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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수민과 호렌, 아이샤는 쓰러진 밀러를 놔두고, 착륙장 한쪽에 있는 2층짜리 가건물로 간다. 호렌은 어딘가에 전화를 하며 걷는다. 건물의 문 앞에 서자, 호렌은 멈춰 선다.
“카르토가 전화를 안 받아.”
호렌은 AI폰을 귀에서 떼며 수민에게 말한다.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은데...”
“무슨 일이지?”
“보통 이럴 때라면 전화를 항상 받을 텐데 말이야.”
“그렇다면 케이스는 세 가지지.”
수민이 말한 케이스란 이렇다. 첫 번째는 카르토가 적에게 당했을 경우. 두 번째는 카르토가 자신이 만든 공간에 숨어 있을 경우. 세 번째는, 카르토가 딴짓을 하고 있거나 해서 전화를 못 받는 경우다.
“일단 딴짓을 하고 있다거나 이런 건 생각할 수 없어.”
아이샤가 말을 꺼낸다.
“지금 상황이 상황이니까.”
“좀 가만히 있어 줄래, 메스키타?”
호렌은 또다시 아이샤를 향해 목소리를 높여 말한다.
“아니, 아이샤는 또 왜 물고 넘어지는데?”
“저 녀석이 정말로 우리를 도와주려고 그러는 건지 아니면 무슨 흉계를 꾸미고 저런 말을 하는 건지 어떻게 알아?”
호렌은 자신을 막고 나선 수민에게도 소리를 높인다.
“아까 전에 분명히 말했지. 메스키타가 무슨 사고라도 치면 너도 책임을 진다고 말이야!”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잖아. 잘못을 뉘우치는 의미로 도움을 주는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
“어쨌든, 나는 저 녀석이 마음에 안 든다는 것이고...”
바로 그때. 호렌의 말이 갑자기, 부자연스럽게 끊겨 버린다. 그리고 호렌은 ‘털썩’ 하고 그 자리에 쓰러진다.
“야, 호렌. 정신 차려, 정신 차려!”
수민은 우선 호렌이 숨을 쉬고 있는지 확인을 해 본다. 숨은 쉬고 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어떻게 된 거냐고!”
수민은 애꿎은 아이샤를 보고 얼굴을 붉혀 가며 말한다.
“나도 잘 모르겠어. 말하고 있는데 그냥 갑자기 쓰러진 거야.”
“그... 그래? 그러면...”
그때다. 또다시 이상한 느낌이 수민과 아이샤를 휘감는다.
“뭐... 뭐야. 이것도... 누구의 능력이라는 건가?”
“맞아. 아마 그렇겠지.”
“야, 아이샤. ‘아마 그렇겠지’는 또 뭐야?”
“아... 그게, 그렇다는 거지.”
“그럼 똑 부러지게 좀 말해라! 어쨌든, 너는 이 미지의 능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음, 이건, ‘미지의 능력’ 같은 건 아니야.”
아이샤는 고민도 없이 바로 말한다.
“이건 누군가를 잠들게 하는 능력이야.”
“그럼, 왜 우리는 잠들지 않은 거지?”
“아마, 이 능력의 사용자가 잠재울 수 있는 사람은 한 번에 한 명뿐인 것 같아. 그러니까 호렌이 쓰러져도, 우리는 무사한 거지. 또 이 사람은 먼 곳에서 우리를 보고 있거나, 아니면 다른 방식으로 우리를 노렸을 가능성이 커.”
“그렇다면...”
수민이 뭔가 말하려고 할 때, 아이샤는 수민의 팔을 강하게 잡아끌고 건물 안으로 뛰어들어간다. 수민은 마치 바람에 날려가듯 순식간에 아이샤에게 끌려 안으로 들어간다. 그렇게 세게 잡아끄는 건, 수민이 겪어 본 것 중 처음이다. 건물의 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가자, 아이샤는 수민의 등을 떠밀어 자기 앞으로 가게 한다.
“여기서 할 일 하고 있어.”
“아니, 잠깐만. 너는 어떻게...”
수민이 뒤를 돌아보려는데, 아이샤가 없다. 3초 전만 해도 분명히 있었는데! 뒤돌아보려고 고개를 돌리는 그 시간 안에 사라져 버린 것이다! 이건 또 어떻게 된 일인가, 수민은 순간 아이샤도 당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수민은 아래 바닥을 내려다본다. 수민 자신의 발 밑에,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그리고 그림자는 건물 앞에도 길게 드리워져 있다. 얼리버드 크기의 밀수선 2대에까지 그림자는 닿아 있다. 수민은 건물 밖을 한 번 보고는, 뒤돌아보지 않고 2층의 사무실을 향해 계단을 오른다.
한편, 얼리버드 호. 복면의 남자는 조심스럽게 화물칸 쪽으로 걸음을 옮기며 얼리버드 호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있다.
“여기는 침실... 그리고 여기는 주방. 조금만 더 가면 화물칸이군...”
