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주제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4월 10일에 썼던 TV의 순화어로서 "바보상자" 가 제안되었던 때 제하의 글에서 이미 드러났듯이, 언어관련 운동이 언제나 의도대로의 결과를 만들어내지만은 않고, 철저히 무시당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면 이것이 민간주도가 아니라 정부기관 주도면 상황이 달라질까요? 최소한, "그렇다" 는 선택지에 들어 있지 않아 보입니다.
2020년
4월 6일에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립국어원이, 시사현안에 사용되는 각종 어휘의 쉬운 우리말 대체어를 내놓은 게 있습니다. 그런데,
제시해 둔 어휘를 보니까, 속칭 0개국어 구사자같아 보이는 것을 도저히 지울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제시해 놓은 어휘 중에는 이미
제도권상에서 공식적으로 쓰이고 있는 것도 있는 터라, 새로운 제안이라고 할 수도 없어서 무의미한 것도 꽤 많습니다. 그나마
건질만한 것도 극소수 있긴 하지만...
아래에 소개하는 언론보도에 나온 어휘들의 문제점을 하나씩 간략하게 짚어 보겠습니다.
쉬운 우리말 대체어 "다크웹→지하웹, 글로브월→의료용 분리벽" (2020년 4월 6일 뉴스1 기사)
개별 대상어휘, 순화어휘 및 비판을 차례로 기재합니다.
- 머그샷 제도 → 피의자 사진 공개 제도 / 그냥 초상공개로 하면 4음절로 될 걸 4어절 9음절로 만드네요.
- 스피드 팩토어 → 잰맞춤 생산 (체계) / 원어에는 고속, 생산 및 판매의 개념이 다 있는데 순화어에는 판매의 개념이 실종.
- 플로깅 → 쓰담 달리기 / 뭔가를 쓰다듬으면서 달리는 줄 알았습니다.
- 치팅 데이 → 먹요일 / 가장 참신합니다만 운동 후 치팅데이의 주기가 꼭 1주일 간격인 것만은 아니고...
- 베그 패커 → 구걸배낭족 / 차라리 여행거지라고 하든가...
- 소셜 디자이너 → 공동체 (혁신) 활동가 / 창안자와 활동가가 일치하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안 그런 경우에는 대응이 안됩니다.
- 딥페이크 → (인공지능 기반) 첨단 조작 기술 / 순화어가 오히려 이해를 막습니다. 차라리 날조, 위조가 더욱 적합하지...
- 게이트 키퍼 → 생명 지킴이 / 의미를 좁히는 순화어는 오역을 양산합니다. 하긴 수문장(守門?)이라는 말도 모르는데 기대가 무리.
- 쇼트리스트 → 최종 후보 명단 / 리스트가 반드시 명단이라는 보장도 없습니다. 목록이라면 모를까.
- 앰비슈머 → 가치 소비자 / 처음 보는 어휘인데다 야망과 가치를 동일시하다니 뭐하자는 건지...
- 필리버스터 → 합법적 의사진행 저지, 무제한 토론 / 무제한 토론은 이미 국회법 제106조의2에서 쓰는 용어.
- 제로웨이스트 → 쓰레기 없애기 / 웨이스트(Waste)는 쓰레기는 물론 낭비도 의미합니다. 따라서 두 어휘는 명백히 다릅니다.
- 원포인트 회의 → 단건 (집중) 회의 / 이건 꽤 괜찮군요. 하지만 이전에도 다른 곳에서 본 어휘라는 게 함정.
- 콤팩트 시티 → 기능 집약 도시 / "기능" 이라는 수식어는 전혀 컴팩트하지 않습니다.
- 1코노미 → 1인 경제 / 거명된 것 중에서는 최고입니다.
- 다크패턴 → 눈속임 설계 / 사용자가 본의 아니게 당한다는 의미를 전달하려면, "복병", "함정" 등의 기존어휘가 더 낫습니다.
