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은 노래 '잠 못 드는 밤 비는 내리고'의 패러디입니다. 구글에서 잠 못 드는 밤이라고 검색했더니 자동완성으로 저걸 보여주더군요.
끝내주는 폭염입니다. 뉴스에서는 40년만의 폭염이라고 하는데 숫자도 하필 4로 시작해서 더 기묘하네요. 선풍기를 틀지 않으면 새벽에 더위 때문에 저절로 깰 정도로 열대야의 효과도 끝내주죠. 외국에서 살 적에는 더위에 익숙해져서 그런지 밤에 잠을 설쳤던 기억은 별로 없는데 한국에 와서는 먼저 추위부터 겪어서 그런가 더위에 대한 내성이 한풀 꺾인 것 같습니다.
24시간 내내 더위에 시달리면서 머리에도 열이 올랐는지 주변에서 사소한 일에도 짜증내고 화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머리를 식힐 겸 비라도 시원하게 내려줬으면 좋겠는데 폭염이 최소 이번달 말까지 지속된다고 하니 암울하기 그지없네요.
잠 안 자고 새벽에 이렇게 글을 쓰는 이유는 신체 안팎으로 저를 압박해오는 열기 때문입니다. 외부에서는 더위가, 내부에서는 분노가.
며칠 전에 같이 사는 친척들과 잠깐 말다툼이 있었습니다. 계기는 사소한 잔소리였지만 이야기가 길어지자 이 집에 얹혀살면서 몇 번이고 느꼈던 좌절감이 저를 덮치더군요.
이 사람들은 몇년 넘도록 나를 끔찍하게 괴롭히는 우울증을 단지 내가 게을러서 내세우는 핑계로만 여기고 있으며, 대한민국에 흔한 노오오오오력이 부족해서 우울증 따위에 걸리는 거라는 사고관을 가진 사람들이고 우울증의 개념 자체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그러다 보니 지금 제가 처한 상황에도 생각이 미치면서 화가 치밀어오르기 시작하더군요. 예나 지금이나 친척집에서 계속 더부살이하게 만드는 아버지, 성향부터 가치관까지 맞는 게 없어 서로 충돌하기 일수인 친가 쪽 친척들...
특히 같이 사는 친척 중에서 절 앞세워 외가에서 거금을 빌려놓고서 한달 내에 갚겠다더니 한달 내에 갚기는 개뿔 1년 반 가까이 갚겠다는 이야기도 없어서 외가에 갈 때마다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만든 사람이 있어서 분노를 넘어 그보다 흉악한 충동이 치밀 때도 있습니다. 그냥 다 때려부수고 뛰쳐나올까 하는 유혹도 자주 들더군요.
외가 쪽 친척들과는 한달에 서너 번 정도 만나서 서로 이야기하는데 얼마 전에 제 한탄을 들으시고는 그 집에 계속 있다간 너도 네 엄마처럼 암 걸려서 죽는다며 얼른 그 집에서 독립하라는 무서운 말을 하시더군요.
집 나오면 개고생이라는 말이 있지만 홧병 걸려 훅 갈 위험에 처할 바에야 그냥 배가 주리더라도 마음의 평안을 얻는 게 우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기숙사에서 혼자 살 적에는 생활비가 제때 안 와서 며칠 연속으로 끼니를 걸렀을지언정 지금처럼 분노와 파괴충동에 시달리지는 않았으니까요. 심란하네요.
ps. 이제보니 40년만이 아니라 24년만이더군요. 과도한 분노로 인한 일시적 착오겠지만 좀 부끄럽네요...
원환과 법희와 기적의 이름으로, 마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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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드리갈
2018-07-23 03:03:11
정말 비가 좀 왔으면 하는 폭염이 이어지고 있어요.
기온이 체온보다 근소히 낮은 것만으로도 만족할 정도...
그러셨군요. 그런 경우 있죠. 저 또한, 주변에서의 헛소리에 분노에 휩싸여 잠을 이루지 못한다든지 하는 경우가 있어서 충분히 이해하고 있어요.
개인의 일신전속적인 문제를 함부로 말하는 게 정말 싫죠. 우울증이라는 게 절대로 가벼이 여길 만한 문제가 아닌데...제 경우는 알레르기에 대해서 주변에서 먹다 보면 낫는다, 체질이 뭐같이 별나서 그렇다 하는 식으로 비난받았다가, 실제로 알레르기 증상으로 고생하는 것을 보고는 아니면 말고 식으로 태세전환하는 상황을 접했어요. 비난할 때에는 그렇게 있는 소리 없는 소리를 해 놓고...그래서, 이미 십여년 전의 기억이긴 하지만 여전히 원한을 품고 있어요. 이미 오래전에 죽은 자가 한 말인 "○○에서 피 나오는 게 벼슬이냐!!" 하던 야유도 여전히 생각나고 있고...
