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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흐흐... 여기서 만나는군요.”
누군가의 목소리다! 하지만 어디에서도,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보이지 않는다.
“너는... 누구지?”
“그걸 먼저 말해 드리면 안 되죠. 안 그런가요, 선배님?”
분명 목소리는 들린다. 남학생의 목소리. 조금 굵은 목소리에, ‘선배님’이라고 한 걸 봐서는, 남자 중학생이다. 남자 중학생, 그리고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세훈은 얼른 그 학생이 누구였는지를 짐작해 낸다. 세훈이 본 서류들 가운데서는, 그런 조건에 부합하는 사람은... 한 명뿐이다! 하마나카 마히로... 검은 웨이브 머리에 안경을 낀, 그 남학생이다. 하지만,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하마나카 마히로의 모습은. 세훈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돌아본다. 하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이 작은 공원 안에는!
“어디냐? 어디에 숨어 있는 거냐? 당장 나와!”
세훈은 있는 힘껏 소리 높여 말한다. 그러나, 당연히도, 몸을 숨기고 있는 하마나카는 대답이 없다. 대답이 없을 뿐 아니라,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건 물론이고, 손가락 끝도 보여 주지 않는다. 오로지 목소리만, 목소리만 들려올 뿐이다. 어디서 들려오는지도 모르는. 세훈은 거친 숨을 들이쉬었다 내쉬었다 하며, 다시 한번,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살핀다. 안 보인다. 어디에도. 장미 정원에도, 심지어 정자에도. 분명히, 하마나카의 목소리는 가까이서 들렸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다... 어디에서도.
“흐흐흐흐...”
어디에선가, 하마나카의 기분 나쁜 웃음소리가 또다시 들려온다. 세훈의 숨은 불안감으로 더욱 거칠어진다.
“하마나카... 나는 네가 누군지 잘 안다! 당장 나와. 당장!”
“내 이름을 알고 있군, 선배?”
하마나카의 조금 주춤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 내가 누군지 잘 안다고? 어디서 누구한테 들었기에 그렇게 잘 아는 거지?”
“말해 주지 않을 거다. 네가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한은.”
“호오, 그렇게 나오시겠다?”
하마나카의 목소리는 여기서 더 들리지 않는다. 어디에 몸을 숨기고 있는 거지? 세훈은 다시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살핀다. 어디에도, 특별히 이상한 점은 보이지 않는데... 공원은 조금 전과 별다를 게 없다. 분수대에서 뿜어져 나오는 분수도, 한쪽에 솟은 봉우리도, 심지어 장미 정원의 장미 한 송이 한 송이도, 위화감 같은 건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히 어디엔가, 하마나카는 숨어 있다. 그런데도 이상한 느낌은 좀처럼 들지 않는다. 왜일까... 왜... 왜...
퍽!
순간, 세훈의 오른쪽 다리를 뭔가가 강타하는 느낌이 든다. 세훈의 다리가 순간 기우뚱한다. 세훈은 몸의 균형을 잃고 기우뚱하다가, 이내 다시 똑바로 선다. 다리에 통증이 느껴지지만, 이 정도는 참을 수 있다. 하지만... 어디서 공격을 한 거지? 그것부터 알아야 한다... 그래, 일단은, 하마나카를 어디론가 유도해야 한다...
세훈은 일단 분수대를 벗어나, 공원 입구 쪽에 서서 주위를 둘러본다.
“흐흐흐... 도망가려고, 선배?”
분명, 가까운 곳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다. 하지만 여전히 하마나카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단서라고는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한 가지 알 수 있는 건, 하마나카의 목소리는 하늘에서 들려오지 않았다. 그 말인즉, 세훈은 맨눈만으로는 하마나카를 찾기 힘들지만, 하마나카는 어딘가에 숨어서 세훈을 보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디 있는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세훈의 눈앞에 펼쳐진 공원의 풍경은, 아까와 그대로다. 어떤 위화감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것이 더 이상하다. 어디에 있는 걸까, 하마나카는?
“여기 있다니깐, 왜 그렇게 헤매?”
하마나카의 목소리가 또 다시 들려온다.
“불쌍도 하지, 선제공격을 당하고도 두리번거리는 것밖에 하는 줄 모르는 모습이란!”
“이 자식!”
“백날 그렇게 소리만 쳐 봐. 하다못해 나를 손가락으로 건드리기라도 해 보라고?”
