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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분명 내 능력을 손으로만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겠지...”
“으... 으...”
예준은 일어나지 못하는 세훈에게 다가와, 목에 더욱 힘을 주고 말한다.
“바로 그게! 네 머릿속에 똥만 차 있다는 증거다! 이 정도로 멍청할 줄이야! 손이 아니어도! 발, 몸통, 신체의 어느 부위로든 내 능력을 발동할 수 있단 말이다!”
“......”
“왜 그러나? 어디 내 말에 반박할 데가 있으면 해 봐라!”
“맞아...”
세훈이 힘겹게 몸을 일으키며 말한다.
“나는... 선배 말을 귓등으로 흘려들을 정도로 멍청한 놈이지. 그런데... 댁의 능력에 관한 건 또 별개의 문제야.”
“뭐... 뭐라고?”
“다시 한번 말해... 줄까? 나는 말이지... 지독할 정도로 멍청해서 말이야... 댁의 말은 하나도 안 들어 줄 거거든.”
“뭐... 뭐라고? 다시 한번 지껄여 봐!”
예준의 목소리가 다시 올라가기 시작한다. 얼굴도 다시 붉어지기 시작한다. 아까보다 훨씬 더 붉어진 얼굴은, 대폭발을 일으키는 화산과도 같다. 세훈은 금방이라도 자신을 잡아먹을 듯 이글거리는 그의 표정에 잠시 가슴이 철렁거린다. 하지만, 침을 한 번 삼키고는 또박또박 말한다.
“댁의 말은 하나도 안 들어 줄 거라고. 그리고 그쪽의 능력이 얼마나 강하든, 그쪽은 절대로, 절대로! 날 쓰러트릴 수 없어.”
“이... 이... 이이이이이 자식이이이이이이!”
예준은 마침내 대폭발을 일으키고야 만다.
“네 놈이, 네까짓 게... 감히이이이이이!”
세훈은 그사이 몸을 완전히 일으키고는, 예준을 정면으로 바라본다.
“이제 빈센트가 내게 뭐라고 했는지는 아무래도 상관없다. 오늘 너는 내 손에 쓰러진다!”
“어디... 쓰러트릴 수 있으면 쓰러트려 보시지.”
세훈은 예준을 도발하고는, 예준이 공격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사정거리 밖으로 벗어난다. 과연, 예준은 마치 눈에 모래가 들어가 보이지 않는 맹수처럼 주먹을 마구 휘둘러 대며 세훈을 쫓아온다. 벽 뒤로 숨고, 또 피하고, 어느 정도를 그렇게 쫓아왔을까.
“이 자시이이이익!”
세훈의 눈앞으로 예준의 주먹이 스쳐 지나간다. 마치 태풍이 세훈의 몸을 훑고 지나가는 것 같은 느낌이다. 주먹이 그저 눈앞을 스쳐 지나가기만 했는데! 위험하다. 정말로 위험하다! 어떻게든 예준을 막다른 곳으로 유도한 다음, 끝을 봐야 한다! 또다시 주먹이 날아온다. 세훈은 이번에는 고개를 숙여 피한다. 그리고 또 한 번 날아오는 주먹. 세훈은 땅바닥으로 미끄러져 사정거리에서 벗어난다.
“정말 눈에 뵈는 게 없군...”
그 방을 빠져나온 세훈은 중얼거리며 다른 방을 찾아 복도를 달린다. 계단을 타고, 몇 개 층을 올라간다. 그것도 쉴 틈도 없이. 평소 같았으면 한 개 층 뛰어 올라가도 숨이 금방 찼을 텐데, 오늘은 어째서인지 잘만 올라가진다. 죽기살기로 올라갔기 때문인 걸까... 하지만... 한 9층쯤 올라갔을까. 잠깐 숨을 돌리니 가슴이 탁 막히는 느낌이다. 하지만 쉴 틈도 없다. 뒤로는 예준이 세훈을 계속 쫓아오고 있다. 세훈이 살펴보니, 9층 로비에서 멀지 않은 곳에 방이 하나 있다. 세훈은 방으로 들어가기 전, 예준을 향해 한 번 돌아보고는, 예준이 보라는 듯, 최대한 과장된 동작으로 방으로 뛰어들어가 벽 뒤쪽으로 숨는다.
쾅!
또 한 번 벽이 무너지고, 예준이 그 무너진 곳으로 들어온다. 하지만 세훈은 사정거리 밖으로 재빨리 피하고 나서, 방 깊숙한 곳으로 들어온 다음, 예준을 향해 손을 까딱거리며 도발한다.
