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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SMOPOLITAN] #1 - The Headliners (1)

Lester, 2018-08-24 05:04:39

조회 수
164

The Headliners - 헤드라이너(신문의 표제를 다는 사람, 혹은 인기 배우를 뜻함)




"안 되겠는데."

책상 너머에서 계속 서류를 들여다보던 남자가 마침내 고개를 들고 대답했다. 등받이가 없는 의자에 앉은, 안경을 낀 남자가 항의했다.

"왜요! 마을신문에서는 잘만 실렸는데!"

"거기하고 여기하고 같은지는 내 알 바 아니고, 내용이 잘못됐어."

등받이가 있는 의자에 앉은, 역시 안경을 낀 남자가 펜으로 타이핑된 원고를 툭툭 치며 말했다.

"뭐 시청에서 관리를 안 해서 내버려진 공공시설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나쁘지 않았어. 그런데 그 대안이랍시고 내놓은 게 뭔가. 갤러리와 카페? 자네, 축축하고 음산한 지하보도를 그렇게 바꾼다고 해서 사람들이 몰릴 것 같나?"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대로 놔둘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가끔은 무작정 손을 대는 것보다 놔두는 게 나은 경우도 있어. 그 지하보도가 횡단보도 때문에 버려진 것은 일단 당연한 처사야. 하지만 그렇다고 100% 안 쓰이는 것도 아니잖나. 비가 오는 날이라던가, 여름이라던가."

"저도 그 여름에 시원한 점을 짚은 겁니다. 그 더운 날에 아이스커피를 파는 카페로 말이죠."

유리한 부분이 나오자 레스터 리Lester Lee가 그 부분을 덥석 물었다. 하지만 역시 미끼였다. 책상 건너편에 앉은 편집장 디머 올레인Deemer Allain의 얼굴이 분노로 살짝 일그러졌다. 하지만 베테랑답게 익혀둔 사회적 배려가 그 얼굴을 다시 펴주었다.

"그렇게 생각할 줄 알았지.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자네 생각이야. 같은 돈 주고 커피를 마실 수 있으면 왜 굳이 시궁창 냄새가 나는 곳으로 가겠나? 시궁창 냄새 이야기가 나오면 환경부 기자도 불러야 할 걸? 거기가 영업을 하거나 쉴 수 있는 장소인지 확인해야 되니까 말이야. 여기까지 생각하고 이 주제를 고른 건가, 아니면 그냥 그 마을신문인지 뭔지에서 먹혔으니까 여기서도 먹힐 거라고 안일하게 생각한 건가?"

올레인이 조목조목 지적을 할수록 레스터의 어깨는 점점 더 처졌다. 레스터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자 올레인은 돋보기 안경을 벗으며 말했다.

"아무리 담당자가 휴가를 가서 내가 봐준다지만, 이래가지고 되겠는지..."

"알겠습니다. 그럼 다른 주제로 써 오겠습니다."

이런 상황 특유의 일방적인 훈계를 더 견뎌낼 자신이 없었던 레스터가 얼른 항복선언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레스터가 등을 돌리는 순간, 올레인이 말했다.

"잠깐."

"네?"

"다른 주제로 써 오라고 한 적은 없는데?"

"무슨 말씀이신지..."

"나는 어디까지나 내용이 나쁘다고 했어."

올레인이 앉으라는 손짓을 하자 레스터는 군말없이 다시 자리에 앉았다.

"공무원들은 말이야, 가급적 일을 많이 하지 않으려는 천성이 있어. 가만히 있어도 돈이 나오는데 뭐하러 위험한 일을 벌이겠나? 더구나 실패할 게 뻔하다면 말이야."

"그럼..."

"시청 녀석들의 눈이 돌아가게 글을 써야지. 어디, 자네 사설을 다시 한 번 볼까. '이대로 놔둬서는 안 될 것이다' 같은 부분은 너무 공격적이니까 더 약하게 쓰는 게 좋아. 이렇게 공무원들을 직접적으로 겨냥해버리면, 그 쪽도 비협조적으로 나오거든. 새 일을 벌이기도 전에 관리 문제 때문에 골치가 아플 테니까. 그리고 이 다음 줄."

