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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에게는 사랑이 축복이다.
하지만 어떤 이에게는 불행이다.
사랑은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들만큼이나 다양한 얼굴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 여자가 수면제를 손바닥에 잔뜩 털었다.
그리고 입 안으로 가득 털어넣고 물을 마셨다.
이걸로 됐어. 나는 영원히 잠들거야. 그리고 더 이상 울지 않을거야.
그녀는 잠시 후, 병원에서 눈을 떴다. 눈을 떴을 때는 온통 까만 여자가 보였다. 여기가 지옥인건가, 그래. 난 지옥에 떨어진거야. 부모님보다 먼저 죽으면 불효라고 했던가... 아니, 자살하면 좋은 데 못 간다던가... 그녀는 체념한 듯 다시 눈을 감았다.
"넌 아직 살아있어. "
"...뭐라고요? "
"넌 아직 살아있다고. "
온통 까만 여자는 그녀에게 아직 살아있다고 했다.
"네 위장 속 약은 게워냈어.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자기 자신을 죽일 셈이었던거야? "
"...... "
"유서도 한 장 없이. "
까만 눈이 이 쪽을 꿰뚫어보듯 바라보고 있었다. 죽기로 하고 약을 털어넣은 계기가 뭐였더라, 그녀는 눈을 암고 떠올렸다. 죽는 것 조차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단 말인가.
"남자친구를 뺏겼어요... 아니, 이제는 남자친구도 아니지... "
"남자친구를 뺏겨? "
"믿겨지시나요? 내 절친이... 내가 그렇게 믿고 의지하던 20년지기 친구가 내 남자친구를 뺏어갔어요. 그 둘은 곧 결혼할 거라고 나에게 청첩장까지 보냈고요. "
"다른 사람들은 그 사실을 알아? "
"...... 바보같이... 말하지 못했어요... "
그녀는 고개를 떨구고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온통 까만 여자는 그녀를 달랬다.
"그래, 그래... 분하지. 오랫동안 친구였던 사람이 네 남자친구를 뺏은 것도 모자라서 결혼한다고 오라고 초대까지 했잖아. 그럼 차라리 공통된 친구한테 말이라도 했어야지... 나 억울하다, 내 친구가 남자친구 뺏어간 주제에 청첩장까지 보냈다. 니가 인어공주도 아니고, 왜 그런 걸로 죽어, 죽기를. "
"...... "
"그 녀석들, 적어도 네가 겪은 고통의 몇십배는 겪도록 해 줄게. 그딴 녀석들은 잊어버리고 너도 네 삶을 살아. 너는 더 행복해 질 권리가 있어. 그리고, 자살하면 좋은 데 못 가는 건 둘째치고 벌을 받아야 해. 자기 자신을 죽였으니까. 그러니까 바보같은 선택 하지 말고... "
온통 까만 여자가 홍연히 사라졌다.
그녀는 오랫동안 믿고 의지했던 친구에게 남자친구를 빼앗겼다. 그것도 모자라서 그녀의 친구는 결혼식에 오라며 청첩장까지 보냈다. 사정을 모르는 그녀의 친구들은 그녀가 결혼식에 가지 않는다는 이유로 쓴소리를 내뱉었다. 견디다 못한 그녀는, 그것때문에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고자 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구한 것은 슈피겔이었다.
"...... 몇백년이나 살았지만, 인간들은 한결같이 어리석단말이지... "
그리고 몇주 후.
"저... 여기가 괴담수사대인가요...? "
"네. 맞습니다. "
진한 화장을 한 젊은 여성이 사무실로 들어섰다. 그리고 미기야와 무언가 상담을 하고 있었다. 옆에 있던 파이로는 그녀의 주변에 뭔가 좋지 않은 게 꼬여 있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 보통 들려오는 괴담처럼 어깨나 등 뒤에 있었던 게 아니라, 그녀의 발치에서 느껴지고 있었다. 그림자로 늪을 만든다면 저런 색깔일까 싶은, 어딘가 기분나쁜 것이었다.
파이로의 등 뒤에서 스산한 기분이 드는가 싶더니, 슈피겔이 나타났다.
