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현안의 의외의 접점 - 5. 미니스커트 단속과 먹방 가이드라인
8월 하순의 어느 주말, 동생과 여러 이야기를 하면서 휴일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나왔던 이야기 중에서는 애니메이션 캐릭터 관련도 있는데, 특히 죠죠의 기묘한 모험 4부의 캐릭터 중 가장 기묘한 미키타카에 대한 것도 있었습니다.
미키타카의 정체에 대해서는 작중에서 분명히 밝혀진 게 없다 보니 과연 외계인일까에 대해서도 논란이 분분하지만, 저는 미키타카가 지구인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 결정적인 증거는 자신을 "마젤란 성운" 출신이라고 말한 것 그 자체. 마젤란 성운은 지구에서 본 천체이고, 그 이름 또한 지구인이 붙인 것입니다. 게다가 그게 현지에서는 어떤 형태인 것인지 지구에서 보이는 것과는 충분히 다를 수 있는데 지구인의 관점에서 말했다는 것 자체가 그 천체 출신이 아니라 지구인이라는 것. 이것이 저의 미키타카 지구인설의 골자입니다.
물론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미키타카가 지구인과 대화하기에 지구인의 기준에 맞추어서 그렇게 설명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이렇게 생각하면 결국 미키타카의 출신에 대한 단서는 없지 않는가 하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고. 그것을 고려하지 않은 것은 아니긴 하지만, 그래도 최소한 미키타카는 지구인에 대한 이해가 아주 깊고, 따라서 지구인과 거의 동일한 수준의 사고방식을 보유하고 있고 그에 따라 지구인에 거의 근접한 언어구사를 하고 있는 것은 추론가능합니다.
또 다른 캐릭터를 보겠습니다.
기어와라 냐루코양의 캐릭터 냐루코. 이는 미국의 작가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Howard Philips Lovecraft, 1890-1937)가 창안한 크툴루 신화에 등장하는 니알라토텝을 모티브로 하였는데, 미소녀의 외형을 하고 있으면서 이름은 일본풍입니다. 냐루코라는 이름 자체가 니알라토텝의 일본어 발음 냐루라토호테프에서 일부를 취한 후 일본식 여성명에 잘 붙는 코(子)를 붙여서 만들어진 것인데다, 주인공 야사카 마히로의 취향에 맞추어서 일본 만화나 라이트노벨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스타일의 미소녀의 모습으로 나타난 것인데, 만일 냐루코가 본래의 모습대로 나타났다면 이름이 발음이 가능하지 않을 수도 있고, 실제의 모습이 크툴루 신화의 특성상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끔찍하고 기괴한 괴물의 몰골 그 자체일지도 모를 일임을 감안한다면 냐루코의 사고방식 또한 위의 미키타카와 거의 동급으로 지구인 레벨입니다. 단지, 여기서는 이미 작품의 설정 자체에서 냐루코가 외계 출신이라는 게 명시되어 있으니 냐루코가 외계인인지 지구인인지를 따지는 것은 가능하더라도 무의미한 것이 유일한 차이일까요?
여기까지 읽어보셨다면, 뭔가 짚이는 점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대동소이하게 이렇게 귀결될 것입니다.
"세계는 우리 자신의 관점으로 봐야 한다."
"우주 어디에서 오든간에 지구에서는 지구인의 관점이 통용된다."
이 두 가지가 성립되지 않는다면, 이런 참극이 벌어질 것입니다.
하늘의 천체를 보고서도 저 천체 출신자를 만나지 못해서 천체를 가리킬 수도 없을 것이고, 설령 그 천체 출신자를 만나더라도 지구인이 지구인의 관점에서 그 외계인과 대화를 할 수 있을지조차 의문인 상황에 직면합니다. 자신의 관점이 있으니까 언어와 사고가 있는 것이고 그것에서 문명이 출발하는 것인데 문명의 태동의 대전제가 부정되는 마당에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그런데 놀라지 마십시오.
