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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1분여를 그렇게 끙끙 앓은 끝에...
“그때는 저녁 9시 정도였어.”
마침내 앤드루가 입을 연다.
“너도 그때 밖에서 어렴풋이 들었을지도 몰라. 수업이 끝나고 나서, 그들은 나를 학교 옥상으로 불렀지. 그런데 거기서 바로 두들겨 팬 게 아니고, 거기서 또 나를 미린 호수공원으로 호출했어.”
잠깐... 클라인 패거리 정도라면 아무 데서나 자신들의 힘을 보일 수 있을 텐데, 옥상에서 두들겨 패지 않고 굳이 ‘미린 중앙공원’이라는 ‘특정 장소’로 호출했다? 왜 굳이 그렇게 한 걸까? 세훈은 머리를 굴려 보기 시작한다.
“그렇게 해서 그들에게 이끌려 간 곳은... 공원에서도 조금 외진 곳에 있는, 어느 숲이 무성한 곳이었어. 나도 나중에 기억을 되살려 보고서야 알았어. 이름은 아마... ‘아모르 숲’이었던 것 같아. 낮에는 그렇게 사람이 많이 지나다니고, 사랑 고백 장소로도 많이 알려진 곳이었는데... 그곳이 밤이 되니까 그렇게 무섭지 않을 수 없더라. 숲 한가운데 있으니까 주변의 불빛이 거의 보이지를 않더라고.”
“그래? 거기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된 거야?”
세훈은 ‘이거다’ 하는 느낌이 들자 더욱더 공격적으로 질문한다.
“내가 호출을 받고 중앙공원 남문으로 갔더니, 그들 중에 간부 정도로 되어 보이는 선배가 미리 기다리고 있는 거야. 그리고 자기를 따라오라고 했지. 그리고 내가 발걸음을 옮기고 얼마 안 되니까 뒤에도 그 패거리로 보이는 학생 두 명이 따라붙더라. 그렇게 그 선배를 따라서 한 20분 정도를 갔던 것 같아. 가는 중에는 단 한마디의 말도 없었어.”
“그래? 그냥 그 선배만 쫓아간 거야?”
“어... 그랬던 것 같아. 그 따라갔던 길을 생각해 보니까, 주변에 아무것도 안 보일 정도로 캄캄했어. 공원 주변은 초고층 아파트의 숲이라고 할 만할 정도였는데도 말이야.”
“그래? 그러면 일부러 그런 길만 골라서 갔단 말이야?”
“맞아. 그런데 그 패거리는 그냥 그 길을 걸어서 가더라.”
“그냥 걸어서 갔다고...?”
잠깐만... 그 깜깜한 곳을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걸어서 갔다라... 그렇다면...
“그래, 20분 동안 걸어서 그 문제의 장소에 도착했다고 했지. 그 곳에 도착하니까 어떻게 됐는데?”
“그곳에 도착하니, 아무것도 없고, 온통 어둠뿐이더라. 그런 곳에 가끔 부는 바람이 나뭇잎에 부딪히는 소리가 어쩌면 그렇게 스산하게 들리던지...”
“그래서? 그 선배의 공격은?”
“이상하게 바로 공격하지는 않더라. 한 5분 정도를 그렇게 암흑 속에서 서 있었던 것 같아.”
앤드루는 여기서 다시 한번 숨을 가다듬는다. 그리고 그때를 회상하는 듯, 눈을 감고는 계속 말을 이어 나간다.
“엄청난 공포가, 내 생에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했던 공포가 밀려왔어. 그 공포에 사로잡히니까, 한 5분은 움직이지도 못했어. 다리가 마구 후들후들거리더라고. 그리고... 한 5분쯤 되니까 나도 나름대로 좀 움직여 보려고 했어. 어떻게든 필사적으로 그곳을 빠져나가려고 했지. 그런데... 한 1분 정도 그렇게 뛰었는데도, 주변을 둘러보니까 내가 있는 곳은 여전히 그대로인 거야. 아니, 그대로는 아니었지.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 버렸으니까. 그렇게 내가 그곳을 헤매고 있을 때...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내 눈앞에 불꽃이 튀는 거야. 그리고 내 오른쪽 뺨이 얼얼해지더라. 입안에는 뭔가 짭짤한 맛이 돌았지. 그 선배의 공격이 시작된 거야. 나는 필사적으로 그곳에서 빠져나가려고 했어. 그때, 나는 이상한 것을 느꼈어. 갑자기, 내 몸이 어디론가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드는 거야. 그래, 그것은 느낌뿐이었지만, 직후 나는 그대로 서 있었지만, 그 뭐라고 해야 할까... 위화감, 미세한 위화감 같은 건 느낄 수 있었어. 그 직후에, 그 선배의 공격이 또 한 번 날아들었어. 나는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고, 다시 일어서려 상체를 일으켰지. 그런데, 바로 내 뒤에서 그 선배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거야. 방금 전에 내 앞에서 공격을 가했을 텐데도...”
