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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나는 세훈을 놔두고 먼저 걸음을 재촉한다. 세훈의 걸음걸이는 좀 더 느려진다. 등 뒤도 몇 번씩이고 돌아본다. 하지만 아직 보이지 않는다. 세훈이 그토록 찾는 그 사람은. 천천히 걸으면서 주위를 몇 번이고 둘러본다. 조금 걸어가니 도로 맞은편에 미린대 정문이 보인다. 안내 표지를 따라 대로변에서 안쪽으로 들어가니 주변은 정원 딸린 저택들이 많은 주택가다. 조금 걸어가니 바로 교문이다. 교문에 서서 시계를 본다. 8시 25분. 학생들이 가장 많이 들어올 시간이라 그런지 점점 더 어수선해진다. 교문 앞에는 몇 명이 서 있는데, 다들 누군가를 기다렸다가 만나서 들어가려는 듯하다. 세훈도 우선 교문 앞에 선다. 교문 너머의 학교 건물을 돌아본다. 뭔가 세훈이 다녔던 초등학교나 중학교보다는 커 보인다. 아마 부대시설이 많은 편이라 그런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단순히 세훈의 착각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세훈은 또다시 교문 앞에 서서 대로변 쪽을 본다. 아직 세훈이 기다리는 사람은 안 보인다. 조금만 더 기다려 보기로 한다. 도로의 차들은 느리게 간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느려진다. 정문을 통과하는 학생들도 점점 더 많아진다. 그리고 좀 더 기다리다 보니, 이제 학생들이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한다. 시계를 보니 8시 40분.
그냥 들어갈까...
세훈의 머릿속에 이 생각이 스친다. 아무리 생각해도 둘 중 하나다. 늦잠을 잤다거나, 아니면 이미 세훈보다 먼저 들어갔거나. 여기에까지 생각이 미치자 세훈은 결심한다. 그냥 먼저 들어가야겠다. 어차피 이따가 볼 테니. 세훈은 등을 돌려 교문 안쪽으로 향한다. 그런데 그때.
“어, 누구야?”
갑자기 누군가 세훈의 어깨를 짚는다. 세훈은 등 뒤를 돌아본다. 그리고 그곳에는 갈색 머리의 여자 교복을 입은 학생이 한 명 서 있다. 세훈의 입이 딱 벌어진다.
“주리잖아!”
“아, 이게 어찌 된 거람... 우리는 고등학교까지 같은 학교에 다니게 됐네.”
역시 미소를 가득 띠고 있는 그 여학생의 이름은 공주리. 세훈과는 유치원부터 같이 쭉 다닌 소꿉친구다.
“뭐, 그거야 당연한 거잖아. 같이 시험 쳐서 온 거니까. 그건 그렇고 왜 이렇게 늦었어?”
“아, 오늘은 좀 늦게 일어나서 말이지.”
“늦게 일어났다고? 초등학교하고 중학교 때는 항상 나보다 일찍 등교하던 네가 웬일이야?”
“그러게...”
주리는 잠시 뜸을 들인다. 세훈은 잠시 교문 바깥을 돌아본다. 시간은 벌써 8시 45분. 아직도 교문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이 있다.
“이제 들어갈까...”
“그래.”
세훈과 주리는 발걸음을 교문 안쪽으로 돌린다. 고개를 이쪽저쪽 돌리며 주위를 둘러보는데, 한쪽에는 육상 트랙과 축구장, 농구장, 야구장 등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정원이 조성되어 있다. 학교 건물도 대리석으로 된 외벽이 뭔가 고급스러워 보이기도 한다.
“이 학교 온 것... 잘 온 거겠지?”
“다녀 봐야 알지. 그건 그렇고, 너는 무슨 반이야?”
“나...? G반인데.”
주리의 대답에 세훈의 입이 저절로 벌어진다.
“G...반? 잘됐네! 나하고 같은 반이잖아.”
“오! 그것도 참 신기한데.”
주리는 시계를 본다. 이제 시간은 8시 48분.
“긴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일단은 빨리 들어가자. 이러다가 늦는 거 아냐?”
세훈과 주리는 교문 안쪽으로 들어간다. 정원과 운동장 등을 빠르게 지나쳐서, 두 사람은 본관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G반은... 어디지?”
세훈이 주리에게 묻는다.
“저쪽에 안내도 보면 나오잖아.”
안내도에는 G반이 2층에 있다고 나와 있다. 세훈과 주리는 곧바로 2층으로 올라간다. G반은 계단에서 멀지 않다. 바로 교실 안으로 들어간다. 안은 꽤나 넓은 편이다. 한 반의 정원은 30명 정도로 보이는데, 책상을 널찍하게 떼어 놓고 앉아도 공간이 남아돌 정도다.
“어? 세훈이 아냐?”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세훈이 가보니, 디아나가 교실 한쪽 자리에 앉아 있다.
“너도 같은 반이었어?”
“그러게... 너도 같은 반일 줄은 몰랐는데.”
세훈은 어색하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인다.
“여, 안녕?”
