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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아침. 세훈은 지하철역 출구에서 나와서 학교로 향한다. 평소에 가는 방향과는 달리, 세훈은 대로변에서 주택가로 바로 들어간다. 주택가에도 등교하는 학생들이 있기는 하지만, 대로변만큼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기 주택가가 사람이 뜸하다는 건 아니다. 대로변에는 잘 안 보였던, 짙은 초록색 계통의 교복을 입은 중학생과 각양각색의 옷을 차려입은 초등학생들도 보이고, 잘 차려입은, 아마 부자인 듯한 동네 주민들도 보인다.
세훈은 주위의 풍경을 음미한다. 저택들의 담장 위로 삐져나온 나무들 위로는 새들이 앉아 있고, 길가에는 가끔 차나 자전거가 지나다닌다. 평소에는 자주 보지 않았던 풍경이라 몇 번씩이고 주위를 돌아본다. 역시 이 길로 오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세훈이 이 길을 택한 이유는 다른 것도 있다. 평소 다니는 대로변은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이고, 미린 중학교, 고등학교 학생들이 통학할 때도 자연스럽게 대로변으로 많이 가게 된다. 그런데 대로변으로 다니다 보니 한 번씩은 항상 클라인의 패거리와 마주치게 된다. 세훈도, 피하면서 학교를 다닐 수 있다면 걱정을 안 해도 되어서 좋겠지만, 그러면 겁쟁이가 되는 것 같아서 싫다. 그러나 안 좋은 기억을 자꾸 떠올리는 건 더 싫다. 그래서 일부러 오늘은 주택가로 간 것이다.
하지만 그 안도감은 오래 가지 않았다. 막 편의점 하나를 지날 즈음에...
“아, 세훈이구나.”
세훈은 뒤를 돌아본다. 검은 투블럭 머리를 한 남학생 한 명이 미소를 짓고 있다. 그러나... 약 3초 후, 세훈은 그 남학생이 누군지를 알아보고, 순간적으로 온 몸을 떤다. 그저께 서류에서 봤던... 그리고 이전에도 항상 세훈을 보면 비웃는 얼굴을 하고 있던... 앤서니 탤리!
“그... 그래...”
세훈은 더듬거리며 마지못해 인사한다. 탤리는 비웃는 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오늘 하루도, 수고하라고. 아! 선배님이 답을 좀 빨리 주면 안 되겠냐고 하던데.”
세훈은 말없이 탤리를 뒤로 하고 발걸음을 재촉해서 학교로 향한다. 아... 이럴 수가. 그 녀석들을 피하려고 일부러 다른 길로 왔건만, 또 만나게 되다니... 낭패다, 낭패.
“그러게 왜...”
AI시계에서 NURI의 목소리가 들린다.
“평소 가던 길로 가면 좀 나을 거라고 제가 말했는데...”
“그러게...”
세훈은 힘빠지는 목소리로 말한다.
“내가 왜 그런 어리석은 선택을 한 거지.”
“이제 어디로 가든 그 사람들을 피할 수는 없어요. 그냥 평소 하던 대로 하세요.”
“알았어.”
얼마쯤 갔을까. 후문에 다다르니, 누군가가 또 세훈의 등을 치며 말한다.
“야! 너 오늘은 이쪽으로도 오냐?”
뒤를 돌아보니, 미셸과 디아나다.
“아, 그냥 한 번 와 봤어.”
세훈은 안도감에 가슴을 쓸어내리며, 미셸과 디아나에게 인사한다. 고개를 돌리고는 후- 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오전 8시 50분, 미린고등학교 1학년 G반 교실. 평소와 다름없이, 학생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잡담을 하고 있거나, 책을 보고 있거나, 아니면 자기 AI폰을 보고 있다.?
세훈은 교실 한쪽에 조용히 앉아 있다. 책을 한 권 펴 놓고 있기는 하지만 보는 건 아니다. 그냥 조용히 앞만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세훈의 머릿속 한켠에는 토요일에 있었던 일들의 기억이 굳게 자리잡아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그나마 시간이 좀 지나자 나아졌는데도 여전히 이 모양이다. 가만히 교실 안을 한 번 돌아본다. 친구들은 활기차게 웃고, 떠들고 있다. 그저께 클라인이 무슨 말을 했는지, 무엇을 할 것인지도 모른 채로.
여전히, 앤드루 카슨의 자리는 비어 있다. 세훈은 그 빈자리를 몇 번이고 고개를 돌려 본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한숨을 자꾸만 내쉰다. 저 빈 자리가 늘어나면 안 되는데... 그렇게 되기 전에 빨리 결단을 내려야 할 텐데...
“왜 그러고 있어?”
주리의 목소리가 들린다. 세훈은 뒤를 돌아본다. 주리가 어느새 세훈의 뒤에 서 있다.
“아... 아무것도... 아니야.”
“아니긴 뭐가 아니야? 그저께 카페에서 만난 것 때문에 그러는구나?”