그렇게 올레인이 지적 한 번에 빨간 줄을 한 번 긋자 결국 빨간 줄 투성이가 되어버렸다. 레스터가 그 원고를 받아들고 실망한 기색으로 말했다.

"그냥 다른 주제를 택하면 안 될까요?"

거의 애걸하는 수준이었지만 올레인은 단칼에 거절했다.

"한 번 잡은 좋은 주제는 어지간하면 쉽게 포기하지 않는 게 좋아. 가볍고 사소한 주제일수록 다른 데에서 먼저 써버리면 끝장이거든. 어쨌든 그 상태로는 절대 실을 수 없으니까, 지적한 대로 고쳐봐."

"...알겠습니다."

레스터가 결국 원고를 정리해서 가방에 넣는데 지나가던 고참 편집자가 레스터의 어깨를 다독이며 말했다.

"너무 낙심 말라고, 친구. 우리 대장님이 그렇게 챙겨주는 건 그만큼 기대한다는 뜻이니까."

"뭐라고 했나?"

"지나가다 참견 좀 했습니다?"

올레인이 묻자 고참 편집자는 쌩하니 자기 자리로 가버렸다.

"나 참, 인정머리라는 게 뭔지..."

올레인은 투덜거리며 창 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햇빛에 언뜻 비친 얼굴을 보니 그는 피식 웃고 있었다.


한편 레스터와 편집장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즈음, 그들이 있는 신문사가 세들은 건물 뒤편에는 수상한 남자 세 명이 모여 있었다. 양아치라기엔 너무 번듯하고, 프로라기엔 너무 허술한 묘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무언가를 기다리는지 계속 줄담배를 피워대고 있었다. 대장인 듯한 남자는 이제 네 번째 담배를 다 피고 발로 비벼 끄고 있었다.

"젠장, 똥까지 싸고 오는 건가? 뭐 이렇게 늦어?"

"형님께서 용서하십쇼. 오죽하면 별명이 시티 짐Jim이겠습니까."

"도시City?"

"똥쟁이Shitty요."

그 말과 함께 부하 두 명이 웃었지만 대장이 웃지 않는 걸 보자 얼른 웃음을 멈췄다. 대장이 말없이 가슴께로 손을 가져가자 그들은 '괘씸죄' 때문에 자신들을 처형하려는 게 아닌가 하여 겁을 먹었다. 하지만 그는 담배갑을 꺼냈을 뿐이었고, 농담을 던지지 않은 부하가 재빨리 불을 붙여줬다.

"나도 그렇고 우리 조직도 그렇고, 완전 말세다. 너네같은 놈들을 부하라고 데리고 다녀야 하니..."

"죄, 죄송합니다."

부하 테리Terry와 아놀드Arnold가 고개를 조아렸지만 대장 고프레도 푸미체Goffredo Pumice는 화가 쉽사리 풀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이 마피아도 바뀌어야 하는데 말이야, 저 뒷간 늙은이들이 전통을 고수한답시고 지랄을 하니까 정회원을 못 늘린다고. 알아? 그 빌어먹을 순수혈통주의 때문에, 이탈리아인의 피가 섞이지 않으면 가입을 못 시켜. 그러니까 너네들이 아무리 개같이 노력을 해도, 패밀리에는 들어올 수 없다 이거야. 알아? 너네들 챙기려고 여기저기 빌고 다니는 내 입장을 너네들이 알겠냐고!"

"죄, 죄송합니다."

테리와 아놀드의 고개가 더욱 낮아졌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 사이에 다섯 번째 담배를 다 핀 푸미체가 먼 하늘을 보며 말했다.

"하지만 걱정 마라. 규칙은 깨라고 있는 거니까."

"무슨 말씀이신지...?"

눈치 빠른 아놀드가 눈치 없는 테리를 말렸지만 푸미체는 개의치 않았다. 그는 잠시 주위를 둘러본 뒤 그들에게 조용히 말했다.

"너네들, 마피아가 되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냐?"

"네!"

테리와 아놀드가 소리로 염원을 표현하자 푸미체가 황급히 그들의 입을 막았다.