그 때 세훈의 뒤쪽에서 또 다른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그와 동시에 금발 머리의 한 남학생이 세훈 옆에 가서 앉는다.
“아, 이게 누구야. 너도 여기서 보게 될 줄이야. 반갑다.”
“반갑기는 무슨. 3년밖에 안 됐는데.”
이 남학생의 이름은 미셸 카스티유. 세훈과는 초등학교 때 처음 알게 되었으며,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서로 연락이 없었다가 고등학교 때 같은 반에서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중학교 때는 어디 있었는데?”
“에이, 뭐 그걸 미리 알려고 그러냐. 천천히 알게 될 텐데.”
미셸은 잠시 시계를 본다. 시계는 8시 55분을 가리키고 있다.
“그건 그렇고... 너희들 학교 끝나고 RZ백화점이나 갈래?”
“아... 시간 없어. 엄마가 학교 끝나자마자 빨리 뭐 할 게 있다고 전화 하랬는데...”
“야! 넌 아직도 엄마 말에 고분고분하냐.”
“나 평소에는 안 이래. 뭔가 큰일이 있어서 그러는 것 같기는 한데...”
“큰일? 그 큰일이란 게 뭘까. 어쨌든 알았어. 그럼 다음 기회에 가지 뭐.”
미셸은 아쉬운 듯 창밖을 내다보며 말한다.
“주리, 너는 돼?”
“아니, 나도... 안될 것 같은데. 나도 집에서 빨리 오래서...”
“아니, 왜 다 시간이 안 맞아. 주말 빼면 오늘 같은 날도 없다고. 하... 그럼 나하고 디아나만 가지 뭐.”
미셸은 시무룩한 표정이다. 세훈은 미셸에게 미안해하기보다는, 주리의 반응이 더 흥미롭다. 잠깐... 왜 주리도 나하고 같이 빨리 가야 한다는 걸까?
“야, 주리, 너 근데 왜 빨리 가야 한다는 거야?”
“몰라, 엄마가 빨리 오라는데, 무슨 일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는데...”
잠깐, 분명 세훈의 어머니도 일찍 오라는 말을 했을 터이다. 그러면 혹시...
“응? 너도 너희 엄마가 빨리 와야 한다고 했어? 뭣 때문에?”
“글쎄... 나도 잘 모르겠네. 그냥 엄마가 너무 늦지 말라고 해서. 자세한 건 이따가 가 보면 알겠지.”
그리고 바로 그 때, 교실 문이 열리더니 옆에 책 한 권을 낀 선생이 들어온다. 선생을 처음 본 세훈의 머릿속에는 ‘의외’, ‘신선함’ 이 두 가지가 순간적으로 스친다. 한눈에 보기에도, 선생의 외모는 학생들과 별로 차이가 안 나 보인다. 오히려 선생보다 나이 들어 보인다 싶은 학생도 있을 정도다. 그건 그렇고... 선생이 너무 갑자기 들어왔다. 자기들끼리 모여 앉았던 학생들은 우왕좌왕하고 있다. 그런데... 세훈과 주리가 있는 자리는 하필이면 교탁 바로 앞이다! 그야말로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이다.
“아, 여러분!”
선생이 입을 연다.
“굳이 일부러 제자리로 돌아간다거나 할 필요 없어요. 오늘은 그냥 짧게 끝날 테니까, 긴장 같은 건 안 해도 돼요.”
선생의 말에 교실 안은 일단 진정된다. 세훈도 주리도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요즘은 젊은 선생들이 오히려 학생들에게 무섭게 대한다는 말을 얼핏 듣기는 했는데 여기는 아닌가 보다. 선생은 계속 말을 잇는다.
“아, 제 소개가 늦었네요. 제 이름은 ‘키라 미호’라고 합니다. 문학 과목을 전담하고 있고요, 여러분과 나이 차이는 별로 안 날 거예요. 그렇다고 그냥 마냥 편하게만 생각해서는 안 돼요. 자! 그럼 다음으로 들어가서, 우리 학교가 어떤 곳이지 알아야겠죠? 우선...”
“예상했던 대로... 다 그렇지 뭐.”
미셸이 선생에게 안 들릴 정도로, 조그맣게 말한다.
“어떤 선생들은 처음에는 센 척을 한다니까. 그리고 몇 달 지나 봐. 그런 선생들은 대부분 별 볼일 없더라.”
“네가 어떻게 알아?”
세훈이 되묻는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경험상으로는 그래.”
약 1시간쯤 후. 개학일이라 수업이 일찍 끝나서 그런지 교문을 나서는 학생들이 많다. 교정 여기저기에는 벤치에 끼리끼리 모여앉아 잡담하는 학생들도 있다. 세훈과 주리 또한 교문을 나서는 학생들 사이에 껴서 교문 밖으로 나온다. 막 교문을 나서려는 그때,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린다.
“어! 거기 너!”
“에... 누구...”
세훈은 왜인지는 몰라도 말을 잇지 못한다. 어디서 많이 본 익숙한 얼굴이다. 조금 짧은 머리에 남들보다 키가 더 커 보이는 남자다. 그런데... 누구일까?