복면의 남자는 조심조심 걸으면서도, 혹시 들릴 만한 소리를 듣거나 혹시나 느껴질 카르토의 기척을 찾기 위해, 세 걸음 걸을 때마다 한 번씩 멈추고, 주위를 한 번씩 살핀 다음 다시 세 걸음 걷고 한 번 멈추고 하는 것을 반복하고 있다.
“웬일이지. 이렇게 쉽게 도달할 수 있을 줄이야.”
복면의 남자는 반신반의하면서도, 조금씩 앞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그런데 이상한데. 너무 쉽게 갈 수 있다는 건, 함정이 있다는 건데...”
생각이 여기에 미친 복면의 남자는 왼팔에 찬 AI시계를 꺼내, 화면을 몇 번 누른다. 그러자, 복면의 남자의 몇 걸음 앞에서, 마치 누군가가 거기에서 걷고 있는 듯, ‘저벅, 저벅’ 하는 소리가 바닥에 깔린다. 그 소리가, 복면의 남자보다 앞서서 몇 걸음을 걷는다. 바로 그때.
‘온다!’
복면의 남자는 발밑에서 뭔가가 온다는 직감을 받는다. 그 느낌은, 잠시 복면의 남자 밑에서 멈춘다. 설마, 들켜 버린 것인가? 그가 쓴 복면에는 이마에 흐르는 땀이 조금씩 배어 나오고, 주먹을 쥔 손에서도 땀과 열기가 배어 나온다.
복면의 남자는 멈추어 서서, 발밑, 벽, 그리고 천장을 조심히 살핀다. 카르토의 능력을, 단편적으로나마 분명히 확인했다. 어디서든 올 것이다. 위에서든, 아래에서든, 아니면 옆에서든.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을 수 없다. 복면의 남자는 조심스럽게, AI폰을 몇 번 두드린다. 복면의 남자 앞에서 가고 있던 그 발걸음 소리가 멈춘다. 그 느낌은, 복면의 남자의 바로 아래를 지난다. 복면의 남자는 주먹을 꽉 쥔다.
“거기로구나!”
카르토의 목소리가 들린다. 거짓 발걸음 소리가 멈춘 곳 바로 아래서. 복면의 남자는 곧장 그 소리가 들린 곳으로 몸을 날린다.
수민은 착륙장 옆 가건물의 2층 사무실 한쪽에 마련된 휴게 공간에 가만히 앉아서 창밖을 내다보고 있다. 이 채굴업체의 이름은 ‘에다드 델 오로 컴퍼니’. 자원 관련 밀수업을 많이 해 온 수민도 한 번인가 두 번밖에 못 들어 본 이름이다. ‘RZ 리소시스’, ‘이지스 마이닝’, ‘잉거솔 앤 매킨리’ 같은 거대기업들이야 많이 들어 봤지만, 그래도 이 바닥에서 일하고 있다면 몇 번씩은 들어 봤을 이름들이 대다수일 텐데, 이 회사 이름은 거의 처음이다. 하지만 수민은 오히려 마음이 놓인다. 이곳과 같은 신생 또는 무명 회사라면 성장을 위해서 약간의, 아니 대규모의 탈법이라도 기꺼이 할 곳이니, 수민 일행이 위조한 어디에도 없는 ‘레무르 연구재단’이라는 곳에서 낸 서류도 금방 처리된다고 했을 것이다. 살짝 봐도 최소한의 확인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수민의 눈에, 검은 옷을 입은 사람 두 명이 눈에 들어온다. 그 두 대의 우주선에서 나온 사람들이다. 수민이 알아보니, 두 대의 우주선의 이름은 각각 ‘다이달로스’, ‘이카로스’라고 하는 것 같았다. 검은 옷을 입은 두 사람은 착륙장 바닥에 쓰러져 잠들어 있는 호렌에게 다가간다. 조심스럽게, 천천히. 순간, 수민의 머릿속에 호렌을 구하러 뛰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는 곧 고개를 젓는다. 만약 그러면 여기 사무실에 온 이유가 없어져 버린다. 호렌의 양옆에 선 두 사람은 쭈그려 앉아서 이곳저곳 뭔가를 살핀다. 마치 호렌이 매우 위험한 폭탄이라도 되는 것처럼. 잠시 후, 두 사람은 호렌을 들쳐메고 자기들의 우주선으로 돌아간다. 두 사람의 앞쪽으로 그림자가 드리운 모습이 보인다.
카르토는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직감한다. 분명히 소리가 난 곳에 그 복면의 남자가 있을 텐데, 없다! 아뿔사... 뭔가 잘못된 것이다! 그리고 뭔가가 날아온다! 카르토가 급히 몸을 피하려고 생각한 바로 그 때.
퍽-
둔탁한 것이 카르토의 몸에 맞는다. 카르토는 주먹을 내지르던 자세 그대로, 바닥에 강하게 패대기쳐져 뒹군다. 쿵- 하는 소리가 바닥에 강하게 울릴 정도로. 카르토의 온몸이 쑤셔 온다. 뭔가가 날아온 쪽을 돌아본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역시나.”
