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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훈은 테이블에 둘러앉은 사람들은 한번 돌아보고 말한다.
“네... 공격받은 장소는, 메트로폴리스 병원 근처에 있는 폐건물이었어요.”
“아... 난 또 뭐라고.”
메이링은 허탈해하는 눈으로 세훈을 보며 말한다.
“난 또 어제 그 일 있고 또 누구하고 싸웠다는 건 줄 알았지. 그 클라인의 친구 말하는 거잖아.”
“아, 내가 오니까 또 그 이야기 하고 있잖아.”
누군가가 일행이 둘러앉은 테이블로 다가온다. 세훈이 보니, 다름 아닌 파라다.
“난 또 뭐 때문에 불렀다고.”
“여기 앉아. 카페라테 시켰으니까.”
메이링이 일어나서 파라를 자리로 안내한다. 파라가 앉아서 카페라테를 한 잔 마시자, 세훈이 다시 입을 연다.
“아... 그 학생의 이름은... 김예준이었고요.”
세훈은 차분하게 이야기한다.
“그 남학생은 폐건물로 저를 불러냈어요. 한 사흘 전부터였죠. 자세한 건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친구들에게 위해를 가하겠다고 협박하면서 저를 아체토역 근처의 폐건물로 오라고 했죠. 그리고 대면하니까, 처음에는 회유를 하더니, 그 회유가 안 통하니까 자기 능력을 사용해서 공격했죠. 신체를 단단하게 만들어서 벽을 맨손으로 부수더군요.”
“신체를 단단하게 만드는 능력이었다고?”
“네, 맞아요. 초반에는 두 손만 단단하게 만들 수 있나 보다 생각했는데, 나중에 보니까 두 손뿐만 아니라 온몸을 다 그렇게 할 수가 있었더라고요.”
“혹시 어떻게 대처한 건지 말해 줄 수 있을까?”
앨런이 눈빛을 밝히며 세훈에게 묻는다.
“제가 한 건 그냥 피한 게 전부였어요.”
세훈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말한다.
“하지만 그냥 피한 건 아니었고요, 그때그때 상황 봐가면서 대처했어요. 중간중간에 도발하는 것도 잊지 않았고요.”
“그래도 처음에는 피하기만 한 거 아니었어요?”
세훈의 AI시계에서 *나라의 목소리가 들린다.
“아... 그래... 그랬지. 네 덕분에 그래도 좀 잘 대처했지만 말이야.”
세훈은 조금은 *나라의 말에 언짢아하면서도, 고마움은 잊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게, NURI 덕분에 싸움이 좀 더 빨리 끝난 건 부정할 수 없으니까.
“물론 누군가는 그렇게 피하는 걸 비겁하다고 하겠지.”
메이링이 앞에 놓인 딸기스무디를 마시며 말한다.
“하지만, 그때 네게 놓인 조건으로는, 정말 훌륭한 전략이었어. 너하고 예준이의 대결은, 주어진 조건부터가 불리했잖아. 그리고 처음에는 그렇게 도망만 다녔을지는 몰라도, 마지막에 이긴 건 너였잖아, 맞지?”
“네... 그렇죠.”
“저는 말이죠...”
주리가 입을 연다.
“세훈이가 그 선배하고 싸운 날, 세훈이가 가겠다는 걸, 말리지 않았어요.”
“하긴, 세훈이가 오지 않으면 일주일에 한 명씩 누구를 패 버리겠다, 그렇게 협박하니까 그렇기도 하겠지.”
“그것보다도, 저는 그 날의 세훈이한테서, 평소에 느끼지 못한 걸 느꼈어요. 제가 아는 세훈이의 눈빛이 아니었어요. 그 뭐라고나 해야 하나... 투지라고 해야 하나, 분개라고 해야 하나...”
“뭐, 아무튼, 평소와는 눈빛이 달랐다, 이 말이지.”
메이링은 무겁게 말한다.
“그건 그렇고, 우리가 좀 조사해 본 게 있는데 말이지...”
메이링과 앨런, 파라가 가방에서 서류와 태블릿을 꺼낸다.
“조... 조사요?”
“그 패거리에 속한 학생들 몇 명을 은밀히 조사했거든.”
“어... 어떻게요?”
“너희들도 알겠지만, 미린 초, 중, 고등학교뿐만 아니라 대학까지 해서 초능력자들이 많지. 그것도, 그냥 많은 게 아니잖아? 당연히 VP재단에서도 몇 명의 조사원들을 파견했지. 여기도 몇 명 있지. 다들 필요할 때 쓰는 가명이 있고.”
“아... 네.”
“그래서, 일단은 여기를 좀 봐.”
메이링은 서류들을 세훈과 주리에게 보여 준다. 사진, 이름, 해당 학생들의 학교 성적, 부모 및 가족의 인적사항 같은 정보가 적혀 있다.
“능력이 쓰인 것도 있고 안 쓰인 것도 있어. 안 쓰였다고 해서 그 사람이 비능력자라는 건 아니고, 능력이 아직 밝혀지지 않은 것일 뿐이야.”
“이 문서들, 가져가서 봐도 되나요?”