"성불 실패했다더니 진짜였냐... "
"...... 저 녀석이 오너인가. "
"그렇다만. "
"저 의뢰... 받지 않는 편이 좋아. 쟤, 친구 남자친구 뺏어간 여자거든... 그리고 뻔뻔하게 결혼식에 초대까지 한 거야. "
"뭐? "
그녀의 발치에 있던 그림자같은 것이 조금식 형태를 띠고 있었다. 그것은 믿을 수 없게도 글자의 형태를 띠고, 그녀의 발치에서부터 천천히 올라오고 있었다. 그녀는 발치에 나타난 글자들이 보이지는 않는 모양이었지만, 글자들이 나타날때마다 발목이 시큰거리는지 발목을 한번씩 꾹꾹 누르고 있었다.
"...... 글자의 형태를 띠고 있군. "
사무실을 나선 여자는 발목이 아픈지 여전히 발목을 주무르고 있었다.
그녀는 친구의 남자친구를 뺏었다. 뺏긴 녀석이 잘못이지, 그래도 친구니까 결혼식 정도는 초대해줄게. 하지만 그녀의 친구는 그 초대를 거절했다. 전후 사정을 모르는 다른 친구들은 친구의 결혼식에 가지 않는 그녀의 친구를 욕하고 있었다. 한동안 소식이 끊겨 있었던 그녀가 단톡방에 다시 나타난 건, 결혼식 일주일 전이었다.
웨딩 사진을 다 찍고 핸드폰을 열었을 때, 무수히 많은 알림이 있었다. 하나같이 그녀를 질타하는 알림이었다. 그녀의 친구는 한동안 말이 없다가, 그녀의 친구가 남자친구를 뺏아갔다는 증거와 그녀의 친구가 했던 말들을 전부 올렸다. 그리고 이런 이유로 자신은 결혼식에도 가지 않을 예정이었고, 이 녀석때문에 억울해서 죽으려고 해도 죽지도 못 하겠더라는 말도. 그녀의 친구들도 이 사실을 알고는 전부 그녀의 결혼식에 가지 않겠다고 했다.
소문이 퍼지는 속도는, 물에 잉크가 퍼지는 것과 같았다. 분명 웨딩 사진을 찍을때까지만 해도 친구들만 알고 있었던 사실인데, 다음날이 되니 그녀의 남자친구 지인들도 결혼식에 오지 않겠다고 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두 사람의 공통된 지인 뿐 아니라, 그녀의 친구와 그녀를 오랫동안 알고 지냈던 사람들까지 이 소식을 접했다. 회사 사람들마저 소식을 듣고는 결혼식에 굳이 가야 하냐는 질문을 했다.
"전부 그 년이 잘못한건데, 왜 나한테 그러는거야? "
결국 결혼식은 미룰 수밖에 없었다. 결혼식이 5일 남은 시점에서 사람들이 진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결혼식은 물론 돌잔치에도 가지 않겠다며 청첩장을 찢어버린 사람도 있었고, 어느 새 차단이라도 한 건지 메시지를 읽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상황은 남자쪽도 마찬가지였다. 회사 사람들은 물론이고 공통된 지인들도 결혼식을 오지 않겠다고 하니, 친인척들만 올 상황이었다. 거기다가 그의 친인척들중에 그녀의 친구와 지인인 사람이라도 있었는지 소문은 식구들에게도 퍼졌다. 가족들도 가족이니까 결혼식에 어쩔 수 없이 참가하는 눈치였다.
"어디서부터 잘못된거니... "
그는 그녀의 친구에게 전화했지만, 전화는 받지 않았다. 계속해서 연결이 되지 않아 소리샘으로 연결된다는 안내 음성만이 나올 뿐이었다.
"젠장. "
그는 그녀를 찾아가기로 했다. 찾아가서 손이 발이 되도록 빌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여자친구의 친구와 바람이 났다는 사실 자체가 없어지는 건 아니었다. 그리고 그녀가 그를 만나줄 지도 의문이었다. 그는 그녀가 사는 집 앞으로 가,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아영아! 얘기 좀 하자! "
한참동안 소리쳤지만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소리가 시끄러웠는지 나왔던 옆집 아저씨는 그녀가 이사갔다는 사실을 전했지만, 옆집 아저씨 역시 그녀가 어디로 갔는지는 모르고 있었다.
그녀의 다리에 붙어있는 것은 시도떄도 없이 그녀의 발목을 아프게 했다. 파스를 붙여도 고통이 사라지지 않을 정도였다. 병원에 가서 검사도 해 보고, 물리치료도 해 봤지만 소용 없었다. 이러다간 결혼식 당일에 신부입장을 업혀서 해야 할 정도로 다리는 심하게 아팠다. 괴담수사대에 갔던 것도 그것 때문이었다. 하지만 단순히 부정한 것이 붙은 것과는 달랐다. 그녀의 발치에 있는 것은 원념을 훨씬 넘어선 무언가의 집합체같았다.