“음... 그렇지.”
“그럼 뭘 그렇게 걱정하는 거야? 너는 이제까지도 위기에 잘 대처해 왔잖아? 안 그래?”
“그... 그건 그래. 그랬지...”
“‘그랬지’가 아니야! 그 과거형은 틀렸어! 현재진행형으로 말하란 말이야! 네가 지금 어두컴컴한 터널에 있겠다고 생각하겠지만, 거기에도 끝이 있어!”
“고... 고마워...”
주리는 자리로 가서 앉는다. 세훈은 조용히 한숨을 내쉰다. 시계를 본다. 시간은 8시 57분. 주위를 다시 한 번 돌아본다. 이제 3분 정도 남았으니 올 사람들은 다 온 듯하다. 빈자리는 앤드루의 자리를 빼면 없다. 세훈은 조용히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일단 지금까지는 친구들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니 다행이다. 하지만,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세훈은 마음을 놓을 수는 없다.
이윽고, 오전 9시. 1교시는 사회문화.
9시가 되자마자, 앞문이 열린다. 세훈은 혹시나 하는 불안감에 괜히 가슴을 졸인다. 앞문을 통해 들어오는 사람. 그 사람이 누구인가 궁금하다. 이윽고, 그 사람이 들어온다. 선생님이다. 그러면 그렇지, 교복은 아니다. 이 시간에 앞문으로 들어오는 사람이 학생일 리가... 또다시, 세훈은 가슴을 쓸어내린다.
이윽고 11시 30분. 점심시간 벨이 울리자, 세훈은 도시락을 들고 교실을 나와 계단으로 향한다. 계단이 나오자, 막 계단을 걸어 내려가려는 참인데, 누군가가 세훈의 등을 툭툭 친다.
“누구...”
세훈은 잔뜩 긴장하고 뒤를 돌아본다. 뒤에는 금발의 세훈 정도 키 되는 여학생이 서 있다. 후, 다행이다... 그저께 서류에서 본 얼굴은 아니다. 세훈은 자기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세훈이 맞지? 왜 그렇게 긴장하는 거야?”
“아... 아니야. 아무것도,”
세훈은 숨을 한 번 돌리고 말한다.
“너... A반에 나타샤 로젠가르텐 골드슈미트... 맞지?”
“맞아.”
“공주씩이나 되는 분이 나한테는 웬일이야?”
“아, 별 건 아니고...”
나타샤는 교복 주머니에서 뭔가를 뒤지더니 메모지 한 장을 꺼낸다.
“아... 금요일 날에 말이야, 아이린산에 있는 ‘아이린산 캠핑장’이라는 곳에서 초, 중, 고등학교 공동으로 하는 캠핑 행사가 있거든. 1박 2일로 하는 건데, 너도 한 번 와 볼래?”
“금요일? 내일 모레잖아? 그런데... 그걸 왜 지금 말해? 며칠 전에 학교 차원에서 이야기한 거잖아?”
“아, 원래는 온다고 한 사람들 몇 명이 못 간다고 해서 인원이 좀 미달되거든. 그래서 우리 부 차원에서 급히 추가 인원을 모집하고 있어.”
“잠깐... 너, 캠핑부였냐?”
“맞아.”
“이야... 난 뭐라고나 할까... 공주라면 좀 뭐냐, 고상하다든가, 아니면 그게 아니더라도 일반인과는 뭔가 좀 다른 취미를 가지고 있을 줄 알았는데...”
“공주가 캠핑 좋아하는 게 뭐 어때서?”
나타샤는 정색하고 소리를 높인다.
“아... 아니야.”
“어쨌든... 내일 모레 하는 캠핑 행사에 와 줄 수 있어?”
“내일 모레랬지? 잠깐... 나 좀 생각해 보고 말하면 안 돼?”
“안 돼.”
나타샤의 태도는 단호하다.
“지금 여기서 답을 줘. 급하단 말이야.”
“너도 말이야, 참... 그렇게 난데없이 와서 오라 마라 하면 답이 나오겠냐.”
세훈은 한숨을 푹 내쉬며 머리를 긁는다. 가뜩이나 클라인만 생각해도 머리가 아파 죽겠는데 이런 사소한 문제까지 나를 괴롭히다니...
“세훈아! 뭐 해? 어서 내려오지 않고?”
주리가 아래층에서 세훈을 부른다.
“아... 알았어!”
이 때다 싶은 세훈은 얼른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한다.
“야! 빨리 대답 안 해?”
“아... 나 이따가 대답하면 안 돼?”
세훈은 주리를 따라 뛰어 내려가다가, 나타샤 쪽을 돌아보며 말한다.
“점심시간 끝나기 전에는 꼭 말해 줄 거니까!”
“알았어. 그럼 점심시간 끝날 때쯤에 찾아온다.”
나타샤는 이렇게 말하고는 걸음을 돌려, 자기 교실로 향한다.
