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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P8.jpg (280.6KB)
“한번 찾아봐. 샅샅이 뒤져!”
호렌의 말에 수민과 카르토 모두 일제히 일어나 조종석 이곳저곳을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며 아이샤를 찾기 시작한다. 호렌 역시 이리저리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찾는다. 어느새, 손에는 권총이 들려 있다.
“총은 왜 꺼내?”
“만약 허튼짓하고 있으면 쏴 버릴 테니까 말이지.”
“아니 너...”
수민이 호렌 앞으로 서서 말한다.
“제발 진정 못 하겠어? 오늘따라 왜 그러는 거야?”
“조금 전에 말했지?”
호렌은 잘 익은 딸기처럼 붉어진 얼굴을 수민에게 가까이 들이대며, 분이 풀리지 않은 목소리로 말한다.
“메스키타가 무슨 허튼짓이라도 하면, 다 네 책임이라고 했다.”
“아니, 잠깐만.”
“왜, 네가 애초에 메스키타를 살려주자고 할 때 그렇게 하기로 한 거잖아. 불만이라도 있는 거야?”
“물론 내가 그렇게 말은 했지. 그런데 아이샤를 구석으로 가라고 한 건 너잖아?”
“그거야, 보면 볼수록 열만 더 받는 것 같으니까 그랬지!”
“내가 생각해 봐도 그건 네 잘못인 것 같은데, 호렌.”
한쪽에서 구석을 뒤지고 있던 카르토가 한마디 한다.
“아무리 아이샤가 꼴 보기 싫다고 해도, 도망가는 걸 걱정했다면 멀리 쫓아내지는 말았어야 할 거 아니야.”
호렌은 아무 말 없이 한숨을 푹 내쉬며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다.
“거기, 뭘 그렇게 찾는 거야?”
조종석 어딘가에서 아이샤의 목소리가 들린다. 순간 수민, 호렌, 카르토 모두, 소리가 난 곳을 찾아 고개를 두리번거린다. 잠시 후, 호렌이 다시 한번 목에 힘을 잔뜩 주고 소리 지른다.
“메스키타! 또 무슨 수작을 부리는 거냐! 그만 나오지 못해?”
“이미 여기에 와 있어.”
“뭐... 뭐야? 허튼 수작 그만... 엇...?”
어느새, 아이샤는 호렌의 바로 앞에 서 있다.
“너, 메스키타!”
호렌은 잔뜩 악에 받쳐 소리 지른다.
“방금 또 무슨 짓을 한 거냐!”
“도움을 줬으면 고맙다고나 할 일이지.”
아이샤는 금방이라도 자신을 잡아먹을 듯 험악하게 일그러진 얼굴을 하고 노려보는 호렌을 보고도 태연히 말한다.
“또 거짓말로 우리를 속이려 들어! 네 주제를 알라고!”
호렌은 잔뜩 끓어오르는 목소리로, 주머니에서 뭔가를 찾으며 말한다.
“이봐, 수민. 너도 같이 책임을 져야겠지?”
“잠깐. 방금 내 말은 거짓말이 아닌데.”
“이게 또 어디서 면피를 하려 들어!”
“잠깐, 호렌. 말이나 좀 들어 보자고.”
카르토가 다시 호렌의 팔을 잡으며 말린다.
“아이샤, 방금 네가 무슨 도움을 주었다는 거지? 사실대로 말해라.”
“이 우주선, 보안 시스템은 뭘 사용하고 있지?”
“하! 보안 시스템 말이지...”
수민이 긴장이 잔뜩 섞인 한숨을 내쉬며 말한다.
“출입문과 화물칸에 암호 시스템이 있지. 자동 방어 시스템도 있어. 자세한 사항에 대해서는 천천히 알려 줄 것이고...”
“아, 말은 고마운데, 굳이 그렇게 안 해 줘도 돼.”
“뭐... 뭐?”
아이샤의 입에서 뜻밖의 말이 나오자, 호렌을 포함한 모두가 일제히 아이샤를 놀라움의 눈으로 본다.
