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헛구역질이 날 때가 있다. 작년부터 앓았는데, 요즘 들어 다시 심해져서 양치질을 할 때마다 한 두 번씩은 반드시 켁켁 거려야만 양치질을 온전히 끝낼 수 있다.
작년 봄에 이것 때문에 병원에 갔는데 뚜렷한 병명은 듣지 못했다. 의사 말로는 스트레스 때문에 그럴 수 있다고 하는데... 그 말이 정답이긴 하다. 엄청난 스트레스가 당시에 있었고, 지금도 그 스트레스는 있으니까.
오늘 아침에도 양치질을 하며 헛구역질이 나왔고 한 번 입 속에 있는 걸 뱉어내야 했다.
입을 헹구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헛구역질은, 내 가슴이 음식물을 거부하기 때문에 생기는 게 아닐까.
스트레스, 고민을 앞에 두고 내 가슴이 나에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이렇게 심각한 문제가 있는데 밥이 넘어가냐 이 돼지야!"
그래서 내 식도를 자극하고, 쥐어짜서 삼켰던 것들을 다시 밀어내려 하는 거다.
2. 그러나 나는 오늘도 배가 고프고, 끼니 때에 맞춰 밥을 먹는다. 가슴이 나에게 헛구역질로 식욕을 떨어뜨리려고 하는 반면에, 나의 뇌는 나에게 배고프다는 신호를 민감하게 보내며 말한다.
"먹어. 먹어야 살고, 살아야 문제가 해결된다. 네가 죽으면 문제 해결이고 뭐고 없어. 일단 먹어. 그리고 살아."
단순한 생존 본능의 발현이기도 하지만, 내 뇌는 지금의 고민 거리에 대해서 가장 기계적인 해결 방안을 내게 제시해 주고 있다.
내 기분이 어떻든, 일단 살아남아서 해결을 보든 좌절을 하든 하라는 얘기다.
3. 이렇게 생각하고 보니, 내 속에는 두 가지 다른 인격이 사는 것 같다. 가슴의 시인과 뇌의 과학자.
시인은 가슴의 용광로 같은 불길 속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내게 세상의 모든 감정을 가져다가 붙인다.
과학자는 뇌 속의 빙하 같은 얼음 속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내게 가장 필요한 것들만을 기계처럼 일러준다.
이 둘은 항상 나의 행동에 영향을 끼치려고 한다. 그리고 그 둘이 만나는 곳은 지금 내 식도다.
과학자는 식도에게 음식을 삼키라고 명하고, 시인은 음식을 토해내라고 명한다.
그래서 난 오늘도 음식을 먹고, 또 헛구역질에 시달린다.
4. 일단 오늘까지도 밥 잘 먹고 구토까지는 이르지 않고 잘 살고 있으니 과학자가 이기는 거 같지만...
시인이 내 가슴 속에서 난동을 피울 때면 마치 달군 돌이라도 삼킨 듯이 가슴 속이 뜨거워서 잠도 못 이룰 때가 있다.
이 둘 다 내 속에 있는 나의 일부분이고, 딱히 버릴 생각은 없다.
바람이 있다면, 이들이 정말 내 온전한 일부분으로서 내가 이들을 지배하는 것이다.
지금의 나는 아무래도 이 둘에게 휘둘리는 인형밖에 안 되는 것 같다.
5. ...
대강당과 티타임, 아트홀 관리를 담당하고 있는 운영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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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댓글
마드리갈
2013-04-14 20:14:38
그 대척점에 선 둘을 제대로 다스릴 수만 있다면 정말 좋을 거예요.
보통 그게 잘 되지 않아서 여러 갈등과 고민의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지만요.
시같은 수필, 잘 읽었어요.
SiteOwner
2018-10-12 23:43:17
두 가지의 다른 인격이 살고 있다...저도 그렇게 느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두 인격 사이에서 여러 번민을 하고 있고, 겉으로 나타나는 것과 마음 속에만 있는 것이 별로 잘 안 맞는 경우가 있어서 괴로워하다가도 다시금 현실을 인정하며 살다가 또 고민하다가를 반복하다가...이렇게 세월이 흘렀습니다.
저 또한 그 두 인격을 잘 통제했으면 싶습니다.
좋은 글에 이제야 코멘트를 하게 된 점에 양해를 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