“휴... 이번에도 실패네. 그건 그렇고, 한 명이라도 충원이 안 되면 큰 낭패인데... 어쩌지.”
분수대 옆에 있는 벤치. 세훈과 주리는 평소 먹는 곳과 똑같은 곳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있다.
“혹시 너한테도 캠핑 가자는 말 없었어?”
“나? 나한테는 아직 그런 말은 없었는데. 그건 그렇고 그거 며칠 전에 조사 끝난 거 아냐?”
“인원 미달이라고 충원하는 것 같더라. 아까 전에 나한테도, 공주씩이나 되는 애가 모집을 하고 다니던데.”
“에휴, 어지간히 안 왔으면...”
세훈과 주리는 어느새 가져온 도시락을 다 비워 가고 있다.
“그건 그렇고 말이야...”
세훈은 한숨을 푹 쉬며 말한다.
“요새 나는 왜 자꾸 선택을 강요당하며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걸까.”
“왜?”
“클라인도 그렇고, 조금 전에 캠핑 오라는 것도 그렇고... 가끔씩은 답이 없이 그냥 흘러가는 대로 살아도 될 것 같기는 한데...”
“그래, 가끔씩은 그래도 괜찮은데, 너무 그러면 너 흐리멍덩한 인간이 되는 거야, 알지?”
“알고는 있지. 요새는 더 그렇게 못 될 것 같고 말이지. 주변의 상황이 나를 흐리멍덩한 인간이 되지를 못하게 막고 있으니, 이 얼마나 다행이냐.”
세훈은 신세한탄하는 듯, 아니면 넋두리하는 듯 숨을 크게 내쉬며 말한다.
“그래... 기분 전환도 하게 좀 일어나 볼까.”
세훈은 일어서서, 교실이 아닌 운동장 방향을 향한다.
“너, 어디 가?”
“아... 혼자서 좀 걷다가 들어가려고. 같이 좀 걷다 들어갈래?”
“아... 아니. 나는 이만 좀 들어가 봐도... 되겠지?”
“그래. 이따가 보자고.”
미린고등학교 근처의 주택가, 그 한가운데에 있는 소공원. 입구에는 원뿔에다 원구를 올린 추상적인 조형물이 하나 있고, 분수대, 장미 정원, 놀이터, 연못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세훈은 공원에 발을 들여놓는다. 세훈 말고는 아무도 없는 듯하다. 공원 한쪽에는 봉우리가 솟아 있는데, 그 정상에는 정자가 하나 보인다. 안내판에 보니, 봉우리 정상에 있는 정자는 바다를 볼 수 있어서 인기가 많은 곳이라고 쓰여 있다.
“역시 부촌은 다르단 말이야. 공원도 분위기 좋고. 거기에다가, 중앙공원하고는 또 다른 느낌이라니까.”
세훈은 느긋하게 걸으며 시계를 본다. 오후 12시 30분. 아직 시간은 많기는 하지만, 1시에는 수업 시작이니까 그 전까지는 들어가야 한다.
“뭐... 20분 후에는 들어가야 하는 게 아쉽지만 말이야. 그러면... 길다면 긴 시간, 짧다면 짧은 시간, 20분 동안 즐기고 가 볼까?”
세훈은 천천히, 한 걸음 한 걸음 걷는다. 여기저기 심어진 나무들과 화초들도 보고, 조형물도 본다. 크기 면에서는 미린 중앙공원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아기자기한 맛은 여기가 더 좋아 보인다. 공원 한가운데, 분수대 옆에 서서 장미 정원을 본다. 다른 큰 공원들의 장미원에 비해서는 조그맣기는 해도, 각양각색의 장미들이 하늘거리며 저마다 크고 작은 꽃송이를 자랑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자기도 모르게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덩어리진 것이 조금씩 녹아내리는 느낌이 든다. 물론, 그 덩어리진 것의 원인이 완전히 제거되기 전까지는 그 덩어리는 여전히 남아 있겠지만, 적어도 그것이 조금씩 녹아내린다는 건 얼마나 기쁜 일인가! 거기에, 봉우리 정상에 있는 정자를 가만히 보니, 마치 다른 세계에 온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예를 들자면, 소설 ‘어둠을 가로지르는 기사’에 나오는 천상계 ‘테벨라’와도 같은, 그런 느낌. 세훈 자신이 저 먼 구름 위에서 놀고 있다는 기분까지 든다. 역시, 여기에 오기를 잘했다. 이런 게 바로, ‘9개의 구름 위에서 노는 느낌’이구나... 세훈이 그렇게 공원 속 풍경에 완전히 빠져든 바로 그 때.
세훈의 목덜미에 뭔가 축축한 느낌이 든다. 순간, 세훈은 뭔가 이상하다는 직감이 든다. 아니, 이상하다기보다는, 불길하고, 기분 나쁜, 그런 느낌이 더 맞을 것이다. 뭐지... 마치 목 뒤에서 악마가 침을 흘리고 있는 듯한 이 느낌은... 이, 매우 불쾌한 느낌은... 설마...