요즘 국내의 어문정책이, 저런 반문명주의적인 작태를 옳다고 언중에 강요하고 있습니다.
현지원음주의라는 방식이 바로 그것.
얼핏 생각하면, 현지에서 부르는 대로 쓰면 되지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싶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저 또한 그것 자체를 전면부정하지는 않습니다. 단적으로 로스앤젤레스를 올림피아라고 부를 수 없고, 시애틀을 스프링필드로, 뉴욕을 새크라멘토로 부를 수 없는 것은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빤한 것이니까요.
하지만 현지원음주의로 명명되면 이것은 오류가 되어 버립니다. 주의(主義), 즉 옳다고 여겨지는 어떠한 신념체계가 되어 버렸을 경우에는 언어와 사고의 제대로 된 성립이 저해되거나 불가능해집니다.
단적으로, 어느 주권국가의 영역도 아닌 남극대륙을 보겠습니다.
남극대륙에는 과학연구를 위해 각국이 설치한 시설에 일정 기간 주재하는 각국 연구인력을 제외하고는
상주인구가 없습니다. 이 경우, 남극대륙은 각 국가의 공용어대로 부르면 됩니다. 한국인은 남극대륙이라 부르고, 일본인은
난쿄쿠타이리쿠(南極大陸), 미국인이나 영국인 등 영어 사용자는 앤탁티카(Antarctica)로 부르면 될 일입니다.
그런데 현지원음주의가 앞서게 되면 이건 일단 상주인구부터 찾아야 하니 난리입니다. 그런데 분명 상주인구가 없다는 게 알려졌는데, 그러면 뭐라고 불러야 할까요? 현지의 이름을 알 수 없으니, 남극대륙은 있지만 현지원음을 모르니 부를 수 없는 상태, 그러면 이 남극대륙은 없는 거로 간주해도 되겠습니까? 각국의 공용어대로 불렀을 때와는 대조적으로 큰 혼란이 일어납니다.
백번 양보해서, 남극대륙 현지에 사는 펭귄이나 바다표범 등과 말이 통해서 그들이 쓰는 표현을 빌려쓴다고 하더라도 문제는 남습니다. 남극대륙에 서식하는 동물 중 어느 종을 그 지역을 대표한다고 규정할지에서 문제가 발생하고, 설령 그들의 표현을 빌어 쓴다고 하더라도 인간이 제대로 발음할 수 있는지, 게다가 가능하더라도 인간이 어떤 언어를 쓰는지에 따라 그들의 표현도 달라지게 됩니다. 펭귄이 남극을 끼에에엑으로 발음한다고 인간이 그 발음을 듣고 남극대륙을 끼에에엑이라고 표기할 수 있다면, 이게 언어에 따라서, 끼에에엑이 될 수도 있고 키이이익이 될 수도 있습니다. 대체 무슨 짓을 하는가 싶은데, 유감스럽게도 국내에서 추진되는 현지원음주의가 이러라고 강요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상주인구가 없는 남극조차 이런데, 외계 천체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외계인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상황에서, 외계 천체에서 지구로 언제 올지도 모르는 외계인을 하염없이 기다리면서, 저 천체를 보고서도 뭐라고 말할지 몰라서 있는 취급도 못하고 없는 취급도 못하는 이런 바보같은 일이, 인간의 관점에서 생각하고 말하면 전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현지원음주의는 만족되지 않는 선결조건에 의지하는 논리적인 흠결이 있어 옳지 않은 것입니다.
그런데 국내의 언어환경을 보십시오.
공자를 쿵쯔라고 부르는 언론이 있습니다. 공자는 중국인이니 중국식 발음으로 불러야 한다고.