- 애니멀 호더 → 동물수집꾼 / 애니멀호딩은 동물의 수집 이외에도 무절제한 번식, 방치도 포함합니다.
- 하프 오픈 톱 → 부분 개방형 / 지붕의 의미는 온데간데없군요.
- 리커버 → 새표지 / 리커버는 새로운 표지라는 명사도, 다른 표지로의 교체라는 동사도 되는데 새표지는 명사 전용.
- 신파일러 → 금융 이력 부족자 / 이런 말을 알게 해 준 문체부와 국립국어원에게 감사해야 할 듯.
- 슬로푸드 → 정성 음식 / 논평할 가치도 없는 헛소리.
- 스피어 피싱 → 표적 온라인 사기 / 온라인이 아니면 이 말은 못 쓴다는 걸까요?
- 리브랜딩 → 상표 새 단장 / 기존의 "상표" 를 새로 단장한다는 건지, 전에 없던 상표를 내세워 "새로 단장" 한다는 것인지?
- 체크슈머 → 꼼꼼 소비자 / 체크슈머라는 말이 있는지도 처음 알았습니다.
- 유니콘 기업 → 거대 신생 기업 / 굳이 이렇게 써야 할 이유가?
- 테마주 → 화제주 / 일단 나쁘지는 않습니다만, 다른 곳에서 이미 봤습니다.
- 펫팸족 → 반려동물 돌봄족 / 이 말, 쓰이기는 하나요?
- 라이브 커머스 → 실시간 방송 판매 / 생방송이라는 어휘를 모르는 것 같으니 가르쳐 드리죠. 불치하문.
- 미러 시트 → 안심 거울 / 누구를 안심시키는 거울인지 용어 자체가 불명료합니다.
- 코드 인사 → 편향 인사, 성향 인사 / 나쁘지는 않지만, 사천(私薦), 엽관(?官) 등의 기존어휘보다 나을 게 없습니다.
- 멀티페르소나 → 다면(적) 자아 / 다중자아, 다자아가 더 간결합니다.
- 빅텐트 → 초당파 연합, 포괄 정당 / 글쎄요. 커다란 텐트 아래에 다 모였다는 게 보다 직관적으로 보입니다만...
- 폴리널리스트 → 정치 참여 언론인 / 정파적 언론인이 더 나을 뻔 했는데 생각을 안 하는 듯.
- 인포데믹(스) → 악성 정보 확산 / 차라리 "정보전염병" 이라고 쓸 걸 뭐 저렇게 이상하게...
- 코호트 격리 → 동일 집단 격리 / 일괄격리(一括隔離)라는 더 간결한 표현을 두고 굳이 그렇게 어절을 늘려야 할까요?
- 아트버스터 → 흥행 예술작 / 나쁘지는 않군요. 하지만 아트버스터라는 말 자체를 이번에 처음 봤습니다.
- 가스라이팅 → 심리(적) 지배 / 영국의 희곡작품 가스라이트에서 유래한 용어인만큼 딱히 번역의 이유가...
- 팬데믹 → (감염병) 세계적 유행 / 이미 범유행이라는 한자어도 있는데 저 2-3어절을 누가 쓴다고...쓸데없는 어휘의 판데믹이군요.
- 에피데믹 → (감염병) 유행 / 그럼 패션 유행도 에피데믹으로 쓸 건지...이전 용어인 전염은 왜 없앴을까요?
- 드라이브스루 → 승차 진료(소), 승차 검진, 차량 이동형 진료(또는 검진) / 안 쓸 말만 골라서...차라리 무하차(無下車)로 하세요.
- 비말 → 침방울 / 해설에서는 물방울, 순화어는 침방울, 손발이 안 맞습니다.
- 스윙보터 → 유동 투표층 / 이런 말은 만들어져봤자 안 씁니다. "부동층" 이 있으니까요.
- 로고젝터 → 알림 조명 / 그럼, 로고젝터와 경광등의 차이는 어떻게 구분할까요?
