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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체르노빌 1화 中, 노심 붕괴로 누출된 방사능의 영향으로 공기 중에 환한 빛이 뿜어져나오는 모습을 구경하는 프리피야트 시민들.)
간만에 특수촬영물(특촬물)이 아닌 드라마를 감상하고 있습니다.
전쟁 드라마의 최고봉으로 손꼽히는 밴드 오브 브라더스, 더 퍼시픽, 제네레이션 킬, 그리고 근래 미국 드라마의 걸작으로 평가되는 왕좌의 게임등을 제작한 HBO 제작의 5부작 미니 시리즈로 제목은 "체르노빌(Chernobyl)".
그?직설적인 이름 그대로 드라마는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고(1986.04.26 01:24 AM)가 일어난 직후의 체르노빌을 무대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드라마라는 장르 특성상 어느정도 인물이나 상황의 각색, 창작이 곁들여졌긴 하나 원자력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프리피야트 시민들, 단순히 핵발전소 화재라고만 듣고 현장에 투입된 체르노빌 소방대,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피폭을 받아야했던?발전소 직원들, 눈 앞에서 대참사가 벌어진 상황에서 모른 척 하려고 애를 쓰는 발전소 부소장 아나톨리 댜틀로프(Anatoly Dyatlov)와 고위층 직원들, 그리고 이 사고를 어떻게 덮을까 고민하는 소련 당국의 정치인들 까지, 당시 체르노빌에 있었던 모든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담담히 이야기를 풀어나갑니다.
드라마는 발전소 사고 자체보다는 다양한 인간군상의 시선을 비춰가며?목숨을 바쳐가며 사고를 수습하기위해 헌신하는 노동자들, 진실을 알리기위해 분투하는 과학자들, 이들을 물밑에서 지원해주는 소수의 공무원들을 통해 그간 체르노빌 원전 사고를 다룬 매체가 사고 자체에만 집중하느라 묘사하지 못했던 "나라가 위기에 봉착하자 죽는다는걸 알면서도 기꺼이 목숨 바쳐 헌신하려는 소련 인민들의 이야기"를 주제로 하고 있는 것도 특징.
특히 부소장 아나톨리 댜틀로프를 담당한 폴 리터의,?노심 붕괴 직후?난장판이 된 발전소에서 감속재인 흑연이 사방에 나뒹굴고 있고, 그걸 본인의 눈으로 직접 봤음에도 애써 현실을 부정하며 노심이?터져서 흑연이?노출됐다고 보고하는 부하 직원에게 "흑연은 없었어! 거기에 흑연 따윈 없었는데 자네는 대체 뭘 봤다는건가!" 라고 윽박 지르는 무능한 높으신 분 연기는 그야말로?1화 최고의?볼거리.
한편, 저선도 선량계로 계측한 방사능 수치는 고작 3.6 뢴트겐,?좀 더 고급 선량계로 계측한 수치가 200 뢴트겐(모두 해당 선량계가 계측 가능한 최대치. 즉 성능에 관계없이 전부 값이 설정된 최대치=측정불가능으로 나오는 상황.)으로 나오자 "좋은 건 아니지만?위험하지도 않군(3.6. Not great, not terrible)"이라고 애써 별일 아니라고 부정하는 높으신 분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압권. 이러한 높으신 분들과 정 반대로 원자력 발전소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파괴된 발전소 노심에서 뿜어져나오는 형형색색의 방사능 불꽃을 보고 아름답다고 감탄하며 구경하는 프리피야트 시민들의 순진한 모습과 핵발전소 화재 사고라는 보고만 듣고 출동해 방사능에 오염된 자재들(다른 것도 아니고?노심의 감속재 였던 흑연 덩어리들...)이 나뒹구는 환경에서 맨몸으로 화재를 제압하기위해 애쓰는 체르노빌 소방대원의 모습은 비극적이다못해 눈물나기까지 할 정도...
드라마에서도 묘사되고 후에 소련 정부가 본격적인?사고 수습을 시작하면서 제대로 밝혀지는 사실이지만 제대로된 선량계로 측정한 체르노빌 원전의 방사능 수치는 댜틀로프가 보고한 3.6의 4천배를 훌쩍 넘는 무려 1만 5천 뢴트겐이라는 무시무시한 수치가 측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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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댓글
SiteOwner
2019-07-04 18:05:45
체르노빌 사고가 났을 때 당시 국민학교 3학년이었던 저는, 10살도 안 되는 어린 나이였긴 했지만 상당히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고, 지금도 선명히 기억나고 있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제목에 대한 답이기도 한, 정말 무서운 것은 사람이라는 것.
