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고금의 각종 사안 중 지명이나 인명이 붙은 것이 꽤 많죠.
특히 국제관계에서 벌어지는 행위인 각종 선언, 조약의 체결, 전쟁 등에 발생지역의 이름이 붙는 경우가 많은데 대표적으로 전간기 세계열강의 주력함 보유 규제를 위한 군축회담은 1920년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에서 열려서 워싱턴 해군회의로, 유럽연합의 기초가 된 조약은 1992년 네덜란드의 도시 마스트리히트(Maastricht)에서 열려서 마스트리히트 조약이라고 불리고 있어요.
또한, 이러한 명명방식은 자연물을 지칭할 때도 널리 쓰이고 있어요. 이를테면 고생대의 페름기는 러시아의 지역 페름(Пермь)에서, 중생대의 쥬라기는 독일, 프랑스 및 스위스의 국경인 쥐라(Jura) 산맥에서 유래했어요.
그런데, 간혹 해당 지명의 어감이 묘하게 느껴질 수가 있어요.
오늘 본 뉴스가 바로 이 사례 중의 하나.
미국의 하와이주 킬라웨어 섬 소재의 화산 푸우오오(Puu Oo)는 1983년 1월 3일부터 분화를 시작하여 36년간을 연일 쉬지 않고 분화했는데 2018년 4월 30일에 분화구 부분이 붕괴된 이래 더 이상 활동이 없어요. 그리고 어제부터 사화산으로 지정되었어요.
자세한 뉴스는 아래의 기사를 참조하시기를 부탁드려요.
사망 선고 받은 하와이 화산 ‘푸우오오’ (2019년 2월 11일 서울신문 기사)
푸우오오라는 이름을 보니 화산이 분화하고 화산 토출물이 날아다니는 모습을 묘사한 것같이 보여요.
용암을 푸우우우!! 화산재를 오오오오!! 이렇게.
다른 언어권에서는 저 화산의 이름을 어떻게 생각할까가 궁금해지네요.
비슷한 감각이 느껴지는 경우도 좀 있어요. 대표적으로 2가지. 둘 다 포럼에서 언급된 적이 있어요.
하나는 뮌헨 맥주홀 폭동.
1923년 11월 8일에 시작하여 다음날인 9일에 끝난, 독일의 뮌헨에서 일어났던 나치당 주도의
폭동을 말해요. 영어로는 Beer Hall Putsch, 독일어로는 Hitlerputsch라고 쓰는데 맥락을 모르고 보면
맥주홀에서 우발적으로 일어난 싸움같이 느껴질 수도 있어요. 하지만 이것의 실상은, 1885년에 뮌헨에서 개업하여 뮌헨 시민들의 사교장으로 애용되던 대형 맥주홀
뷔르거브로이켈러(Bürgerbräukeller)에서 일어난 사전에 계획된 도시장악계획의 첫 단계인 폭동이었어요.
다른 하나는 왈왈사태.
1935년 에티오피아의 왈왈 마을에서 있었던 이탈리아군과 에티오피아군의 무장충돌인데 장소의 이름을 보면 개들이 왈왈 짖어대는 대사건이 난 것같은 착각도 일어나죠.
같이 읽기 - 이름은 신경써서 지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Duealeast님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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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
2019-02-12 12:41:15
괴상한 지명 하면 항상 에로망가 섬이 화제에 오르곤 하죠.
마드리갈
2019-02-12 13:07:31
그렇죠. 에로망가선생이라는 라이트노벨과 동명의 애니 또한 예의 에로망가섬 이야기가 나오죠.
그런데 사실, 에로망가라는 지명은 섬만 있지는 않아요. 잘 알려진 바누아투의 섬 이외에도, 호주의 퀸즐랜드주 내륙지역에도 에로망가라는 지역이 있어요. 바누아투의 섬은 로마자 표기가 Erromango인데 호주의 것은 Eromanga.
지도를 보다가 우연히 찾은 괴상한 지명 중 생각나는 것으로는 필리핀의 시발롬(Sibalom)이 있어요. 웨스트비사야주 서안의 도시인데, 욕설같이 들리는 건 어쩔 수가 없어요.
