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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능력자 H] 16화 - 흥을 깨는 녀석들

시어하트어택, 2020-05-29 07:37:09

조회 수
138

세훈이 손뼉을 치자, 가만히 있던 주리도 궁금했는가 보다.
“누구야? 누구길래 그래?”
뒤를 돌아보자, 주리도 그 남자가 누군지 바로 깨닫는다. 바로, E반의 ‘조제 엔히크스’. 평소 말이 없는 타입이지만, 나름대로 친구들과는 잘 지내고, 인사도 잘 하는 성격이다. 세훈이나 주리를 만날 때도 늘 반갑게 인사하던 동급생인데, 이런 짓을 했다니? 그 길로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맞은편에 있는 그 테이블로 성큼성큼 걸어간다.
“너... 이 자식... 잘도...”
남자와 마주앉은, 푸른 탱크톱에 검은 바지를 입은 또래의 여자가 주리를 보더니,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져서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선다.?
“너, 뭔데 우리...”
“너, E반의 외제니였지.”
“아, 그래. 너 G반의 공주리, 맞지.”
외제니는 오히려 자신이 피해자라도 된 것처럼, 따지려는 듯한 얼굴을 한다.
“마침 잘 됐다. 너는 또 뭔데...”
“너는 아예 내가 조각상으로 만들어 줄까?”
주리는 현애와 세훈이 앉은 테이블을 가리키며, 외제니를 노려본다.
“아... 아니야! 그건 아니니까...”
외제니는 겁에 질려 말도 제대로 못 하고 그냥 자리에 앉는다. 이제 주리는 조제에게 곧장 가서, 조제를 일으켜 세운다.
“말해 봐. 누가 시킨 건가.”
“하...”
조제는 얼굴을 찡그리면서도,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자꾸만 딴 데를 보며, 퉁명스럽게 말한다.
“내가 그걸 왜 말해야 하는데? 응?”
“네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나 보네.”
주리는 발밑에 무언가가 있음을 직감한다. 밑을 보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뭔가가 꿈틀대는 게 느껴진다. 바닥에서, 움직이고 있다. 뒤쪽을 돌아본다. 주리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세훈이 곧장 이쪽으로 걸어온다.
“내가 더 빠르다고.”
조제는 아직 고통스러워하는 얼굴이지만, 뭐가 그렇게 자신이 있는 건지, 다시 아래쪽을 보려는 주리를 보며 음흉하게 웃는다.
“‘아차’ 하고 능력을 쓰려고 할 때쯤에는 이미 늦은 거라고?”
“천만에.”
다음 순간, ‘쿵-’하고 뭔가 바닥에 둔탁하게 떨어지는 소리가 난다. 조제의 다른 손이다.
“큭...”
손이 떨어진 바닥은 대리석으로 되어 있음에도, 패이기 직전이다.
“네 두 손을 영원히 떼 버리는 수가 있다.”
“아... 아니야! 그건 아니야!”
세훈의 말에 조제는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빌려고 하지만, 두 손은 서로 멀리 떨어져서 따로 놀고 있다. 거기다가 한 손은 아예 얼어 버려서 못 움직일 것 같다. 하는 수 없이 팔을 비비며 빌어 본다.
“말해. 누가 이러라고 시킨 건지.”
“그... 그...”
조제가 울먹이며 더듬거린다.
“그 누구? 빨리 말해.”
“후드 쓴... 후드 쓴... 그 남자가...”
세훈이 조용히 얼굴을 일그리며 말하자, 조제는 더듬더듬, 억지로 쥐어 짜내듯 말한다.
“그 사람이... 그 사람이...”
“아, 또 그 녀석이야?”
“뭐... 뭐야, 너 그 사람을... 알아?”
“하...”
세훈은 잠시 말없이 먼산만 보더니, 잠시 후 다시 조제를 돌아본다.?
“다음주 월요일 날, 학교 끝나고 우리 따라와, 알았어?”
“아, 아니, 차라리 지금 하는 게 속이 편한데...”
“오늘은 네 녀석이 날잡고 나온 것 같아서 방해 안 하는 거야. 그러니까, 월요일 학교 끝나고 나를 따라오라고. 알겠어?”
“아... 아니... 그런데... 월요일은... 나도...”
“이게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지.”
어느새 세훈 뒤에 선 현애가 조제의 손을 높이 들어 보이고서, 사람들이 다 들으라는 듯 말한다.
“동상 걸린 채로 붙여줄까?”
“아...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조제는 양팔을 비벼대며 울상을 짓는다.

