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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P13.png (419.7KB)
“안돼, 이럴 수는 없다. 이럴 수는...”
“네 눈이 그렇게 해야만 한다고 말하고 있는데?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네 목 밑에 있는 권총이 말하게 해 줄 거야.”
하텐도르프의 눈이 떨린다. 패닉 상태에 빠진 부하들, 화면에 나온 다이달로스 호의 결박당한 부하들, 그리고 카르토를 차례대로 본다. 그의 눈동자가 이리저리 돌아간다. 잠시 후, 그가 힘없이 선 자리에서 그대로 바닥으로 스르르 주저앉는다. 입에서는 거품이 흘러나오고 있고, 눈은 흰자위를 보인다.
“이봐, 너희 대장 왜 이래?”
아이샤가 다른 블랙 워크스 직원들을 보고 의기양양하게 말한다.
“그냥 겁만 줬는데 쫄아서 이러고. 이래서야 대장 노릇 하겠어?”
다른 사람들은, 그저 아무 말도 못 한 채, 권총을 든 아이샤와 홀로그램 화면 속의 카르토만 번갈아 본다.
“웃기지 마라!”
바로 그때, 누군가가 아이샤를 노려보고 손찌검하며 말한다.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그에게 쏠린다.
모두의 시선이 쏠린 그 사람. 그 사람은, 다름 아닌, 호렌을 잠재운, 가말란이다.
“너! 분명히 그림자 안에 숨는 능력이었지?”
“맞아.”
아이샤는 표정의 변화 없이 말한다.
“경고하지! 네 능력이 어떻든, 나는 3초 내로 너를 재워 버릴 수 있다. 이제 네게는 인질도 없으니, 상황은 다시 우리에게 유리해진 것이다. 총 버리고, 손들어. 그렇지 않으면, 너는 물론, 여기 잠들어 있는 이레시아인 녀석까지 영원히 재워 버린다!”
여전히, 아이샤는 가말란의 경고에도 표정에 아무 변화도 없이, 손도 안 들고, 총도 안 내려놓고 가만히 서 있다.
“뭐냐? 내 말이 말 같지 않은 거냐? 좋다. 그러면 행동으로 보여 줄 수밖에!”
“호오... 살테이로인, 몸속 깊은 곳에서 쥐어짜 내는 그 용기가 가상한데? 마치 너희 대장에게서 이어받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야. 그런데, 지금부터는 그런 말을 절대 못 할 거야.”
아이샤는 자신의 그림자 안에서 뭔가를 꺼낸다. 마치 감자를 캐듯, 뭔가 덩어리진 것들이 줄줄이 엮여 올라온다. 이윽고, 아이샤가 든 덩어리가 조명을 받아 빛난다. 그것은 바로 수류탄! 그것도 열댓 개에 달한다. 그리고 안전핀들이 와이어 하나에 줄줄이 엮여 있다!
“네가 나를 재운다면, 나는 그 몇 초 안에 이 핀들을 전부 풀어 버릴 것이고... 다음은 어떻게 될지는 다들 알지?”
“......”
“좋은 말 할 때 여기 있는 이레시아인을 보내 줘. 그러면 여기 있는 사람들의 목숨은 해치지 않을 테니.”
수류탄 다발을 보고 학습효과가 제대로 되었는지, 가말란은 아무 말도 못 하고 공포심으로 가득 찬 눈을 한 채 고개를 끄덕이기만 할 뿐이다. 잠시 후, 호렌이 쓰러져 있던 자리에서 가만히 일어나 눈을 비빈다.
“가만... 여긴 어디지?”
호렌이 고개를 이리저리 두리번거린다. 여기는 지금 어느 방 안. 자신은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고, 주위는 온통 모르는 것들뿐이다. 마침, 주위를 돌아보던 호렌의 눈에 아이샤가 들어온다.
“너... 너 말이야!”
“나는 왜?”