당시는 대한항공기 격추사건으로부터 아직 3년도 채 지나지 않았던 시점이라 소련에 대한 적개심이 굉장했고, 백인처럼 생긴 아이에 대해서 "야이 소련놈아" 라는 욕설도 흔했던 때라서(해당 글 참조) 그 원자력사고를 반긴다든지, 이제 원자력은 못 쓰겠다 등등의 말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것을 보고 인간의 마음이란 아주 크게 쏠릴 수도 있고 그 쏠리는 방향이 참 무섭게 될 수도 있다는 것도 느꼈습니다.
아무리 적국이고 해도, 전대미문의 재난을 맞아서 한 생명이라도 더 구하기 위해 영웅적으로 활약한 사람들의 분투조차 폄하할 수는 없지요. 그래서 사람의 마음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면 그러한 폄하조차 정당화하는 정말 무서운 괴물이 되는 것 같습니다. 예의 부소장 또한 동류라고 할 수 있겠지요.
마키
2019-07-04 18:29:42
그나마도 후에 자서전에선 직원들은 잘못한게 없고 발전소 자체가 문제라는 투로 써놨다곤 하지만, 곧 죽어도 자기 잘못이라곤 말 하지 않았죠. 저는 체르노빌 사고로부터도 한참 뒤에 태어났다보니 접해본건 책이나 다큐멘터리 뿐이었는데 드라마는 이미 익히 알고 있는 사고 내용보다는 사고가 벌어진 후의 인간군상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 덕에 재밌게 보고 있네요. 특히 1화에서 발전소 부소장 부터 시작해서 높으신 분들의 현실 부정은 이게 정녕 사람인가 인두껍을 쓴 마귀인가 싶을 정도로 실감나더군요...
마드리갈
2019-07-05 11:14:10
여러 창작물에 이런 클리셰가 있죠. 작중의 세계를 위협하고 숱한 위기에 몰아넣는 괴물의 실체는 사실 인간이라고.
마키님께서 시청하신 그 미니시리즈 체르노빌에서도 비슷한 게 보이네요. 물론 원자력 사고는 절대로 가벼이 볼 수 없고, 현재도 체르노빌 주변은 여전히 위험해서 일반인 출입이 금지되어 있는데다 추가피해를 막기 위한 공사가 진행중인 무서운 참사라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죠. 이 무서운 참사를 더욱 악화시켜서 인명 및 생활의 터전의 손실을 더욱 강요한 부소장은 결코 원자력 사고에 뒤떨어지지 않을 정도의 괴물임이 틀림없어요. 희생을 쓸모없는 것으로 만들어 버린 점에서 이미 괴물 확정...
예전에 썼던 글인 러시아의 고속증식로 연구프로젝트에서 배울 점이 다시 생각나고 있어서, 링크를 다시 소개해 놓을께요.
마키
2019-07-05 13:54:52
주인공의 조력자가 장관회의 부의장이자 연료동력부 장관인 보리스 셰르비나란 사람인데, 제한적이나마 서기장 고르바초프에게 직접 이러이러한 것을 해달라고 요청하는게 가능한 위치에 있는 고위직이죠.
결국 사태 초기 3.6 뢴트겐이라 보고했던 발전소장 빅토르 브류하노프와 수석 기술자 니콜라이 포민은 고급 선량계로 발전소 까지 갔다와서 측정한 값 1만 5천 뢴트겐과 주인공 레가소프의 "저 연기는 매 시간마다 히로시마 원자폭탄 2배의 방사능을 방출합니다."라는 설명에 이들이 내놓은 3.6 뢴트겐이 거짓말이라는게 들통나고, 이 설명을 들은 셰르비나는 군인들에게 브류하노프와 포민을 지역 당본부로 끌고가라고 지시하죠.
다만 시청자가 보기에는 댜틀로프나 브류하노프나 포민이나 셋 다 거기서 거기인 인간말종이라 징벌당했다는 생각만 드네요.
이러한 소수의 높으신 분들과 정 반대로 서기장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대뜸 공산당 최고 의원회 회의에서 이견을 제시하는 레가소프에게 "내가 잘 아는 공산당 위원과 처음보는 과학자. 사람들은 누굴 신뢰하겠나?" 라고 하면서도 회의가 종료되어 해산하려는 사람들을 도로 자리에 앉혀 레가소프의 이야기를 일단 들어는 보고 셰르비나와 함께 체르노빌에 파견해서 정확한 정보를 알아 오라고 지시하는가 하면, 이들의 요청을 자신의 권력이 가능한 한도 내에서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