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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의 그녀석은 초능력자] 4화 - 그 사람을 만나러 가는 길

시어하트어택, 2020-01-06 20:53:45

조회 수
140

주리가 사는 아파트 단지 알파에서 멀지 않은 학원가. 한 교실에서 학생들이 우르르 몰려나오고 있다. 대부분은 교복 차림이다. 그 중에는 미린고등학교 교복도 간간이 보인다.
“그래도 오늘은 오리엔테이션이라 그런지 빨리 끝났네.”
“역시, 1위는 1위라니까. 설명도 명쾌하고.”
교실에서 나오는 학생들 가운데 세훈과 주리도 끼어 있다. 둘은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빠른 걸음걸이로 걷는다.
“어? 세훈이하고 주리 아냐?”
누군가가 세훈과 주리 옆에서 말을 건다. 둥근 안경을 쓰고 파마머리를 한 남학생이 서 있다.
“우리 반에 앤드루 카슨 맞지?”
“아, 맞아. 세훈이하고 주리였지?”
앤드루라는 이름의 남학생은 반갑게 인사한다.
“그래. 여기서도 만나네.”
“너희들 혹시 시간 있어?”
“응, 왜?”
“아, 시간도 있고 하니까 RZ타워 같은 데 좀 놀러 가려고.”
“우리는 거기 이미 갔다 왔어.”
“응? 벌써 갔다 와?”?
“응. 갔다 왔지. 그것보다도 우리는 지금 어디 갈 데가 있어서.”
“그래. 그러면 어쩔 수 없지. 내일 보자.”
앤드루는 아쉬운 표정으로 인사를 건네고, 세훈과 주리는 발걸음을 재촉한다. 계단을 걸어 내려가, 1층까지 내려간다. 학원 1층 로비에는 아직 사람이 많이 보이지 않는다. 학원 건물 밖으로 나오니, 밖은 각양각색의 교복을 입은 학생들로 붐빈다. 길거리에서 음식을 사먹는 학생들도 있고 자기들끼리 이야기하는 학생들도 있다. 세훈과 주리는 그 인파를 뚫고 어디론가 향한다.
“그러니까, 어디로 가면 된다는 거야?”
“나만 따라오면 되니까, 그런 건 걱정하지 마.”

조금 후, 세훈과 주리가 어느 거리에 멈춘다.
이곳은 학원가에서도 멀지 않고 RZ타워에서도 멀지 않은, 오피스 거리이다. 어수선한 분위기의 학원가와는 달리 이곳은 꽤 깔끔한 편이다. 학생들은 거의 보이지 않고, 주로 정장을 입은 사람들이 거리를 오가거나,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거나, 아니면 편의점에서 물건을 사거나 하고 있다. 인근에 법원이 있어서 그런지, ‘법률사무소’라고 쓰인 간판이 군데군데 보인다.
주리가 걸음을 멈추자, 주리의 인공지능 *하나가 말을 꺼낸다.
“주리야, 너 오래 걸어 다닌 것 같은데 뭐라도 먹을래?”
“아, 아니, 됐어.”
“오, *하나는 확실히 친구 느낌이네.”
세훈은 감탄조로 말한다.
“맞아. 그런데 좀 더 ‘핀잔주는 선배’ 같은 느낌이지.”
“그런데 네가 아는 사람, 여기 있는 거야?”
“맞아.”
주리는 세훈의 질문에 바로 대답한다. 세훈은 주리를 한 번 돌아본다. 당연히 알고 있다는 표정이다. 뭐지, 이 표정은? 더군다나, 고등학생이 이곳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건 뭔가 맞지 않는데? 아무리 이 근처에 학원가가 있다고는 해도, 학교들이 이 근처에 많이 있다고는 해도, 주리가 여기에 대해 잘 알고 있다니? 세훈은 알쏭달쏭할 뿐이다. 세훈은 조금은 더듬거리며, 다시 묻는다.
“어느 건물이야? 여기 있는 건물들 다는 아닐 거 아냐.”
“그래. 다는 아니지.”
주리는 또다시 바로 대답하며, 건물 하나를 가리킨다.
“대로 건너편에 보이는 황금색 빌딩 있지? 저기에 내가 아는 사람의 사무실이 있어.”
주리가 말하는 황금색 빌딩은 대로변에 선 다른 건물들에 비해 조금 높아 보인다. 아무래도 이런 건물도 일개 고등학생이 안다고 하기는 거리가 조금 멀어 보인다. 어찌 됐든, 세훈과 주리는 지하철역 출입구를 겸하는 지하도로 들어간다. 지하도 벽면은 주로 변호사나 법무사 등의 광고들로 가득하고, 편의점도 있고, 자판기도 보인다.
조금 걸어가니 아까의 그 황금색 빌딩으로 연결되는 통로가 나온다. 출입문 앞의 명판을 보니 빌딩의 이름은 ‘매그넘 골드’라고 되어 있다. 그 ‘매그넘 골드’ 빌딩으로 들어가니, 말끔하게 정돈된 로비가 먼저 나온다. 지하에 있는 건 주로 식당이나 문구점, 아니면 편의점, 은행 영업소다. 돌아다니는 사람들은 거의 모두가 정장을 말끔하게 차려입었다. 정장 입은 사람들 사이에 돌아다니는 교복 입은 자신들의 모습이란 왠지 모르게 눈에 더 띄어 보인다.