"머저리들, 대답이 너무 크잖아!"

"죄송합-"

"시끄러!"

푸미체가 역정을 내자 그들은 고개만 끄덕였다. 푸미체는 다시 주위를 둘러보더니 말했다.

"우리 조직인 그리지오 패밀리Grigio Family는 말이야, 5대 패밀리 중 하나인 브루네티 패밀리Brunetti Family의 하부조직이라 평의회The Commission(실제 미국 마피아들의 연립정부라고 할 수 있는 모임 및 회의. 1985년 이후로는 폴 카스텔라노 암살 사건과 관계된 재판으로 인해 세간의 추궁을 피하기 위해 직접 만나지는 않고 각 조직에서 투표권을 가진 대리인이나 연락자를 보낸다고 함)에서도 제법 발언권이 있거든? 하지만 하부조직이라는 이유로 계속 시다바리 역할만 하고 있을 뿐, 그 위로는 올라가지 못해. 그러면 우리도 거기까지일 뿐이야. 언젠가는 위로 올라서서, 직접 규칙을 만들어야 해."

"그 말인즉슨..."

"조용히 하랬지!"

이번에는 푸미체도 겁을 먹은 게 분명했다. 일반 회사나 친목회에서도 대놓고 반목하기란 힘든데, 하물며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범죄조직은 어떻겠는가. 더구나 푸미체 역시 기밀을 유포한 죄로 입막음을 당하고 헛소문을 퍼트린 인간으로 매도당할 수도 있었다. 그 가능성이 마음에 걸렸는지 푸미체는 몇 번이고 부하들에게 입단속을 시켰다.

"그냥 아무 생각 말고 내 뒤만 따라오면 돼. 알겠지."

테리와 아놀드는 계속 고개만 끄덕였다. 말을 해도 된다는 허락을 아직 못 받았기에. 그 순간 신문사에서 내려온 남자 '똥쟁이' 짐이 헐레벌떡 그들에게 뛰어왔다. 짐은 숨을 돌리자마자 말했다.

"안에 있습니다."

"그런데 뭘 하느라 이렇게 늦었어?"

"똥 싸느라..."

농담이 사실이 되자 그 이야길 꺼낸 테리가 피식 웃었지만, 푸미체는 짐의 따귀를 때리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걸 보자 뺨을 얻어맞은 짐은 물론 테리도 아놀드도 웃지 않았다. 푸미체는 거리를 둘러보더니 외투를 바로잡으며 말했다.

"자, 올라가자."


(계속)


---------------------------------------------------------------------


리부트 이후 오랜만에 쓰는 글입니다. 그러니까 오프닝에 해당하는 에피소드라고 보시면 됩니다. 몇 번 얘기했듯이 일단 레스터와 존이 어떻게 만났는지를 언급해두는 게 편할 것 같아, 앞서 썼던 연재분은 파일럿(일종의 체험판)으로 돌렸습니다. 뭐 이 오프닝이 끝나면 다시 시간의 흐름에 관계없이 사건이 터져나갈 예정이지만요.


첫 문단에 나오는 지하보도 재활용에 관한 사설은 실제로 제가 마을신문의 기자로 활동할 때 기사를 썼던 경험을 살렸습니다. 실제로 신문에 기사가 나가기는 했지만, 작중과 마찬가지로 여러가지 문제가 겹쳐서인지 결국 재활용되진 못했습니다. 다만 음침한 아파트 구석에 벽화를 그려서 분위기를 개선하자는 기사도 썼었는데 그건 실현이 되었지만요.


두 번째 문단에서 마피아에 대한 설정을 너무 두서없이 늘어놓은 건 아닌가 하는 걱정도 있네요. 아무래도 글쓰기를 이런 쪽(?)으로 시작해서 그런지 예전의 느낌을 살려보려고 했는데 읽으시는 데 이해가 안 될까봐 걱정됩니다.

Lester

그거 알아? 혼자 있고 싶어하는 사람은 이유야 어쨌든 고독을 즐겨서 그러는 게 아니야. 사람들한테 계속 실망해서 먼저 세상에서 모습을 감추는 거야. - 조디 피코

4 댓글

마드리갈

2018-08-24 16:29:50

올레인은 상당히 꼼꼼하고 용의주도한 사람이군요.