“여기도 꽤 취약하거든.”
“너, 메스키타! 언제 이빨을 드러내나 했다. 드디어 본색을 드러냈구나!”
“왜 혼자 흥분하고 그래?”
아이샤는 또다시 태연히 말한다.
“내가 도와준다고 했는데. 내가 몇 번 시도하니까 암호고 뭐고 다 뚫리던데?”
“말 다 했지, 너어어어!!”
호렌은 괴성에 가까운 고함을 지르며 또다시 아이샤에게 달려들려고 한다. 이번에도, 수민과 카르토가 양팔을 붙들고 호렌을 꼼짝 못 하게 한다. 아이샤만 문제인 게 아니라, 자신들이 먼저 해를 볼까 걱정스러웠기 때문이다.
“자, 자! 진정, 진정, 진정하고!”
“아이샤,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는데?”
“내가 이런 데 딱 맞는 알고리즘을 몇 개 가지고 있으니까, 써 봐.”
“아... 알았어. 고마워.”
“내가 가진 거면 앞으로의 외부 침입은 충분히 막을 수 있을 테니. 단, 이미 들어와 있거나, 웬만한 것 이상으로 강한 초능력자 같은 경우는 장담 못 해.”
아이샤는 자기 앞에 선 호렌을 본다. 호렌은 조금 진정된 듯, 그러나 아직도 흥분이 풀리지 않은 얼굴을 하고 있다. 그 옆에서 호렌의 팔을 붙들고 있는 수민을 돌아보며 말한다.
“하나만 말할게. 나는 나를 믿어 준 사람은 절대 배신하지 않아. 무슨 말인지 알겠지?”
“아... 알겠어.”
행성 체베르. 레이스 항성계의 행성 중 하나로, 150년쯤 전에 세오네 제국이 발견했다. 지각 활동이 활발한 행성으로, 이 때문에 상주인구는 얼마 안 되고, 대부분의 인원은 연구 인원 아니면 채굴업자들이다. 혹독한 자연조건 때문에 상주 기지 같은 것만 지을 수 있을 뿐, 민간인이 거주하는 도시를 짓는다는 것은 아직 꿈도 못 꿀 정도다. 지각 활동이 활발한 행성답게, 이 행성에서는 금, 은은 물론이요, 듣도 보도 못한 희귀한 광석들이 그야말로 쏟아져 나온다고 할 정도로 많이 나온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이곳에서는 희귀한 기체 ‘베라네’가 나온다. 이레시아인의 영역이나 다른 행성들에서는 드문드문 나오기는 하지만, 인류의 영역에서 나오기는 이 행성이 처음이다. 이 옅은 자주색을 띤 기체가 어떤 것인지, 이레시아인들의 국가 네토라타니아로부터 들어서 아는 제국 정부에서는 베라네가 발견되자마자 베라네가 나오는 분출구를 모두 통제하고, 허가를 받아야 베라네의 채굴이 가능하도록 했다. 하지만 그런 강력한 통제에도 불구하고,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은 이들은 항상 있는 법. 체베르에서 베라네 채굴이나 유통을 탈법적으로 시도하는 이들은 항상 있으니, 수민의 일행도 바로 이런 이들 중 하나다.
체베르 북반구 저위도의 한 지점. 군데군데 바위산이 솟아 있고, 땅바닥의 갈라진 틈에서 각양각색의 기체가 스며 나오는 곳이다. 가스 시추기도 몇 대 보이고, 한쪽에는 사무실로 보이는 건물과 우주선 착륙장이 마련되어 있다.
상공 4,000m 지점에, 얼리버드 호가 떠 있다.
“바로 여기로군. 우리가 베라네를 얻어갈 곳이.”
수민이 조종석 한가운데 나타난 홀로그램 모니터를 보며 말한다.
“여기서 얼마 정도 가져갈 거지?”
