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Skip to content
오리지널 창작물 또는 전재허가를 받은 기존의 작품을 게재할 수 있습니다.

[초능력에, 눈뜨다] 4화 - 그들은 우리 곁에

시어하트어택, 2019-01-19 10:32:07

조회 수
136

학원가에 있는 식당 ‘일 첼레스테’. 시간은 오후 6시를 가리키고 있다. 입구에서 먼, 구석에 가까운 테이블에 짙은 보라색의 교복을 입은 학생 2명과 캐주얼복을 입은 남자 한 명이 앉아 있다. 한 명은 세훈, 한 명은 주리. 그리고 또 한 명은 짧은 머리의 대학생, 다름아닌 서언이다.
“참, 진언이 형은 어떻게 됐어?”
“진언이가 뭐?”
“그러니까... 그 경찰 시험에 붙고 나서 어떻게 됐냐고.”
“아. 작년에 한 6개월 정도 교육 받고 나서 한 달쯤 전에 배치됐어. 미린 경찰서 소속이니까, 만나기도 편할 거야.”
“어... 그래? 잘 됐네. 음...”
세훈은 표정을 고치고 말을 이어 간다.
“아, 그리고... 있지. 서언이 형. 그러니까...”
“왜? 또 그 2학년 후배 녀석 이야기야?”
서언은 세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먼저 말한다.
“전에도 말했잖아. 그런 건 단순히 기선제압 하려는 것에 불과하다고.”
“그런데 단순한 기선제압 목적이 아닌 것 같다니까.”
“네가 그걸 어떻게 알고?”
“아니, 그러니까 평소에도 몇 번 보이는데 패거리를 데리고 다니면서, 나를 보고는 기분 나쁘게 웃으면서 지나가고...”
“하... 그 녀석 또 그러는구만.”
서언은 그 문제의 학생이 누군지를 이미 알고 있는 듯, 별로 놀라지도 않으며 말한다.
“어? 형, 그럼 그 2학년 선배가 누군지 짐작이 가?”
“응.”
세훈과 주리가 서언의 입을 주목한다.
“짐작도 아니지... 이건 말이야, 100% 확실하다고. 이름은 ‘빈센트 클라인’이라고 하는데... 중학교 때부터 이미 여러 가지로 유명했어.”
“‘여러 가지로’라니?”
“아... 여기서 말하자면 긴데... 간단히 말하자면... 이미 입학하기 전부터도 초능력으로 유명한 녀석이었지. 그걸 아는 사람들이 말하기로는 별 볼일 없는 능력이라고는 하는데... 어떻게 했는지는 몰라도, 그 능력을 몇 번 보여 줘서 또래 녀석들을 압도했나 봐. 내가 생각하기로는... 그 능력 자체를 보여 주는 것보다도, 적절한 상황에서 능력을 사용하면서 위압감이나 공포심을 느끼게 했을 것 같아. 네가 당한 것도 마찬가지지.”
“하... 그러면 또 다른 피해자들이 많겠네.”
“그렇게 자기 존재감을 내보이고 다니니까 학교 내의 초능력자들 중에서도 돋보이는 존재일 수밖에 없지.”
서언은 잠시 말을 끊고는 물을 한 잔 마시더니 다시 입을 연다.
“그건 그렇고, 우리 가족 중에도 초능력자가 있는데...”
“어, 가족 중에?”
세훈과 주리가 반문한다.
“전혀 그렇게 안 보이는데...”
“진짜라니까. 내 삼촌, 고모들 중 한 명이 초능력자거든.”
“그 중 한 명이라는 건...”
“다른 가족들은 아니라는 소리네?”
서언은 웃는 것 같기도 하고 가만히 입을 다문 것 같기도 한 묘한 표정을 짓는다. 긍정도 부정도 아닌 표정을. 주리가 서언에게 다시 묻는다.
“그렇다면 그 사람은 혹시... 무슨 초능력을 사용하는지 물어 봐도 될까?”
“그건 당장은 안 알려 줄 거야.”
서언은 세훈과 주리의 궁금증을 살살 긁는다.
“왜냐하면, 너희들도 머지않아 만나게 될 테니까.”
