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현안의 의외의 접점 - 1. 게임과 공시생과 사교육
여러 현안의 의외의 접점 - 2. "여자 몇 분?" 과 열정페이
여러 현안의 의외의 접점 - 4. 연예인 머리핀과 액티브X와 편가르기
계명구도(鶏鳴狗盗)라는 한자성어로 유명한 춘추전국시대의 인물 맹상군은 본명이 전문(田文)으로 제나라의 정승 전영의 아들이었지만 사실 버림받은 아이였습니다. 이유인즉, 그는 첩의 몸에서 났는데다 당시 속설에 5월 5일에 태어난 아이는 문 높이 정도로 키가 크면 아버지를 죽이게 된다는 게 있었다 보니 전영이 대놓고 싫어해서 내다 버리라고 명해서였습니다. 하지만 그 전문을 낳은 첩은 아이를 몰래 길렀고, 그가 다섯살이 되자 첩은 그 전영에게 아들을 데려갔습니다.
그 전문이 아버지에게 물었습니다. 왜 자신을 버리라고 했는지.
전영이, 5월 5일에 태어난 아이는 아버지를 죽인다고 해서라는데, 그 전문은 그에 대해서 목숨은 하늘이 내린 것인데 그걸 어찌 가족이 뺏을 수 있으며, 문의 높이만큼 자라는 게 무서우면 문을 높이 지으면 될 것인데 사람의 운명이 그러면 문에 달린 것이냐고 반문했습니다. 다섯살 어린이가, 그것도 제대로 된 교육을 받았을 리가 없는 아이가 그렇게 답하는 것을 본 전영은 크게 뉘우치고, 결국 그를 후계자로 세웠는데 그가 바로 후일 3천 식객을 거느리며 중원에 명성을 떨친 맹상군이 되었습니다.
이 맹상군 이야기에서 특히 감동받았던 것 중의 하나가, 문 높이를 높이면 된다는 그 발상. 기존의 규제에 얽매이거나 규제 그 자체를 금과옥조로 여겨서 정작 지켜야 할 것을 잃어버리는 가치의 주객전도 같은 문제를 그 고대에, 그리고 그 어린 나이에 꿰뚫어 보았다는 데에서 경외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서 근현대의 규제만능주의를 되돌아보면서, 정말 문명이 발전하기는 했는지 비판해 보고 있습니다.
1970년대 권위주의 정권 시대에는 지금으로서는 생각하기 힘든 별의별 이상한 규제가 횡행했습니다. 전국민에게 적용되던 야간통행금지, 약칭 통금은 물론이고, 청년층에 대해서는 남성의 장발이나 여성의 미니스커트 착용 등에 대한 단속 또한 있었습니다. 그래서 장발의 남성들은 경찰관에게 강제로 이발을 당하기도 했고, 여성들에 대해서는 경찰관들이 자를 들이대서 치마의 끝단이 무릎에서 얼마나 올라갔는지를 두고 옥신각신하는 일이 횡행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당시 일부 여성들은, 반투명한 랩스커트를 미니스커트 위에 두르는 식으로도 단속을 무력화했다고 합니다.
이게 국민생활의 일거수일투족에 간섭하려는 권위주의 체제가 낳은 한때의 해프닝이었다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런데 이러한 규제만능주의 발상은 민주화된 오늘날에도 여전히 끈질기게 살아남아서 사회의 여러 단면에서 촌극을 빚어내고 있습니다.
우선은 최근 걸그룹 관련을 보겠습니다.
음악방송에서 걸그룹이 출연하는 것을 보면, 수년 전부터 복장이 크게 달라진 것이 감지됩니다. 미니스커트를 입는 경우는 흔히 보이지는 않고, 핫팬츠 아니면 다리의 라인을 선명히 드러내는 타이즈 같은 긴 바지가 대세로 정착해 있습니다. 미니스커트가 선정적이다, 유해하다, 어린이나 청소년이 보면 곤란한 점이 많다 어쩌고 해서 공격대상이 되자, 결국 각 걸그룹의 대응방법은 긴 치마를 입는 게 아니라 아예 치마가 아닌 옷을 입는 게 되었고, 그 결과 미니스커트 규제는 하반신의 라인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치마를 입었을 때 드러나지 않는 고간의 라인이 필연적으로 선명히 드러나는 핫팬츠가 더욱 좋은 선택지가 되었습니다. 즉 규제해봤자 전혀 효과가 없을 뿐만 아니라 얼마든지 규제를 벗어날 수 있게 되었고 그 결과가 자유방임하의 경우보다 노출도가 더욱 높아지는 방향으로 갔으니 역효과도 이런 역효과가 없습니다.
이런 규제만능주의에 대해서 보고 배운 것이 없는지, 올해에도 또 이상한 게 나왔습니다.
이름하여 먹방 가이드라인.