“네가 이곳으로 나를 끌고 왔구나! 여기 있는 놈들에게 넘겨 주려고!”
호렌은 아이샤를 보자마자 다짜고짜 아이샤에게 달려든다.
“하하하, 깨어났나, 호렌?”
스크린 너머에서 카르토가 큰 소리로 웃는다. 호렌이 아이샤에게 달려들다 말고 그 자리에 멈추고 보니, 아이샤도 카르토를 따라 웃고 있다.
“말로 보나 행동으로 보나, 역시 네가 맞군. 안 그래?”
“아... 그건 다행인데, 지금 상황이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일단 여기는 상황이 끝났는데, 페리에에서 누군가 우리를 쫓아서 오고 있어. 첫 주문량을 다 싣는 대로 볼루를 떠나야 해.”
“아... 알았어.”
호렌은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일단은 대답한다.
“호렌 네 능력이 필요할 때야. 자세한 상황은 천천히 설명해 주지. 참! 그리고 아이샤한테 고맙다고 해. 아이샤가 널 구해 준 거니까.”
“아... 그래... 음...”
호렌은 아이샤를 여전히 못 미더워하는 눈으로 보면서도, 어느새 얼굴은 다른 사람이라도 된 듯, 약간의 안도, 그리고 상당한 불안감이 버무려진 미소를 띤다.
어느덧 오후 8시 30분. 가스 운반 차량 2대가 얼리버드 호 측면에 서서 베라네를 옮길 준비를 마친 상태다.
얼리버드 호 조종석. 수민, 카르토, 호렌, 아이샤 네 명은 원형 테이블에 둘러앉아 TV를 보고 있다. TV에 나오는 프로그램은 <오늘만 산다>라는 프로그램으로, 세라토의 NMC 방송사에서 제작하는데, 다양한 종족 유명인들의 일상생활을 다루고 있어 남녀노소, 종족 막론하고 인기가 많은 프로그램이다.
호렌, 아이샤가 서로 붙어 앉아 있다는 것조차 잊어버린 채 깔깔깔 웃고, 카르토는 정신없이 과자를 집어먹으며 TV를 보고 있는 사이, 수민은 셋과는 달리 얼굴에는 웃음기가 하나도 없고, 이마는 축축해진 채로, 시계를 보고 있다. 분명 10분쯤 전에 적재를 시작한다고 했는데, 아직 연락이 없다. 무슨 이유에서인가?
수민이 초조하게 전화를 기다리던 그 시간.
♬♪♩♬♪♩♬♪♩
“여보세요?”
“아, 레무르 연구재단이시죠?”
“네, 맞는데요.”
“다른 건 아니고, 이제 적재를 시작할 건데, 문제는 여기 화물칸 쪽에 온도가 너무 높습니다. 온도가 너무 높으면 가스 물질은 적재가 불가능한데...”
“온도가... 높다고요?”
“그것도 보통 높은 게 아니고, 한 1,000도 가까이 되는 것 같네요. 유독 화물칸만 이런 것 같은데, 한번 와서 확인해 보시겠어요?”
“네, 알겠습니다. 금방 가죠.”
수민은 전화를 끊은 다음, 홀로그램 모니터를 켠다. 그런데...
“왜 이러지. 에러가 뜨네.”
“한 번 다시 부팅해 봐.”
수민은 호렌의 말에 따라 홀로그램을 다시 켠다. 그래도 여전히 에러 메시지가 뜬다.
“안 되겠어. 시간도 없으니, 내가 직접 가서 확인해 봐야겠어.”
수민은 바로 조종석을 나와서 화물칸 쪽으로 빠르게 걸음을 옮긴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1,000도 가까이 되는 고온이라면... 설마? 아니다... 그럴 리가 없다. 밀러는 아까 쓰러졌을 터다. 하지만 이상하다. 이 정도의 고온을 일으키는 물체는 가까이 오기만 하면 경보가 울린다. 그렇다면 뭐지? 뭐가 있길래 온도가 1,000도 가까이 된다고 하는 걸까?