Lester
2019-02-12 23:58:32
그렇게 웃기지는 않지만, 어렸을 적에 박물관 시리즈 중 화산에 관한 책을 보다가 '펠레의 털'이라길래 잠깐 고개를 갸웃한 적도 있었네요.
마드리갈
2019-02-13 13:41:49
펠레의 털...? 뭔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웃기면서 한편으로는 기묘하게 느껴지기도 해요.
이상하게도, 동물도감에서 봤던 털개구리가 같이 연상되고 있어요.
야마노스스메 애니에서 언급되었던 일본 이바라키현의 뇨타이산(女体山)은 한자표기가 개그소재가 되기도 해요. 아예 작중에서 히나타가 뇨타이산 이정표를 보고 저 산에 올라가면 아름다운 몸매가 만들어지려나 하고 기대 반 농담 반의 유머를 구사하는 게 나오다 보니 살짝 웃게 되어요.
Lester
2019-02-13 16:52:55
찾아보니까 "화산유리"를 가리키는 말이라더군요.
뇨타이산에 女가 들어가는 건 알겠는데, 体와 '아름다운 몸매'는 대체 무슨 관계죠? 일본어 지식이 있어야 웃을 수 있는 개그인건지...?
마드리갈
2019-02-13 17:29:34
그 발언을 한 캐릭터인 히나타가 유아체형이거든요.
야마노스스메 공식홈페이지의 히나타 캐릭터소개를 보시면 확연히 드러나죠. 원작의 설정으로는 키가 155cm로, 일본 여고생의 평균신장에 미치지 못하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오, 뇨타이산이라니!! 저기 올라가면 아름다운 몸매(원문은 나이스바디)가 될 수 있으려나?" 라고 개그를 하는데 옆에서 아오이가 "그럴리 없지!!" 라고 한마디 해요.
대왕고래
2019-02-13 22:45:57
푸우오오 화산은 왠지 무섭다기보단 귀여운 느낌이 더 강한데요? 화산이 높은 목소리로 푸오오오오~ 하고 울 거 같아요. 개나 고양이처럼요.
왈왈사태는 아무리 봐도 그냥 개싸움 같고... 참 기이해요. 분명 그 나라 말로는 이상한 의미는 없는데 기이한 느낌만 드네요.
마드리갈
2019-02-14 09:13:28
그렇죠? 처음에 화산 이름이 푸우오오인 것을 알고는, "뭐야 이거 귀엽잖아, 푸우우우!! 오오오오!!" 하고 그랬어요. 일본에서 화산을 실제로 보고 중턱까지 올라가 본 적이 있는(군마현과 나가노현의 현계에 있는 아사마산(浅間山)) 터라 화산의 위압적인 모습을 선명히 기억하는 저로서는, 아무래도 그 귀여운 어감이 신기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어요.
같은 사건이라도 다른 이름으로 부를 때는 느낌이 크게 달라지죠. 예의 왈왈사태는 아비시니아 위기(Abyssinia Crisis)라고도 부르는데 이렇게 부르면 심각한 문제라는 게 바로 떠오르지만 발생 지명을 따서 왈왈사태라고 부르면 개싸움으로 느껴지는 기묘함이 전해져요.
이런 것도 있어요. 분명 끔찍한 폭력사태인데 이름이 착각을 유발하기 쉬운 것.
1934년의 장검의 밤(Nacht der langen Messer), 1938년의 수정의 밤(Kristallnacht). 둘 다 나치의 폭력사태였고, 장검의 밤에서는 나치당 돌격대(Sturmabteilung, 약칭 SA)의 대장 에른스트 룀(Ernst Röhm, 1887-1934)이 참살당하고 SA가 해체되는 결과가 발생했고, 수정의 밤에서는 독일 각지에서 반유태주의 폭동이 발생하여 유태인 거주지가 파괴되고 유태인들이 살해당하거나 대거 감금되는 등의 유혈사태가 일어났어요. 장검, 수정 등의 말이 들어가니까 장렬하거나 고결하다는 인상을 받기 쉽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게 포인트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