“이제 몇 층으로 가면 되지?”
“그 사람의 사무실은 32층에 있어.”
“아, 너 여기 많이 와 봤구나.”
“딱히 많이 와 본 건 아닌데.”
세훈과 주리는 가운데 있는 엘리베이터를 탄다. 1층에 서니 사람들이 많이 탄다. 과연, 세훈과 주리 빼고는 모두 정장 입은 사람들이다. 어떤 사람은 백팩을 메고 있고, 또 어떤 사람은 가죽으로 된 서류가방을 손에 들고 있다. 사람들은 다들 바쁜 듯, 앞만 바라보고 있다. 간혹 몇 사람이 자신들과는 다른 차림의 고등학생들을 한 번씩 흘깃 보기도 하지만 그것뿐, 다들 다시 앞을 바라본다.
어느덧 32층.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몇 사람이 내린다. 세훈과 주리도 따라서 내린다.
“자... 이제 어디로 가면 되지?”
“이제 금방이야.”
세훈은 주리를 따라간다. 과연, 주리의 말대로다. 주리는 몇 걸음 안 가서 어느 문 앞에 멈춰 선다. ‘법률사무소 스텔라’라고 쓰인 간판이 보인다. 주리가 왼손에 찬 AI 시계를 출입문의 인식 장치에 갖다 대자, 여성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환영합니다, 공주리 님. 들어가시기에 앞서 본인 확인 절차를 진행하겠습니다. 잠시 기다려 주시기 바랍니다.”
말을 마침과 동시에, 인식 장치에서 주리의 얼굴을 스캔하는 광선이 비친다. 광선은 주리의 눈을 중점적으로 비친다. 그리고 한 몇 초 정도 지났을까. 다시 문에서 그 여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본인 확인 절차가 완료되었습니다. 들어가셔도 됩니다.”
그 말과 동시에 문이 저절로 열린다.
“들어와.”