수민이 막 화물칸의 문을 열려고 다가갈 때.
“엇...”
열기가 수민의 뺨에 닿는다. 뜨거운 게 느껴진다! 아직 화물칸의 문은 열지도 않았는데! 하지만 대충은 알 것 같다. 열기는 멀지 않은 곳에서 내뿜어지고 있다. 그것도 수민의 발밑에서. 수민은 바로 화물칸의 문을 열고 들어간다. 열기가 이제는 수민의 온몸을 덮는다. 얼굴과 손에는 벌써 땀이 맺히기 시작하고, 셔츠의 가슴팍도 은근히 젖어 있다. 어차피 뜨거운 것, 단숨에 계단을 내려간다. 열기가 나오는 쪽으로 고개를 돌려 보니...
“흐흐흐, 용케도 찾아내셨군.”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누군가가 벽 쪽에 오른손을 대고 있고, 그가 손을 댄 곳은 빨갛게 열이 올라, 마치 용광로라도 되는 듯, 녹아내릴락 말락 하고 있다.?
“케네스 밀러. 맞지?”
“그래. 당신은 분명, 김수민이었지.”
“여기서 뭘 하는 거지? 당신네 친구들은 우리한테 무릎을 꿇었는데.”
“너희들이 곧 나한테 무릎을 꿇게 되겠지.”
“그럴까?”
수민과 밀러는 잠시 서로를 노려본다.
“이야아아!”
잠시 후, 밀러가 기합 소리를 지르더니, 벌겋게 달구어진 벽에서 오른손을 떼서, 수민을 향해 휘두른다. 수민은 급히 그의 왼손을 조종하려 한다. 그런데... 왼팔이 그의 몸통에 묶여 있다!
“흐흐흐... 이걸로 한 가지 가능성을 없앴지. 이 손을 그대로 네 얼굴에 대서, 녹여 주마!”
그의 손이 수민의 얼굴에 막 닿으려는데... 이상하다! 그의 손이 그냥 허공을 가른다.
“뭐지? 설마, 내 손이 너무 뜨거워서 닿기도 전에 녹아 버린 건가? 그게 아니면...”
퍽-
그때, 아래쪽에서 마치 썩은 나무를 부러뜨리는 듯한 둔탁한 소리가 들린다. 밀러가 그 소리가 자신의 다리에서 난 것임을 알기까지는 1초도 걸리지 않는다.
“끄아악...”
“아래쪽도 잘 살폈어야지.”
정강이에서 엄청난 열이 올라온다. 그의 다리가 힘을 잃는다. 밀러는 중심을 잃고 뒤로 넘어진다. 급히 중심을 잡아 보려 한다. 그러나 한 손은 여전히 수백 도가 넘을 정도로 뜨겁고, 한 손은 묶여 있다... 허리를 숙이고 한쪽 다리를 길게 뻗은 수민이 보인다. 그대로 쿵 하고 바닥에 쓰러진다.
“후... 한숨 돌렸군.”
수민은 허리를 펴고 일어서서 밀러가 손을 댔던 벽을 본다. 시뻘겋게 달구어진 벽은 부분부분 녹아내려 있다.
“온도를 낮춰야지 베라네를 실을 텐데...”
“왜 그러고 있어?”
수민의 옆에서 카르토의 목소리가 들린다. 돌아보니, 어느새 카르토가 옆에 서 있고, 그의 뒤에는 암청색의 공간이 입을 벌리고 있다.
“우선 전화를 걸어. 빨리 베라네를 실어야 할 거 아냐.”
“그건 그런데... 녹아내린 건 어쩌지?”
“일단은 진화 시스템이 있긴 한데... 온도는 온도대로 낮추더라도, 이거 보니까 녹은 데가 많은데. 좀만 더 있었으면 엔진까지 갈 뻔했어. 중간에 어디 들러서 고치고 가야지.”