“어디 또 한 번 그렇게 해 보시지.”
“이게에에에에에에에에에!”
예준은 금방이라도 다 부수어 버릴 기세로 소리를 한 번 내지르더니, 방안을 한 번 둘러보고는, ‘후’ 하고 숨을 한 번 내쉬고는, 갑자기 큰 소리로 웃기 시작한다.
“흐흐흐하하하하... 하하하하...”
“왜 그렇게 웃는 거야?”
“잘 봐라! 네 퇴로는 하나뿐이고, 그마저도 그곳은 내가 막고 있지! 그리고... 이렇게 하면!”
예준은 방 한쪽으로 가더니 발을 들어 힘껏 바닥을 밟는다.
쿵!
바닥에 먼지가 피어오른다. 그리고 그 다음 순간, 바닥에 큰 구멍 하나가 나 있다. 세훈은 아까 예준의 설명을 들었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놀라지는 않지만, 어쨌든 무서운 능력인 건 맞기 때문에 잔뜩 긴장한다. 입에 침을 삼키려고 하는 순간.
“한 번 더!”
또 갑자기 쾅! 하는 소리가 들리고, 바닥에 먼지가 피어오른다. 그 구멍의 반대편에, 또 하나의 구멍이 나 있다. 이번 것은, 세훈에게서 불과 5m도 안 떨어져 있다. 방문으로 이어진 건 1m도 안 되는 좁은 폭의 통로가 있을 뿐이고, 문 앞에는 예준이 막고 있다. 주위를 둘러본다. 창문 없는 방은 이제 나갈 곳조차 막힌 상태다. 거기에다, 바닥 밑은 바로 2층으로 연결되는 구조다!
“너는 아까 내가 좋게 말했을 때 빌었어야 했지...”
예준은 두 손에 주먹을 꽉 쥐고 세훈에게 다가오며 말한다.
“하지만 너는 그 기회를 그 똥만 든 머리 때문에 다 날려먹었다. 그렇지 않나?”
“......”
“이제 네게 주어진 기회는 더 이상 없다. 이제 진짜 끝이다!”
세훈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기 뒤의 벽에 딱 등을 밀착해서 기대선다.
“훗, 그렇게 한다고 해서 내 주먹을 피할 수 있는 건 아니야! 자, 받아라!”
예준은 그야말로 온 힘을 다해서 세훈에게 달려든다. 오른손 주먹을 있는 대로 꽉 쥐어서 손등에 드러난 핏줄이 선명히 보일 정도이고, 그의 살기가 가득한 눈은 세훈을 똑바로 노려보고 있고, 이를 드러낸 입은 마치 맹수가 먹이를 향해 달려들 떄의 입 같다. 하지만 세훈은 그걸 보고도 피할 생각을 하지 않는 듯, 그 자리에 꼼짝도 하지 않고 서 있다. 예준은, 그 기세 그대로, 세훈을 향해 온 힘을 담아 주먹을 내지른다. 자신의 승리를 추호도 의심하지 않은 채로. 그대로 예준의 주먹이 세훈에게 향하는 바로 그때...
“어... 어?”
세훈은, 예준의 주먹이 막 닿으려는 그 순간, 본능적으로 몸을 왼쪽으로 피한다. 그것도 눈 깜짝할 새에... 어떻게 피하려고 했는지는 모르겠다. 그저, 본능적으로 피했을 뿐...
“아... 이... 이런!”
하지만 예준은 이제 멈출 수 없다! 마치 브레이크가 고장난 자동차와도 같다! 이대로라면 예준의 주먹은 벽만을 뚫게 된다! 거기서 끝이 아니라 예준이 온몸을 내던지다시피 해서 세훈에게 달려들었으므로...
“멈춰야 해...”
하지만 이미 늦었다! 예준의 주먹은 그대로 벽에 닿고, 벽은 예준의 주먹에 닿자마자 주먹이 닿은 곳을 중심으로 갈라지면서 무너지기 시작한다.
“멈춰야 해... 멈춰야... 멈춰야...”
예준의 몸은 점점 허공으로 향하고 있다. 본능적으로, 그는 주먹을 펴고 세훈 쪽으로 최대한 손을 뻗어 보려고 한다. 그러나 손은 세훈은 물론, 벽에도 닿지 않고, 허공만 휘젓는다. 머리에, 아니 온몸에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한다. 머릿속은 점점 노랗게 물들어 간다.
“이... 이봐... 나... 나 좀...”