“흐흐흐... 여기서 만나는군요.”
누군가의 목소리다! 하지만 어디에서도,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보이지 않는다.
“너는... 누구지?”
“그걸 먼저 말해 드리면 안 되죠. 안 그런가요, 선배님?”
분명 목소리는 들린다. 남학생의 목소리. 조금 굵은 목소리에, ‘선배님’이라고 한 걸 봐서는, 남자 중학생이다. 남자 중학생, 그리고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세훈은 얼른 그 학생이 누구였는지를 짐작해 낸다. 세훈이 본 서류들 가운데서는, 그런 조건에 부합하는 사람은... 한 명뿐이다! 하마나카 마히로... 검은 웨이브 머리에 안경을 낀, 그 남학생이다. 하지만,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하마나카 마히로의 모습은. 세훈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돌아본다. 하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이 작은 공원 안에는!
“어디냐? 어디에 숨어 있는 거냐? 당장 나와!”
세훈은 있는 힘껏 소리 높여 말한다. 그러나, 당연히도, 몸을 숨기고 있는 하마나카는 대답이 없다. 대답이 없을 뿐 아니라,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건 물론이고, 손가락 끝도 보여 주지 않는다. 오로지 목소리만, 목소리만 들려올 뿐이다. 어디서 들려오는지도 모르는. 세훈은 거친 숨을 들이쉬었다 내쉬었다 하며, 다시 한 번,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살핀다. 안 보인다. 어디에도. 장미 정원에도, 심지어 정자에도. 분명히, 하마나카의 목소리는 가까이서 들렸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다... 어디에서도.
“흐흐흐흐...”
어디에선가, 하마나카의 기분 나쁜 웃음소리가 또다시 들려 온다. 세훈의 숨은 불안감으로 더욱 거칠어진다.
“하마나카... 나는 네가 누군지 잘 안다! 당장 나와. 당장!”
“내 이름을 알고 있군, 선배?”
하마나카의 조금 주춤한 목소리가 들려 온다.
“그리고, 내가 누군지 잘 안다고? 어디서 누구한테 들었기에 그렇게 잘 아는 거지?”
“말해 주지 않을 거다. 네가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한은.”
“호오, 그렇게 나오시겠다?”
하마나카의 목소리는 여기서 더 들리지 않는다. 어디에 몸을 숨기고 있는 거지? 세훈은 다시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살핀다. 어디에도, 특별히 이상한 점은 보이지 않는데... 공원은 조금 전과 별 다를 게 없어 보인다. 분수대에서 뿜어져 나오는 분수도, 한쪽에 솟은 봉우리도, 심지어 장미 정원의 장미 한 송이 한 송이도, 위화감 같은 건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히 어디엔가, 하마나카는 숨어 있다. 그런데도 이상한 느낌은 좀처럼 들지 않는다. 왜일까... 왜... 왜...
퍽!
순간, 세훈의 오른쪽 다리를 뭔가가 강타하는 느낌이 든다. 세훈의 다리가 순간 기우뚱한다. 세훈은 몸의 균형을 잃고 기우뚱하다가, 이내 다시 똑바로 선다. 다리에 통증이 느껴지지만, 이 정도는 참을 수 있다. 하지만... 어디서 공격을 한 거지? 그것부터 알아야 한다... 그래, 일단은, 하마나카를 어디론가 유도해야 한다...
세훈은 일단 분수대를 벗어나, 공원 입구 쪽에 서서 주위를 둘러본다.
“흐흐흐... 도망가려고, 선배?”
분명, 가까운 곳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다. 하지만 여전히 하마나카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단서라고는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한 가지 알 수 있는 건, 하마나카의 목소리는 하늘에서 들려오지 않았다. 그 말인즉, 세훈은 맨눈만으로는 하마나카를 찾기 힘들지만, 하마나카는 어딘가에 숨어서 세훈을 보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디 있는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세훈의 눈앞에 펼쳐진 공원의 풍경은, 아까와 그대로다. 어떤 위화감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것이 더 이상하다. 어디에 있는 걸까, 하마나카는?
“여기 있다니깐, 왜 그렇게 헤매?”
하마나카의 목소리가 또 다시 들려온다.
“불쌍도 하지, 선제공격을 당하고도 두리번거리는 것밖에 하는 줄 모르는 모습이란!”
“이 자식!”
“백날 그렇게 소리만 쳐 봐. 하다못해 나를 손가락으로 건드리기라도 해 보라고?”
하마나카의 도발은 점점 더 대담해진다. 하지만... 하마나카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이상, 고전할 것은 뻔하다. 하마나카가 제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야 할 텐데, 그럴 것 같지는 않고... 잠시 후, 세훈은 뭐가 떠올랐는지, AI폰을 꺼내 인공지능 모드를 켜고 메시지를 입력한다.
