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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 위기론이 놓치고 있는 쟁점

마드리갈, 2018-09-27 19:41:04

조회 수
141

한복이 위기에 놓여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어요.
게다가 전통의 단절, 훼손 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고, 한복을 아예 갖고 있지 않는 사람도 많다 보니 그런 위기론이 마냥 허무맹랑한 이야기인 것만은 아닐 것이고, 저 또한 한복 위기론 그 자체를 부정할 생각은 아예 없어요. 하지만 한복 위기론은 몇 가지 쟁점에는 도저히 시선을 주고 있지 않는 듯한데, 생각하고 있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알고 있는데 일부러 침묵하는 것인지 모르겠네요.

조선닷컴에 연재되고 있는 위기의 한복 시리즈를 소개할께요.

이 시리즈를 읽으면서 이러한 의문이 들었어요.

첫째, 이른바 퓨전한복에 대한 논란에 대해, 과연 전통의 기준이 무엇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어요. 전통의 기준이 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전통을 훼손하느니 하는 것은 실체가 없거나 불분명한 전제에 기초하기에 논해봤자 전혀 의미가 없으니까요.
둘째, 한국풍과 한국식을 혼동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문 또한 나오고 있어요.
셋째, 한복에 대해서 체계적인 연구나 표준화 등도 없이 지금까지 한 게 무엇이며, 왜 책임은 한복 소비자들에게 전가하는 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의문조차 없는 것일까요?
넷째, 한복과 현대생활의 양립문제에 대해서는 애써 외면하는 것 같네요.

그러면 이 네 의문을 주된 쟁점으로서 한복 관련 논란을 봐야겠어요.
한복이란 한민족의 전통의상. 그러니 삼국시대, 남북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 그리고 현대에 이르기까지 한복의 범위는 넓으며, 시대에 따라 크고 작은 변화를 맞이해 왔어요. 그런데 정작 현대에 직접적으로 계승된 것은 조선 말기의 한복에 불과하고, 그 이전의 것은 역사 연구에 따라 일부 부활한 것도 있지만 상당 분량의 것은 소실된 상태에 있어요. 그렇다면 전통 한복이라고 주장하는 것들은 한복 복식사의 극히 일부분의 편린에 불과한 건데, 이것만 중요하고 다른 것들은 버려져도 상관없다는 것일까요?
둘 중 어느 하나를 맞다고 대답해도 문제는 생겨요.
다른 시대의 것들이 버려져도 좋다면, 그 논리로 퓨전한복, 개량한복 등이 득세하는 상황 또한 정당화되어요. 현재의 전통한복 또한 과거의 스타일을 퇴출시키면서 성립된 것이니까요. 그리고 다른 시대의 것이 버려져서는 안된다면, 결과적으로 한복의 입지를 좁혀온 당사자로서의 한복업계의 책임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죠. 그런데, 신기하게도 한복 관련 논란에서 전통이 과연 무엇인가, 어디까지를 얼마나 전통으로 정의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대전제가 없어요. 그러니 전통 훼손 운운은 사상누각조차도 못되는 허구에 기반한 논리에 다름없어요.

여기에서 파생되는 것이 하나 있네요. 한국적인 요소가 중요한가, 한국식 틀이 중요한가.
EBS Math의 캐릭터 수학술사 세미를 생각해 봐야겠어요(공식 홈페이지 영상 참조). 
분명 세미의 의상은 흔히 생각하는 한복의 스타일은 아니고, 현대식으로 재구성된 퓨전한복이죠. 하지만 세미의 의상에서는 다른 외국을 느끼는 것보다 한국을 느끼기 쉬워요. 왜 그럴까요? 한국적인 색채, 문양, 라인 등이 반영되어 있으니까 소위 전통한복의 형태가 아니더라도 한국적임을 느낄 수 있어요. 즉 이렇게 한국적인 미를 반영한 것을 한국풍(韓?風)이라고 불러요. 반면에 한국식 틀이 더 중요한 것은 한국식(韓?式). 무엇이 진입장벽이 낮거나 적용범위가 넓을지는 사실 질문할 필요도 없는 것이고, 한국식만이 한국의 것이라면 소위 전통한복은 연구할 필요도 없어요. 19세기 후반의 옷본대로 찍어내기만 하면 그만이니까요. 이런 상황이 바람직할까요?

21세기 전반인 지금은 현재의 소위 전통한복이 모델로 하는 19세기 후반과는 모든 것이 다르죠. 방적, 방직, 재봉 등의 각 단계의 가공기술이라든지, 소비자의 신체조건 등도 크게 달라져 있어요. 키도 커졌고 하반신이 길어져서 백인들 못지 않은 장신인 사람들도 얼마든지 있고 그래서 어떻게든 변화는 불가피하죠. 게다가 개인공간의 크기 및 운신의 범위 등도 달라져 있다 보니 고려해야 할 변수가 많고, 오늘날처럼 의류의 선택 폭이 넓은 시대에는 고려하는 변수를 만족시키지 못하는 의복은 선택대상에서 처음부터 배제되게 되어 있어요. 당장 빅토리아 시대의 여성용 드레스를 일상생활에 입고 다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요? 그것도 허리에 코르셋을, 엉덩이에 버슬을 장착한 뒤에 땅에 끌릴만큼 긴 그런 드레스를 힘들여 입는.

한복 연구는 특정 시대의 의상 형식을 답습하는 데에 있지 않아요. 다양한 시대의 복식을 연구하고, 거기서 각 시대별 의상의 특징을 복원하는 것도, 그리고 한국적인 미적 요소가 어디에 있고 어떻게 적용가능한지를 연구하여 다양한 문물에 반영하는 연구도 같이 필요해요. 그렇게 한국풍을 확산시켜 한국적 미의 저변을 확대하는 게 더 중요하죠. 전통 운운하면서 각종 변용을 거부한다면 소비자의 선택은 아주 간단해요. 한복을 외면하는 것. 세계에 다양한 옷이 많지만, 그렇게 한복만이 배제되는 상황이 바람직할까요? 그리고 이게 한복의 갈 길일까요? 이러한 점에 대해서는 철저히 외면하는 것 같아 보이네요.
마드리갈

Co-founder and administrator of Polyphonic World

2 댓글

마키

2018-09-27 21:51:27

?세미는 처음 보고 디자인 센스에 감탄이 절로 나왔어요.

현대의 모에 캐릭터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한복 특유의 화려한 색채와 함께 그러면서도 단아하고 동시에 우아한 기품이 느껴지는 한국적인 디자인이 압권이었죠.

마드리갈

2018-09-28 13:50:23

그렇죠. 저도 세미 일러스트를 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어요.

한국적 전통요소를 반영하되 현대적인 디자인과 위화감없이 잘 어울리고 우아한 이런 디자인은 그 자체로도 뛰어나지만, 아직 우리나라의 디자인문화가 충분히 경쟁력있다는 증거이기도 한데, 전통한복 운운하는 그런 시각에서 보면 세미는 전통파괴의 표상으로 몰릴 수도 있는 것이죠.


니세모노가타리, 아이돌마스터 신데렐라걸즈 등에서 보이는 일본풍 스커트(和風スカ?ト) 같은 사례를 보면서, 떨떠름해지고 있어요. 세미의 의상같은 예쁜 한국풍 의상은 장려되기는커녕 척결대상인 건가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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