그 ‘머지않아’라고 한 때가 도대체 언제일까? 궁금증이 도무지 해소되지 않는다. 주리는 다시 서언에게 물어 본다.
“그 ‘머지않아’라는 때는 언제지?”
서언은 뭔지 모를 미소만 지을 뿐 말이 없다. 말을 안 해주는 것으로 보아 두고두고 궁금증을 긁으려는 듯하다. 주리는 일단은 더 묻지 않기로 한다. 잠시 후, 서언이 입을 연다.
“그러고 보니까... 식당에 와서 가장 중요한 걸 빼먹었네.”
세훈과 주리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다들, 메뉴는 결정했어?”
“나는... 아마트리치아나.”
주리가 재빠르게 대답한다.
“또 그거냐. 벌써 몇 번째 먹는 거야.”
세훈이 주리에게 핀잔주듯 말하자 주리 역시 바로 받아친다.
“뭐가 많다고. 이제까지 여기 와서 3번밖에 안 시켰는데.”
“그럼 4번 중에 3번이 많은 거지 적은 거야?”
“......”
“그래서, 세훈이 너는 뭐 먹을 거야?”
“나? 나는... 봉골레 먹지.”
서언이 벨을 누르자 종업원이 테이블로 온다. 세훈과 주리가 처음에 이 식당에 올 때도 봤고 그 뒤로도 이 식당에 오면 항상 본, 바로 그 종업원이다.
“주문, 하시겠습니까?”
“여기... 크림소스 스파게티하고, 아마트리치아나하고, 봉골레 하나씩이요.”
“알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주문을 받은 종업원은 주방 쪽으로 간다.
“그런데...”
세훈이 말을 꺼낸다.
“내가 전에 메이링 씨하고 만났거든.”
“메이링... 씨? 그 사람이... 누구더라? 음... 아! 우리 고모 친구였지. 지금은 변호사 하고 있고.”
“응...? 형네 고모 친구라고?”
세훈은 주리를 돌아보며 말한다.
“너도 그거 알고 있었어?”
“응... 알고 있었지. 직접 만난 적도 있고.”
“아... 그래?”
세훈은 정색하고는 말을 잇는다.
“뭐... 아무튼, 그 메이링 씨가 초능력자 정보 조사도 하고 있는 거, 형도 알고 있어?”
“아... 그건 몰랐는데. 뭐 내가 평소에 그런 초능력과 엮일 일은 없으니까.”
“응...? 형은 초능력과 엮일 일이 없어? 삼촌이 있잖아?”
“아버지 직장 때문에 다른 가족들과 떨어져 살면 그렇게까지 다른 가족들과 엮일 일은 없지. 뭐 가끔 삼촌 만나러 가면 그런 초능력을 목격하기는 해.”
“아... 그건 그러겠네. 여기저기 많이 이사를 다녔다고 했지. 아무튼...”
“왜?”
“메이링 씨가 말하기를, 초능력자의 비율이 우리 학교가 다른 지역에 비해서 특히 많다는데.”
“하... 어쩐지, 내가 다녔을 때도 한 반에 두세 명씩은 꼭 초능력자가 있더라. 다른 학교는 안 그렇다는데.”
“저... 정말이야?”
서언은 마치 자신의 말이 틀림이 없음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주는 듯 고개를 강하게 끄덕인다.
“메이링 씨가 그러는데, 우리 학교가 초능력자가 많은 건, 그 초능력자들을 끌어들이는 강한 초능력자가 있어서 그렇다고 그러더라.”
“클라인 정도면 충분히 그렇지 않을까?”
“아니. 그 선배 정도 능력으로는 어림도 없다고, 메이링 씨가 잘라 말했어.”
“글쎄... 클라인 말고는 딱히 의심이 가는 사람은 없는데... 그런데 그 정도 능력이 아니라니... 그럼 누구지?”
“형도 한번 그 사람이 누군가 한 번 찾아봐 줘, 알았지?”
“알았어.”
서언은 시원찮은 목소리로 대답한다. 세훈의 부탁이니 거절할 수는 없지만, 자신은 없는 듯하다.