주리의 말에 세훈은 주리의 뒤를 따라 문 안으로 들어간다. 세훈은 사무실 안을 천천히 돌아본다. 사무실 안은 전체적으로 밝은 색감 위주로 되어 있어 산뜻하게 꾸며져 있다. 벽면이나 창가 같은 곳에는 이런저런 장식물이나 화분도 놓여 있다. 테이블은 2개만 놓여 있는 것으로 봐서는 작은 규모의 사무실인 듯하다. 그런데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다들 어디 나간 건가?
“그런데 우리 이렇게 아무도 없는데 막 들어와도 되는 거야?”
“괜찮아. 나는 여기 이렇게 들어와도 돼.”
“된다...고? 어떻게?”
“왜냐면 공주리 님은 출입 권한이 있으니까요.”
조금 전의 그 인공지능이 주리 대신 대답한다.
“어? 정말? 그런데 혹시 넌 이름이 뭐지?”
“제 이름은 *소피아예요. 스텔라 법률사무소의 비서 역할을 맡고 있죠.”
“그건 그렇고 주리 너... 출입 권한은 언제 받은 거야?”
그때, 사무실 문이 열린다. 그리고 한 남성이 들어온다. 갈색 머리에 두꺼운 테의 안경을 쓰고 있고, 세훈보다도 머리 하나는 더 커 보인다. 지적으로 보이는 외모와 건장한 체격은 덤이다. 정장셔츠와 정장바지를 잘 차려입었는데, 설마 이 사람이 주리가 아는 변호사란 말인가?
“아, 안녕하세요, 변호사님. 제 이름은...”
세훈이 그 남자에게 인사하려 하자 그 남자는 손을 내저으며 말한다.
“아, 저는 변호사가 아닙니다.”
“그러면요?”
“제 이름은 앨런 에반스라고 합니다. 이곳 법률사무소의 사무장이죠.”
“그럼, 변호사님은...”
“아, 이제 올 때가 됐는데...”

앨런 에반스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사무실 문이 열리더니 또 누군가가 들어온다. 한눈에 보니, 젊은 여성이 들어왔는데, 흰 반팔 셔츠에 빨간 바탕의 야구모자를 쓰고 있다. 금빛이 도는 머리는 뒤로 묶었다. 이윽고 그 여성이 완전히 사무실 안으로 들어온다. 그러자 그 여성의 복장이 확연히 눈에 들어온다. 핫팬츠에 오른쪽은 파란색, 왼쪽은 빨간색으로 색깔이 다른 양말, 그리고 흰색 바탕에 이런저런 무늬가 그려진 운동화까지... 뭐지, 이 사람은? 이 사람은 왜 여기 온 거지? 설마... 이 사무실을 잘못 찾아온 건가? 세훈의 머릿속에 처음 든 생각이다. 잘 봐줘도 그냥 SNS 스타 정도로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변호사 사무실에 아무렇지도 않게 들어온다? 누구지?

바로 그때, 앨런이 그 여성을 보고는 공손한 어투로 말한다.
“아, 변호사님, 오셨군요!”
그리고는 세훈을 향해 돌아보며 말한다.
“이 분이 바로, 사법시험을 최연소로 합격하시고 검사로써 2년 동안 근무하신...”
“아, 앨런.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는데.”
여성은 손을 내저으며 말한다.
“처음부터 그렇게 말하면 부담스럽다고.”
문 앞에 선 여성의 당황 섞인 말을 듣고는 세훈은 자신의 귀를 의심한다. 잠깐. 이 사람이... 변호사라고? 보통 변호사 하면... 정장을 말끔히 차려입고, 머리는 말끔히 정돈되어 있고, 그런 이미지인데... 설령 그게 아니더라도 좀 수수하게 차려입는 경향이 강하지 않나? 세훈은 다시 머리를 갸우뚱한다. 그 여성이 주리에게 다가가 말을 건넨다.
“아, 주리야. 한 달 만이구나.”
“네, 메이링 씨. 오랜만이에요.”
이 사람인가 보구나, 이 사람이 주리가 잘 안다는 그 사람. 그래서 이렇게 반갑게 인사하는구나. 세훈은 말을 잇지 못한다. 이런 사람하고도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라고?
“세희는 잘 있고?”
“네, 저희 언니는 잘 있고요. 다른 데 떨어져 살아서 많이 보지는 못하지만요.”
“그렇구나... 세희를 못 본 지도 1년이 넘었네.”
잠깐, 주리의 언니? 그러면... 이 사람은... 주리 언니의 친구인가? 그렇다면 왜 잘 아는 사이인지 알 것 같다. 그 때다.
“아 참.”
메이링이라는 여성은 멀뚱멀뚱 서 있는 세훈을 돌아본다.
“어? 너, 주리 친구니?”
세훈은 고개를 끄덕이기만 할 뿐이다.
“아, 그러면... 그렇고... 그런... 사이겠...구나?”
“아니오. 그냥 친구인데요.”
메이링의 기대감 가득 찬 말에, 세훈은 마치 의도적으로라도 그렇게 말하는 것처럼 무덤덤하게 대답한다.
“에이, 김빠지게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그... 그러면...”
“처음에는 마치 사귀는 사이인 것처럼 이야기하다가, 조금 지나서 반전을 넣어 주면 관심이 집중되잖아?”
“......”
세훈은 또 한 번 머리를 얻어맞은 느낌이다. 뭐지... 이 ‘확 깨는 느낌’은? 변호사라고 하니까 그래도 조금은 과묵한 사람일 것 같았고, 그것도 아니면 지적인 말투로 법률 용어를 줄줄 읊을 것 같았는데... 변호사 맞아? 마치 법전처럼 무거운 사람일 줄 알았는데, 이렇게 깃털처럼 가벼워도 되는 건가?
“아! 서로 통성명도 안 했지. 주리 친구, 이름이 뭐야?”
“아... 저요? 조세훈이라고 하는데요.”
“조세훈... 세훈이라... 그래, 이제 내가 누군지 소개할 때가 됐구나. 듣고 싶지?”
“네... 네.”
시어하트어택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2 댓글