“아니. 그 문서들은 다 보면 다시 주어야 해.”
세훈은 그 서류들 중 우선 하나를 본다. 세훈이 보는 그 문서에는, 익숙한 이름이 보인다. 우선, 이름은 ‘베리 비숍’. 며칠 전에 G반을 자기 능력으로 장악하려고 했던 F반의 그 학생이다. 아버지 헨리 비숍은 유통업체 전무, 어머니 크리스틴 비숍은 대학교수라고 되어 있다. 적힌 능력은 ‘정신 조종’. 또 ‘미등록자’라고 쓰인 붉은 글씨가 눈에 띈다.
“호오... 이 녀석, 의외로 좀 배경이 있는 집이었군. 그런데도 친구가 없었던 걸 보면, 성격이 보통 나쁜 게 아닌 것 같은데.”
“우리 조사원들이 그 녀석을 더 조사해 봤는데...”
앨런이 입을 연다.
“비숍 부부는 현재 별거 상태라더라. 비숍은 어렸을 적부터 부모님의 다툼을 보고 자랐다고 하고. 그래서 비숍이 비뚤어졌을 가능성이 크지.”
“아... 어쩐지, 뭔가 있다 했어요.”
“세훈아, 비숍은 아무것도 아니야.”
주리가 또 다른 서류 두 장을 보여 주며 말한다.
“이걸 잘 보라고.”
“어...? 뭐야.”
세훈은 그 서류들을 가져다가 찬찬히 살펴본다. 우선, ‘첼시 오쇼네시’라는 학생. 세훈과 동급생으로, 아버지는 우주군 장군 윌리엄 오쇼네시, 어머니는 첼리스트이자 음대 교수 미리암 오쇼네시라고 나와 있다. 그 다음으로는, 역시 동급생인 ‘궈칭칭’. 초등학교 시절에는 어린이 모델로도 활동했고, 현재도 드라마, 영화 등에서 배우로 활동 중이라고 나와 있다. 할아버지는 국회의원 궈창린, 아버지 역시 배우 궈웨이린, 어머니는 가수 저우페이페이. 모두 세훈은 명함도 내미지 못할 집안들이다. 그러나 세훈은 그 인적사항보다도, 사진을 더 유심히 본다. 그리고 세훈은 그 두 사람의 사진을 어디서 많이 본 것 같다는 생각에 이른다.
“여기 좀 봐봐.”
세훈은 주리를 부른다.
“여기 이 얼굴들...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
“그러니까 내가 그걸 너한테 준 거라고.”
주리는 세훈을 보고 한심하다는 듯 말한다.
“아직도 누군지 모르겠어? 바로 알아봐야 할 거 아냐.”
세훈은 주리의 말을 듣고서야, 첼시 오쇼네시와 궈칭칭이 누군지 알아낸다. 처음 고등학교에 들어갈 때부터 시작해, 항상 둘이 붙어 다니고, 주로 클라인과 그 패거리가 있는 곳 근처에 있으며, 세훈을 보면 기분 나쁜 웃음을 지으며 킬킬대던 여학생들. 그들이다!
“아... 그 애들일 줄이야.”
세훈은 탄식섞인 목소리로 말한다.
“그 정도 애들이면 딱 한 번에 알아봤어야지, 안 그래?”
“맞아...”
세훈은 왜 자신은 남들 한 번에 알아볼 걸 두 번 세 번 해야 알아보나, 하고 질책한다. 그것도, 세훈 자신에게는 매우 중요한 정보인데, 이러고나 있으니 자신이 더 한심해진다.
“다른 자료들도 한 번 줘 봐.”
“여기.”
세훈은 주리에게서 나머지 서류들을 넘겨받는다. 그 서류들도 하나하나 살펴본다. 먼저 보이는 이름은 ‘다니엘 올손’. 초등학교 6학년생이다. 아버지 ‘알프레드 올손’과 어머니 ‘크리스틴 올손’은 모두 중형 재벌 ‘올손 그룹’의 이사를 맡고 있다. 그보다도 세훈이 더 주목한 건 다니엘 올손의 체격이다. 키는 177cm, 몸무게는 75kg. 웬만한 성인 이상의 체격이다. 그 나이에, 벌써! 저 정도의 조건이니, 클라인의 패거리에 드는 게 이상하지 않다고, 세훈은 생각한다. 이어서, 세훈은 또 한 장의 서류를 넘겨본다. 이름은 ‘앤서니 탤리’. 고등학교 1학년생. 사용하는 능력은 다리 강화. 어머니는 3선 국회의원 ‘신시아 예이츠 탤리’. 또 한 장을 넘겨본다. 이름은 ‘하마나카 마히로’. 중학교 2학년생. 사용하는 능력은 위장술. 아버지는 방산업체 ‘탈로스 컴퍼니’의 대표 ‘하마나카 코이치’. 또 한 장 넘긴다. 이름은 ‘고한영’. 고등학교 2학년생. 아버지는 ‘5대 로펌’ 중 하나인 K&C의 파트너 변호사 중 하나인 ‘고재윤’. 그리고... 세훈은 이제 막 또 한 장의 서류를 넘겨보려 한다.
