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35년 전인 1985년의 어느 봄날.
같은 반 학생들 사이에서 등교전쟁이 일어났습니다. 누가 가장 일찍 오는가로 경쟁이 붙은 것이지요.
어떤 학생들은, 아예 전날 밤부터 있겠다고 했지만 이건 당연히 불가능했고, 결국 새벽 등교경쟁으로 가닥이 잡혔습니다.
다른 학생들이 어느 동네에 살고 소요시간이 얼마 되는지를 알고 있었던 저는, 5시 쯤에 일어나서 대충 준비를 하고 5시 30분까지 학교에 도착하면 1위는 따놓은 당상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 시대에는 대체로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게 대세였는데다 농가가 많은 특성상 보통 그 정도면 하루의 일과를 시작하는 가구가 많아서 딱히 문제가 없었고, 저희집이 학교에서 가장 가깝다 보니 이 정도면 저의 승리는 확실했다고 봐도 무방했습니다.
또 하나의 고려요소는, 단지 등교경쟁을 위해서 새벽 2-3시 쯤에 일어나서 출발하도록 허용할 가정이 없겠다는 것.
지역이 지역이다 보니 승냥이나 삵 같은 대형 야생동물이 돌아다닌다는 목격담도 있었고, 국민학교 2학년 학생이 단지 학생들 사이에서의 경쟁에서 이기려는 목적을 위해 일찍 일어나서 혼자 새벽길을 걷도록 허락할 부모 또한 기대할 수 없어서였습니다.
아무튼 그렇게 결전의 날.
학교에 갔습니다. 예상한대로 5시 30분에 학교 교실 문을 열었습니다.
그런데 웬걸, 이미 어떤 여학생이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너, 몇시에 온 거야...?"
"5시 13분."
"어떻게 온 건데? 집에서 3시간 걸어온 거야?"
"아니, 아빠 차 타고 왔는데?"
즉 그 여학생은, 아침 일찍 업무를 시작하는 아버지의 트럭에 첨승해서 학교에 도착했던 거였습니다.
아무리 도보로 몇 시간 걸리는 먼 데에 살더라도, 자동차같은 게임체인저가 있으면 이야기는 별개의 것. 그것을 간과했다 보니 저는 17분 늦게 2등이 된 것이었습니다.
아무튼 그 날은, 누구도 지각하지도 결석하지도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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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댓글
시어하트어택
2020-03-22 21:45:51
재미있는 에피소드네요. 하긴, 교통이 아직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이었고, 또 호기심으로 가득찬 시기였다 보니 저런 게 가능했겠지요.
제가 저 나이였다면 저렇게는 못 했을 겁니다.
SiteOwner
2020-03-24 18:15:39
35년이 지난 지금도 생각할수록 신기한 이 사건을 재미있게 읽어주신 점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요즘 같으면 어림도 없을 것입니다. 일단 그 나이의 아이들이 시도조차 않을 것이고, 시도를 한다고 한들 과연 순순히 보고 있을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지도 의문이지 않겠습니까.
저 때에는 철도의 레일 위를 걷는 것도 유행이었습니다. 열차의 운행본수가 많지 않았다 보니 어린이는 물론이고 성인도 잘 그랬습니다. 오늘날같으면 철도안전법의 규제대상이 될테니 이미 폐선되어 상업운전이 끝난 구간이 아닌 이상 안되겠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