마드리갈

2020-01-07 21:30:10

이전까지는 현실과 동떨어진 것같이 보이는 것들이, 어느 순간부터는 현실로 편입되기도 하죠.

세훈이 주리에게 느낀 것도 그렇지 않을까 싶어요. 자신에게는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무연의 먼 존재이자 근엄한 사람일텐데, 주리에게는 아는 변호사가 있고 그 법률사무소의 출입인가도 이미 받아놓은 상태이고, 그 주리를 통해서 그렇게 현실의 외연이 확장되었어요. 사실 이것만으로도 엄청난 변화일 것인데, 초능력자가 있는 상황까지 본격적으로 펼쳐지면 정신적으로 엄청나게 큰 혼란이 오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해요. 세훈의 정신적 성숙이 관건이 되겠어요.


변호사 메이링의 모습은 파격적이면서도, 거꾸로 생각해 보면 상당히 속깊을 수도 있어요.

사실 변호사를 필요로 하는 상황이 마냥 좋은 건 아니죠. 형사재판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민사재판의 경우도 본질적으로 다른 건 없지만요. 그런 상황에서 변호사가 마냥 고압적으로만 보이는 것도 마냥 바람직하지만은 않겠어요. 상황을 고려한 옷차림은, 복잡하고 어려운 상황에 직면한 의뢰인에의 배려 차원에서 이렇게 재해석해도 좋겠어요.

그래도 저는 핫팬츠는 안입겠지만요.

SiteOwner

2020-01-08 19:29:21

전작이 이렇게 재구성되어 있으니 같은 내용이라도 다른 감각으로 읽힌다는 게 신선하게 느껴집니다.

그리고, 새로운 인물의 등장을 앞두고 내용을 적절히 끊어 다음 회차로 돌려 놓으신 것도 좋은 편집방식이라고 생각되고 있습니다.


세훈의 입장에서는 주리의 정체가 뭐야 하고 놀랄만하겠군요.

그러고 보니, 여동생만 있으면 돼의 시라카와 미야코가 같이 생각납니다. 출판사에서 전속 작가인 카니 나유타의 원고마감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데 시라카와 미야코는 그녀와의 인연 덕분에 그녀와 연락이 바로 되고 그래서 출판사의 담당자의 수고를 많이 덜어 줍니다. 물론 그것뿐만이 아니라 하시마 이츠키와의 접점도 있고...그래서 담당자가 "당신, 대체 정체가...?" 라고 놀랍게 여기지요. 그게 같이 생각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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