“주문하신 식사 나왔습니다.”
바로 그 때, 테이블 옆에서 아까의 그 종업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카트에는 세 사람이 주문한 음식들이 실려 있다. 종업원이 카트에서 음식들을 하나씩 꺼내 세 사람 앞에 놓는다.
“크림소스 스파게티, 맞으시죠?”
“네, 제가 시켰어요.”
“그리고 그 다음은... 봉골레...”
“네... 여기...”
세훈이 손을 그릇 쪽으로 내미려는 바로 그 때, 세훈이 뭔가를 건드린다. 아... 아차! 컵을 건드려 버렸다! 이 때부터 세훈의 머리는 지끈지끈거리기 시작한다. 곧이어 ‘쨍그랑’ 소리가 들리겠지... 사람들이 모두 놀라서 쳐다볼 것이고... 나는 얼굴을 못 들 것이고... 또 돈을 물어 주어야 할 것이고... 세훈은 자기도 모르게 눈을 꽉 감는다. 세훈의 머리가 점점 복잡해지려고 하는 바로 그 때. ‘쨍그랑’ 소리 대신 들리는 소리는, 테이블 위에 ‘탁’ 하고 부드럽게 뭔가를 놓는 소리.
“손님, 조심하셔야죠.”
어떻게 했는지는 몰라도, 종업원이 그 컵을 다시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다. 그런데... 컵 안에 있는 물이 줄지 않았다! 분명 떨어졌으면 조금이라도 물이 튀는 게 정상인데... 그러고 보니, 축축한 촉감도 전혀 없다. 바닥에도, 바지에도, 신발에도, 어디에도.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말인가?
“네... 네. 감사합니다.”
세훈은 겉으로는 웃으며 넘겼지만 속으로는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방금 일어난 일은 믿을 수 없기는 하지만 모두 사실이다. 눈속임 같은 것도 아니다. 그러고 보니 저번에 입학식 날에 백화점에서 있었던 그 때도 그런 느낌이었지... 세훈은 목소리를 낮추고 주리와 서언에게 말한다.
“방금 저 종업원...”
“왜?”
“그...그게 있는 것 같은데.”
“응? 그건 또 무슨 말이야?”
“내가 직접 봤는데, ‘그 능력’이 있던데...”
“에이, 설마. 그런 게 쉽게 발견되는 것도 아닌데...”
서언이 가볍게 세훈의 말을 넘겨 버리려 하자, 세훈은 자기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인다.
“아니, 서언이 형은 삼촌도 초능력자라면서 왜 직접 두 눈으로 목격한 내 말은 안 믿어? 방금 두 눈으로 본 건데...”
“하... 그랬어? 그렇다고 해도 그걸 큰 소리로 이야기하는 건 좀 아니지. 조금만 목소리가 더 컸어도 주변에 있는 손님들이 다 들을 뻔했다고.”
그러고 보니 세훈은 얼굴에 평소에 안 세우던 핏기를 세우고, 낮추려던 목소리는 평소보다 더욱더 올라가 있었다.
“생각해 보니 그러네.”
세훈은 목소리를 조금 누그러뜨린다.
“그럼 목소리 낮출 테니, 꼭 들어 줘.”
“알았어, 알았어. 일단 식사나 하자고.”
서언이 먼저 포크를 들자 세훈과 주리도 앞에 놓인 음식을 먹기 시작한다. 세훈은 입안에 파스타를 넣고 잠시 맛과 향을 음미한다. 역시, 봉골레 파스타는 언제 먹어도 처음 먹는 것 같은 맛이다. 다른 파스타들을 많이 먹으니까 그런 건지는 몰라도... 봉골레를 계속 먹으면서 왜 주리는 아마트리치아나만 먹으려고 할까, 이렇게 봉골레가 맛있는데...
한참 맛있게 먹다 보니 자신이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지도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파스타를 다 먹어 갈 때쯤, 세훈은 갑자기 무릎을 탁 치며 말한다.
“아, 그러니까...”
“응, 아까 말하려던 거? 말해 봐.”
주리가 파스타를 입에 물고 말한다.
“아까 내가 실수로 컵을 쳐서 떨어트렸는데 말이야...”
“그래서?”
“아, 이제 깨졌겠다, 어쩌나 하고 조마조마했는데, 깨지는 소리가 안 나더라.”
“......”
“그리고 그 종업원이 컵을 주워서 주는데, 아니 글쎄 컵 안에 물도 그대로 있고, 컵에 흠이 하나도 없고...”
“이제 알았어?”
주리의 입에서 나온 말은 의외다. 주리의 평소 말하는 태도는 예상할 수 있었지만, ‘이제 알았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나는 저번에 벌써 짐작했는데.”
“저번이라니? 언제?”
“너 저번에도 물컵 손으로 쳐서 떨어트릴 뻔한 적 있지?”
그러고 보니, 세훈은 생각났다. 처음 이 식당에 왔던 때를. 학원 오리엔테이션 다음 첫 번째 수업이 끝나고 주리, 미셸, 디아나가 함께 저녁식사를 했다. 그 때도, 세훈은 실수로 책상 가장자리에 놓인 물컵을 손으로 건드려 떨어트리려고 했다. 그런데, 어느 새 그 컵은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와 있었고, 그 종업원이 조심하라고 했는데... 그러면, 설마?
“아... 알겠다!”
세훈은 오래된 수수께끼가 풀린 듯 손뼉을 친다. 자신이 왜 이리도 둔감한지 한심할 따름이다.
“나도 그거 딱 보고 짐작이 갔는데.”
가만히 듣고 있던 서언도 주리에게 맞장구를 쳐 준다.
“아니, 형은 또 어떻게 알았어?”
“우리 삼촌을 몇 번 봤는데, 그러다 보니까 이런 건 아주는 아니어도 좀 쉽게 짐작이 가더라.”
하긴, 같이 살지는 않아도 초능력자가 가족이면 좀 더 쉽게 알 수 있겠지... 그런데, 주리는 초능력자 가족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하다못해 초능력과는 메이링 말고는 그 어떤 연관점도 없을 텐데, 왜 그렇게도 쉽게 알아냈는가는 별론으로 치더라도.
식사를 다 하고, 어느덧 시간을 보니 6시 30분이 다 되어 가고 있다. 세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나, 계산을 하고 식당을 나선다. 밖은 이제 꽤 어둑어둑해졌다. 세 사람은 지하철역 쪽으로 향한다. 역시 이 시간쯤 되면 거리에 사람들이 많다. 식사를 하러 식당으로 들어가는 사람들, 강의실에 들어가기 위해 줄을 선 학생들... 한참 가고 있는데, 세훈의 옆에서 가던 주리가 보이지 않는다.
“어? 주리 어디 갔어?”
“주리? 1분쯤 전에 옆 골목길 쪽으로 가던데.”
“골목길이라고? 형 확실히 본 거야?”
서언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왜 나만 못 본 거지? 주리는 도대체 어디로 간 거야?”
세훈은 서언에게 따지지만, 서언은 말없이 빙그레 웃을 뿐이다. 뭐지? 이 웃음의 의미는? 설마 자기도 모른다는 건가? 아니면, 이미 알고 있는데 세훈에게는 안 가르쳐 주겠다는 뜻인가? 의미를 알 수 없는 서언의 웃음에 서언은 한동안 고개를 갸웃거린다.
부웅- 부웅-?
바로 그 때, 오토바이의 엔진 소리가 뒤에서 울린다. 뒤돌아보니, 검은색과 은색 위주의 오토바이에 한 여학생이 헬멧을 쓰고 있는데, 짙은 보라색 교복을 입고 있다. 다름 아닌, 미린고등학교 교복이다. 설마...? 아니, 아니겠지. 그럴 리가...

