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에 썼던 글인 철도의 궤간과 속도의 상호관계와 파생된 설정, 차량한계 관련의 간단한 정리에 이어서 이번에는 궤간가변 관련으로 써 보겠어요.
철도의 기본적인 구조는 금속제 레일에 구속된 차륜을 장착한 차량을 운행시키는 형태이고, 이것은 2개의 레일로 이루어지는 철도뿐만 아니라 모노레일, 케이블카 등의 비재래철도는 물론 심지어 비점착철도인 자기부상열차조차도 차륜이 직접 레일에 구속되지는 않지만 차량의 규격 자체가 궤도구조물에 구속된다는 점에서는 본질적인 점은 크게 다르지 않아요.
그렇다면 여기서 도출되는 원리가 하나 있어요. 특정규격에 구속되지 못하는 것은 운행할 수 없다는 것.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철도의 발명 이후 역사 속에서 온갖 방법이 강구되었어요.
초기 철도사업자들은 자신들의 규격을 전국적으로 관철하기 위해 갖가지 경쟁을 벌였고, 이것은 결국 19세기 전반 영국에서 궤간전쟁(Gauge War)이라는 극단적인 경쟁으로 번졌어요. 이것으로 인해 교통에 각종 비능률과 낭비가 심각해지자 영국에서는 1846년 철도규제법(Railway Regulation (Gauge) Act)으로 궤간을 규제해서 브리튼 섬 내에서는 4피트 8과 1/2인치(=1435mm), 아일랜드에서는 5피트 3인치(=1600mm)로 궤간을 정하고 나머지 규격은 대폭 제한을 가했어요. 이것을 필두로 난립하던 규격은 평정되고 통합되기에 이르렀죠.
이렇게 규격을 통일하는 것은 국가 단위로는 비교적 용이하게 되지만 국제적으로는 아무래도 난점이 많긴 하죠. 서유럽처럼 육상 국제교통량이 많으면서 문화적 유사성이 높은 곳이라면 국제적인 통합이 쉽지만, 그렇지 않은 곳이라면 굳이 국제협력을 해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고, 그래서 서유럽과 인접해 있긴 하지만 제정러시아는 5피트(=1524mm) 궤간을, 스페인 및 포르투갈은 1668mm 궤간을 채택했어요. 이렇게 해서 세계 각국의 궤간은 여러 가지가 난립하게 되었어요.
사실 아주 멀리 떨어진 국가끼리라면 그냥 선박이나 항공기 등의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하면 되지만, 인접한 국가끼리, 또한 국내 단위라도 궤간이 달라서 어느 지점에서 필연적으로 환승이나 환적을 해야 한다면 불편한 점이 있긴 하죠. 이것을 철도시설을 전면개수하지 않고 상대적으로 간편하게, 그리고 저렴하게 차량에 변화를 주는식으로 달성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궤간가변.
궤간가변에는 크게 2가지 방법이 있어요.
하나는 차륜과 차축을 조합한 세트인 대차(Wheelset, Truck) 자체를 갈아끼우는 방법.
이것은 가장 확실하면서 또한 가장 널리 쓰이고 있어요. 이것을 통해서 중국이나 북한은 러시아와 국제열차를 운용하고 있어요. 이렇게 상업운전 이외에도, 일본에서는 신칸센차량의 수송 등 이른바 갑종수송(甲種輸送)에도 이 방법을 사용하고 있어요. 아래는 그 장면을 담은 영상. 1435mm 궤간의 신칸센차량이, 1067mm 궤간의 재래선을 이렇게 임시대차를 장착한 상태로 기관차에 이끌려 달리고 있어요.
이 방법은 일일이 차량을 크레인으로 들어서 대차를 바꾸는 터라 시간이 많이 들고 특별한 설비가 필요한 문제가 있고, 노선이 극단적으로 길지 않으면 비경제적인 한계 또한 엄연히 있어요.
이것과는 달리, 대차가 변신하는 방법이 있어요. 그게 바로 궤간가변열차.