“앞에서 공격을 가했는데, 그 직후에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고?”
“맞아. 그리고 그때는 마치 나를 뒤에서 잡아당기는 듯한 느낌도 들었어.”
“잠깐... 뒤에서 잡아당기는 느낌이라고?”
세훈은 되묻는다. 그리고 RZ백화점에서 처음 클라인을 만났을 때의 그 상황을 다시 한번 떠올린다. 그때, 세훈은 떨어지려고 했지만, 그가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 그 선배의 어깨는 클라인의 어깨에 닿아 있었다. 세훈이 기억하기에는, 그때에도 그런 느낌이 들었던 것 같다.
“맞아. 그런 정도의 느낌이었던 것 같아. 그리고 그 선배가 그러더라. 자기 말을 ‘거역’했으니까 거기에 대해 상당한 대가를 치르게 될 거라고.”
“뭐, ‘거역’이라고?”
“맞아. 잘 기억은 안 나지만, ‘거역’이라는 말을 썼던 것 같아. 아니, 확실해. 그 단어만은.”
“그래...”
“그 선배가 한 말은 그게 끝이었어. 그다음은 정말 무자비한 공격이 계속되었어. 나를 끌어당기는 느낌이 들고, 그렇게 쓰러지고, 또 일어나려고 하면 어딘가에서 주먹이나 발차기가 날아오고... 그러기를 또 10분... 그러고 나서 정신을 잃었던 것 같아.”
“그래? 그게 끝이야?”
“거기까지야. 더는 기억이 안 나. 그러고 나서 정신을 차려 보니 이곳 병원이더라. 이게 내가 아는 전부야.”
세훈은 가슴 깊은 곳이 끓어오르는 것을 느끼지만, 애써 억누른다. 자신을 도와 준 친구가 그것 때문에 클라인 패거리의 무자비한 공격을 받았는데 어떻게 끓어오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다만, 지금은 앤드루를 위해서나 자신의 안전을 위해서나 그걸 내보일 때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그래서 세훈은 감정을 억누를 수밖에 없다. 주리도 마찬가지로, 애써 웃어 보지만 그게 잘 되지가 않는다. 주리 역시 그 끓어오르는 감정을 억지로라도 웃음으로써 억누르고 있다.
그로부터 이틀 후, 수요일. 1교시가 끝나고 쉬는 시간이 되자, 세훈은 초조한 얼굴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건다.
“이상하다... 앤드루, 왜 전화를 안 받는 거지?”
분명 안내데스크에서 이 시간은 특별히 진료라든가 뭔가 있는 시간은 아니라고 했다. 그렇다면 전화를 받는 것쯤은 문제가 없을 텐데...
“아, 주리야, 혹시...”
마침 옆에 주리가 서 있어서 주리에게 물어본다.
“앤드루 전화라든가 연락 받은 것 있어?”
“아니, 없는데.”
“그러게. 나도 연락을 받은 게 없어서. 분명히 어제 연락을 준다고는 했거든.”
어쩐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미린대 부속병원이 아닌 다른 곳에 입원했다는 것도 그렇고... 비숍과 같은 병원에 입원했다는 것도 그렇다.
위이잉-
바로 그때, 진동음이 울린다. 세훈의 AI폰에서 나는 진동음이다.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라는 안내 문구를 눌러 보니...
연락을 못 줘서 미안해. 사실 지금도 시간 내서 하는 거야. 당분간은 연락을 못 할 것 같아. 병실도 옮겼어. 다음에 또 연락할게.
세훈은 메시지의 ‘시간 내서’라는 말에 주목한다. 이런 메시지는 시간 날 때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시간을 내서 했다? 이건 앤드루가 그 패거리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뜻이다, 라고 세훈은 생각한다. 그나저나 병실을 옮겼다니... 클라인 패거리가 뭔가 손을 썼을 가능성이 높다. 그 패거리의 눈을 피해서 메시지를 작성한 것이라면 그럴 가능성이 더 높고...
“*나라.”
세훈이 AI폰에 대고 말한다.
“네, 세훈 님?”