잠시 후, 여학생이 헬멧을 벗는다. 헬멧을 벗자 드러난 얼굴은... 다름 아닌 주리다.
“어? 너... 너 오토바이도 타냐?”
서언과 세훈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한목소리로 말한다. 세훈은 오토바이를 탄 주리의 모습이 신기한지 위아래로 시선을 옮겨가면서도 오토바이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한 3개월쯤 된 것 같네...”
주리가 입을 뗀다.
“자전거 타는 것처럼 타더니 금방 늘더라.”
“너... 너 이런 거 타고 다니는데...”
세훈은 충격이 상당했는지 더듬거리며 말한다.
“부모님이... 걱정... 안 하셔?”
“걱정은 무슨. 안전장비 확실히 하고, 도로교통법 잘 지켜 가면서 타고 있으니까 걱정은 붙들어 매라고.”
“그... 그래. 스스로 조심해서 타고 있다니 다... 다행이네.”
세훈은 아직도 더듬거리며 말한다.
“그런...데 이제 집으로 가?”
“응. 여기서 멀지 않으니까 금방 가겠지.”
“그...그래? 그러면 내일 보자고.”
주리도 세훈에게 인사를 하고 떠나려는데...
“어? 잠깐만.”
“왜 그래? 또.”
세훈이 전방을 가리키자 주리와 서언은 세훈이 가리킨 방향으로 눈을 돌린다.
“어... 저 사람은 누구야?”
서언이 앞에 걸어오는 두 사람 중 왼쪽 사람을 보며 묻는다.
“메이링 씨잖아. 서언이 형 고모 친구, 변호사, 몰라?”
“저... 정말? 그런데 왜 정장을 안 입고 저렇게 티셔츠하고 조끼하고 핫팬츠를 입고 있는 거야?”
“법정에 나갈 때 말고는 저렇게 다닌다나.”
“그건 그렇고 옆에 걸어오는 사람은 메이링 씨 조카인가?”
“조카? 아닌데. 메이링 씨 조카들은 커봤자 아직 유치원생이던데. 잠깐만...”
주리가 메이링 옆에 있는 여학생을 자세히 보니 푸른빛 긴 생머리를 하고 있다. 잠깐... 저 머리는?
“어? 메이링 씨, 레아하고 아는 사이인가?”
“레아? 레아는 또 누구인데?”
“아... 서언이 형은 모르겠구나. 며칠 전에 알게 된 우리 학교 후배인데...”
“일단 소개는 좀 있다가 하고, 인사부터 하자.”
서언은 메이링을 보고는 큰 소리로 인사한다.
“아, 안녕하세요!”
“누... 누구니? 아... 너 서언이 맞지. 그래, 오랜만이다. 너희 고모, 요즘 많이 바쁘지?”
“아, 많이 바쁘죠. 요즘 논문 쓰고 학회 참석하고 하느라고 말도 아니에요.”
“응? 논문? 형네 고모는 무슨 논문을 써?”
“아, 우리 고모는 지금 대학원생이거든. 그것도 경제학 석사과정이라서 할 게 산더미지.”
“저, 메이링 씨...”
주리가 끼어든다.
“저... 혹시... 레아하고는 아는 사이인가요?”
“아, 레아? 전부터 아는 사이였는데...”
세훈과 주리는 혹시나 해서 레아에게 질문을 던지려고 한다.
“아, 저는 미레이 씨와 볼 일이 있어서 먼저 가야 해요,”
레아가 재빨리 대답한다.
“미레이 씨라니?”
레아는 뭔지 모를 미소를 지으며 조용히 메이링을 가리킨다.
“메이링 씨, 방금 레아의 웃음은 무슨 뜻이죠?”
“아, 자세한 건 차차 알려 줄게. 그럼 또 보자!”
메이링은 레아와 함께 갈 길을 간다. 서언이 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말한다.
“나는 몰랐는데. 미레이라는 이름도 썼나?”
주리는 다시 오토바이에 시동을 건다.
“나 그럼 이제 가 볼 게. 그럼 내일 또...”
“잠깐.”
세훈이 어딘가를 가리킨다. 세훈과 주리의 눈에 낯익은 남학생이 길을 걸어가고 있다. 그것도 남녀 학생들을 양옆에 여러 명 끼고.
“그... 그 남학생 아니었나? 클라인하고 같이 다니던...”
“맞는 것 같은데. 우리 옆에 F반이었지, 아마?”
“하... 저런 인간들은 저렇게 자기 세를 과시하지 못해 안달이라니까. 그래서 꼭 끼리끼리 모여 다니지.”
패거리를 보는 서언의 표정은 냉소적이다. 하지만 주리는 뭔가 다른 걸 본 모양이다.
“그런데 저 남학생을 따라다니는 애들... 왜 저렇게 눈이 이상하지?”
“아니, 뭐가?”
“내가 잘못 봤나... 어쨌든 눈이 좀 이상해 보여.”
“기분 탓이겠지.”
“그런가...”
주리는 헬멧을 꼭 눌러 쓴다.
“그럼 나 정말로 간다. 내일 또 보자.”
주리는 오토바이에 시동을 건다. 오토바이는 금세 도로 저편으로 사라진다. 서언과 세훈은 오토바이가 사라지는 것을 보고는, 길을 계속 걷는다. 말로는 신경을 안 쓴다고 했지만 그 남학생이 계속 신경 쓰인다. 그 남학생 쪽을 한 번 슬쩍 바라본다. 아니나 다를까, 그 남학생이 세훈을 본 모양이다. 남학생은 미소를 짓고 있다. 한쪽 입꼬리를 기분 나쁘게 치켜 올린 그 미소는 조롱에 가깝다. 얼른 다시 고개를 돌리고 못 본 척한다. 그리고 아무것도 아닌 척 계속 길을 간다. 애써 아무 일 없다는 듯 미소도 지어 보고, 얼굴에 잔뜩 힘을 넣어 보지만, 그렇다고 이미 굳어질 대로 굳어진 세훈의 얼굴은 펴지지 않는다. 점점 그 굳은 표정은 어색해져 간다.
“왜 그래?”
서언이 세훈의 얼굴을 슬쩍 보고서는 말한다.
“안 좋은 생각이라도 하고 있어?”
“아... 아무것도 아니야.”
“방금 그 남학생이 신경 쓰여서 그러는구나?”
“아... 아닌데.”
“맞는 것 같은데...”
“계속 생각이 나는 걸 어떡하지.”
“서서히 잊게 될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그럴까...”