"단순한 원념이 아니었어요... 그건... 우리로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
"...... "
"그 녀석 말인데... 슈피겔 말로는 친구의 남자친구를 뺏은데다가, 남자친구 뺏긴 애한테 청첩장까지 돌렸다더라. 남자친구 뺏긴 애는 죽으려던 걸 슈피겔이 구해서 살았대. "
"예? "
"업보야 업보.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것도 당연한거야. 그 녀석의 업보가 남자친구를 뺏긴 녀석의 원한과 만나서 강해진거지. 지금은 발목이 아픈 정도지, 저게 몸을 타고 올라가면 저 녀석은 죽을거야. 그런데 왜 안 그러는 지 알아? "
"죽는 날까지 괴로우라고...? "
"응. 그 녀석은 남의 눈에 눈물.... 아니, 피눈물을 흘리게 했으니 더한 댓가를 치뤄야 하거든. "
결혼식 당일, 그녀는 걸을 수 없었지만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한 걸음 내딛을때마다 발목 주위를 무수히 많은 바늘로 찌르는듯한 격통이 느껴졌지만 그녀는 결혼식을 위해 참았다. 겨우 결혼식장에 도착해서 식을 진행하기 위해 신부 대기실에 들어갔지만 대기실로 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간간이 그녀의 친척들이 들를 정도였다.
밖에서 손님을 맞던 신랑도 발목이 시큰거렸다. 손님 맞이를 위해 서 있었지만, 발바닥을 바늘로 찌르는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찾아오는 손님도 없이, 간간이 식장에 도착한 가족들만이 올 뿐이었다. 방명록을 맡은 그의 형도 썩 내키지는 않는 표정이었다. 이제 식을 시작할 시간이라 식장에 들어가려던 그는 두 눈을 의심했다.
'저런 사람이 있었나? '
온통 까만 여자가 있었다. 그녀는 신랑측과 신부측에 붉은 봉투를 내고 사라졌다. 잘못 본 걸까, 하지만 봉투는 분명히 있었다. 누구인지 확인할 새도 없이 결혼식을 진행하고, 다리가 아픈 신부를 위해 신혼여행을 연기한 두 사람은 신혼집에 가서 축의금을 정산했다. 하얀 봉투들 사이에서 눈에 띄는 붉은 봉투를 집어든 그녀는, 봉투 안을 확인했다.
"으악! 이게 뭐야? "
봉투 안에는 종이뭉치가 들어있었다. 일반적으로 쓰는 돈은 아닌 것 같았지만, 뭔가 꺼림칙했다. 다른 붉은 봉투 안에도 종이뭉치가 들어있었다. 그리고 지전 사이에 편지가 하나 들어있었다.
'남의 남자 뺏어가서 한 결혼이 과연 행복할까? '
"아악! 김아영 이게! 지가 간수 못 해서 뺏겨놓고 왜 우리한테 그래! "
"뭔데 그래? "
그는 편지를 받아들었다. 편지를 읽는 그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너... 우리 아이 가졌다던 거... 내 아이 아니었어...? "
"무슨 말이야, 자기야? 자기 아이지. "
"...... 그렇지? 내 아이지...? "
뭔가 석연찮은 표정으로, 남자는 괴담수사대를 찾았다. 붉은 봉투 안에 들어있던 것을 미기야에게 보이자, 미기야는 이것이 지전이며, 죽은 자가 저승에 가서 쓰는 돈이라고 했다. 축의금으로 지전을 낼 리는 없다는 것도 같이. 그리고 그는 남자에게 예전에 사귀었던 여자가 있지 않느냐는 얘기를 꺼냈다.
"예전에 사귀었던 여자친구가 있죠? 지금의 아내분은 예전에 만났던 여자친구분의 친구시고요. 그런데다가 당신은 전 여자친구에게 청첩장까지 보냈어요. "
"예? 아영이에게 청첩장을 보냈다고요? 대체 누가...? "
"당신 아내분이요. "
"...... "
미기야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뻔뻔한 행동을 한 여자도 문제였지만, 바람을 피운 남자에게도 잘못은 있었다. 두 사람의 업과 원념이 만나서 생긴 강한 무언가는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거기다가 용서받을 수 있는 죄도 아니었다.