“계약상으로는 우리가 이 ‘볼루’라는 지역에서 나는 베라네를 앞으로 그 ‘파디샤’라는 의뢰인에게 앞으로 1년간 독점 공급하게 되어 있어. 뭐, 여기까지는 좋아. 연구소 같은 것으로 위조하는 건 어려운 것도 아니니까.”
호렌은 언제 그랬냐는 듯, 한 시간 전만 해도 붉으락푸르락했던 얼굴은 어디 가고, 냉정함마저 묻어나오는 얼굴을 하고 말한다. 아이샤를 은근히 압박하는 눈빛은 그대로지만.
“그런데 문제는 다른 데에 있어.”
“뭔데?”
호렌은 바로 말하는 대신, 모니터에 나오는 화면을 바꾼다. 시추기들 옆에, 우주선 착륙장이 보인다. 채굴업자들의 우주선 말고도, 정체불명의 우주선이 2대 더 보인다.
“저 녀석들은... 도대체 뭐야?”
“뭐긴 뭐겠어, 카르토. 네 옆에 있는 녀석과 같은 부류지.”
카르토는 잠깐 옆을 흘깃 본다. 아이샤는 주의 깊게 화면을 보면서도 은근히 호렌을 신경쓰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또 있어.”
이번에는 수민이 입을 연다.
“저 자들 말이지, 우주선에 정부 로고가 큼지막하게 붙어 있는데...”
“정부 로고?”
수민은 화면에서 우주선을 확대해서 보여 준다. 우주선 위에 있는 육각형의 로고. 육각형 안의 독수리라면 틀림없는 세오네 제국의 정부 로고다.
“그런데... 이상하군.”
“왜?”
카르토가 큼지막하게 새겨진 로고를 보며 말한다.
“우리 종족도 그렇긴 하지만... 보통 정부 소속 우주선들이 저 정도로 크게 로고를 붙이고 다니는 것 봤어?”
“그... 글쎄다.”
“그러니까 내 말은... 저 자들, 사칭일 가능성이 커. 하지만 진짜 세오네 제국 정부 소속일 수도 있으니까 말이지...”
“어떻게 하게?”
“직접 내려가서 확인해 봐야지. 그게 가장 빠른 길이니까. 또 어차피 우리는 볼루의 베라네를 차지해야 하니 말이지.”
20분 후. 얼리버드 호는 볼루의 착륙장 한쪽에 자리를 잡고 착륙해 있다. 얼리버드에서 맨 처음으로 내리는 사람은 수민. 그 뒤를 이어 아이샤, 카르토가 차례대로 내린다.
수민의 피부에 처음 닿은 체베르의 공기는, 익숙한 느낌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이질적이다. 페리에의 공기처럼 건조하고, 쌉싸름하기는 하지만, 또 페리에와는 달리, 마치 공기 안에 수면제라도 탄 듯, 아니면 공기 안에 원래 향수라도 들어 있었던 듯, 마치 잠을 자라고 유도하는 듯한 것이 바로 체베르의 공기다. 그대로 눈을 감아버리려던 것을 머리를 흔들어 뜨니,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뭐니 뭐니 해도 거대한 시추기들. 목을 젖히고 올려다봐야 겨우 꼭대기가 보일 정도다. 아까 위에서 내려다볼 때는 미니어처같이 보였는데, 참 신기하다고 생각한다. 그다음으로 눈에 들어오는 건 아까 봤던, 얼리버드 호 정도 크기의 우주선 2대. 아까 위에서 내려다봤을 때는 세오네 제국의 정부 로고가 큼지막하게 보였지만, 이곳에 착륙해서 봤을 때는 딱히 그런 건 보이지 않는다. 우주선 앞에는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 몇 명이 보이고, 뒤쪽에서는 위험물 운반차 몇 대가 이리저리 오가는 것도 보인다.
검은 옷의 사람 중 한 명이, 수민을 보고 수민 쪽으로 걸어온다. 수민도 그 사람을 똑바로 보고 그 사람 쪽으로 걸어간다. 딱 중간쯤에서, 두 사람은 서로 마주친다. 단정하게 머리를 빗어넘긴, 검은 옷을 입은 그 사람이 먼저 입을 연다.