벌써 새벽 1시다. 세훈은 아직도 잠을 이루지 못한다. 저녁에 봤던 그 남학생만 생각하면 잠이 안 온다. 그 녀석 이름이 뭐였지... 분명 같은 반이었는데... 그건 그렇고, 주리가 그 남학생 뒤에 따라다니는 애들의 눈이 좀 이상하다고 했는데, 그것도 생각하면 할수록 자꾸 잠이 안 온다. 도대체, 그 녀석은 뭐지? 뭐 하는 녀석이지?
침대에서 잠깐 일어나, 창밖을 본다. 역시나, 창밖은 도시의 야경이 그대로 비친다. 잠이 더 안 온다. 창밖을 안 봤어야 할 것 같았다. 창문을 닫고 커튼으로 가려 버린다. 다시 침대에 눕는다.
“세훈 님? 세훈 님?”
아... 이건 NURI의 목소리다.
“아... 잠이 안 오시는군요.”
“그래... 잠 좀 잤으면 좋겠네.”
정신은 아까보다도 더 또렷하다. 미칠 것 같다. 이제는 여러 가지 생각이 마치 파도가 오듯 밀려온다. 이 밤을 어떻게 무사히 지낼지... 세훈은 그 걱정이 가득하다.
“지금 머릿속에 걱정이 많은 것 같은데, 걱정 마세요. 금방 잠이 오게 하는 음악을 들려 드릴 테니.”
“아... 고마워, NURI.”
잠시 후 잔잔한 바이올린 독주곡이 방 안에 은은히 들린다. 조금 후, 세훈은 언제 그랬냐는 듯, 그렇게 원했던 잠에 든다. 잠시 걱정은 접어 둔 채로.
시어하트어택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4 댓글