먹방이란 먹는 방송의 약칭으로, 방송내의 출연자들이 여러 음식을 먹는 모습을 중심으로 먹은 음식에 대한 정보 소개, 감상평 등을 부가하는 컨텐츠입니다. 이러한 방송은 고독한 미식가 시리즈로 대표되는 드라마, 테이스티로드, 원나잇 푸드트립, 식신로드 등의 맛기행 등 여러 포맷의 것이 인기를 누리고 있으며, 정규방송은 물론 키노시타 유우카(木下ゆうか) 등의 1인 인터넷방송에 이르기까지 백가쟁명의 시대를 누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먹방에 정부가 가이드라인을 세우려고 했다가 역풍이 일었습니다.
가이드라인의 취지는 대략 이러합니다. 먹방이 폭식을 조장하고 미성년자에게 악영향을 끼칠 수 있으니 대책이 필요하고 그 일환으로서 가이드라인 개발 및 모니터링 체계 구축이 필요하다는데, 과연 이게 타당할지는 의문입니다. 아니나다를까 개인생활에 왜 이래라저래라 간섭하냐고 반발하는 목소리만 높아졌는데, 그러자 나오는 정부측 해명은 가이드라인이 법적 강제성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데...
분명 이게 2018년에 일어난 일입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1970년대 권위주의 시대의 판박이인 것은 물론이고, 2000여년도 더 전에 나온 "문의 높이만큼 자라는 게 두렵다면 문을 높게 만들면 될 일이다" 라는 어린 맹상군의 발언에 비하면 발전하기는커녕 생각이 더욱 퇴화해 있습니다.
실현가능성은 전혀 없습니다만, 만일 미니스커트 단속, 먹방 가이드라인 등이 성공했다고 한들, 정말 그게 성공할 것인지는 의문의 여지가 많습니다. 누군가가 실내복으로만 미니스커트를 착용한다든지 하는 일도 얼마든지 가능하고, 설령 미니스커트의 제조판매가 공식적으로 금지된다고 하더라도 롱스커트 등을 자르거나, 책으로 출판되어 있거나 인터넷에 올라온 옷본을 이용해서 직접 제조하면 그만인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먹방 또한 공식적으로는 사라지더라도, 자신이 개인 생활공간에서 음식을 먹는 모습을 거울로 보는 행위까지 막을 수 있을까요? 중국 모택동 시대의 인민공사(人民公社)같은 방식으로 국민 식생활을 전면통제하지 않는 한 불가능하고, 예의 인민공사조차도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또한, 이러한 규제만능주의에는 심각한 논리적 흠결이 하나 있습니다.
어차피 과거의 권위주의 정권은 오늘날에는 사라져 있는데다, 과도기에는 여러 정책과 사조가 실험되다가 취사선택되는 게 정상이다 보니 그 시대의 긍정적인 유산은 현대적으로 재구성하여 계승하고, 부정적인 유산은 새로운 것을 도입하여 극복하면 될 일입니다. 그런데 규제만능주의를 신봉하게 되면 과거의 권위주의 정권의 규제가 결과적으로 옳았고 결국 그 권위주의 정권의 부정적인 유산도 변함없이 계승되어야 한다는 결론밖에 내지 않게 됩니다. 국민이 공산주의 같은 불온한 사상에 감염되면 안되기에 사상의 자유를 막자는 것과 국민이 선정성의 피해를 입지 않도록 미니스커트를 단속하자, 폭식, 비만 등에 경도되지 않도록 먹방에 가이드라인을 만들자는 것과 본질적 차이가 있다고 보기조차 무리입니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은 과거의 유산인 것만으로 충분하지, 정파만 바뀐 채 오늘날에까지 존속하고 있을 필요는 없으며, 이것에 대해 문제의식조차 갖지 않는 현실은, 결국 국민을 대하는 시선이 국민을 무지몽매한 존재로 낮잡아 보는 데에 아무런 변함이 없다는 것과도 일맥상통합니다.
동생이 얼마전에 한 농담이 생각나고 있습니다.
"난 걸어다니는 음란물이 되겠네, 고독한 미식가는 정말 숨어서 봐야 할지도 모르겠고..."
이 농담이 앞으로도 농담 차원에 머물러 있으면 좋겠는데, 가능하긴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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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댓글
대왕고래
2018-08-18 23:02:16
사람들은 앞으로 나아가는데, 지도자들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네요.
그래서 시대에 뒤떨어진 "규제" 카드만을 계속 꺼내들죠.?
시대를 파악하고 있다면 그런 카드를 꺼내들 리가 없는데 말이죠. 당장 꺼내놓고 보면 그거대로 잘 되냐고 하면, 글쎄요... 우회로 때문에 의미가 없어지지 않나요? 제가 생각해도 그런 결론이 나오는데 왜 그런 카드를....
SiteOwner
2018-08-19 21:49:19
그런 기현상이 일어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인간과 문화에 대한 이해 부족이나 권위주의로 인해 제한된 시야 등이 그 참극의 원인이니까요. 인류 문명사에는 전횡에 대해서 무조건적인 굴종보다는 저항이나 도피 등의 방법으로 대응한 사례가 차고 넘치는데 그런 것들이 유독 보이지 않으니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처음부터 될 공산이 없는 것입니다.
지도자의 가장 큰 능력 중의 하나는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입니다. 그래야 사람들이 움직입니다. 그것이 없는 규제는 전횡에 불과하고, 그 전횡은 얼마든지 무력화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