"죄송하지만, 두 사람의 의뢰는 받아드릴 수 없습니다. 아내분의 발치에 있던 건 단순한 원념이 아니었어요. 원념보다 더한 무언가의 집합체였습니다. 당신도 잘한 건 없어요. 연인이 있는 사람이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웠잖아요. 그 자체로도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건데, 거기다가 철판이라도 깔았는지 청첩장까지 주고. 어자친구였던 사람이 어떤 기분이었을지 생각은 해 보셨습니까? 여자친구분은 당신때문에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려고까지 했었습니다. "
"아영이가...... 그랬다고요...? "
"죄송하지만, 두 사람의 업보입니다. 업보가 원한을 만나 손쓸 수 없을 정도로 강해졌어요. 저희가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
"아영이를 만나서 사과한다면... 그 애안테 용서를 받는다면 어떻게...... 안 될까요? "
"너 미쳤구나. "
옆에서 이야기를 듣던 파이로가 끼어들었다.
"반대의 입장이 되었다고 생각해 봐. 니 여친이 니 친구랑 바람났는데, 니 친구가 너한테 청첩장 보냈어. 너, 기분이 어떠냐? "
"...... "
"아마 평생을 가도 네녀석이 있는 방향으로는 고개조차 돌리지 않으려고 할 거다. 용서받겠다고 그 애를 찾아가면 뭐가 나올 것 같아? 아니, 애초에 그 애가 겨우 잊어가던 상처를 니가 더 헤집어놓는 꼴이 될 거다. 불난 집에 섶도 아니고 마그마를 들고 들어가는 격이라고. 뭔가 단단히 착각하고 있는데, 너는 잘못 없다고 생각하면 안 돼. 너도, 니 아내도 둘 다 잘못이 있어. 역으로 그런 잘못을 저지르고 전 여자친구가 널 만나러 온다고 하면 넌 만날거니? "
"그야... ......아뇨... "
"이 지전이 뭘 의미하는지는 미기야가 설명해줘서 알 거다. 죽은 사람들이 저승에서 쓰는 돈이지. 기뻐야 할 결혼식에 죽은 사람의 돈을 축의금으로 낸다... 너와 네 아내를 용서할 생각이 전혀 없다는 의미야. 살아서는 물론 죽어서도 두 사람을 원망하겠다는 의미라고. 네놈도 네 아내도 알 거라고 생각한다. 남의 눈에 눈물 흘리게 하면 그 사람은 피눈물 흘린다고. 그런데 너희 둘은 피눈물을 흘리게 했어. "
그는 하는 수 없이 돌아왔다. 그녀를 만난다면 용서받을 수 있을까, 하지만 전혀 용서받을 수 없었다. 그녀의 행방도 찾을 수 없었다. 결혼식 일주일 전에 모든 사실을 고한 그녀는 결혼식 당일에 단톡방을 나갔다. 그리고 결혼식이 끝난 후에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녀를 제외하고 다른 친구들끼리 모여서 단톡방을 다시 만들긴 했지만, 어느 누구도 아영이의 근황을 그녀에게 말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전혀 그녀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괴담수사대에서는 뭐래? "
"...... 남의 눈에 눈물나게 하면, 그 사람은 피눈물을 흘릴거라고... 너, 아영이한테도 청첩장 줬니? "
"친구니까. "
"...... 너 생각이 있는 애야? 아니지... 니가 생각이 있었으면 그랬으면 안 되는거였어. 너같으면 그 상황에서 올 것 같니? "
"왜 못오는데? "
"...... "
그는 그녀가 아영에게 청첩장을 보냈다는 사실을 알고 경악했다. 그것때문에 축의금으로 저승에서나 쓰는 돈이 들어왔을 뿐더러, 그는 알아서는 안 될 진실까지 알아버렸다. 그녀가 가진 아이가 그의 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그는 그녀에게 다시 한 번 아이가 자신의 아이인 지 물었고, 그녀는 자신의 아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믿을 수 없었다. 용서를 빌 길도 없었지만, 더 이상 찾아가면 안 된다는 얘기를 들었다. 죽어서도 두 사람을 원망하겠다는 의미였다.
