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라는 나라는 한때 기술의 최첨단을 달린다는 평을 받았던 반면, 아직도 신용카드 사용을 꺼리고 현금 위주의 경제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거나, 대학의 수강신청을 OCR로 진행하고, 전자화된 공문서에서 연호 표기를 데이터 내부에 직접 집어넣는 등 현대 기술을 기존 체계에 어색하게 적용한 사례가 자주 발견되고 있습니다. 이번 사례도 이런 문화의 연장이 아닐까 싶습니다.
지난 5월 23일 일본 재무성에서는 아베 총리 부부의 '모리토모 학원 스캔들'과 관련해 4천여 쪽에 달하는 문서를 홈페이지에 공개했는데, 이후 3시간 만에 삭제하고 다음날 새벽에 다시 올리는 해프닝이 있었습니다. (관련 기사: 5월 29일 주간아사히) 공개된 문서는 원본을 스캔한 후 일부분을 검은색으로 가려 놓았는데, 이 부분이 문제가 된 것입니다.
문제의 검은 칠은 스캔한 이미지 위에 단순히 검은색 사각형을 놓은 채로 PDF로 배포한 것이어서, PDF 파일을 편집하면 원본이 그대로 나오게 되어 있었습니다. (원래 의도는 이렇게 편집한 후?인쇄하고 다시 스캔해서?공개할 계획이었다고 하네요) 그렇게 공개된 이름 중에는 이나다 토모미 전 방위상(현 자민당 정무조사회장)의 남편인 이나다 류지(?田龍示) 변호사도 있어서 사건이 더 커질 듯합니다. (검은 칠을 벗겨낸 모습: 짝수번째 이미지에서 원래 검은 칠이 있던 부분은 빨간 밑줄로 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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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드리갈
2018-06-02 18:36:42
일본 뉴스에서 자주 나오는 모리토모 학원 스캔들에서 예의 문서 사진이 그렇게 나온 데에는 그런 이유가 있었던 거군요. 보고도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내막이 있음을 아니까 의문이 풀리네요.
어느 나라든지 묘하게 시대상에 안 맞는 부분이 있긴 하죠.
예를 몇가지 들어볼께요.
일본에서는 자격증 취득에는 연령제한이 없거나 있더라도 하한이 있지만, 공무원시험의 경우는 30세를 초과하면 아예 출원자격조차 박탈된다든지, 민간기업에는 중도채용이라는 분야가 있긴 하지만 정기적인 신입채용과는 달리 사실상 경력직에만 문호가 열려 있다든지 하는 문제 등도 존재하죠.
중국에서는 모바일결제가 크게 발달해서 현금을 안 받을 정도이지만, 반면에 고대 농노제처럼 사람을 출신지역에 묶어놓는 제도가 있어요. 이를테면 대도시로 이주한 농촌 출신이 대입 시험을 치려면 원래의 출신지로 돌아가야 한다든지 하는 것.
서유럽, 북미 선진국에서도 역시 시대에 뒤떨어지는 문제가 있어요.
독일은 같은 은행체인의 각 지점간의 업무제휴가 안 되어 있고, 프랑스는 초등학교에서 새학기가 되면 학기내에 다 쓰지 못하더라도 무조건 새 문구를 구비해서 학교에서 검열까지 완료해야 하는 이상한 관행도 있고, 덴마크, 스웨덴 등의 북유럽 국가들은 신규창업을 극도로 억제하는 제도가 존재하죠. 캐나다는 다른 주에서 상품을 구매할 경우에는 관세를 새로이 내야 하는 문제가 있어서 국내 상업발달을 저해하는 문제도 있어요. 이걸 캐나다 내에서는 Interprovincial Trade Barriers라고 부르고 있어요.
OBiN
2018-06-04 02:43:01
이렇게 놓고 보니까 특정 국가에만 한정된 게 아니라 전세계 보편적 현상이라고 할 수 있겠군요.
본문의 뒷얘기를 하자면 안 그래도 말 많은 아베 내각의 현 상황에 기름을 붓는 격이 아닌가 하는 말도 나오고 있다고 합니다.
SiteOwner
2018-06-07 20:34:02
일본의 정부기관에서 발행한 전자문서를 보면, 예의 모리토모 학원 문제에서 보였던 것처럼 스캔 후 PDF화된 것들이 꽤 보입니다. 전산화의 역사가 짧아서 그런 게 아닌가 싶고, 일본내의 대형 OA(Office Automation, 사무자동화) 기자재 회사들이 직접개발 또는 OEM 방식으로 문서스캔 및 전자화 기자재들을 발매하고 있는 것도 그런 사정에서인가 봅니다. 좀 오래된 것이지만 인감도장 전자화 같은 것도 있습니다.
대학 수강신청을 객관식시험에서처럼 그렇게 한 건 저도 경험해 보았습니다. 그러다가 재학 도중에 전산화로 넘어갔다 보니 저는 두 방식을 다 체험해 본 과도기 세대가 되는가 봅니다. 이것도 이미 오래전 일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