술자들이 군사기술개발 도중에 취득한 기술을 철도관련에 적용하기도 하는데, 이 과정에서 신성능전차(新性能電車)라는 것이 속속 등장하게 되어요. 이 신성능전차의 명명방식은 1959년의 개편 이후 ○○○계. 카타카나는 개별차량의 구체적인 기술사양 및 객실의 등급 등을 나타내는 데에만 사용하고 형식명칭에서는 빠지게 되어요. 이 방식이 흔히 말하는 일본국유철도 차량형식의 근간이 되고, JR로 이행한 현재에도 JR시코쿠를 제외하면 이 틀을 크게 벗어나고 있지는 않아요.
한편, 기동차의 경우도 1959년 이후에 변화에 직면하여, 기본적인 명명방식이 키하○○계 또는 키하○○○계로 정리되어요. 물론 계 대신 형이 사용되는 경우도 소수이지만 있고, JR시코쿠에서는 JR로 이행한 이후 신규발주하는 기동차의 형식명칭에 다른 JR 각사와는 달리 계 대신 형을 채택했어요.
객차는 전차 및 기동차의 보급에 따라 대거 퇴출되었고, 명명방식이 ○○계객차로 일원화되었어요. 이것은 정기야간침대열차가 폐지된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해서, JR큐슈의 호화크루즈침대특급열차인 나나츠보시 인 큐슈(ななつ星 in 九州)의 77계객차, JR동일본의 침대특급열차 카시오페아(カシオペア, 정기운행 종료후 단체열차로만 운행)의 E26계객차 등에서 확인할 수 있어요.
이렇게 1959년 개편으로 확립된 일본국유철도 차량형식의 3자리수는 전차의 경우 이런 의미를 지니고 있어요.
- 100의 자리 - 전기방식(1-3 직류전차/4-6 교직양용전차/7-8 교류전차/9 프로토타입)
- 10의 자리 - 용도(0-3 통근 및 근교용/5-7 급행용/8 특급용) - JR에서는 5-8을 특급에 할당
- 1의 자리 - 차종구분을 위해서 홀수가, 동일차종의 일부차량에 한해서 원래의 수에서 1을 뺀 짝수
그래서, 이렇게 봤을 때 787계라고 하면 교류구간에서 쓰이는 특급전차, 203계라고 하면 직류구간에서 쓰이는 통근전차라는 게 확연히 보일 거예요.
1987년 4월 1일부터 출범한 JR 각사에서도 이 일본국유철도의 1959년 개편 형식명칭은 그 근간을 이어오고는 있지만, 몇 가지 달라진 점이 있어요
우선, JR동일본은 1994년에 취역한 E1계 신칸센전차를 필두로, 자사발주의 여객차량에는 3자리수 앞에 E를 앞에 붙이고 있어요. 유래는 영문명 JR East Japan의 E. 이것은 기동차의 경우 키하, HB, GV 등의 접두어와 3자리수 사이에 E가 들어가는 식으로 적용되는데, 키하E120형, 키하E200형이라는 기동차도 있어서 일부차량에서는 완벽하게 "계" 가 정착해 있지는 않다는 것이 여전히 보이고 있어요. 이것은 침대특급전차 트레인스위트 시키시마(TRAIN SUITE 四季島)의 차량형식에도 남아 있어서, E001계가 아니라 E001형인 점이 특색.
JR시코쿠에서는 일본국유철도 시대에 제조되었거나 JR동일본에서 양도받은 여객차량에서는 1959년 개편체제를 그대로 쓰고 있지만 신규발주차량 또는 개조에서는 완전 독자규격을 쓰고 있어요. 카타카나 기호를 전폐하고 차량형식을 4자리수로만 나타내고 있는데다 기동차에서는 "형" 을, 전차에서는 "계" 를 쓰고 있어요.
- 1000-3000형 - 기동차
- 보통차량 - 1000형, 1200형, 1500형
- 특급차량 - 2000형, 2600형
- 5000-8000계 - 전차
- 보통차량 - 5000계, 6000계, 7000계, 7200계(121계 개조차)
- 특급차량 - 8000계, 8600계
JR서일본과 JR북해도는 대체로 일본국유철도의 차량형식을 이어받았지만, 일부 신칸센차량은 JR동일본 관할의 선로에서도 운용하고 있어서 그 차량의 경우에 한해서만은 JR동일본의 차량형식을 준용하고 있어요. 그래서 JR북해도에서 도입한 E5계 신칸센전차는 H5계로, JR서일본에서 도입한 E7계 신칸센전차는 W7계로 재명명되었어요. H는 Hokkaido,W는 West Japan의 약칭.
결국 여객열차 분야에서 일본국유철도 차량형식을 가장 충실하게 이어받은 JR은 JR큐슈지만, 신칸센에서는 100의 자리가 짝수이면 도호쿠 및 죠에츠신칸센 전용차량이었던 전통과는 무관하게, 신칸센 개업에 투입한 고유모델의 이름이 800계로 지어졌다 보니 그대로 승계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도 특기할 사항이죠.
이렇게, 일본국유철도 및 JR의 차량형식의 변천에 대해서, 일본 관설철도의 변천사부터 현재까지 여객차량을 중심으로 정리를 해 보았어요. 생경한 내용이 많겠지만, 이 글을 통해 여러분의 철도관련사항에의 이해가 높아지면 좋겠다는 생각도 같이 전해드리고 싶어요.
기관차와 화물차량에 대해서는 나중에 또 다루어 볼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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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댓글
대왕고래
2018-05-21 00:16:47
역사가 상당히 기네요. 한눈에 이해가 잘 안 되어서, 솔직히 그림으로 정리한 게 있으면 좋을 거 같아요.
그래도 번호를 통해서, 그것도 순서대로가 아닌 번호의 각 자리수를 기호로 생각해서 이름을 지었다는 점은 꽤 재미있어요. 이런 식으로 이름을 짓는 방식이 또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네요. 어떤 게 있으려나... 다른 이름 짓는 방식에도 관심이 가네요. 혹시 아시는 거 없으신가요?
마드리갈
2018-05-21 00:25:12
사실 굉장히 정신없죠. 그래서 일목요연하게 보기가 꽤 힘든 것도 사실이예요.
일본국유철도 및 JR의 차량형식과 상당히 유사한 명명방식으로는 자동차 번호판, 우편번호, 그리고 우리나라의 주민등록번호의 뒷부분 7자리 등의 대표적인 사례가 있어요. 주민등록번호의 뒤 7자리의 경우, 이것을 알면 성별, 출생연도가 2000년 이전/이후인지의 여부, 출생지의 행정구역 등의 정보가 드러나 버리나까 체계성 면에서는 뛰어나지만 개인정보 보호에는 좋지 않은 문제가 있기도 하죠.
운영진으로서 알려드릴 게 있어요.
대왕고래님께서 작성해 주신 코멘트는 포럼에서 20,000번째로 작성되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