이 분야의 선도국가는 스페인으로, 스페인 국내에서뿐만 아니라 국제열차에도 보급되기 시작하여 1968년에는 프랑스 방면의 국제열차에, 그리고 최근인 2015년부터는 독일-러시아 국제직통열차인 스트리치(Стриж)에도 채택되었어요.
이 기술의 핵심은, 접이식 망원경의 경통처럼 길이를 바꿀 수 있는 차축인 텔레스코픽 액슬(Telescopic Axle)에 있어요. 이 영상을 보시면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어요.
물론 이 기술 또한, 궤간을 서서히 바꿀 수 있도록 고안된 특수한 지상설비가 필요한 건 사실이지만, 서행하는 과정에서 차축의 길이를 바꿀 수 있는 점에서는 대차교환과는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신속하고 편리하죠. 게다가 이미 250km/h까지 상업운전이 이루어지고 있는 등 신뢰성도 비교적 높은 수준으로 확보되어 있긴 하지만, 그래도 궤간이 고정된 차축보다는 신뢰성이 낮다는 평가가 있고, 그래서 스페인에서도 1668mm 궤간을 1435mm로 개축할 계획이 집행중이라서 독일과 러시아같이 양국간의 철도규격이 통합될 가능성이 없는 경우에 한정해서 존속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어요. 게다가 일본에서는 나가사키신칸센의 경우 열차의 운행거리가 짧아서 재래선특급 및 고속버스 대비 경쟁력에서도 손해가 될 가능성이 높게 보이고 있어요(나가사키신칸센 궤간가변열차는 무리 참조).
또한, 대차교환이든 궤간가변열차든 물리적 규격은 작은 쪽에 맞춰야 하는 문제는 공통적이죠.
사견으로는, 궤간가변 자체는 매력적인 기술이기는 하지만 한계 또한 분명히 있어서 이것이 철도차량의 대세가 되지는 못할 것이라 보고 있어요. 사실 궤간과 차량한계 관련이 해결되었다고 하더라도, 동력방식, 신호체계, 연결기, 차내승무원의 노무관리 등 각종 문제를 해결해 둘 게 필요하니까요. 그래서 궤간가변열차는 궤간가변에 의한 직통으로 얻는 이득이 다른 비용보다 큰 상황에서 제한적으로 적용될 솔루션으로 여겨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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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댓글
대왕고래
2018-09-26 00:24:22
요약하자면, 선로간 간격이 지멋대로인 상황에 적응하기 위해 기차가 진화(?)를 한 거네요.
물리적으로 부품을 갈아끼우는 방법도 있지만 그건 상당히 귀찮으니, 아예 만들 때부터 바퀴가 알아서 변하게 만드는 방식... 삶이 레몬을 던져주면, 그걸로 레모네이드를 만들어서 팔아버리는 훌륭한 적응 방식이구나 하고 생각해요.
가장 좋은 방법은 아예 모든 선로가 한 간격으로 통일되는 것이겠지만, 이미 만들어진 선로이니 그건 힘들겠죠...
마드리갈
2018-09-27 12:58:25
잘 요약해 주셨어요. 바로 그거예요. 궤간가변열차는 그래서 그 점이 매력적이죠.
궤간을 바꾸는 차축이 고정된 차축보다도 신뢰성이 낮아서 최고속도나 운용수명 등이 낮게 제한되고 검수주기도 더욱 짧아야 하는 문제점이 있지만, 설비투자를 궤간변환설비 정도로 한정할 수 있는 점은 분명 매력적이죠. 스페인-프랑스, 독일-러시아 등의 국제열차에서는 분명 좋은 방법임에 틀림없어요.
일본에서의 궤간가변열차 개발에서의 난항은 이런 점이 작용할 것이라 보고 있어요.
스페인의 경우는 1668mm와 1435mm의 양쪽 규격 대응이라서 두 궤간의 차는 233mm, 그러나 일본에서는 1435mm와 1067mm라서 궤간의 차이는 368mm. 즉 차량의 규격, 대차에 장착되는 각종 부품의 규격, 각 궤간에서의 차량의 주행특성 등이 크게 작은 1067mm 쪽에 맞춰지기에 그만큼 기술적 난이도가 높아지고 그래서 문제가 많이 생기는 게 아닌가 싶어요.
