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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어떤 창작물의 제목은 왜 붙여진지 모를 경우가 있어요.
아주 유명한 작품인 프랑스의 극작가 외젠 이오네스코(Eugène Ionesco, 1909-1990)의 1950년작 희곡 대머리 여가수(La Cantatrice chauve)에는 제목의 "대머리 여가수" 가 전혀 등장하지 않죠. 이렇게 이성과 합리가 통하지 않고 모든 것이 해체되었거나 뒤섞여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런 부조리극 덕분에 이런 것들을 보기가 그렇게 어렵지 않죠.
아주 유명한 작품인 프랑스의 극작가 외젠 이오네스코(Eugène Ionesco, 1909-1990)의 1950년작 희곡 대머리 여가수(La Cantatrice chauve)에는 제목의 "대머리 여가수" 가 전혀 등장하지 않죠. 이렇게 이성과 합리가 통하지 않고 모든 것이 해체되었거나 뒤섞여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런 부조리극 덕분에 이런 것들을 보기가 그렇게 어렵지 않죠.
이제 시선을 현대로 돌려보죠.
2010년대의 일본의 여러 창작물은 아주 친절할 정도로 길고 내용을 잘 말해주는 문장형 제목이 범람해 있었어요.
이런 것들 속에서 짧은 제목이 오히려 굉장히 신선한데, 한때 유행했던 포스트모더니즘 사조가 재유입된 것인지 의미를 알 수 없고 단서조차 얻을 수 없는 게 하나 있어요. 그 중의 하나가 아이돌 애니인 22/7.
22/7은 국내에서는 애니플러스를 통해 "22/7 나나분노 니쥬니" 라는 제목으로 소개되어 있어요. 나나분노 니쥬니는 분수 22/7의 일본어 독음으로, 이것까지 번역하자면 "7분의 22" 가 되는 것이죠. 일단 22/7이라면 원주율에 가까운 분수이긴 한데 정말 이것에서 유래한 게 정설이 맞기는 한가 싶고...
이름에서 특정의 의미를 찾으려고 하는 저의 사고방식 자체가 낡은 것인지를 살짝 의심하고 있기도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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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댓글
시어하트어택
2020-03-17 23:01:32
저 <대머리 여가수> 같은 걸 부조리극이라고 하는데, 저런 제목의 비슷한 사례로는 <고도를 기다리며>가 있죠. 여기서 고도는 高度가 아니라 Godot, 즉 사람 이름입니다.
마드리갈
2020-03-18 12:26:40
부조리극이라는 것 자체가 기존의 합리성에 대한 전면적인 해체이다 보니, 아예 채택된 제목 자체에서도 부조리가 반영되어 있어요. 그래서 대머리 여가수가 등장하지 않는 대머리 여가수, 그리고 등장하지 않음은 물론 실체도 알 수 없고 존재하는지도 의문인 고도를 기다리는 고도를 기다리며 같은 것들이...
그러고 보니, 타인의 선의란 일종의 법적 의제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네요. 이것을 깨닫게 하는 게 부조리극의 역할이라면 그나마 유용하겠다는 생각도 들고 있어요.
마키
2020-03-25 10:43:19
그러고보니 생택쥐페리의 대표작인 어린왕자는 일본에서만 별의 왕자님 이라는 전혀 다른 제목으로 출판되었죠.
사실 국내 번역명인 어린왕자부터 오역(Prince가 가진 다양한 의미를 왕자로 퉁쳐버렸으니...)에 가깝다는건 차치하고서라도, 책 뿐만 아니라 영화에서도 은근히 일본 쪽에서는 원제랑 완전히 다른 종류의 제목을 붙이는 경우가 곧잘 있다는 모양이에요.
마드리갈
2020-03-25 20:53:15
그렇죠. 어린 왕자의 일본어판 제목인 별의 왕자님(星の王子さま)는 원제와는 확실히 다르죠. 최근에 본 애니 중 거친 계절의 소녀들이여(荒ぶる季節の乙女どもよ。)에도 그 번역제목이 인용되고 있어요.
게다가 빨강머리 앤(赤毛のアン)도 영어 원판의 제목은 Anne of Green Gables(초록색 지붕집의 앤)이지만 일본어에서는 앤의 모발색에 더욱 집중한 것이 되어 있고, 국내에도 일본어판 제목이 수용되었어요.
각종 창작물의 제목이 일본에 소개되었을 때에 원제와 크게 달라지거나 완전히 별개로 되는 것, 안그래도 다루어 보고 싶었는데, 마키님 덕분에 글을 쓸 의욕이 났어요. 그럼 빠르면 이번 주말에 써 보도록 할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