NURI, 하마나카는 공원 안의 환경을 이용해서 숨는 것 같아. 이 상황에서 하마나카를 공원 밖으로 유도하면, 승산이 좀 있을까?
세훈이 메시지를 입력하고 나서 약 10초 정도 뒤, 메시지가 하나 올라온다.
물론 공원 밖으로 유도하면 괜찮겠지만... 그러면 다른 사람들이 피해를 보잖아요.
세훈은 얼른 NURI의 메시지에 답장한다.
알았어. 일단 불리해도, 공원 안에서 승부를 봐야겠구나. 고마워, NURI.
AI폰을 주머니에 넣고, 세훈은 다시 공원 안쪽으로 향한다.
“선배, 그렇게 변덕스러워서야 되겠어? 왜 그렇게 이리저리 다녀?”
“너 이 자식, 5분 안으로 내 앞에 서게 해 주마.”
세훈은 조금은 허세와 과장을 섞어서 말하고는, 공원 안쪽, 그것도 길에서 떨어진 곳에 있는 나무들 가운데로 들어간다. 이상하게도, 하마나카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어디에서도. 조금 전까지만 해도 세훈이 있는 곳 근처에서 들렸던 그 목소리가. 세훈은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혹시, 하마나카는 더욱 깊숙이 숨어서 나를 노려보고 있는 게 아닌가? 혹시나 싶어서 여기저기 뒤져 본다. 풀들 사이사이를 들추어 본다. 있을 리가 없다. 이번에는 옆에 있는 큰 바위. 그 바위를 살짝 들추어 본다. 역시 없다. 나무 위에는 혹시 있을까 해서, 나무 위를 올려다보고 가지 하나하나를 자세히 본다. 역시나, 털끝도 보이지 않는다. 아무 기척도, 세훈은 느낄 수 없다.
“이제는, 내가 적극적으로 찾아 봐야 한다는 건가...”
세훈은 발걸음을 옮긴다.
“어디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빨리 하마나카 녀석을 찾아내서 끝을 봐야지...”
세훈은 다시 길가로 나온다. 그리고 또다시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하마나카를 찾는다. 바로 그 때.
“흐흐흐... 어디 숨어 있었던 거야?”
하마나카의 목소리가 다시 들린다! 이 근처다... 이 근처일 텐데! 어디에 숨은 건가... 어디지? 세훈은 다시 두리번거리며, 목소리가 들려온 곳이 어딘지를 찾는다. 여전히 하마나카의 모습은 발끝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설마, 나를 찾으려고 그러는 건가? 그렇게 못 찾아서야, 어디 찾을 수 있겠어?”
“이 자식...”
“불쌍도 하지, 선배라는 인간이 말이야, 후배한테 농락당하기나 하고 말이지. 그렇고말고, 참 불쌍한 인간이지 뭐야!”
하마나카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또 한 번의 타격이 세훈을 강타한다. 이번에는 왼쪽 다리다! 그것도 발목에... 발목이 잘려 나갈 듯한 통증이 전해져 온다. 순간적으로, 세훈은 왼쪽 무릎을 땅에 대고 손을 땅에 짚는다.
“하... 하마나카... 너...”
“백날 그렇게 나를 부르기만 하면 뭐 할 건가? 선배 근처에 있는 나를 찾아내지도 못하고, 이렇게 굴욕적으로 당하기만 하는 주제에!”
“......”
세훈은 대답하지 않는다. 대신, 얼른 그 자리를 벗어난다.?
세훈은 공원 반대쪽으로 향하면서 유심히 생각한다. 길과... 분수대. 하마나카의 목소리는 이 주변에서 들린다. 일단 여러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 본다. 어디에 숨어 있고, 목소리는 어디서 들렸나. 일단은... 어디 숨었나... 혹시, 재빠르게 세훈의 뒤에서 움직이지 않고, 그림자 뒤로 숨는 능력인가? 아니다... 그건 아니다. 그렇다면 길가에서 멀리 떨어졌을 때 하마나카가 오지 않은 걸 설명할 수 없다. 물에 동화... 이건 더더욱 아닌 것 같다. 물가가 아닌 길가에서도 하마나카의 목소리는 잘만 들렸다.?
“어이, 선배! 어딜 그렇게 가는 거야? 설마 겁을 먹고 도망가는 건가?”
“너... 이 자식...”
하마나카의 도발하는 목소리는 계속 들려온다. 이 목소리는 대체 어디서 나는 건가... 혹시... 스피커? 스피커라면 생각해 볼 수도 있다. 한 곳에서 자리를 잡고 스피커를 조작해서 숨어 있을지도... 하지만 그렇다면 이곳저곳에서 세훈에게 가해져 온 공격들이 설명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하마나카의 목소리는 스피커에서 나는 목소리가 아니다. 어쨌든 공통점은... 길이다. 길에서 벗어나면, 하마나카로부터 일단은 피한 다음 반격을 노릴 수 있을 터다...