또다시, 카르토의 뒤에서 그 복면의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 자기만의 공간이라는 것이 절대 무적의 영역만은 아니었나 보군.”
“네... 네놈!”
카르토는 어느새 땅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자신의 앞에 선, 파리 정도 크기의 복면의 남자를 노려보며 말한다.
“이런다고 해서 나를 쓰러트릴 수 있을 것 같으냐!”
“아까도 말했지. 네놈은 내 손바닥 안에 있다.”
복면의 남자는 카르토의 머리에 올라타고는, 마치 자신이 얼리버드 호의 새 주인이라도 된다는 듯, 한껏 거만한 자세로, 카르토의 머리를 마구 밟는다. 카르토의 머리에 그 원래 크기의 무게가 그대로 전해진다.
“허튼짓은 여기까지 하는 게 좋을 거다, 살테이로인. 이제 그만 포기하고 이 상황을 받아들이는 게, 네놈과 네놈의 친구들 모두에게 이득이다!”
카르토는 온몸이 쑤셔 오는 것을 참고, 이리저리 팔과 다리를 움직여 본다. 그러나 카르토가 움직임을 보이는 족족, 그 복면의 남자는 마치 깃털보다 가볍게 이리저리 뛰어가, 그 건장한 체격에서 나오는 그대로의 힘으로, 카르토의 팔과 다리를 짓뭉갠다.
“크... 으...”
“그냥 포기하면 편할 텐데, 왜 그렇게 자처해서 고통을 받으려 하나? 이해할 수 없군.”
복면의 남자는 어느새 다시 카르토의 머리 위에 올라앉아, 더욱 거만하게 말한다.
“네놈이 그런다고... 포기할 것 같으냐!”
“뭐라고? 다시 한번 말해 봐라.”
“포기할 것 같냔 말이다.”
“그 튀어나온 입을 쭈그러뜨리기 전에 말이다...”
복면의 남자는 또다시 뛰어오르더니, 그대로 무게를 실어 카르토의 뒤통수를 발로 찬다.
“큭...!”
“여기까지 하는 게 좋다고 이야기했다!”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란 말이다.”
“훗. 뭐라고?”
복면의 남자는 주먹을 들어 카르토를 한 대 더 패려다가 아래를 본다. 암청색의 공간이, 카르토의 아래에서 입을 벌리고 있다. 어느새! 카르토가 점점 그 공간의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놓칠 것 같으냐! 네놈의 공간에 따라 들어가면 그만이란 말이다!”
한편, 착륙장 한쪽에서는 검은 옷을 입은 두 명의 남자가, 호렌을 양옆에서 들고 자신들이 나온 우주선 이카로스 호로 들어가고 있다.
“킹 녀석, 잘 하고 있는 건가? 아직 소식이 안 들려오는데.”
“그러게. 여태껏 이런 일을 한 번 했다 하면 5분 안에 끝내고 나오던 녀석인데.”
“금방 좋은 소식을 전해 주겠지. 우리는 우리 일이나 신경 쓰자고.”
두 명의 남자는 승리를 확신하며 한껏 여유를 부린다. 어느덧 이카로스 호에 오르려고 할 때, 둘 중 한 명이 호렌을 이상한 눈으로 자꾸 돌아본다.
“왜 그래? 뭐라도 있어? 이 녀석은 곤히 잠들었을 뿐이라고.”
“아니... 아니야. 뭔가 좀 무거운 것 같기도 하고.”
“기분 탓이라니까? 빨리 가자고.”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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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댓글
마드리갈
2019-08-22 13:19:38
야곱이 갑자기 알 수 없는 이상한 존재와 밤새도록 싸웠고 그 이후에 그 이상한 존재가 스스로 정체를 드러내어 신이라고 하였고, 그렇게 신과 겨룬 야곱은 그 의미를 담은 이름인 이스라엘로 불리게 되었죠. 그것처럼 실체를 알 수 없는 적대적인 것에 영향받고 그것을 이겨낼 수 있다면 장벽은 없어지겠지만, 그게 쉬운 일은 절대 아닐 거예요. 당장 합류한 아이샤 메스키타 자체가 별로 믿을만한 인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치기도 뭣하고...여러모로 산 넘어 산이네요.
역시 기분 탓인가 하는 것을 간과하면 안되죠. 다른 예상못한 일의 단초가 되는 사안일테니까요.
SiteOwner
2019-08-24 20:26:52
무엇인가가 너무 쉽게 진행된다든지 전에 없는 이상한 사안이 있다든가 하면 무엇인가 예상못한 일이 나쁜 방향으로 벌어지기가 쉽습니다. 그렇기에 이런 것은 창작물에서는 복선으로 잘 작용하기 쉽고, 실생활에서는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것들을 돌아봐야 할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이렇게 이상징후가 여기저기서 돌출되는 가운데 아이샤는 또 사라지고 복면의 남자는 불쑥 나타나서 폭력을 가하고, 아무리 하이리턴이 좋다 하더라도 도달할 수 없는 하이리턴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드는군요. 시작부터 험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