저런 사람들이 겉보기와는 다르게 상당히 성실하고 제대로 된 경우가 많아요. 처음에 대하기에는 상당히 진입장벽이 높긴 하지만요. 물론 친절하면서 유능한 사람이면 금상첨화겠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으니...

마피아에 대해서 보통은 지식이 일천한 경우가 많으니, 이렇게 이야기 속에서 자연스럽게 풀어놓는 것도 좋아 보여요. 폭력으로 원하는 바를 얻는 자들이니 무소불위일 것 같은데 실상은 낡아빠진 순혈주의에 얽매여서 조직은 나날이 약해져 가고, 무슨 이유로 찍혀 죽을지도 몰라서 사는 게 늘 살얼음판인 모습이 쉽게 연상되네요.


이럴 때마다 제가 그림실력이 파멸적인 게 안타까와요.

굉장히 선명하게 이미지가 떠오르는데...재미있게 잘 읽고 나서도 그림으로 표현을 못하니...

Lester

2018-08-24 22:12:47

1. 현실은 정말 녹록치 않죠. 아무리 현실적인 작품을 봐도 작품이라 잘 풀려가지만 실제 현실은 그 정도로 잘 풀려가는 일이 거의 없으니...

2. RICO법령(조직범죄 처벌법의 일종)에 두들겨맞고 몰락한 현실과 달리, 작중에서는 무소불위인 건 사실이고 또한 엄청나게 막강한 존재들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순혈주의(이 역시 실제 마피아의 규칙 중 하나입니다)라는 전통과 규칙을 고수하다 보니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는 셈이죠.

3. xkcd처럼 졸라맨 정도로 그려도 문제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저는 그림체 그 자체보다는 상황의 설정과 인물의 움직임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해서요. 제아무리 순정만화 그림체라도 머리만 덜렁 그려놓거나 목각인형처럼 차렷 자세만 하고 있는 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SiteOwner

2018-08-28 21:28:57

도시개발의 역사가 긴 유럽 및 북미와 비교적 짧은 동북아시아의 차이가 도심 지하공간에 대한 인식 및 실상에도 극명히 드러납니다. 유럽의 경우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수준으로, 프랑스 파리 지하의 카타콤은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나치독일군과 레지스탕스가 본부로 사용했지만 전쟁이 끝나는 날까지 서로를 찾지 못했다고 하며, 미국 뉴욕 지하철은 더럽기 짝이 없는데다 9.11 테러 이전에는 우범지대로도 악명이 높기도 했습니다. 지하철의 역사가 곧 100년이 다 되어 가는 일본이나, 20세기 후반부터 지하철 개발 등으로 도심 지하공간이 활용되기 시작한 한국과는 천양지차일 수밖에 없습니다.


건물 한구석이나 골목 등에서 모여 담배를 피우면서 대기중인 남자들의 모습은 확실히 무섭습니다. 경계를 안 할 수가 없는 상황이지요. 게다가 작중의 그들은 마피아 조직원들이니...

Shitty Jim은 그 별명의 유래가 언젠가 곤란한 상황의 단초가 될 것 같아서 좀 불안하게 보입니다,

Lester

2018-09-03 04:48:12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는 비단 지하차도만이 아니더라도 지하에 대한 인식이나 역사적 사실이 거의 없네요. 딱 하나 '무덤'을 제외하고... 공교롭게도 높은 건물 또한 현대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었네요. 전부 옆으로 넓기만 하고. 중국이나 일본도 2층 이상의 누각은 존재했는데 말이죠. 우리나라가 특이한 걸까요? (나중에 에피소드 소재로 다루고 싶은 부분이랑 연관이 되어 있어서 묘하게 궁금합니다)


하지만 제 작품에서는 조직범죄가 경우에 따라서는 프로들의 모임 혹은 멍청이 집단으로 이미지가 명확하게 갈려서 묘사되기 때문에 항상 무서운 건 아니라고 볼 수 있습니다. 뭐 그래도 마주치고 싶지 않은 건 사실이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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