하마나카의 도발은 점점 더 대담해진다. 하지만... 하마나카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이상, 고전할 것은 뻔하다. 하마나카가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야 할 텐데, 그럴 것 같지는 않고... 잠시 후, 세훈은 뭐가 떠올랐는지, AI폰을 꺼내 인공지능 모드를 켜고 메시지를 입력한다.
*나라, 하마나카는 공원 안의 환경을 이용해서 숨는 것 같아. 이 상황에서 하마나카를 공원 밖으로 유도하면, 승산이 좀 있을까?
세훈이 메시지를 입력하고 나서 약 10초 정도 뒤, 메시지가 하나 올라온다.
물론 공원 밖으로 유도하면 괜찮겠지만... 그러면 다른 사람들이 피해를 보잖아요.
세훈은 얼른 *나라의 메시지에 답장한다.
알았어. 일단 불리해도, 공원 안에서 승부를 봐야겠구나. 고마워, *나라.
AI폰을 주머니에 넣고, 세훈은 다시 공원 안쪽으로 향한다.
“선배, 그렇게 변덕스러워서야 하겠어? 왜 그렇게 이리저리 다녀?”
“너 이 자식, 5분 안으로 내 앞에 서게 해 주마.”
세훈은 조금은 허세와 과장을 섞어서 말하고는, 공원 안쪽, 그것도 길에서 떨어진 곳에 있는 나무들 가운데로 들어간다. 이상하게도, 하마나카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어디에서도. 조금 전까지만 해도 세훈이 있는 곳 근처에서 들렸던 그 목소리가. 세훈은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혹시, 하마나카는 더욱 깊숙이 숨어서 나를 노려보고 있는 게 아닌가? 혹시나 해서 여기저기 뒤져 본다. 풀들 사이사이를 들추어 본다. 있을 리가 없다. 이번에는 옆에 있는 큰 바위. 그 바위를 살짝 들추어 본다. 역시 없다. 나무 위에는 혹시 있을까 해서, 나무 위를 올려다보고 가지 하나하나를 자세히 본다. 역시나, 털끝도 보이지 않는다. 아무 기척도, 세훈은 느낄 수 없다.
“이제는, 내가 적극적으로 찾아봐야 한다는 건가...”
세훈은 발걸음을 옮긴다.
“어디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빨리 하마나카 녀석을 찾아내서 끝을 봐야지...”
세훈은 다시 길가로 나온다. 그리고 또다시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하마나카를 찾는다. 바로 그 때.
“흐흐흐... 어디 숨어 있었던 거야?”
하마나카의 목소리가 다시 들린다! 이 근처다... 이 근처일 텐데! 어디에 숨은 건가... 어디지? 세훈은 다시 두리번거리며, 목소리가 들려온 곳이 어딘지를 찾는다. 여전히 하마나카의 모습은 발끝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설마, 나를 찾으려고 그러는 건가? 그렇게 못 찾아서야, 어디 찾을 수 있겠어?”
“이 자식...”
“불쌍도 하지, 선배라는 인간이 말이야, 후배한테 농락당하기나 하고 말이지. 그렇고말고, 참 불쌍한 인간이지 뭐야!”
하마나카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또 한 번의 타격이 세훈을 강타한다. 이번에는 왼쪽 다리다! 그것도 발목에... 발목이 잘려나갈 듯한 통증이 전해져 온다. 순간적으로, 세훈은 왼쪽 무릎을 땅에 대고 손을 땅에 짚는다.
“하... 하마나카... 너...”
“백날 그렇게 나를 부르기만 하면 뭐 할 건가? 선배 근처에 있는 나를 찾아내지도 못하고, 당하기만 하는 주제에!”
“......”
세훈은 대답하지 않는다. 대신, 얼른 그 자리를 벗어난다.?
세훈은 공원 반대쪽으로 향하면서 유심히 생각한다. 길과 분수대. 하마나카의 목소리는 이 주변에서 들린다. 일단 여러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 본다. 어디에 숨어 있고, 목소리는 어디서 들렸나. 일단은... 어디 숨었나... 혹시, 재빠르게 세훈의 뒤에서 움직이지 않고, 그림자 뒤로 숨는 능력인가? 아니다... 그건 아니다. 그렇다면 길가에서 멀리 떨어졌을 때 하마나카가 오지 않은 걸 설명할 수 없다. 물에 동화... 이건 더더욱 아닌 것 같다. 물가가 아닌 길가에서도 하마나카의 목소리는 잘만 들렸다.?