“메트로폴리스 병원의 기본 정보를 내 AI폰에 좀 띄워 줘.”
세훈의 말이 끝나자마자, AI폰 화면에 메트로폴리스 병원의 기본 정보가 나타난다. 위치는 세라토시 동구 아체토, 병원의 운영 주체는 ‘메트로폴리스 의료재단’으로 되어 있다. 메트로폴리스 의료재단 이사장의 이름은 ‘김재영’. 시온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고 되어 있다. 그 외의 병상 규모, 의료 실적 같은 건 간단하게만 나와 있다.
“아... 알았어. 고마워. 내가 원하는 것만 딱 찾아 줬네.”
“세훈 님이 찾을 만한 것만 찾았으니까요.”
“그래...”
세훈은 이제 다음 수업을 준비하러 책을 챙기고 일어서려 한다. 그 때...
♬♪♩♬♪♩♬♪♩
“뭐지? 이 시간에 전화가 다 오고.”
번호를 보니 세훈이 모르는 번호다.
“누구야?”
주리가 걱정스럽게 말한다.
“모르는 전화는 받지 마.”
그래도 세훈은 일단 받아 보기로 하고, 수신 버튼을 누른다.
“아... 여보세요.”
“조세훈 군이로군. 맞지?”
처음부터 대뜸 세훈의 이름을 대는 것으로 보아, 세훈을 아는 사람 같기는 한데, 누구의 목소리인지는 잘 모르겠다. 도대체, 전화를 걸어온 사람은 누구일까? 세훈은 침을 딱 삼키고 입을 연다.
“네... 맞습니다만.”
세훈이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하자, 전화 너머의 목소리는 대뜸 말한다.
“내일모레 금요일, 학교가 끝나는 대로 내가 정해 주는 장소로 와라.”
정체불명의 목소리는 세훈을 마치 아랫사람 대하듯 말한다.
“죄송합니다만 그곳을 미리 알려 주시면...”
“미리 알 필요 없다. 거기가 어디인지, 내가 누구인지도.”
“그런 건 가지 마. 갈 필요 없어.”
옆에서 주리가 말한다.
“방금 옆의 목소리, 네 친구인가 보군.”
“아... 아...”
세훈의 입이 떨린다.
“뭐, 안 와도 괜찮아.”
세훈은 이마에 식은땀을 흘리며 전화 너머로 흘러나오는 목소리를 듣는다.
“대신 그렇게 된다면 일주일에 네 친구 한 명씩, 앤드루 카슨과 같이 만들어 줄 거다. 그게 싫다면, 내일모레 정해 주는 곳으로 와라. 알겠나?”
“......”
“내가 할 말은 여기까지다. 그럼, 내일모레 보자고.”
전화는 끊어진다. 세훈은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AI폰을 내려놓는다. 내일모레 무슨 일이 벌어질지에 대한 공포감이 마음 한쪽에 자리 잡은 채로.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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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댓글
마드리갈
2020-02-04 16:50:54
어떤 입장에 있든지 불안은 불확실성에서, 그리고 확신은 확실성에서 태어나기 마련이죠.
그런데 어느 입장에 서 있는가에 따라 그것들의 가치는 달라지는 것.
범죄를 저지르는 쪽에서도 그런 것들을 충분히 느끼겠죠. 과연 이 범행이 성공할 수 있을까에 대해 불안해 하겠지만, 일단 성공하고 나면 그 불안은 확신으로 금방 바뀌겠죠. 그런데 이것을 가치중립적으로만 볼 수 있는지는 윤리적인 기준 및 현실의 사례가 이미 반박하고 있어요.
클라인 패거리가 만든 이 비대칭 상황 속에서 세훈은 불안해 할 수밖에 없겠지만, 이것은 그 패거리들이 처음의 비행에 관여했을 때의 불안감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어요.
SiteOwner
2020-02-05 22:19:50
사실, 미성년자라고 해서 마냥 순진무구하지만도 않고, 성인에 비해 정교함이나 원숙함이 떨어질 뿐이지 얼마든지 잔혹하게 행동할 수 잇습니다. 게다가 앞뒤 안가리고 맹목적으로 행동하는 경우가 많아서 사실 결과는 더욱 참혹할 수도 있습니다. 소말리아 해적에 피랍된 경험이 있는 선원들에 따르면, 10대 해적들이 가장 잔혹하다고 합니다.
세훈에게 협박전화를 한 그의 협박발언은, 상대방을 살해할 것을 전제한다면 테러리스트나 폭력단원의 발언이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래서 더욱 끔찍하게 여겨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