바로 그때.
“주문하신 케밥 나왔습니다!”
어느새, 현애와 세훈, 주리의 테이블 앞에 서빙 로봇이 대기하고 있다. 로봇의 음성을 듣자, 세훈과 주리는 바로 테이블로 돌아가고, 현애는 바닥에 엎드린 조제의 손을 그의 눈앞에 던지며 말한다.
“월요일에 보자고. 안 오면, 그 때는 정말로 냉동인간이 될 각오를 해.”
“아... 알았어. 알았어!”
조제는 완전히 울상이 되어 현애에게 울며불며 빈다.
“얼른 와, 먹자!”
세훈이 현애를 부르자, 현애는 바로 테이블로 돌아가기 전, 조제를 한 번 더 쏘아보고 테이블로 돌아간다.

“생각대로야. 정말 맛있다. 그치.”
“어때, 내가 먹자고 한 거 먹기를 잘했지?”
“처음이야. 이렇게 맛있게 하는 데는.”
현애, 세훈, 주리는,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소고기 케밥과 닭고기 케밥을 맛있게 먹고 있다. 한 입 한 입 먹을 때마다, 입속에서 고기의 풍미가 스며들고, 그 향긋함이 머리끝과 발끝까지 전달된다.
“그건 그렇고 말이야...”
한참 맛있게 먹던 중, 주리가 말을 꺼낸다.
“이것도 메이링 씨한테 알려야 하지 않을까?”
“응?”
현애와 세훈이 일제히 주리를 본다.
“학교 밖이라고, 우리 동네 밖이라고 안심을 하면 안 될 것 같아.”
“후...”
현애가 반대쪽 테이블을 한번 노려보고는, 시선을 주리 쪽으로 향한다.
“조금이나마 잊어버리려고 놀러 온 건데 말이야...”
“하지만 자꾸 녀석이 우리를 노리니까...”
주리의 목소리가 순간적으로 올라간다. 얼굴도 조금 벌게진다. 이마 한쪽에는 핏발이 설 정도다.
“그러니까, 여기서 놀 때만이라도 잊어버리자고. 자꾸 생각하면, 더 머리 아프니까.”
“아... 그래. 당사자가 그러자니까, 일단은 알겠어.”
주리는 일단은 고개를 끄덕인다. 일단은.

케밥으로 배를 채운 세 사람은, 카페에 가서 아이스커피를 사 마신 다음, 여기저기 구경할 만한 곳들을 찾아 걸었다. 사리역 남광장 앞에 있는 약속장소 ‘괴물상’ 앞에서 사진도 찍고, ‘대학거리’의 가로수길도 걸어다니고, 강변공원의 모래사장도 걸어다니고, 모래사장이 보이는 디저트 카페에서 디저트도 사먹었다.
오후 3시 30분. 세 사람은, 사리역 남광장 괴물상이 보이는 ‘청춘거리’ 한가운데 서 있다.
“자, 이제 어딜 가 볼까?”
세훈의 말에 현애와 주리는 이제 또 어디로 가야 하나, 말없이 고민에 빠진다. 약 1분여의 시간이, 세 명만 사거리 한가운데 선 채로, 마치 거리를 지나는 수많은 인파의 강 사이에 있는 섬처럼, 흐른다.
“노래방 어때?”
소음 속의 정적을 깨고 말을 꺼낸 건, 주리다.
“안 가 본 지도 한참 됐잖아?”
“아, 그거 좋지. 현애 너는?”
세훈의 말에 현애도 고개를 끄덕인다.
“좋아. 그럼 다음은 노래방이다.”