아, 저기... 저기다! 길 옆에 놀이터가 보인다. 세훈은 곧장 놀이터로 간다.
놀이터에 다다르자, 세훈은 일단 한숨 돌린다. 놀이터를 한 번 둘러본다. 로켓처럼 생긴 미끄럼틀, 그 옆의 그네, 시소, 정글짐 등이 있고, 가운데에는 음수대가 하나 있고, 구석진 곳에 벤치가 있다. 일단은... 정글짐 위에 올라가서 상황을 노리기로 한다. 정글짐은 다른 곳보다는 아무래도 좀 높으니 관찰에도 수월하리라... 물론 봉우리의 정자로 올라가도 관찰은 할 수 있기는 하겠지만, 가까이서 관찰하기에는 부적합하다... 그래서 이곳을 택한 것이다. 정글짐 위에 올라가니, 문득 어린 시절도 생각난다. 한 10년쯤 전까지만 해도 여기에 많이 올라가서 놀았지... 하지만 지금은 그런 쓸데없는 것보다는, 어떻게 해야 하마나카의 은신 수법을 잡아낼 수 있을지, 그것이 걱정된다.
한 1분 정도를 가만히, 미동도 하지 않고 고개만 돌려 가며 정글짐에서 공원을 내려다본다. 먼저 벤치. 벤치에는... 특별히 이상한 건 없다. 그 다음은 그네... 그네 역시, 바람에 이따금씩 흔들릴 뿐... 특별히 이상한 징후는 발견하지 못한다. 시소 역시, 마찬가지다. 시소는, 그나마 움직이기라도 하는 그네와는 달리, 아예 미동도 하지 않는다. 그리고... 놀이터 한가운데에 있는 미끄럼틀. 세훈은 여기가 좀 신경 쓰인다. 미끄럼틀 자체보다는, 복잡하게 꾸며진 미끄럼틀 구조 때문이다. 거기에다가 가려져서 보이지 않는 공간도 있고... 일단 미끄럼틀을 좀 더 자세히 보기로 하고, 세훈은 정글짐에서 내려온다. 그리고 미끄럼틀로 좀 더 가까이 다가가려는 바로 그 때...
“여기 있었군, 선배!”
하마나카의 목소리가 또다시 들려온다. 세훈이 미끄럼틀에 가까이 다가가자마자! 뭐지... 여기에 하마나카가 숨어 있을 줄이야... 그런데... 여기는 길에서 한참 떨어진 곳인데... 어떻게? 어떻게 여기까지 온 거지?
“선배, 어떻게 그렇게 얄팍한 머리를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도망갈 수 없어. 선배 같이 물러 터져서는, 내 손가락은커녕, 머리카락 끝을 건드릴 수조차 없다고!”
세훈은 급히 미끄럼틀 주변을 수색하기 시작한다. 미끄럼틀 위쪽은 물론이요, 아래쪽 그림자에 가려진 바닥 부분까지 샅샅이 뒤진다. 그러나 아무리 뒤져봐도, 하마나카의 모습은커녕, 개미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다. 미끄럼틀에서 있을 만한 곳을 다 뒤져 봐도, 하마나카가 있을 만한 구멍 같은 건 안 보인다. 세훈은 한숨을 푹 내쉬며 일어선다. 바로 그 때...
“선배, 이 쪽이라고, 이 쪽!”
뭐지, 방금 소리가 들린 쪽은... 세훈의 눈에 뭔가 하나 들어오는 게 있다. 음수대... 미끄럼틀 옆에 있는 음수대다! 여전히 하마나카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방금 그 목소리, 확실히 그쪽에서 들렸다! 음수대라... 세훈은 뭔가 짚이는 게 있다. 처음 하마나카의 목소리가 들린 그곳... 분수대. 공통점은 물... 물과 관련 있다. 하지만 아까도 그랬듯, 하마나카는 물과 관련없는 길에서도 잘만 나타났다. 그러면... 도대체 뭐지? 물... 물... 그리고 길... 길... 두 가지는 무슨 관련이 있기에... 일단, 분수대 쪽으로 가 보자... 일단 그곳으로 가는 길에 실마리가 있을 터다... 세훈은 놀이터를 벗어나 분수대 쪽으로 달려간다.
“선배, 설마 도망치려고?”
세훈이 길에 들어서자마자, 하마나카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온다. 이번에는... 세훈의 옆에서!
“아무리 발버둥 쳐 봤자, 도망칠 수 없어. 내가 얼굴을 보이지 않는 한 말이지!”
그리고 그 순간, 또 다시 뭔가가 세훈을 강타한다. 이번에는... 두 다리 모두!
“큭...”
세훈의 다리는 그 강한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중심을 잃고, 기우뚱거리더니, 이내 앞으로 서서히 기울어진다. 무릎이 땅에 부딪히자, 세훈은 재빨리 땅바닥에 손을 짚는다. 종아리와 무릎에 심한 통증이 느껴진다.