외가 쪽의 조언이 무섭네요...
한편으로는, 제가 도움을 드릴만큼 여력이 못되는 것이 부끄럽고 한탄스럽기도 하고...
마음을 잘 다스린다는 게 힘들긴 하지만, 그래도 해야겠죠. 포럼에서 이렇게 근황을 이야기해 주시는 것도 그 마음 다스리기를 위한 큰 결단일 거예요.
근황과 마음 속 이야기를 여기서 해 주신 데에 깊이 감사드리며, 상황의 해결을 같이 기원할께요. 조력을 제공할 수 있는 방안도 열심히 찾아야겠어요.
앨매리님은 혼자가 아니예요. 그것도 기억해 주시길 부탁드려요.
앨매리
2018-07-23 04:41:27
위로 감사드립니다. 포럼의 존재 자체가 큰 힘이 되고 있어요. 외가에서도 못 털어놓는 고민을 이곳에 이야기하고 조언과 위로를 받으면 무겁고 우울했던 심정이 한층 가벼워지고 훨씬 나아져요.
해외에서는 알레르기 환자에게 알러지 반응을 일으키는 물질을 먹이면 살인미수로 취급할 정도로 중히 여기는 반응인데 한국에서는 아직도 근성론이니 노오오오력이 부족해서이니 하는 인식이 우세인 것 같아 답답하기도 하면서도 화가 납니다. 아주 적은 분량만으로도 목숨을 잃을 수 있는 게 알레르기인데 말이죠.
이번주 안에 외삼촌들과 만나기로 했는데 한번 본격적으로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말하지 않으면 결국 아무도 모르니까요.
SiteOwner
2018-07-24 20:39:13
안녕하십니까, 앨매리님. 잘 오셨습니다.
정말 비가 좀 왔으면 좋을 정도로 폭염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고등학생 때였던 1994년의 그 끔찍했던 여름의 악몽이 다시 떠오르고 있다 보니 여러모로 걱정이 안 될 수가 없고 그렇습니다. 건강을 잘 유지하실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오래전 저희집과 친척 관계가 생각나다 보니 남의 일로만 보이지가 않습니다.
앨매리님께서 얼마나 고생하셨는지도 역력히 드러나다 보니, 더욱 연민하게 됩니다.
나쁜 쪽은 그렇게 개인 사정도 모르고 막말하는 자들이지 앨매리님이 아닙니다. 그러니 마음을 잘 추스릴 수 있으시길 바라겠습니다.
위에서 동생이 좀 이야기를 해 두었습니다만, 그 친척이었던 자들은 저희집을 무시했을 뿐만 아니라 동생을 몇번 죽일 뻔 했다 보니 아직도 원한 자체는 남아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이미 받아낼 것도 다 받아냈고, 절연한지 오래인데다 이제는 저희집과 아무 인연이 없다 보니 그들이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지도 않을 따름일 정도로 극복해 둔 상태입니다. 앨매리님에게도 좋은 날은 꼭 올 것입니다.
힘드신 와중에도 포럼을 찾아주시고 포럼을 큰 힘으로 여겨주신 점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음악 한 곡을 소개해 드립니다.
J.S.바흐(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의 협주곡 D장조 BWV 1054. 연주 잉글리쉬 콘서트, 쳄발로 및 지휘 트레버 피노크(Trevor Pinnock, 1946년생).
앨매리
2018-07-25 12:22:36
아침에는 그나마 낫지만 조금만 움직여도 땀 범벅이 되니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싶더군요.
같은 피가 흐르는 사람이 죽이려 달려든다니 생각만 해도 오싹하군요. 피는 물보다 진하다지만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거나 당장 지금 겪고 있는 일에 비추어 보면 혈연도 참 덧없다고 느껴집니다.
좋은 음악 소개에 늘 감사드려요.
마키
2018-07-25 20:24:36
서울의 역대 최고 기온이 1994년의 섭씨 39도라는데,?22일 최고 기온이 무려 38도였죠...
심지어 개인적으로 역대급 여름이었던 2016년보다 섭씨값의 수치 자체는 올해가 더 높을 지경(노원구 기준으로 2016년 7월의 평균기온 30도 이상인 날이?18일.?2018년 7월은?아직?1주일이 더 남았는데도 평균기온 30도 이상인 날이 12일.).
아무래도 밖에 잘 나가질 않다보니 그리 덥다는 체감이 안 나는듯 싶기도 하네요.
앨매리
2018-07-30 08:01:21
작년에는 더워서 잠 못 자는 일은 없었는데 이번에는 수시로 깨는 일이 자주 있어서 폭염을 더 생생하게 체감하게 됩니다.
덕분에 도서관 가는 횟수가 이전보다 배는 늘었어요. 전기세 걱정 없이 에어컨 바람 쐴 수 있으니 그야말로 천국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