마드리갈

2019-01-19 17:08:41

역시 초능력자는 서로 끌리는군요.

그래서 특정지역에 초능력자가 다른 지역에서보다 더욱 빈번하게 나타나는 것이 결코 이상하지는 않겠어요.

메이링의 다른 이름이 여기서 드러났네요. 미레이...

이렇게 다른 이름이 쉽게 드러나도 괜찮은 걸까요. 꽤 민감한 사안일 수도 있어서 걱정이 안 될 수가 없네요. 정보보안이 여러모로 중요하다는 것을 이렇게 느끼게 되네요.


그나저나 세훈을 기분나쁘게 보았던 그 남학생의 정체가 신경쓰이네요. 앞으로 무슨 사건의 발단이 될지...

시어하트어택

2019-01-21 23:16:09

의도치는 않지만 제가 자주 보는 작품과 비슷하게 되어 버렸네요... 그것 참.

저 '다른 이름'에 대해서는 뒤에서 또 한 번 언급될 것입니다.

SiteOwner

2019-01-21 19:26:27

초능력이 TV 프로그램에서 다루어지기만 할 뿐인 차원이 아니라 크고 작은 사안이 실생활에 나타나는 현상으로 정착되어 있다면 신기하기도 하겠지만 동시에 무섭기도 할 것 같습니다. 특히 타인을 압도하는 데에 초능력을 쓴다든지 하면...