“아...”
“뭐야? 벌써 넘어지면 어떡해? 이거 약골이구만!”
땅바닥에 손을 짚은 바로 그 순간, 세훈은 뭔가를 발견한다. 배수로... 그리고 철망!
“아, 용건을 아직 말 안 했네.”
하마나카의 목소리가 또 들려온다. 이번에는 세훈의 뒤에서.
“빈센트 선배님이 빨리 답을 주라고 하는데, 선배한테 오늘 답을 들어야겠어.”
“그래서... 뭐 어쩌겠다는 거냐?”
“선배가 답을 줄 때까지, 나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거라고.”
하마나카의 목소리는 승리를 확신하는 듯, 안 그래도 간신배 같은 그 목소리가 점점 더 경박해진다.?
“선배, 나를 그렇게 보고 싶어하는 것 같은데, 나를 보고 싶으면 말이지, 빨리빨리 말하라니까? 빈센트 선배님이 원하는 대답을 말이야!”
“무슨 대답?”
“선택지는 더 이상 없어! 나한테 무릎을 꿇었으면 빈센트 선배님한테도 빨리 가서 무릎을 꿇으라니까?”
“......”
“뭘 꾸물거리는 거야? 빨리 대답하지 않고?”
“하하하하하하...”
세훈은 갑자기 웃어젖히기 시작한다.?
“허, 참, 왜 그러나, 선배?”
하마나카는 어이없다는 듯 코웃음을 친다.
“왜 갑자기 웃는 거지? 설마, 절망감 때문에 돌아 버린 건 아니겠지? 정신머리가 붙어 있으면 빨리 대답을 하라고!”
“아니. 내가 웃는 이유는, 네게 진 것을 인정해서라든지, 그 선배에게 답을 주겠다든지 하는 게 아니야.”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하마나카의 목소리가 마치 화산의 마그마가 분출하듯 올라간다.
“헛소리 하지 말고 내가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해!”
“방금... 나는 네가 어디에 숨어 있는지를 알아냈지.”
“뭐... 뭐?”
“뭔가 이상하다 했어. 발밑에서 뭔가 위화감을 느꼈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다니깐.”
세훈은 말을 마침과 동시에, 분수대 쪽으로 달려간다. 하마나카보다 빨리 다다라야 한다... 장미정원을 지나, 분수대가 보인다. 과연, 분수대 옆 한쪽에 뭔가 지붕이 씌워진 버튼 같은 게 있다. 분수대 제어장치다. 세훈은 그 지붕 씌워진 버튼 앞에 가서, ‘관리자 외 조작금지’라고 쓰인 버튼의 덮개를 벗겨낸다. 안에는 버튼이 3개 보인다. 세훈은 그 세 개의 버튼을 모두 누른다. 잠시 후, 분수대의 물의 수위가 점점 올라간다. 무서운 기세로 차오르는 물은 어느새 넘쳐나기 시작한다.?
“좋은 말 할 때 나오시지. 익사하기 싫으면 말이야.”
“컥... 컥...”
“왜? 나오기 싫어?”
“푸우-”
이윽고, 물이 넘쳐흐르는 분수대에서 뭔가가 나온다. 팔부터, 그리고 거기에 점점 더 커지는 거친 숨소리는 덤으로. 이윽고, 마침내 보이는 머리. 흠뻑 젖어 있기는 하지만, 안경과 얼굴 모양으로 보아, 하마나카가 틀림없다. 이윽고, 하마나카가 분수대에서 완전히 나와서 모습을 드러낸다. 온 몸이 흠뻑 젖은 그 몰골은 영락없는 물에 빠진 생쥐 꼴. 처음 그를 보는 사람은 막 물 속에서 올라온 물귀신으로 착각할 정도다. 얼굴은 어찌나 빨간지, 마치 토마토를 보는 것과 같다.
“이... 이게...”
하마나카는 세훈에게 점점 다가오며 말한다.
“잘도... 나를... 이 꼴로.. 만들었겠다...”
“그거야 배수로에서 알아서 나오면 되는 거 아니었나? 그냥 나오면 되는 걸 가지고.”
“뭐라고?”
거친 숨을 몰아쉬는 와중에도, 하마나카의 목소리가 다시 올라간다.
“네가 너무 굼떴다고.”
세훈은 잔뜩 조롱을 섞어 말한다.
“그래 가지고서야 어떻게 네 존경하는 선배님처럼 되겠어? 머리하고 스피드 중 어느 것도 안 되면 뭐, 딸랑거리기라도 해야지.”
“뭐가... 어쩌고... 어째?”
