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주제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음악사 관련을 좋아하는 저로서는, 가끔 서양의 어떤 음악가가 살던 그 시대를 동양사와 비교해 보거나, 그 역의 경우, 이 사람이 이 시대의 인물이었구나 하는 것에 경이로움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이를테면, 조선 세종 때의 음악가 박연(朴堧, 1378-1458)과 동시대에 활동하던 유명 서양음악가에 누가 있었을까 등을 찾는. 아마도 이 분야는 상당히 마이너해서 특별히 이 시기의 서양 초기음악에 관심이 없다면 이름을 들어볼 기회도 거의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런 음악가들. 영국의 존 던스터블(John Dunstable, 1390-1453), 독일의 요하네스 오케겜(Johannes Ockeghem, 1410/1425-1497), 프랑스의 질 뱅쇼아(Gilles Binchois, 1400-1460) 같은 인물의 이름을, 최소 초기음악을 즐겨 듣지 않는 한은 바로 거명하기란 상당히 어렵거나 불가능할 것입니다.
이렇게도 바꿔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면 음악교과서에서 잘 언급되는 바로크, 고전파 시대는 한국사에서 어느 정도에 해당될까 하는 질문도 나올 법한데, 바로크 시대는 대체로 임진왜란, 병자호란 이후 영조 임기의 후기까지라고 보면, 고전파 시대는 정조에서 순조의 임기까지라고 보면 대략 들어맞게 됩니다. 이렇게 볼 때, 음악교과서에 잘 나오는 이름인 바흐, 헨델,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등의 이름이 까마득하게 먼 사람의 것으로만 느껴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렇게 음악사를 횡적으로 보기 시작한 것은 우연한 기회가 발단이 되었습니다.
저는 국사 실력이 좋지 않은 대신에 기억력은 좋은 편이고 음악 관련을 좋아하니까, 국사의 주요 사건들을 외울 때에 서양음악사의 흐름에 맞추어서 재조합하는 방식을 썼습니다. 그렇게 해서 두 과목을 서로 이어가면서 효율을 끌어올리는 것이었지요. 그렇게 국사 성적이 전체 성적을 잡아끌어내리는 것은 간신히 모면했고, 덕분에 이런 글을 쓰게 될 동기마저 얻었습니다.
물론 음악사뿐만 아닙니다. 미술, 문학, 과학기술 등 여러 분야의 역사를 횡적으로 엮어 보면 새로운 것들이 보일 것이고, 이렇게 알아가는 즐거움도 더욱 다양하게 늘릴 수 있으리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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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왕고래
2019-05-13 21:59:02
역사를 순서대로 본다고 생각하는 게 일반적이죠. 애초에 그렇게 배우니까요.
그래서인지 역사를 나란히 놓고 보는 분석법은 매우 생소하면서도 창의적으로 느껴져요.
마치 김밥 속처럼 역사를 나란히 놓고, 한 시대로 잘라 단면을 보면서, 이 나라에서는 무슨 일이, 저 나라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보는 느낌인데, 이렇게 보니 역사가 이야기가 아니라 예술로 보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드네요.?
SiteOwner
2019-05-15 20:01:19
좋은 말씀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게다가 김밥 비유가 아주 참신해서 마음에 듭니다.
사물은 관점에 따라 달리 보이고, 그 달리 보이는 것들은 각각 고유한 개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 것들을 찾아 나가는 것이 배움의 길이고, 각기 달리 보이는 것들을 모으면서 앎의 즐거움을 느낍니다. 이것이 중요한 것인데, 의외로 잘 지나치기가 쉽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횡적으로 보는 사고방식을 앞으로 배양해 나간다면 좋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최소한 저는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앨매리
2019-05-14 12:09:00
서양에서는 이런 사건이 있었을 때 동양에서는 이런 사건이 있었다는 식으로 놓고 비교해보면 참 재미있더군요. 저는 암기 위주로 돌아가는 수업을 싫어해서 학교에서 배울 때에는 흥미가 안 생겼는데, 다른 식으로 접근하니까 흥미가 생겨서 평소에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역사책을 찾아보게 되더라구요.
예를 들면 세이 쇼나곤의 마쿠라노소시를 읽고 헤이안 시대의 문학에 대해 찾아보던 중, 그 시기 한국의 문학도 어땠을지 궁금해하다가 자료가 별로 없다는 사실에 아쉬워했던 기억이 납니다.
SiteOwner
2019-05-15 20:07:23
앨매리님께서도 저와 비슷한 방법을 사용하셨군요. 반갑게 느껴집니다.
이렇듯, 같은 지식을 두고도 교수법을 달리하니까 전달되는 정도가 크게 달라집니다. 흔히 고대 그리스 역사에 나오는 소피스트들을 폄하하기 일쑤이지만, 지식의 전달과 구사에 대한 여러 방법론, 이를테면 논리학, 수사학 등의 것들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닙니다. 게다가 시간과 자원은 한정되어 있기에 좋은 소피스트는 현대사회에 필요하면 필요했지 결코 폄하될 것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어서 씁쓸해지기도 합니다.
세이쇼나곤(清少納言)의 마쿠라노소시(枕草子)를 언급해 주셔서 놀랐습니다. 저는 비슷한 시대의 무라사키 시키부(紫式部)가 쓴 겐지모노가타리(源氏物語)를 좋아했다 보니 그런가 봅니다.
마키
2019-05-17 02:52:53
클래식 음악가(?)들이 생각만큼 그렇게 멀리 떨어진 사람들이 아니었네요.
그러고 보면 1900년대 초던가, 우리나라 사람들이 위싱턴 대통령을 만나러 미국에 방문했을때 뉴욕은 이미 현대와 별반 다를게 없는 마천루의 메트로폴리스라서 "우리는 계속 어둠속에만 있었다"는 감상을 남겼다고 하죠.
톰과 제리의 경우, 익히 알고 있는 유명한 초기 시즌은 무려 1930~40년대의 작품인데도 불구하고 작품 속에서 묘사되는 톰의 집은 우리가 미국 중산층 가정 하면 흔히 생각하는 "대궐같이 넓은 집에 온갖 고급 가구(피아노 라던지)가 갖추어진 풍족한 생활" 이라는 레퍼토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구요. 톰과 제리의 초창기 시즌이 방영되던 1930-40년대가 일제 강점기 즈음-제2차 세계대전이라는걸 생각해보면 더욱 놀라울 따름이에요.
SiteOwner
2019-05-17 23:39:38
그렇습니다. 유명한 클래식 음악가들이 의외로 근대의 인물이라는 점을 알게 되면, 그렇게 거리가 확 좁아집니다. 이렇게 새로운 시점과 각도에서 알아가는 것에서 새롭게 눈이 떠지고 앎의 즐거움이 열립니다.
이전에도 언급했지만, 관점을 달리해 보면 미국은 결코 역사가 짧은 나라가 아닙니다.
미국의 역사는 짧기만 할까 제하의 글에서 언급한 것처럼, 제도의 영속성, 도시화, 높은 생활수준 등에서는 이미 아주 긴 전통이 확립되어 있습니다. 게다가 2차대전 이후에는 세계의 각종 혁신의 본산에다, 문화유산 등에서는 그래도 유럽에 딸린다는 컴플렉스가 음악가 레너드 번스타인(Leonard Bernstein, 1918-1990)을 계기로 해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