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발언이, 법의 규제범위 밖에 있는 행위를 했을 경우의 방어막으로 작용할 수는 있더라도 도덕적 비난가능성까지 면제받지는 못합니다. 이건 현행법을 명백히 어긴 것보다는 그나마 낫습니다만 법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책잡힐 일 없이 사는 사람들보다 낫지 않다는 것은 명백합니다. 그래서 이런 변명은 리더가 되려는 자의 할 말은 아닙니다.
이번에 주목할 만한 말은 "기준이 정비되기 전" 이라는 표절에의 변명.
이것 또한 이전에 논했던 것과 본질적으로 다르지는 않습니다.
아예 있는 규칙 자체를 무시하는 것보다는 덜 못하지만 그렇다고 자랑스럽게 표방할 것도 아닙니다.
게다가 여기에는 굉장히 위험한 논리가 몇 가지 숨어 있다 보니 겨우 그런 것 가지고 까탈스럽게 구냐고 넘어갈 수도 없습니다.
쟁점은 크게 2가지로 뽑을 수 있습니다.
하나의 쟁점은 각종 기준의 형성과정.
다른 쟁점은 "악법도 법이다" 라는 법실증주의적 병폐의 정당화.
세계 각 분야의 각종 기준의 형성과정을 보면, 그것들이 어디에서인가 선험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즉 인간의 활동의 소산이라는 것이지요. 그렇게 문물이 형성되고 정교해집니다. 학위논문의 작성, 각종 법령과 사안에 적용된 판결 등도 바로 그러합니다. 처음부터 전분야를 모두 직접 만든 것이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 들여온 것이라고 하더라도 번역이나 지역사정의 반영 등으로 변형이 가해지고 하면서 기준도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 기준이 정비되기 전이라는 발언은 안 하는 편이 나았습니다.
예의 발언은 "악법도 법이다" 라는 법실증주의적 병폐를 얼마든지 정당화할 수도 있습니다.
법령의 성격에 어떤 정당성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외면한 채, 법령이 그 자체로 존재하기니까 정당하다는 법실증주의적 사고방식은 실정법을 도덕 등에서 분리하였고, 따라서 오로지 판단의 기준이 현존하는 법령 등에만 있는 문제를 낳습니다. 그것이 바로 "악법도 법이다" 로 대표되는 법을 가장한 폭력.
이 사고방식으로는 어떠한 변혁이나 저항운동도 폭동이나 테러리즘 등으로 규정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법령을 제정한 세력은 그 자체로 선, 그렇지 않은 세력은 그 자체로 악이 됩니다. 여기에 대해 "기준이 정비되기 전" 이라는 변명은 잠깐의 화는 피할 수 있겠지만 그 순간부터 변혁을 꿈꾸고 실천했던 사람들은 그 발언으로 불순분자나 폭도로 폄하되고 말아버립니다.
20세기 후반의 국내 저항시인 박노해는 그의 작품 "역사 앞에서" 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처음이 나중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나중이 처음을 결정한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이 문구가 오늘따라 더욱 준엄하게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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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댓글
대왕고래
2019-12-13 21:05:13
기준선이 있기 전에도 지켜야 할 선이 있는데, 기준이 정비되기 전이니까 밖에 있어도 OK라는 건 납득할 수가 없죠.
선 긋고 여기 안에서 경기하자고 하면 당연히 선 안에 들어와야지, "닥쳐!! 난 선 밖에 있었으니 계속 여기서 하겠다!!"고 하면 끼워주나요, "너 따로 놀아라" 하겠죠.
변명치고는 너무 허술하다는 느낌뿐이네요...
SiteOwner
2019-12-14 13:55:09
그렇습니다. 자신의 명예를 걸고 자신의 지위를 결정하는 그런 저작물에 대한 생각은 고작 그 정도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굉장히 추하게 보일 따름입니다. 물론 이런 것이 아름답지도 않다는 것은 중언부언할 것도 못됩니다.
그 변명이 혹을 감추려고 다른 데에 혹을 여러개 붙이는 결과로 이어지는 데에는 더 말해봤자 소용없을 듯합니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었더라면 이런 일도 저의 평론도 없었을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