머릿속이 끓어오르는 하마나카의 뇌리를 스쳐 지나가는 게 하나 있다. 2년 전 클라인을 처음 만났을 때다. 그 때는 중학교 1학년, 뭐 하나 부족한 것 없이 살았고, 활발한 성격이었던 하마나카의 얼굴에 먹구름이 들었을 때였다. 이유는 부모님의 불화와 이혼. 아버지는 하마나카에게는 따로 말을 해 주지 않았지만, 하마나카는 그게 무엇 때문인지 잘 알 수 있었다. 어린 나이에 많은 것을 알아 버린 하마나카는 말 없고 소심한 성격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리고 어릴 때부터 가지고 있었던 초능력의 잠재력은, 어느 새엔가 ‘좁은 곳에 숨을 수 있는 능력’으로 발현되었다. 친구 없이 지내던 하마나카에게 손을 내민 선배들은 바로 클라인과 예준이었다. 그 뒤로 어려운 일이 있으면 클라인의 도움을 받으며 늘 감사함을 품고 사는 하마나카였다. 그런데, 감히 그 하늘과도 같은 선배님의 말을 어기고, 거기에다가 병원에 장기 입원까지 하게 했다? 그런 사람은 용서할 수가 없다. 그리고, 무적이라고 생각했던 능력을 간파해 낼 줄이야... 더더욱 여기에 세워 둘 수 없다. 하마나카가 막 주먹을 날리려는 그 때...
퍽-
뭔가가 하마나카의 가슴을 강타한다. 다름아닌 세훈의 주먹. 가슴이 터질 듯 숨이 가빠오는 것 때문인지, 하마나카는 몸의 균형을 잃고 그대로 바닥에 털썩 하고 넘어진다.
“역시 굼뜨다니까.”
세훈은 넘어져서도 여전히 얼굴이 벌건 채로 가쁘게 숨을 몰아쉬는 하마나카를 내려다보며 말한다. 주위를 한 번 둘러본다. 분수대 주변은 온통 물바다다.
“아참... 그거 안 껐잖아.”
세훈은 재빨리 분수대 제어장치의 버튼을 모두 끈다. 공원을 모두 집어삼킬 듯 넘쳐흘렀던 물은 점점 잦아들더니 평상시 수위로 돌아간다.
“그건 그렇고... 지금 몇 시지?”
세훈은 공원을 나서며 AI시계를 본다.
“12시 47분이네. 이제 들어가 볼까...”
바로 그 때, 한 여학생이 세훈의 앞을 가로막는다.
“뭐야... 공주님 오셨어?”
“맞아.”
세훈의 앞에 선 건 다름아닌 나타샤.
“답을 좀 들으려고.”
“아니, 왜 여기까지 오냐고. 내가 답을 해 주겠다는데.”
“다들 안 된다고 해서 네가 있는 곳에 수소문해서 왔다고.”
“알았어, 알았어. 갈게. 됐지?”
“그럴 줄 알았어. 그 답 하나 들으려고 이렇게 고생하네.”
나타샤는 학교 쪽으로 방향을 돌리려다가 공원 한쪽에 쓰러진 하마나카를 발견한다.
“쟤는 뭐야? 왜 저런 데서 물이 흠뻑 젖어서 쓰러져 있어?”
“아, 죽은 거 아니니까, 가만 놔두면 알아서 일어나. 걱정하지 말고, 들어가자고.”
하마나카를 뒤로 한 채, 세훈과 나타샤는 학교로 돌아간다. 세훈은 돌아가면서도 한숨을 푹 내쉰다. 왜 다들 나를 무릎꿇게 하는 데 그렇게 혈안인 건지... 도대체 클라인은 왜 나를 노리는 건지... 알 수 없다. 의문들을 품은 채, 세훈은 교실로 돌아간다. 앞으로 또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채로...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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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댓글
SiteOwner
2019-02-28 23:59:51
인생을 헛되이 사는 사람들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있어왔는데, 문명이 더욱 발달한 미래라고 해서 그게 특히 다를 건 없나 봅니다. 하긴 인간의 속성이 그렇게 쉽게 바뀌는 것도 아니니까요.
세훈을 무릎꿇리려 애쓰는 사람들도 뒤집어 보면 참 불쌍한 것입니다. 세훈을 굴복시킬 것을 자신의 존재감의 전제이자 선결과제로 삼은 시점에서 인생 자체가 자주적일 수가 없습니다.
역시 이름의 기원이 다양하군요.
호칭에 어떤 기준이 있는지 질문드려 봅니다.마드리갈
2019-03-03 18:08:59
이전에는 김예준이라는 선배가, 이번에는 하마나카 마히로라는 후배가 도발하네요.
그리고 그 결과는 둘 다 공통적으로 자충수.
마히로는 한낮의 일본어 어휘인 마히루와도 발음이 비슷하죠. 세훈을 굴복시키려다가 한낮에 역으로 자신이 망신당하는 형국에...
그러고 보니, 메다카박스의 캐릭터 타카치호 시구사가 생각났어요.
자신의 능력으로 남을 무릎꿇리기 좋아하는 거구의 남학생. 그 또한 나중에 패해서 리타이어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