세훈은 예준이 낸 구멍 앞에 선다. 예준은 점점 떨어져 가고 있다. 불과 30초 전만 해도 득의양양한 목소리로 승리를 확신하며 주먹을 내지르던 예준의 모습은 사라지고, 마치 날개 잃은 천사처럼 추락하는, 넋을 놓아 버린 얼굴의 예준만이 보일 뿐이다. 마치 완전히 다른 사람인 것처럼 말이다.
“이보쇼.”
세훈은 중심을 잃고 점점 추락해 가는 예준을 보며 말한다.
“나는 아주 멍청하다고 했잖아, 그러니까, 머리 좋은 그쪽이 능력을 쓰든 뭘 어떻게 하든 알아서 하라고!”
“아... 안돼... 안돼...”
예준은 어떻게든 손을 뻗어 보지만 당연히 세훈의 발에도, 하다못해 건물 외벽에도, 그 어디에도 닿지 않는다. 예준의 눈에서 세훈이 점점 멀어져 간다. 세훈은 무심한 얼굴로 떨어져 가는 예준을 한 번 본 다음, 건물 안으로 몸을 돌린다.
쿵!
땅이 울리는 소리, 꽤 둔탁한 소리다. 밖은 굳이 보고 싶지 않다. 그대로 세훈은 벽에 등을 기대고 쭈그려 앉는다.
푸우-
예준과 대면할 때, 아니 폐건물에 들어서기 전부터 지금까지 쭉 참아 왔던, 아니 예준의 기세에 짓눌려 제대로 쉬지도 못한 숨이 마치 둑 터지듯 한 번에 터져 나온다. 아까부터 쭉 굳어 있던 얼굴도 비로소 조금이나마 펴진다. 하지만 세훈의 얼굴은 완전히 펴지지는 않는다.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한 걱정은, 오늘 거둔 승리의 기쁨을 눌러 버릴 만큼 크다. 이겼다는 기쁨보다도, 앞으로 벌어질 상황에 대한 막막함이 밀려온다. 오늘의 승부는 이렇게 끝났지만, 사실 오늘의 승부가 어떻게 되었든, 클라인의 패거리는 개의치 않을 것이다. 내일은 어제보다 더욱더 거세게 세훈을 압박해 올 것은 자명하다.?
고개를 숙여 입은 옷을 본다. 여기저기 먼지가 묻은 것은 물론이고, 군데군데 긁히고 찢어진 곳까지 있다. 산 지 한 달도 안 된 교복인데, 벌써 이렇게 여기저기 흠이 나다니... 그렇게 격렬하게 싸운 것 같지는 않은데, 하고 세훈은 생각한다. 그건 그렇고, 파라라는 사람은 왜 눈코빼기도 보이지 않았지? 분명 어제도 그렇고, 아까도 그렇고, 도울 수 있으면 도와 준다고는 했는데...
둥- 두두두...
별안간, 건물에서 뭔가 울리는 소리가 들린다.
“자... 잠깐. 어떻게 된 거야?”
세훈은 뒤를 돌아본다. 아까 예준이 뚫은 구멍으로부터 균열이 벽을 타고 있다. 바로, 세훈이 기대고 있는 벽이다! 이럴 수가... 세훈은 재빨리 피하려 한다. 하지만 늦었다. 이미 균열이 심하게 간, 세훈이 서 있는 곳은 점점 기울고 있다. 세훈의 몸이 순간 기우뚱한다. 이런... 이럴 수가... 세훈은 예준의 심정을 이해할 것만 같다. 끝없는 아래로 삼켜지는 이 기분, 이 공포감!
“아...”
세훈은 눈을 꽉 감는다. 점점 아래로 떨어진다. 이 낙하감... 이제 얼마 안 있어 땅바닥에 닿겠지. 엄청난 충격이 온몸에 가해질 것이고, 그러면... 적어도 병원에 몇 달은 있어야...
푹신푹신하다. 세훈은 눈을 떠 본다. 어디에 떨어진 거지? 여기는 분명, 땅바닥인데... 뭐란 말인가, 이 다른 세계에 온 것만 같은 푹신푹신한 땅바닥은? 조심스럽게 일어서 본다. 세훈의 몸은 한 군데도 상하지 않았다. 이건 도대체...
“무사하구나.”
“파라... 씨?”
파라가 뒤에서 세훈을 지켜보고 있다.
“고... 고마워요. 언제 오나 했는데...”
“나한테 고마워할 건 없어. 너는 한 단계 나아갔으니까 그거면 돼.”
“그건 그렇지만...”