맞는 것 같은데, 틀렸습니다. 사실 공자는 춘추전국시대 때의 인물로, 당시에 어떻게 불렸는지는
문자로는 기록이 되어 있어도 발음은 알 수 없는데 그걸 현대중국어 발음인 쿵쯔로 부르는 게 맞을까요? 틀렸습니다. 그나마 국내
어문정책상 현지발음으로 부르는 게 신해혁명 이후라는데, 그러면 그 신해혁명의 전후에 걸쳐 생존했던 사람들에 대해서 한 사람을 두
이름으로 불러야 합니다. 손문과 쑨원, 원세개와 위안스카이, 이런 식으로. 이게 현명한 처사일 것 같지는 않습니다. 게다가
신해혁명이 왜 그 기준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명쾌한 설명 같은 것은 전무합니다. 애초에 중국인명지명을 한국식으로 읽으면
처음부터 문제가 없었을 것을 복잡하고 이해안되는 규칙을 만들어서 혼란만 야기하고 있으니 이것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게다가 애초에
스스로를 "중국" 이라고 부르는 나라는 세계에 없습니다.
국어사랑 나라사랑 이야기를 하는데, 국내의 어문정책은 중국어사랑 중국사랑을 추구하고 있지 않은가
반문해 보고 싶습니다. 최소한 죠죠의 기묘한 모험이나 기어와라 냐루코양은 재미있기라도 한데, 국내의 어문정책을 보고 있으면
비논리적인 발상과 끝간데 모를 억지가 횡행하니까 그저 답답할 뿐입니다. 나라의 말과 글을 제대로 쓰려고 해도 이렇게 방해받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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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댓글
앨매리
2018-09-14 09:15:03
SiteOwner
2018-09-15 17:12:25
사용하는 언어에 투영된 관점을 보면 출신, 성장배경 등의 여러 요소를 추정해 낼 수 있는데, 그 논리를 적용해 보면 여러 재미있는 사실들, 특히 접점이 없어 보이는 사안에도 의외의 접점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렇게 볼 때 미키타카의 정체 및 현재 국내의 어문정책의 문제가 기묘하게도 이어진다는 것이 보입니다. 정체를 감추려 해도 무의식적으로 드러나는 지구인으로서의 관점이 드러나는 미키타카가, 자신의 관점에서 출발하는 언어와 사고의 구조를 무시하는 국내의 어문정책보다는 더 자연스럽다는 게 참 역설적이죠. 이래서 현실이 창작물을 능가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마키
2018-09-17 16:38:19
공자를 쿵쯔로 부르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군요.
솔직히 말하자면 본토 발음이 그런 것일줄은 전혀 몰랐네요.
중국하면 저는 이상하게 마오쩌둥만 모택동이란 한자 음차가 더 친숙하고 그외 원자바오 라든가 시진핑 이라든가 기타 중국어 인명은 그냥 중국어 발음이 친숙하네요. 지명이나 이런 것들도 북경(베이징) 상해(상하이) 사천(쓰촨) 남경(난징) 같이 자주 써서 친숙한 경우를 제외하면 마찬가지구요.
SiteOwner
2018-09-18 20:28:55
사실 공자뿐만이 아닙니다. 맹자를 멍쯔, 노자를 라오쯔라고 부르는가 하면, 자금성을 쯔친청, 2008년 북경올림픽 당시 주경기장을 궈자티위창, 냐오챠오 등으로 부르는 것을 보고는 뭐하는가 싶었습니다. 시베리아횡단철도는 러시아어 원어로는 Транссибирская магистраль(뜨란스시비르스카야 마기스뜨랄)인데 이렇게 읽지도 않으면서 중국의 인명지명은 뭐 그렇게 정성들여 읽는 것인지...
마키님께서 그렇게 느끼시는 것은, 어문정책이 근년 들어서 중국어 현지원음주의로 기울어져서 유입된 문물의 표기 자체가 달라져서일 것입니다. 사실 현지원음주의자들은 많이 쓰면 익숙해진다는 것을 근거로 삼고 있기까지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