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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해외영상물에 붙는 자막의 문제를 지적한 적이 있었어요.
이전의 글인 잘못된 번역으로 생각을 그만둔 사례 3가지 및 이런 것도 번역이라고 할 수 있는 건가...의 두 편에서 중점적으로 다루었는데, 이번에는 완전히 다른, 그리고 극히 드문 사례인, 원문이 틀리고 자막이 맞는 경우를 언급해 볼께요.
산베 케이(三部けい)의 만화이자 애니 및 실사영화로도 영상화된 나만이 없는 거리(僕だけがいない街)는 2006년의 치바현과 1988년의 홋카이도 토마코마이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요. 그리고 주인공 후지누마 사토루가 2006년 시점에서는 29세의 만화가 지망생이면서 피자배달원으로 일하고 있고 그의 주변에서 모종의 사건이 일어나면 그 일이 해소될 때까지 그 일이 반복되는 리바이벌이라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어요. 어느 날, 그의 어머니가 괴한에게 피살당하고 자신이 존속살해의 현행범으로 오인받아 경찰에 쫓기는 일이 벌어지자 그는 1988년, 즉 11세 당시 그의 고향인 토마코마이로 가고 마는데...
홋카이도(=북해도)는 현행 일본의 광역행정구역인 도도부현(都道府県) 에서 유일한 도(道)로, 면적은 넓지만 인구가 매우 적어서 중심도시이자 도청소재지인 삿포로 이외에도 각 지역의 주요도시에 특정범위를 관할하는 지청(支庁)을 설치해 두고 있었어요. 이 지청은 1897년에 설치된 이래 2010년까지 존속한 뒤 14지청 체제가 9개의 종합진흥국(総合振興局, 정확한 한자발음은 총합진흥국)과 5개의 진흥국(振興局)으로 재편되었어요. 즉 위의 나만이 없는 거리의 두 시대배경의 어디에도 북해도에서 진흥국이라는 제도가 적용된 곳은 없다는 의미.
그런데, 애니에서는 "진흥국(일본어 발음 신코쿄쿠/振興局)" 이라고 시대고증이 잘못된 상태로 대사에 이 단어가 등장하는데 애니플러스에서 방영될 당시에는 한국어자막에 정확하게 "지청" 이라고 나왔어요. 원작 및 미디어믹스에서 틀린 것이 번역하면서 고증에 맞게 되었다는 것이 기묘하기 짝이 없어요.
번역 관련의 별의별 사례를 다 접하는데 이런 사례는 아직 이것밖에 없고 다시 접하기도 힘들지 않을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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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댓글
마키
2020-03-06 12:54:28
서적 번역의 경우엔 간혹가다 번역자가 혼신의 힘으로 원서를 마개조해서 읽을만한 책으로 재탄생시키는 경우도 있더군요.
우리나라의 귀여니 같은 경우는 일본 쪽이었나에서 한국어 원본하곤 거의 별개의 책으로 느껴질 정도로 번역됐다고 하고, 반대로 "트와일라잇twilight" 시리즈는 영어 원본은 딱 10대 취향의 유치한 판타지 소설 정도의 취급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번역자에 의해 개조되어서 나름대로 한번은 읽어볼만한 책이 되었죠. 20년간 이어져 내려온 온갖 오역과 번역 미스를 한국 출판 20주년 기념이라고 완전히 갈아엎어버린 해리포터 시리즈 출간 20주년 전면 재개정 번역본은 덤.
(그러고도 헤르미온느(허마이오니)는 1권 마법사의 돌 머릿말에서부터 "이미 너무 고착된 번역이라 어쩔 수 없이 그대로 유지함"-이 점은 호그와트 마법학교나 기숙사 이름도 동일-?이라고 적혀있어서 전면 재개정 혜택조차 못받았죠...)
마드리갈
2020-03-06 19:02:49
번역을 제2의 창작이라고 말하는 게, 제가 인용한 사례, 그리고 마키님께서 인용하신 사례로 이렇게 다 증명이 되네요. 그렇게 마개조를 거쳐 읽을만한 책으로 만드는 작업은 어떻게 보면 완전히 새로 창작하는 것보다 더 어려울지도 모르겠어요. 그렇게 노력한 번역가들에게 경의를...
역시 선례확립이 중요하네요. 한번 굳어 버리면 그냥 그거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