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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느냐 마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앨매리, 2019-05-18 16:45:40

조회 수
162

제목은 널리 알려진 햄릿의 명대사,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의 패러디입니다. 단어만 바꾸면 되는 문장이라 그런지 여기저기서 패러디가 자주 되더군요. 영어로 쓰면 To write, or not to write. That is the question이 되겠죠?


옛날부터 글을 쓰는 것과 이야기를 구상하는 것을 좋아하다보니, 어떤 작품을 감상하면 해당 작품의 스토리와 설정, 또는 인물을 가지고 if를 가정한 이야기를 구상하는 일이 참 많았습니다. 그 작품이 배드 엔딩으로 끝났다면 해피 엔딩을 구상해보거나, 아니면 단순히 지나가듯이 언급된 설정을 가지고 제 상상을 덧붙여서 부풀려 if의 이야기를 구상하거나... 보통 제 취향을 가미한 경우가 많았네요.


그리고 설정이 불어나면 불어날수록 이걸 가지고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써내려가고 싶다는 욕망도 점점 커집니다. 그러다 보면 '에라 모르겠다 저질러보자'는 마음과 '안 돼 참아 뒷감당이 안 된다고'하는 마음이 충돌해서 고뇌(?)하게 되는 일도 참 많습니다.


가끔은 그냥 작품 자체를 순수하게 감상하고, 해당 작품의 주제가 무엇을 이야기하는지를 고찰해보는 식으로 즐기고 싶은데 만약의 이야기를 구상하면서 상상의 나래를 너무 많이 펼치는 바람에 작품 감상에 방해되는 일도 있다보니 좀 괴로운 경우도 있기는 합니다. 거기다 설정을 한 번 구상하기 시작하면 저 자신이 만족할 때까지 붙잡고 살을 덧붙이는 일도 많다보니, 그만두고 싶은데 그만둘 수가 없어서 제풀에 지쳐 작품 감상을 중단한 경우도 가끔 있었고요.


한 번 무언가에 열중하기 시작하면 그것에만 몰입하게 되는 선택과 집중 성향이 무척 강한지라 다른 일을 하는 데에 지장이 생기기도 해서 고민이 많습니다. 요즘에는 역전재판 애니메이션을 감상하고 있는데, 볼 때마다 작품 감상보다 자꾸 if의 이야기가 떠올라서 집중이 안 되어가지고 힘드네요...

앨매리

원환과 법희와 기적의 이름으로, 마멘!

6 댓글

마드리갈

2019-05-18 21:38:05

저도 여러 유형의 작품을 감상하면서 비슷한 생각을 했다 보니 공감가는 부분이 많기도 해요.

그럴 때 사용하는 방법으로, 저의 희망사항이나 예상전개를 어느 정도 메모해 두고, 다음 회차의 실제 진행상황과 비교해 보면서 얼마나 밸런스가 잘 잡혔거나 멀어졌는지를 비교해 보거나, 음악연주같은 경우는 다른 지휘자나 독주자의 녹음을 들어 보면서 비교, 대조하는 등의 것이 있었어요. 이런 것도 권해 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작품의 감상은 작품과의 대화이니까 앨매리님의 고민은 잘만 활용하면 아주 멋진 감상방법으로 발전할 여지가 많을 거라고도 보고 있어요. 그러니 장점에도 주목해 주시면 좋겠다고 당부의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앨매리

2019-05-19 21:36:24

오호... 그런 방법도 있었군요. 좋은 방법 감사합니다. 음악을 감상할 때는 연주자나 지휘자를 고려하지 않고 그냥 마구잡이로 골라서 듣고는 했는데, 한 번 참고해서 적용시켜봐야겠습니다.

몇 번 이런 고민을 하면서 해당 작품을 너무 불필요하게 게 파는 게 아닌가 하는 고민도 종종 했었는데, 장점이라 말씀해주시니 관점을 달리 해서 생각해보면 그만큼 제가 그 작품에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라고 여길 수 있다는 생각에 미쳤습니다. 긍정적으로 생각해서 장점으로 삼아 발전시켜봐야겠네요.

Lester

2019-05-20 09:39:38

창작을 한 번 해본 사람들은 그러한 매력 때문에 아무 작품을 잡아도 머릿속으로 그런 프로세스가 돌아가기 마련이더군요. 특히나 해당 작품이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을 때는 더더욱 그렇고요. 지극히 정상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런데 분명 자신의 창작을 위해서는 좋은 행동이지만, 그게 도가 지나치면 저처럼 구상에만 시간을 투자할 뿐 실질적인 행동엔 옮기지 못하게 됩니다. 썼으면 좋겠다 하는 아이디어나 구상이 구체적으로 변해가는 건 좋은데, 이게 분량이 늘어날수록 설정놀음으로 빠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실제로 경험해봐서 너무나 잘 알고요. 그렇기 때문에 저로서는 (오지랖일수도 있지만) 한번씩은 냉정하게 정리를 하시기를 권장합니다. 개인적인 방법이지만 특정 작품을 접할 때 (1)이해 (2)분석 (3)참고 (4)활용(2차 창작) 중 어디까지 할 것인가를 정해두면 편합니다.

앨매리

2019-05-20 17:52:59

안 그래도 설정놀음에 자꾸 매몰되는 게 아닌가 하는 고민이 계속 들고 있었는데, 좋은 방법을 제시해주셨네요. 감사합니다! 바로 적용해봐야겠습니다.

SiteOwner

2019-05-20 22:59:55

앨매리님께서 말씀하신 것들은, 지성을 가진 인간이라면 충분히 가질만한, 그리고 실현하고 싶은 기본적인 욕구입니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사실, 서양음악사를 보더라도 그렇게 조금 바꿔볼까 하는 시도가 생겨서 쌓이고 했습니다. 남성제창의 형식으로 연주되는 단성음악 그레고리오 성가가 변형이 더해져 성부가 부분적으로 오르가눔으로 발전하고, 그것이 폴리포닉 음악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에는 이렇게 풍성하게 다방면으로 발전된 음악문화를 향유하고 있습니다. 그 욕구가 위대한 창작의 첫걸음이 됩니다.


단, 라틴어의 미메시스(Mimesis)라는 용어가 의미하는 완벽한 재현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는 현재의 감상중인 작품에 대한 의도가 철저할 것이 필요합니다. 원작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죠죠의 기묘한 모험에 등장하는 오리지널 연출과, 원작을 무시하거나 곡해해서 흥행에 실패한 어서오세요 실력지상주의 교실에 등의 반면교사 사례를 대조해 보신다면 잘 이해하시리라 믿습니다.

앨매리

2019-05-21 17:50:34

댓글을 읽다 보니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모방하면서 조금씩 자신만의 개성이나 특징을 더하다가 나중에 가서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확립하는 과정이 생각나네요.

설정을 구상하다 보면 원작에서 없는 부분을 덧붙일 때, 원작의 특징을 잘 살리고 있는 건지 고민이 많이 되기도 합니다. 애니메이션 등에서 원작에 없는 요소를 덧붙였는데 그게 원작의 느낌을 해치는 바람에 팬으로서 평가를 박하게 내렸던 작품도 여럿 봐와서 반면교사로 삼고 있지만, 막장 직접 쓰는 입장에서 저도 똑같은 길을 가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도 들더군요. 원작을 열심히 감상하다 보면 해결되는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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