세 명이 도착한 곳은, 사리역 남광장으로부터 청춘거리가 시작되는 지점에 있는 노래방. 위치도 좋고 시설도 좋다고 정평이 나 있는 만큼, 사리역 번화가에 놀러 오는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현애, 세훈, 주리가 한 방에 들어온다. 6명 정도는 들어갈 수 있는, 크지도 작지도 않은 방이다. 의자에 앉자마자, 세훈이 테이블 한가운데 있는 홀로그램을 띄운다.
“자, 누구부터 부를래?”
세훈의 말이 끝나기도 무섭게, 현애가 마이크를 잡는다.
“오, 뭔가 부르고 싶었던 게 있나 본데.”
“맞아.”
현애가 모처럼 눈을 초롱거리며 말한다.
“부르고 싶어서 입이 근질거리는 노래가 있거든.”
“음, 뭔데?”
“‘표창을 송송’이라고, ‘라프레사’라는 아이돌그룹이 부르는 노래가 있거든.”
“라프레사...?”
세훈과 주리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게 하나 있다. 라프레사...
“그거, 그 뭐냐... 코하쿠 선배가 있다는 그 아이돌 그룹 아니야?”
“맞아. 거기였어.”
세훈과 주리가 맞장구를 치자, 현애는 머리를 허탈하게 웃으며 머리를 긁는다.
“하... 왜 난 몰랐지? 우리 학교 선배가 멤버였어?”
“인터넷 검색 좀 하지 그랬어.”
아무튼, 현애는 노래를 위해, 물도 마시고 목청도 몇 번 가다듬고 마이크 테스트도 한다. 그다음 홀로그램에 나온 노래 선택 버튼을 몇 번 누르자, 이윽고 홀로그램에 노래와 영상이 나오기 시작한다.

사랑을 담아 네 맘에 표창을 송송 내 맘의 표창을 송송
널 향한 내맘 날아오르네
날아가라 내 맘의 표창 사랑을 전하는 닌자 송송
내 맘을 담아 사량의 표창

히히히-

뭐지? 뭐였지?
방금, 이상한 소리가 들렸는데...
아니겠지... 아니겠지.
계속 노래를 부른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지금은 노래밖에 생각하지 말자.

아무튼, 그렇게 노래를 다 부르자, 점수가 나온다.
98점.
“우와! 너 진짜 라프레사같이 부르는데. 추임새도 잘 넣고 말이야.”
“라이브를 보는 것 같았어. 정말.”
세훈과 주리가 칭찬해 주자, 현애도 마치 자신이 아이돌이 된 것처럼 웃는다.

히히히-

또 들린다. 현애의 뇌리에, 바늘로 찌르는 것처럼.
“누가 방금 웃었는데. 기분 나쁘게 말이야.”
“뭐지? 우리는 아무것도 못 들었어. 여기에 다른 사람이 있을 리도 없고.”
“그럼, 내가 들은 건 뭐야? 누군가가 내 바로 뒤에서 기분 나쁘게 웃고 있다고! 전에 학교에서 들은 거하고 똑같은 웃음소리 말이야!”
분명, 세훈은 아무것도 듣지 못했다. 하지만, 하나는 알 수 있을 것 같다. 현애의 말이 맞다면, 이건 공격이다. 누군가의 공격이다. 현애가 잔뜩 긴장을 하고 있었다면, 아까 케밥집에서 공격을 당했음에도, 주리의 말에 ‘그냥 잊어버리고 즐기자’라는 말을 할 리도 없었을 것이고, 노래할 때도 자연스럽게 하지를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웃음소리가 자꾸 들린다? 뭐지?
“일단 몇 곡만 더 부르고 가자고.”
“뭐야? 그게 지금 해결책이라고 말하는 거야?”
“내 말은, 일단 좀 흥분을 가라앉히고 생각해 보자는 거지.”
“......”
“그 웃음소리, 확실히 똑같았던 거야?”
“그래. 조금 경박한 남학생의 웃음소리였어.”
“좋았어. 월요일이면 찾아낼 수 있겠네. 일단은 크게 신경쓰지 말고, 즐기다 가자.”
“뭐? 월요일? 나는 지금 당장 찾아내고 싶은데?”
현애가 순간적으로 눈을 부릅뜨고, 세훈을 노려본다. 잠시나마, 세훈은 현애를 처음 만났을 때의 한기를 다시 느낀다. 주리가 현애를 붙들고 진정시킨다. 주리의 손에도 그 한기가 전해진다.
“네 마음은 잘 알았어.”
세훈이 현애의 어깨에 손을 얹고 말한다.
“하지만 ‘움직일 수 없는 확실한 증거’를 찾아내려면, 일단은 후퇴할 때도 있는 법이야.”
“그건 그렇지만...”
“내 말 들어. 월요일이면 반드시 찾아낼 수 있으니까, 작전을 세우자고.”
“..... 그래.”
현애는 마지못해 말하는 듯, 풀이 죽어 대답한다.
“좋아. 그러면, 이제 그건 생각하지 마. 네가 흔들릴수록 그 녀석은 더 신나서 날뛸 테니. 신경쓰지 말고, 놀다 가자고.”
“그... 그래.”
시어하트어택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4 댓글