몇달 후, 그녀는 아이를 낳았다. 하지만 아이는 세상에 나오자마자 죽어버렸다. 누구의 아이인지, 석연찮던 건 확인도 못 하고 세상의 빛도 보지 못 한 채 아이는 떠났다. 어머니 외에는 어느 누구의 축복도 받지 못 한 아이였다. 명절에도 두 사람은 시댁이건 친정이건 방문하지 못 했다. 집안 망신이라며 부모님들이 오지 못 하게 했다. 아이를 낳았을 때도, 아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도 문병 한 번 오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남자에게 물려줄 예정이었던 건물도 남자의 동생이 받게 되었다. 이는 그를 자식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분명 두 사람은 사랑해서 결혼했지만, 두 사람 말고는 의지할 데가 없었다. 하루하루가 살얼음판 같았다. 거기다가 물려받을 예정이었던 건물도 물려받지 못 하게 되자, 그녀의 사랑은 빠르게 식어갔다. 애초에 그녀는 그의 돈을 보고 뺏기로 결심했던 것이었다. 그 무렵, 그녀는 다시 아이를 가졌다. 죽은 아이가 다시 돌아온 것 같았다. 하지만 병원에 갔을 때, 의사는 의아한 표정이었다.
"저... 아이의 심장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아무리 해도 들리질 않아요. "
"그게 무슨 말이예요? "
"말 그대로입니다. 아이의 심장 소리가 들리지 않아요. "
아기의 심장 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그리고 몇달 후에 그녀가 낳은 아이는 또 다시 죽은 아이였다. 그럴 동안, 그녀의 발치에 있던 것은 그녀의 배꼽 아래까지 올라왔다. 이제는 눈을 뜨고 있으면 격통이 느껴질 정도였다. 격통때문에 괴로워하는 그녀의 앞에, 온통 까만 여자가 나타났다. 온통 까만 여자는 그녀의 배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아이, 계속 품고 있을거야? 죽은 아이인데 품어서 뭐 해? "
"죽어...? 죽었다고? 그럴 리가 없어... "
"심장소리, 들었어? "
"...... "
병원에서 분명 심장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고 했었다. 그렇다는 건, 아기가 죽었다는 얘기가 된다. 그런데, 죽었는데 어떻게 뱃속에서 계속 자랄 수가 있지?
"아이가 죽었는데, 어떻게 계속 자라? "
"네가 밴 건 인간의 아이가 아니니까. "
"무슨 말이야...? "
"너 말이야. 사람 하나 죽일 뻔 했잖아? 잘 사귀고 있는 커플 깨뜨려놓고 뻔뻔하게 청첩장까지 보냈으니까. 그래서 원한을 엄청나게 샀거든. 발목이 시큰거리다가 이제는 온 몸이 아프지? "
"!!"
"남을 피눈물나게 했으면, 너는 피를 흘려야지. 안 그래? "
온통 검은 여자는 알 수 없는 말을 하고 사라졌다.
"현, 몇달 전에 왔던 의뢰인 기억 하세요? "
"네. 여자친구 놔두고 바람난 남자랑, 남자친구 뺏어놓고 청첩장까지 돌려서 원한 산 여자분이요. 그런데, 그건 왜요? "
"슈피겔씨의 말에 의하면, 그 분들이 죽은 아기를 가졌다네요. "
"죽은 아기요...? "
"정확히는... 인간의 아이가 아니라, 원한의 집합체가 아기 형태로 변한 것 같다고 하네요. 업보와 원한이 만나서 생긴 무언가가 두 사람을 계속해서 괴롭히고 있으니까요. "
"...... "
언제쯤 이 고통이 끝날 지, 그는 답답했다. 용서를 빌고 싶어도 그럴 수도 없게 되었다. 그녀는 여전히 용서를 빌 생각이 없어 무언가에 의해 계속해서 고통을 받고 있었고, 촉망받는 장손이었던 그는 없는 자식이 되었다. 그러던 와중에 그는 우연히 아영의 소식을 전해들었다. 폐인처럼 지내던 그녀가, 그가 취업할 예정인 회사에서 대리로 일한다는 소식이었다. 겨우 아영을 만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그는 보기 좋게 그 회사의 면접에서 떨어졌다.