“아... 그러니까... 누구더라...”
“생각 안 나니?”
세훈이 머리를 갸우뚱하자 그 남자가 얼른 말한다.
“아까 전에도 봤고.”
세훈은 잠시 눈을 감는다. 내 앞에 서 있는 저 얼굴. 익숙한데 왜 이름은 생각이 안 나지?
“어... 생각날 것 같기는 한데...”
“조금만 더 머리를 굴려 보라니까?”
“아, 가만히 있어 봐. 그러니까 누구였더라... 아, 맞아! 진언이 형이었지...”
“진언이는 내 쌍둥이고.”
“그럼 누구지...”
“아, 알았다!”
그 때, 그 동안 한 마디도 안 하고 가만히 있던 주리가 그 남학생을 보고 말한다.
“어, 서언 오빠! 오랜만이네!”
“야, 너 이 사람을 알아?”
“너도 알잖아! 어릴 때부터 쭉 봐 왔는데.”
“아... 그래, 맞아! 아까...”
세훈의 앞에 서 있는 키 큰 남자. 다름 아닌 아까 지하철에서 마주쳤던 바로 그 사람이다. 이름은 독고서언. 세훈과 주리보다는 4살 많은 대학생으로, 어린 시절부터 세훈, 주리와 알고 지낸 사이다.?
“그래... 이제 생각이 났나 보네.”
“아... 서언이 형이구나. 미안, 그때 알아봤어야 하는데...”
“알아봤으면 됐지 뭐. 그런데, 너희들 그렇게 딱 붙어서 또 뭐 하려고?”
“아, 아무것도 아니야.”
“아니긴 뭐가 아니야. 이렇게 딱 붙어서 다니는 사람들치고 아무것도 없는 사람들은 없었어.”
“하긴 그래. 사실은 새로 등록한 학원에 가려는데, 시간이 많이 남아서...”
주리가 이렇게 말하고는 세훈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그래서 말인데, 우리 집에 가기 전에 어디라도 좀 들를까?”
“어디 들렀다 가자고? 그러다가 늦으면 어쩌려고?”
“상관없다니까. 어차피 집에 가는 길에 있는 건데.”
“어디를 간다기에 그래?”
세훈은 주리의 말에 솔깃해진다.
“RZ백화점에 좀 들렀다 가자니깐.”
“아... RZ백화점이라면 괜찮지. 이것저것 볼 게 많으니까 뭐... 요새 할인행사도 한다던데.”
세훈은 서언 쪽을 보고 말한다.
“서언이 형, 같이 갈래?”
“아니, 난 됐어. 빨리 가야 할 일이 있어서.”
“왜? 혹시 집에 무슨 일이라도...”
“아, 그런 건 아니야. 내일 또 보자고.”
말을 마친 서언은 그대로 먼저 지하철역 출입구 쪽으로 간다. 서언이 지하철역 출입구로 들어가는 것을 본 세훈과 주리가 속도를 내어 걷기 시작하려는 그때.
“세훈 님!”
세훈이 찬 AI 시계에서 들려오는 *나라의 목소리다.
“전화는 하셨나요?”
“아... 안 해도 될 것 같아. 이미 목적을 알아 버려서.”
“그래도 전화는 해야죠. 빨리 하는 게 좋아요.”
옆에서 듣고 있던 주리가 말한다.
“네 인공지능이야? 참... 저렇게 챙겨 주니 얼마나 좋아.”
“그러게. 그건 그렇고, RZ백화점이 여기서 얼마 정도 되는 거리지?”
“지하철 1정거장인데... 거기서 여기까지 1분밖에 안 걸렸거든? 한 10분도 안 되어서 도착할걸.”
“호... 그래?”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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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댓글
마드리갈
2020-01-03 20:03:13
세훈에 이어 디아나, 그리고 주리까지 모두 등장했네요.
그리고 모두 같은 반!! 그것도 G반이라니까 꽤 반갑게 보여요.
그나저나 주리의 반응이 뭔가 신경쓰이네요. 역시 앞으로 일어날 일의 단초일지...
역시 다양한 백그라운드의 이름이 보이네요. 한국식, 일본식 앵글로색슨식, 라틴식 성명의 사람들이 있고...
학교 구내가 상상되고 있어요. 건물이 최첨단 스타일인 것보다, 고전미가 있는 편이 좋죠. 전통, 차분함 등이 느껴지니까요. 대리석 마감이라니까 학교 건물이 서양의 고전적 건축양식으로 되어 있으려나요?
SiteOwner
2020-01-04 23:48:53
다양한 유래의 이름을 보니 군생활 때가 생각나기도 합니다.
카투사로 복무했다 보니 미군들의 이름에 많이 익숙해졌고,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시어하트어택님께서 여러 다양한 이름을 캐릭터에 채택하신 것을 상당히 좋아하고 있습니다.
역시 일란성쌍둥이는 구분하기 어렵지요.
어릴 때 생각도 나고 있습니다. 그 쌍둥이들, 지금도 잘 살고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