변호사도 사람이죠. 변호사이기 이전에. 업무중인 경우가 아니면 자유롭게 입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변호사 무룽메이링에 제3의 이름이 있는가 봅니다. 이전에 공작창에 공개해 주신 정보에서는 미야모리 미스즈라는 일본식 이름이 있고, 이번에는 미레이라는 이름...이건 어떤 상황에서 사용하는 이름인지 궁금해집니다.

시어하트어택

2019-01-21 23:17:15

뭐... 저 안 좋은 방향으로 초능력을 쓰는 모습은 이제 더 많이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이름의 경우는... 설정변경이죠. 설정변경이 그간 좀 있었습니다. 저 경우는 이름에 쓰는 한자가 바뀌었고요(鈴→玲)

목록

Page 1 / 129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채색이야기] 면채색을 배워보자

| 공지사항 6
  • file
연못도마뱀 2014-11-11 7231
공지

오리지널 프로젝트 추진에 대한 안내

| 공지사항
SiteOwner 2013-09-02 2345
공지

아트홀 최소준수사항

| 공지사항
  • file
마드리갈 2013-02-25 4690
2569

[설정자료] 진리성회

| 설정 1
  • new
시어하트어택 2024-11-18 18
2568

2024년 일본 여행기 - 5일차(식사편)

| 스틸이미지 4
  • file
  • new
시어하트어택 2024-11-17 49
2567

2024년 일본 여행기 - 5일차

| 스틸이미지 4
  • file
  • new
시어하트어택 2024-11-16 42
2566

[그 초능력자가 수상하다!] 40화 - 뜻밖의 손님(1)

| 소설 4
  • new
시어하트어택 2024-11-15 38
2565

100년 전 지도로 보는 세계 18. 미국본토편

| REVIEW
  • file
  • new
마드리갈 2024-11-14 30
2564

[그 초능력자가 수상하다!] 39화 - 어수선한 주말의 시작

| 소설 4
  • new
시어하트어택 2024-11-13 51
2563

100년 전 지도로 보는 세계 17. 카리브해 중심의 중미편

| REVIEW
  • file
  • new
마드리갈 2024-11-11 74
2562

2024년 일본 여행기 - 4일차(식사편)

| 스틸이미지 4
  • file
  • new
시어하트어택 2024-11-10 43
2561

2024년 일본 여행기 - 4일차

| 스틸이미지 4
  • file
  • new
시어하트어택 2024-11-09 45
2560

직접 그려본 APT. 패러디 그림

| 스틸이미지 4
  • file
  • new
시어하트어택 2024-11-09 53
2559

[그 초능력자가 수상하다!] 38화 - 이상한 전도자

| 소설 4
  • new
시어하트어택 2024-11-08 57
2558

[그 초능력자가 수상하다!] 37화 - 저녁은 물 아래에서

| 소설 4
  • new
시어하트어택 2024-11-06 49
2557

2024년 일본 여행기 - 3일차(식사편)

| 스틸이미지 4
  • file
  • new
시어하트어택 2024-11-03 56
2556

2024년 일본 여행기 - 3일차

| 스틸이미지 4
  • file
  • new
시어하트어택 2024-11-02 59
2555

[그 초능력자가 수상하다!] 36화 - 불청객 아닌 불청객

| 소설 4
  • new
시어하트어택 2024-11-01 53
2554

연습이니까 담담하게. (4)

| 스틸이미지 6
  • file
  • new
Lester 2024-10-31 72
2553

[그 초능력자가 수상하다!] 35화 - 소리없는 아우성

| 소설 4
  • new
시어하트어택 2024-10-30 59
2552

[그 초능력자가 수상하다!] 등장인물 소개(3)

| 스틸이미지 4
  • file
  • new
시어하트어택 2024-10-29 62
2551

100년 전 지도로 보는 세계 16. 프랑스 및 이베리아반도편

| REVIEW
  • file
  • new
마드리갈 2024-10-28 116
2550

2024년 일본 여행기 - 2일차(식사편)

| 스틸이미지 4
  • file
  • new
시어하트어택 2024-10-27 64

Polyphonic World Forum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