“저희는 특수자원본부에서 왔습니다. 저는 담당관 케네스 밀러라고 합니다. 볼루 지역의 자원에는 저희에게 독점권이 있으니, 다른 곳으로 가 보시지요.”
“아, 그러셨군요...”
수민은 점퍼 주머니를 잠시 뒤적이더니, 잠시 후 얇은 카드를 하나 꺼낸다.
“저 역시, 연구기관에서 왔지요. 제 이름은 김수민이라고 합니다. 우리 기관 역시 이곳의 자원에 독점권이 있습니다만...”
“그럼 그쪽과 저희, 둘 중 하나는 거짓말을 하고 있군요.”
수민과 밀러는 잠시 눈짓을 주고받는다.
“자, 밝히시지요. 진짜 목적이 무엇인지를!”
“호오, 그쪽이 설명하셔야 할 것 같네요. 보통 정부 소속 우주선에는 그렇게 큰 로고를 넣지는 않을 텐데요? 당신네의 정체는 뭔지, 당신이 먼저 말하셔야 할 것 같군요!”
수민이 목에 힘을 주고 강하게 나오자, 밀러는 잠시 움칫하지만, 이내 눈을 다시 치켜뜨고 목에 힘을 주며 말한다.
“당신네, 정말 건방져! 정부 소속이라는데 어디서 버럭버럭 소리쳐!”
“진짜 정부 소속이라면 나올 수 없는 말투로군. 안 그래?”
수민의 얼굴에, 순간 무형의 불길 같은 것이 느껴진다. 수민을 집어삼킬 듯한 에너지가, 수민의 앞에 타오른다. 밀러는 온몸에서 에너지를 뿜어내며 말한다.
“그 건방진 버릇, 고쳐 주지! 그리고 이곳에 다시는 못 오게 해 주겠다!”
“그래? 그러면 좋아. 보여 주지. 내 ‘능력’을 말이야...”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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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댓글
마드리갈
2019-08-11 18:33:49
우주선 안에서 일어났던 작은 소동은 앞으로 체베르 행성에서 벌어질 대소동의 전조인 걸까요.
영 미덥지 못한 아이샤 메스키타가 어쨌든 없는 것보다는 나은 실정이고, 그런 그녀와의 불편한 동거를 해야 하는 상황. 게다가 문제의 베라네를 손에 넣는 과정은 처음부터가 혼란하네요.
그러고 보니, 정부기관의 교통수단 중에 정부기관의 소속임을 크게 나타내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죠. 국가원수가 이용하는 정부전용기 같은 게 아닌 이상.
어쩌면 거짓말은 양쪽이 다 하고 있을 것 같네요. 어차피 수민 일행의 4명도 밀수로 일확천금을 노리려고 이 바닥에 뛰어든 야심가들이다 보니 거짓말을 하는 건 확정이고, 케네스 밀러 또한 사정이 크게 다르지는 않아 보여요.
SiteOwner
2019-08-11 19:37:28
지각변동이 활발한 경우에는 지하에 있던 광물자원들이 그 힘으로 밀려나오기 쉽습니다. 비록 기대가능한 채굴량은 많지 않더라도. 그래서 자원빈국으로 알려진 일본에서 석유나 가스가 소량이나마 생산되고, 또한 이와미은산(石見銀山)같은 한때 세계최고의 은광이 성업했다든지, 카드뮴 생산으로 중국에 이어 세계 2위를 기록하는 경우가 있다든지 합니다. 그런 환경에서도 유용한 광물자원이 쏟아져 나올 레벨이라면 체베르 행성의 가치는 정말 월등할 것 같습니다. 당장 이것은, 세계 최대의 광물자원 분포지인 캐나다순상지(Canadian Shield)가 이미 20억년 전부터 안정한 상태였다는 것을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다음 회차에서 벌어질 일이 볼만하겠습니다.
여기서, 아이샤가 어떻게 무슨 상황을 일으킬지도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