마드리갈

2020-05-31 13:16:54

노래방은 대학 신입생 때 한번 가 본 게 전부라서 꽤 낯선 장소, 그래서 창작물에서 접한 게 거의 전부네요. 그렇다 보니 창작물에서의 노래방 관련의 묘사는 여러모로 흥미롭게 보이고 있어요. 나는 친구가 적다, A채널, 아이돌마스터, 첫 갸루, 야토가메쨩 관찰일기 등의...

참가한 사람들이 모두 파악되는 한 공간에서 갑자기 이상한 목소리가 들린다면...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하네요.

게다가 경박한 웃음소리라면 정말 기분나쁘기 짝없는...


작중의 아이돌그룹 라프레사의 노래 "표창을 송송" 에서는 이것도 느꼈어요.

청춘 돼지는 바니걸 선배의 꿈을 꾸지 않는다에 나오는 아이돌그룹 스위트 불릿(Sweet Bullet). 이 경우에는 그룹의 이름이 무기에서 유래한 것인데 라프레사의 경우는 노래의 제목과 가사가 무기에서 유래하는 게 재미있어요.

그러면 작중의 공연영상도 소개해 둘께요.


시어하트어택

2020-05-31 23:22:33

분명 두 명만 있는데 제3의 목소리가 들린다든가, 아니면 9명이 있어야 할 자리에 10명째의 뭔가가 있다든가 하면 여간 무서운 게 아닐 겁니다. 추리소설이나 호러영화에서 자주 쓰는 소재이기도 할 겁니다.


같은 무기 소재인데 저렇게 분위기가 다르니 재미있네요.

SiteOwner

2020-06-02 20:29:57

영어의 관용표현 중에, 현행범으로 잡힌다는 의미의 caught red-handed가 있습니다. 글자 그대로, 피가 묻어 붉은 얼룩이 손에 남은채로 잡힌다는 것인데, 이 상황이라면 손이 굳은채로 잡혔으니까 caught frozen-handed라고 써도 될 것 같습니다. 손의 주인공 조제, 그리고 국면전환을 시도했다가 도리어 역풍만 맞고 만 외제니의 처참한 몰골이 그야말로 가관입니다.


이 장면에서 떠오르는 게 하나 있길래 소개해 보겠습니다.



마왕님 리트라이에서 천재 의사이자 중증의 새디스트인 키리노 유우가, 표면상은 광대로서 일하는 암살자 카미야의 정체를 파악하고 마술을 구사합니다. 이 마술의 결과 카미야는 팔이 실종되어 버리다가 그 다음에는 팔이 반대로 붙어 버리는 일이 벌어지다가 마지막에 팔이 제대로 붙는데, 귀여운 목소리의 키리노 유우가 갑자기 목소리를 낮춰 귀에다 대고 무섭게 협박한 뒤에 다시 귀여운 목소리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품 속의 독약 냄새 지독해. 사람을 죽일 거면 좀 좋은 걸 써야지, 음? 다시 내 시야에 띄면 그때는 산 채로 회떠버릴 거니까 조심해." 라고.


1990년대 후반, 대학생 때의 일이었습니다.

어떤 친한 여학생이, 노래방에 갔다가 유령을 만난 줄 알아서 무서웠다는 이야기를 해 준 적이 있습니다. 여학생들끼리 노래방에 갔는데 갑자기 남자 목소리가 나서 기겁을 했다나요. 분명 여자들만의 모임이었다는데. 그런데 그 목소리의 정체가 당시로서는 신기능이었던 코러스 기능에서 나온 것이었다고 합니다. 그걸 알고 나서야 겨우 안심하긴 했다고...


다른 창작물에서 나온 장면,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일화가 같이 생각나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시어하트어택

2020-06-02 23:39:35

제가 쓴 그 장면과 비슷한 게 있었네요. 물론 세부적인 양상은 많이 다릅니다만, 이것저것 비슷한 게 많아 흥미롭습니다.


그분 정말 많이 놀랐겠습니다. 단 이번 회차의 장면은 그런 코러스 기능이 아니라는 게 문제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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