세훈이 뭐라고 해 보려 하지만, 파라는 그냥 웃어넘기며 말한다.
“얼른 집에 가. 부모님이 걱정하시겠다.”
“여기는...”
“내가 알아서 할 거야. 그럼 또 보자.”
세훈은 파라를 뒤로 하고 폐건물을 떠난다. 세훈은 AI시계를 본다. 홀로그램 표시판에 *나라가 할 말이 있다고 나온다.
“*나라, 왜?”
“잘 했어요, 세훈 님.”
“아... 힘든 싸움이었어.”
“앞으로는 더 힘든 싸움이 될 거예요. 마음 단단히 먹어야 해요.”
“휴... 이 상황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지 걱정되네.”
세훈의 한 마디는 마치 1시간짜리 말을 다 쏟아놓은 듯하다. 그 정도로 세훈의 머릿속은 심란하다.
“알겠어요, 세훈 님. 간결하면서도 도움이 되는 명쾌한 한 마디를 원하시는군요?”
“너... 매번 생각하지는 거지만 말이야, 어떻게 내 속을 그렇게 잘 아냐.”
“제가 누군데요.”
*나라는 잠시 뜸을 들였다가 말한다.
“세훈 님이 처한 상황을 헤쳐 나가는 데에 여러 가지 필요한 것이 있지만, 아까 제가 말한 것 있죠? 멈추지 마세요. 움직이세요. 그럼 방법은 있어요.”
“고... 고마워.”
계단을 따라 내려가니, 어느새 1층이다. AI폰을 꺼내 본다. 시간은 2시 50분을 가리키고 있다. 세훈은 다시 아체토역 쪽으로 발걸음을 향한다. 세훈의 발걸음은 폐건물에서 멀어질수록 점점 자연스럽게 바뀌어 간다. 대로변에 이르자, 세훈은 폐건물 쪽을 돌아본다. AI폰을 본다. 메시지 하나가 들어와 있다.
괜찮아? 혹시 다치거나 그러지는 않은 거야?
주리의 메시지다. 세훈은 곧장 답장을 보낸다.
괜찮아. 지금은.
세훈은 답장을 보내고는 다시 아체토역을 향해 걷는다. 발걸음은 좀 더 가벼워진다. 그러나 완전히 평상시의 발걸음으로 돌아가지는 않는다. 그렇게 가볍기도 하고 무겁기도 한 발걸음을 이끌고, 세훈은 아체토역 출입구로 들어간다.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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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댓글
마드리갈
2020-02-16 23:24:57
예준이 자처한 이 상황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이사미아시(勇み足)라고 해야겠네요.
이사미아시란, 스모에서의 승부 결착 중의 하나인데, 그냥 돌진해 버렸지만 상대의 변화 등에 대처하지 못하고 자신이 먼저 링 밖으로 발을 디뎌 버리는 상황. 그렇게 오로지 세훈을 굴복시키겠다는 일념하에 미친짓을 벌였지만 그 결과는 참혹하겠죠. 사실, 죽더라도 불쌍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네요.
게다가 폐건물 내의 진입, 그리고 그곳에서의 손괴사건 등도 났으니까 사태는 일파만파겠네요.
일단 세훈에게는 유능한 변호사인 메이링이 있겠지만...
SiteOwner
2020-02-19 20:17:07
역시 태세전환은 아주 꼴사납기 마련이지요.
어리석은 사람은 자신의 경험으로도 배우지 못하는 법. 추락했으니 살아 있다면 꽤나 아플 것입니다.
예준의 그 태세전환을 보면서 예전의 경험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고등학생 때 일인데, 어떤 학생이 저에게 주먹질을 했고, 그래서 저는 그 일을 일부러 크게 만들었습니다. 학교와 저희집에 다 알리는 것은 물론이고, 그 학생의 부모의 집에 전화를 해서, "나, 당신 아들놈에게 맞았는데, 만일 사과를 안 시키면 경찰서에 신고함은 물론, 청와대, 안기부 등에 투서를 넣겠다." 라고 통보를 해서 그 집을 들쑤셔 놓았습니다. 블러핑이 아니라 정말 그럴 각오로.
다음날, 그 학생이 "꼭 사과를 받아야겠나, 아무튼 어제 때린 거 미안하다" 라고 굽히고 들어왔고, 그 이후로는 그 학생은 물론 누구도 저를 건드리지 못했습니다. 사과할 때의 그의 얼굴을 보니, 부모에게 맞았는지 상태가 안 좋았던 것도 생각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