게다가 스페인의 철도는 궤간이 1668mm, 1435mm 이외에도 1000mm도 있는데, 1668mm의 경우 기존선 내측에 레일을 하나 더 놓아서 1435mm 궤간의 차량도 직통가능한 3선궤로 만들어 놓긴 했고 장차 1668mm를 1435mm로 대체해 나갈 예정이예요. 하지만 1000mm 궤간에 대해서는 그럴 계획 자체가 없어요. 궤간가변 선도국인 스페인에서조차 이런 것을 봤을 때 일본이라고 해서 뾰족한 대안이 있는 건 아닐까 싶어요.
앨매리
2018-09-26 16:32:30
글을 읽다보니 모노레일이 갑자기 생각나더군요. 하지만 모노레일이 많이 도입되지 않은 걸 보면 현실적으로 모노레일을 전격 도입하자니 걸리는 요소가 꽤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어느 분야에서는 단위를 통일하는 게 제일이라고 생각되는데, 기묘한 자존심 문제라든가 어제까지 쓰던 단위를 하루만에 아예 다른 단위로 대체하기 힘들다는 문제도 있고 하니 참 어렵네요.
마드리갈
2018-09-27 13:18:49
단위, 규격 등의 통일이라는 게 정말 어렵죠.
미터법이 확산된 계기를 생각해 봐도 그건 그래요. 처음에 프랑스 혁명정부가 미터법 및 프랑스 혁명력을 고안했지만, 결국 미터법만 살아남고 프랑스 혁명력은 온갖 불편함이 노정되어 얼마 못 가 폐지되어 버렸어요. 미터법의 근간인 10의 배수 체계는 자연과학의 연구 및 공학, 기술, 산업 등에의 적용이 편리해서 기존의 단위를 급격히 밀어낼 수 있어서 채택된 것이니까요.
말씀하신 모노레일에 대해서 좀 추가할께요.
모노레일은 기존철도에 비해 이러한 장단점이 있어요.
기존철도와는 다르게 부지를 적게 차지해서, 고가교 위에 선로를 지을 수도 있고, 심지어는 도로 상공 등을 이용할 수도 있어요. 게다가 대개 고무타이어를 쓰는데, 이것 덕분에 기존철도보다 급경사, 급곡선 노선을 설정할 수 있어서 건설비가 싸게 먹히기도 하는 장점이 충분이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노레일이 많이 보급되지 않은 이유는 이하의 단점이 큰 데에 있어요.
모노레일은 크게 과좌식(跨座式)과 현수식(懸垂式)이 있어요. 과좌식은 선로 위에 걸터앉는 방식으로 알베크식, 도시바식, 일본식, 록히드식, 어바노트식 등의 방법이 있고 일본의 도쿄모노레일, 타마모노레일, 키타큐슈고속철도, 한국의 대구 도시철도 3호선, 그리고 개업도 해 보기 전에 개통이 좌절된 월미은하레일 등의 사례가 있어요. 현수식은 선로에 매달린 차량이 움직이는 방식으로 랑엔식, 우에노식, 사페쥬식, 스카이레일식 등이 있고, 독일 부퍼탈 모노레일, 일본 우에노공원 모노레일, 쇼난 모노레일, 치바도시 모노레일 등의 사례가 있어요. 기존철도에서처럼 차량의 대차를 교환할 수도 없고, 형식이 제각각인 게 최대의 문제예요.
게다가 주행저항이 커서 속도를 잘 내지 못하는데다 대부분이 여객용으로, 범용성 측면에서는 그리 좋지 못한 문제 또한 있어요. 게다가 선로의 분기, 차량기지의 운용 등에서도 난점이 있는데다 기존철도보다 보수, 선로변경 및 비상상황에서의 대처능력 또한 난점이 많은 것도 사실이예요. 그래서 많이 보급되지는 못하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