“그래... 고마워. 그건 그렇고, 이 녀석 좀 원래 자기 있던 곳으로 돌려놔 줘.”
“이 녀석은 누군데?”
“조심해. 이 녀석 손이 뜨거워.”
“알았어. 그런 건 걱정하지 말라고.”
카르토는 가지고 온 와이어로 밀러를 꽁꽁 묶은 다음, 밀러를 들쳐메고 자신이 나온 암청색의 공간으로 들어간다. 카르토가 사라진 것을 확인하자, 수민은 곧바로 전화를 건다.
“여보세요? 아, 이상 고온의 원인은 제거했습니다. 이제 적재해도 됩니다.”
약 15분쯤 후, 얼리버드 호 앞. 수민은 얼리버드에서 나와서 에다드 델 오로 컴퍼니의 직원들을 기다리고 있다. AI시계를 보니, 시간은 오후 8시 55분을 가리키고 있다. 여기 시간으로는 아마 오후 1시쯤 됐을까. 그러고 보니까 하늘 한쪽에서 동이 트고 있는 게 보인다.
운반차 한 대가 동이 트는 하늘을 등지고 수민 쪽으로 오더니, 수민의 옆에서 멈춘다. 운반차에서 직원 한 명이 내리더니, 서류 몇 장과 태블릿을 들고 수민에게 다가온다.
“아, 다 된 건가요?”
“예, 여기 명세서와 확인서입니다. 제가 짚어 주는 곳에 서명하시면 됩니다.”
수민은 직원이 짚어 주는 곳마다 서명하고, 직원과 서로 인사한 다음, 얼리버드 호로 돌아온다. 문을 닫고 보니, 카르토, 호렌, 아이샤 모두 눈동자가 절반 정도로 작아 보인다.
“기다렸잖아. 30초만 더 늦었어도 너를 놔두고 출발하려고 했다고.”
호렌이 퉁명스럽게 말한다.
“그게 무슨 말이야?”
“그 사람이 예상보다 빨리 접근하고 있어. 빨리 가야 해. 일단 얼리버드 호의 환영은 내가 만들어 놨지만...”
“고마워. 그런데... 그 환영... 안 보이던데?”
“지금은 얼리버드 호 바로 위에 덧씌워 놨으니까.”
“아... 그러네. 그런데... 문제는 기껏 도망가도 그 사람이 얼리버드 호의 선적을 알고 있으니까, 아마 그걸로 추격할지도 몰라. 어떡하지?”
수민은 걱정스러운 눈으로 카르토와 호렌, 아이샤를 돌아본다.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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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댓글
마드리갈
2019-09-06 20:24:20
정말 부제처럼 산넘어 산이네요.
아이샤는 그 많은 수류탄을 언제 어떻게 구했으며, 또 어느 틈에 그것들을 와이어로 엮어서 한 번에 터트릴 수 있도록 자폭키트를 만든 것일까요. 정말 무서운 능력을 지녔어요. 역시 아군에 합류해서 다행이다 싶어요.
게다가 이번에는 열 공격. 문제의 베라네는 기체니까 열이 가해지면 급격히 팽창해서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일어날 수밖에 없겠죠. 불상사로 이어지지 않은 게 천만다행인데 이건 이제 시작이겠죠.
SiteOwner
2019-09-06 22:55:53
일촉즉발의 상황이 연이어 둘씩이나...정말 산넘어 산이 맞군요.
좁은 공간 내에서 끔찍한 상황을 만들어내기에는 수류탄은 1개로도 아주 충분합니다. 실내의 사람들을 처참하게 파괴된 시체로 만들어 버릴 뿐 아니라 살아남더라도 온전함은 절대로 보장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걸 저렇게나 많이 준비했으니, 정말 공포스러울 수밖에 없겠습니다.
문제의 열능력이 작동범위가 좁은 게 그나마 다행이긴 한데, 저게 후속사건의 단초가 되지 않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