- 브이로그 → 영상 일기 / 딱히 나쁘지도 않지만 꼭 이렇게 써야 한다는 당위성도 없습니다.
- 블라인드 펀드 → 투자처 미특정 기금 / 정말 길군요. 나중에 투자처를 정한다면, 선모집신탁(先募集信託)이 좋을 것 같은데...
- 패닉 셀링 → 공황 매도 / 투매(投?), 즉 집어던지듯이 판다는 기존용어가 더 간결하고 직관적입니다.
- 게리맨더링 → 자의적 선거구 (획정) / 이미 학계의 용어로 굳은 것을 딱히 바꿔야 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입니다.
- 바이오시밀러 → 동등 생물 의약품 / 이미 복제약이라는 용어가 널리 쓰여서 무용지물.
- 스카이라인 → 하늘지붕선 / 그럼 닛산 스카이라인이라는 승용차 이름도 번역할래요?
- 워킹스루 → 도보 이동형, 도보형 / 해설된 의미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 퍼펙트 스톰 → 초대형 경제 위기 / 원래 기상용어인데 경제에 한정해서 쓸 이유가 없습니다.
- 리테일 테크 → 첨단 소매 유통 기술 / 이렇게 긴 말을 누가 쓸 거라고 생각하는지...
- 글로브 월 → 의료용 분리벽 / 격벽(隔壁)이라는 기존용어가 있습니다.
- 다크 웹 → 지하웹 / 웹(Web)은 그대로 놔두는군요.
- 모션 그래픽(스) → 동작 그래픽 / 그래픽은 언제부터 고유어가 되었나 봅니다?
일개 재야의 소시민에 불과한 저에게조차 이렇게 바로 비판당하는 순화어, 정말 왜 만들었을까요?
게다가, 이미 현행 제도에 포함되어 있는 용어도 확인하지 않는 것을 보니 이상한 데에서는 열심히 하고 필요한 데에서는 안 하는 게 바로 보입니다.
어디까지나
사견이긴 하지만, 뭔가 새로운 용어를 제안할 경우에는 띄어쓰기의 단위로는 2어절, 글자수로는 5음절을 넘으면 안된다고 봅니다. 그것을 넘으면 제대로 기억되지도 못하고 또
이것을 줄이기 위한 약어가 생성되어 언어생활의 경제성과는 가면 갈수록 멀어져서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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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댓글
마키
2020-04-14 01:30:43
그나마 좀 요즘 신조어 다운 치팅데이-먹요일과 뜻 자체는 크게 달라진게 없는 1코노미-1인 경제 이외엔 이걸 굳이? 라는 반응이네요. 문외한인 제가 봐도 거론한 두개 외에는 거의 절대다수가?태어나자마자 사어가 될거같구요.
게이트 키퍼는 한자어로 언급해주신 수문장, 굳이 우리말로 풀어 써도 문지기라는 훌륭한 어휘가 있는데 지킴이는 그렇다 치더라도 생명은 대체 어디서 나온 걸까요.
SiteOwner
2020-04-14 23:20:50
이런 사례를 볼 때마다, 국립국어원이 한두번도 아니고 거의 매번 저렇게, 쓸데없이 사족을 달거나, 정작 중요한 것은 빼먹거나 하는 등으로 일같지도 않은 일을 벌이는 것을 그냥 두고 봐야 하는가 싶을 정도입니다. 억지로 만들어낸 신조어 자체도 금시초문인 것 투성이인데 그것을 대상으로 한 순화어가 제대로 만들어진 것도 거의 없는데 살아 있을 리가...
치팅데이는 개인적으로는 보상일이라고 써 왔습니다. 투병생활 후 기본적인 재활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운동을 하면서 그런 날을 가져 왔는데, 체력단련 경험자에게 물어봐도 될 것입니다.
게이트 키퍼의 순화어의 문제점은 말씀한 그대로입니다. 말과 글을 다룬다면서 눈과 귀를 막는 국립국어원은 대체 누구 마음대로 어문정책의 길잡이로서의 권위자가 되려 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