“어이, 선배! 어딜 그렇게 가는 거야? 설마 겁을 먹고 도망가는 건가?”
“너... 이 자식...”
하마나카의 약올리는 목소리는 계속 들려온다. 이 목소리는 대체 어디서 나는 건가... 혹시... 스피커? 스피커라면 생각해 볼 수도 있다. 한 곳에서 자리를 잡고 스피커를 조작해서 숨어 있을지도... 하지만 그렇다면 이곳저곳에서 세훈에게 가해져 온 공격들이 설명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하마나카의 목소리는 스피커에서 나는 목소리가 아니다. 어쨌든 공통점은... 길이다. 길에서 벗어나면, 하마나카로부터 일단은 피한 다음 반격을 노릴 수 있을 터다...
아, 저기... 저기다! 길 옆에 놀이터가 보인다. 세훈은 곧장 놀이터로 간다.
놀이터에 다다르자, 세훈은 일단 한숨 돌린다. 놀이터를 한 번 둘러본다. 로켓처럼 생긴 미끄럼틀, 그 옆의 그네, 시소, 정글짐 등이 있고, 가운데에는 음수대가 하나 있고, 구석진 곳에 벤치가 있다. 일단은... 정글짐 위에 올라가서 상황을 노리기로 한다. 정글짐은 다른 곳보다는 아무래도 좀 높으니 관찰에도 수월하리라... 물론 봉우리의 정자로 올라가도 관찰은 할 수 있기는 하겠지만, 가까이서 관찰하기에는 부적합하다... 그래서 이곳을 택한 것이다. 정글짐 위에 올라가니, 문득 어린 시절도 생각난다. 한 10년쯤 전까지만 해도 여기에 많이 올라가서 놀았지... 하지만 지금은 그런 쓸데없는 것보다는, 어떻게 해야 하마나카의 은신 수법을 잡아낼 수 있을지, 그것이 걱정된다.
한 1분 정도를 가만히, 미동도 하지 않고 고개만 돌려 가며 정글짐에서 공원을 내려다본다. 먼저 벤치. 벤치에는... 특별히 이상한 건 없다. 그 다음은 그네... 그네 역시, 바람에 이따금씩 흔들릴 뿐... 특별히 이상한 징후는 발견하지 못한다. 시소 역시, 마찬가지다. 시소는, 그나마 움직이기라도 하는 그네와는 달리, 아예 미동도 하지 않는다. 그리고... 놀이터 한가운데에 있는 미끄럼틀. 세훈은 여기가 좀 신경 쓰인다. 미끄럼틀 자체보다는, 복잡하게 꾸며진 미끄럼틀 구조 때문이다. 거기에다가 가려져서 보이지 않는 공간도 있고... 일단 미끄럼틀을 좀 더 자세히 보기로 하고, 세훈은 정글짐에서 내려온다. 그리고 미끄럼틀로 좀 더 가까이 다가가려는 그때...
“여기 있었군, 선배!”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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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댓글
마드리갈
2020-02-28 23:04:07
가까이 있으면서 보이지 않는 적의 존재란 정말 성가신 것임에 틀림없어요.
요즘은 게임을 하지 않지만, 예전에 스타크래프트 게임을 할 때는 적의 클로킹 가능한 유닛을 탐지하지 못했을 때의 그 답답함을 많이 느꼈고 그랬죠. 그게 떠오르면서 확실히 기분이 나빠지기도 하고 그렇네요.
하마나카 마히로의 위치를 어떻게 특정하는가가 이 싸움의 관건...SiteOwner
2020-02-29 22:40:42
세훈에게는 굉장히 힘든 싸움이 전개되었군요.
상대의 위치, 주변의 상황 등을 파악하지 못한 상태로 돌발적으로 일어난 일은 정말 끔찍하기 짝이 없습니다.
하마나카 마히로의 저 전술에 기분나쁜 기억 하나가 떠오릅니다.
중학생 때 일인데, 누군가가 교실 책상 위에 엎드려 자면 느닷없이 노출된 뺨을 때리는 유행. 이게 학생 사이에만 유행했으면 그나마 덜 나쁜데, 교사들도 이걸 배워서 학생들에게 써먹고 그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