“그거 입수하는 데 많이 어려웠어요.”
레아가 세훈이 막 서류를 보려는 걸 보고 말한다.
“어... 너도 정보원이었어?”
“목소리 줄이라니까요!”
세훈은 그 서류를 살펴본다. 이름은... 빈센트 로스 클라인. 거기에 금발의 머리, 미형의 이목구비가 확연한 얼굴까지. 확실하다. 개학식 날, RZ백화점에서 세훈에게 굴욕감을 안겨 주려 한, 그 남학생. 거기에 세훈 한 명만을 특정해 노리고 있는, 바로 그 사람이다! 그 문서에는 다른 문서들과 마찬가지로 클라인의 가족이 누군지도 나와 있다. 아버지는 피터 클라인. 재정성의 고위 공무원, 자세히 말하자면 경제기획국 물가관리실장으로 재직 중이다. 어머니는 아멜리아 클라인. 정신과 전문의로, 결혼 전 성은 ‘투생’.
자료들을 보고 나니 세훈의 입에서 한숨이 절로 나온다. 세훈은, 메이링이 준 자료들을 보기 전에는, 클라인의 패거리나 다른 불량 학생들은 거의 모두 불우한 가정 출신일 것으로 지레짐작하고 있었다. 어린 시절, 세훈을 괴롭히던 또래 아이들이 거의 모두 임대 주택 출신이었던 것이 그런 편견 형성에 큰 역할을 했다. 왜 이렇게 집안도 좋은 애들이 자꾸 이상한 길로 빠져드는 걸까? 세훈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왜 그렇게 넋놓고 있어?”
주리가 세훈을 보고 말한다.
“아... 아니... 그냥.”
“너도 그 애들이 참 이해가 안 되지?”
메이링은 세훈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안다는 듯, 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네... 맞아요. 정말 이해가 안 돼요.”
“나도 요즘 느끼는 게, 미린 초중고등학교를 조사하다 보니, 인간의 성품이란 건 원래 선한 건가 악한 건가에 대한 의문까지 들어. 파고들면 인류와 역사를 함께한 심오한 문제지만.”
“참... 어려운 상황이네요.”
주리가 세훈을 한 번 돌아보고는 말한다.
“어떻게 도움이 될 만한 게 없을까요?”
잠시 모두 말이 없다가, 그때까지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던 갈색 머리의 남학생이 세훈을 바라보고 입을 연다.
“제가 끼어들기도 뭐하지만, 도움은 줄 수 있어요.”
“네가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어떻게?”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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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댓글
SiteOwner
2020-02-19 19:35:49
시대가 달라지고 문명이 발달한다 하더라도 인간사회에는 편견이 존재한다는 게 어떻게 보면 참 대단하기도 합니다.
그것이 이렇게 잘 드러나는 회차를 읽다 보니, 역시 메이링이 말한 "파고들면 인류와 역사를 함께한 심오한 문제" 라는 게 맞습니다. 과거에는 신분에 따라 자유가 박탈당해 있는데다 다른 각종 재산처럼 매매가 가능한 노예가 있었고, 노예에 대한 편견은 노예제가 대부분의 문명국가에서 혁파된 오늘날에도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미국의 예만 보더라도, 노예해방이 흑백분리 해소로 이어지기까지는 1세기의 시간이 걸렸지 않습니까.
작중의 클라인 패거리의 구성원들의 정보를 보니, 편견이라는 것이 하등의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 여실히 드러납니다. 게다가 예전에 사법시험 수험생이었을 때 공부했던 형사정책학 내용도 생각납니다. 서덜랜드의 차별적 접촉이론이라든지, 사이크스와 맛차의 중화이론이라든지...
마드리갈
2020-02-21 13:27:31
제가 저 좌중의 일원이었다고 하더라도 저렇게 이야기를 하는 세훈에게 놀라지 않을 수가 없겠어요.
가공할 능력을 가진 자와의 싸움에서 무사히 살아남았고, 게다가 상황에 적합한 전술을 채택하여 예준의 사악한 의지를 분쇄한 이것이 기적이 아니면 또 무엇일까요.
주거환경의 형성방법에 대한 차별도 보이네요. 그래서 꽤 씁쓸해지기도 하네요.
이상할 정도로 국내에서만큼은 주거공간의 취득이 분양인가 임대인가에 따라서 편가르기를 하는 경향이 두드러지네요. 북미나 서유럽은 물론, 일본조차도 소유에 그렇게까지 목매는 것 같지는 않던데...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요. 이전에는 임대주택 생활도 해봤는데다 현재의 주거공간은 분양받은 아파트라서 둘 다 경험을 해봤는데, 대체 그게 그렇게까지 차별해야 할 요소인가, 그리고 애초에 차별이라는 게 그렇게 정당화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저라면, 어차피 등장인물들의 백그라운드가 다양하니까 어느 동네에 사는가에 따라 편견이 생긴다는 설정으로 쓸 것 같지만, 이것은 작중에서 중요한 건 아닌데다 시어하트어택님께서 선택하신 합리적인 이유가 있을테니까 그 점에 대해서는 최대한 존중하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