"오늘도 미역국인가... "
"...... "
"아영아...! "
"그 입으로 내 이름 부르지 말아줄래? "
그는 그녀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제발... 미안해... 날 용서해줘... 미혜가 청첩장까지 보낸 사실은 몰랐어, 정말이야. "
"...... 죽을때까지 두 사람을 용서하는 일은 없을거야. 두 사람이 나한테 한 짓을 생각해. "
그녀는 더러운 것을 본 듯한 표정을 짓고 가 버렸다.
"이런 걸 두고 업보라고 하는 모양이네요? 당신과 당신의 아내 말이예요. "
"당신은 누구시죠? "
어쩐지 기분나쁜 미소를 가진 여자가 다가왔다. 그녀의 등에는 너덜너덜한 날개가 있었고, 그를 보는 눈은 붉은 색이었다.
"업보와 원한이 만나 두 사람을 옭아매고 있네요. 하지만 저도 어떻게 해 드릴 수는 없어요. 당신도, 당신 아내도 단죄자를 만나 편하게 죽는 것조차 힘들어보여요. "
"...... "
"아아, 당장 죽인다거나 하지는 않아요. 다만 당신들이 죽고 나서 미래에 갈 곳이 정해져 있다는 걸 알려주려고 온 거예요. 그 곳에서도 두 사람은 원하는 사랑을 할 수 있을거고, 행복하게 살 수 있어요. 그 업보를 살아서 갚고 가는데, 죽어서까지 갚을 필요는 없잖아요? "
그녀는 그의 뒷덜미에 낙인을 하나 찍었다.
"그럼, 업보는 충분히 갚고 오는 걸로 해요. "
그리고 그를 뒤로 하곤 가 버렸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그녀는 그의 아내에게도 낙인을 찍고 갔는지, 뒷덜미에 이상한 표식이 있었다.?
엄마가 고지고 아빠가 성원숭인데 동생이 블레이범인 라이츄. 이집안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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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댓글
마드리갈
2020-03-11 16:35:32
이번 회차를 읽다가 노트북 위에 토할 뻔 했어요. 안그래도 오늘 몸이 안 좋은데...
그 정도로, 잔혹한 상황을 보고 마음이 진정되지 않은 채로 있어요.
누군가를 불행하게 만들어서라도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물론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그 자체가 악은 아니지만, 배반과 협잡이 현명한 처세가 아님은 물론 정당하지도 않다는 건 분명해요. 누가 생각나고, 그 인물 또한 비싼 대가를 치루었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몸이 안 좋다 보니 더 언급하지는 않으려고 해요.
국내산라이츄
2020-03-13 02:31:21
작중 남자와 여자 둘 다 원한과 업보의 집합체에게 괴롭힘을 받고 있지만, 남자쪽은 늦게나마 자신의 잘못을 뉘우쳤기 때문에 몸이 아픈 정도에서 끝났습니다. 하지만 여자쪽은 남자쪽이 건물을 물려받는다는 사실을 알고 일부러 접근해서 친구의 남자친구를 뺏었고(사랑이 식은 이유도 건물을 못 물려받게 되어서입니다), 뻔뻔하게 청첩장을 전 여자친구이자 전 친구에게 보낸 것, 진실이 밝혀지기 전까지 친구였던 사람을 욕했던 것이 업이 되어서 온 몸이 아픈 정도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마지막에 아나키나시스가 낙인을 찍고 간 것은 두 사람이 판데모니움행임을 알리는 표시입니다. 이승에서 벌받은 걸 다 갚고 오라는 얘기의 뜻도 '판데모니움에서는 새로운 형벌을 받아야 하니 그 집합체들은 이만 떼어놓고 오라'는 의미입니다.?
마드리갈
2020-03-13 13:20:25
그렇게 되었군요. 이제 확실히 이해가 되었어요.
판데모니움으로 갔다면, 그냥 영원히 고통받아야 한다는 거네요. 살아서도 죽어서도...
누구를 탓할 수도 없겠지만요.
SiteOwner
2020-03-15 17:30:37
예전에 겪었던 일과 주변 사람들의 일 몇 가지가 생각나긴 하지만, 이미 이제는 지금의 저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니 이제는 원망도 후회도 없습니다. 그래서 이번 회차를 읽으면서 담담하면서면서도 제3자의 일도 아닌 것같이 여겨지기도 합니다.
사랑이라는 게 사람을 아름답게 만들 수도 있고 또한 추악하게 만들 수도 있고...
확실한 것은, 모범정답인 사랑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명백한 오답이자 절대로 골라서는 안되는 최악의 오답 중의 하나를 여기서 찾았다는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