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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능력자 H] 24화 - 쇳가루 냄새의 그녀(3)

시어하트어택, 2020-06-26 07:50:23

조회 수
140

1학년 E반 교실. 외제니는 머리가 약간 헝클어지고, 얼굴을 잔뜩 찡그린 채, 입에서는 거친 숨을 내쉬며, 눈앞을 노려보고 있다. 손은 어느새 문짝에서 뗐고, 얼어붙어 있었던 때문인지, 아니면 힘을 줘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잔뜩 벌게져 있다.
“내게 이런 굴욕을 주고도 무사할 것 같아?”
외제니의 눈은, 다시 불타오르고 있다.
“오늘 반드시 결판을 낼 테니, 그렇게 알라고!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외제니가 말을 마치자마자, 복도의 바닥이 반사광을 내기 시작한다. 단 몇 초 만에, 외제니의 눈앞의 복도는 은색의 금속이 되어 있고, 신발 바닥 역시 매끄러운 금속이 되어 있다.
“기대하라고오오오!”
외제니는 준비 자세를 취하더니, 곧이어 마치 스케이트 선수처럼, 총알 같은 속도로 복도를 미끄러져 달린다.

동관 근처의 복도. 걸어가는 사람은 현애 한 명이다. 레아와 사이는 함꼐 걷던 중에 현애가 다른 길로 먼저 가라고 해서 먼저 갔다. 혼자 복도를 걷던 중, 동관 계단 쪽에 다다랐을 때. 뭔가 불길한 냄새가 다시 나기 시작한다.
이 기분 나쁜 냄새... 또 쇳가루 냄새다!
“외제니 너... 도대체 어디 있는 거냐?”
현애의 말에도 그 아무 반응도 없다. 조금씩 강해지는 쇳가루 냄새 말고는. 그 쇳가루 냄새가 특히 강하게 풍겨오는 방향은... 계단 아래쪽, 그리고 보이는, 이상할 정도로 반반한, 마치 미끄럼틀처럼 변형된 계단!
“역시, 그쪽이었던 거냐!”
뭔가가 아래쪽에서 미끄러져 올라온다. 오르막길이라 속도가 줄어들기는 하지만, 그래도 빠르다! 현애는 본능적으로 옆쪽으로 몸을 던져 피한다.
다음 순간.
뭔가가, 소리없이, 현애의 옆으로 미끄러져 온다. 마치 결승전을 통과한 스케이트 선수처럼.
“제법 순발력이 있는데?”
바로 옆에서, 익숙한, 쇳가루 냄새가 나는 목소리가 들린다. 현애는 돌아보지 않는다.
“여기까지 납셔 주다니 영광이야.”
“그럼. 오늘 결판을 지을 테니까 말이지!”
현애는 1초도 안 되는 시간에 자리에서 일어나, 냅다 달리기 시작한다. 마치 먹이를 눈앞에 둔 포식자라도 된 듯, 외제니가 뒤를 쫓는다.
“부질없는 짓이야. 금방 거기도 미끄러워질 테니!”
“과연 그럴까?”
현애는 그렇게는 말했지만... 아차! 발 바로 뒤에까지 금속이 되어 가고 있다! 이대로라면, 미끄러지고 말 것이다! 마침 옆에 체육 창고가 보인다. 냅다 그리로 몸을 던진다.
“그러면 내가 거기로 안 들어갈 줄 알고?”
바짝 뒤쫓던 외제니도, 현애를 따라 체육 창고로 들어간다. 곧이어 문이 닫힌다.

창고 안에서 잠시 숨을 돌린 현애는, 곧이어 뒤를 돌아본다.
외제니가 서 있다.
마치 이미 승리한 것처럼, 의기양양하게.
전쟁영웅의 동상이라도 된 것처럼.
이제, 물러설 수 없다.
“차라리 달리다가 넘어지는 게 나았을 거야. 이렇게 막다른 곳에서 마주치다니, 네 녀석의 운도 여기까지인 것 같은데!”
“해 보시지.”
“이미, 내 능력은 ‘풀’ 전개하고 있단 말이다아아아아아!”
외제니의 일갈이 창고에 울려 퍼진 그 순간, 불쾌할 정도의 쇳가루 냄새가 현애의 코를 찌른다. 주위를 돌아본다. 어두운 창고 전체에서, 희미한 반사광이 비친다. 창고 전체가, 금속이 되어 있다! 심지어, 분명 원래는 금속 재질이 아니었을 공이나 상자, 심지어 매트까지도! 하지만, 방 전체만 금속으로 만들었다면, 분명 승산은 있을 터다...
“뭐... 뭐야?”
움직일 수 없다. 조금도. 현애의 발은, 마치 동상처럼, 그 자리에 그대로 붙어 있다! 밑을 내려다본다. 신발이, 은색의 금속이 되어, 현애의 발을 꽉 사로잡고 있다. 나갈 수 없게, 그 자리에 그대로.
“이게 뭐야... 어떻게 된 거야!”
“뭐긴 뭐겠어. 네 발밑까지 전부 금속으로 만들어 버렸지. 자, 그다음은 뭘까? 자유롭게 상상해 보란 말이지!”
현애는 대답하는 대신, 입술을 꽉 깨문다.
“말을 안 하겠다는 거지? 무슨 생각으로 말을 안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설마 그렇다고 하더라도, 나의 답은 변하지 않지!”
그 순간, 더운 바람이 현애의 얼굴을 때린다. 그냥 더운 바람도 아니고, 마치 사막의 모래폭풍같이 뜨거운 바람이 불어온다! 머리 위 천장, 옆의 벽, 어느 쪽에서나!
“조금 전에 창고 안에 히터 온도를 최대한으로 올렸지. 거기다가 너는 움직일 수 없고, 이 창고 안은 열이 잘 통하는 금속으로 되어 있지! 계기판에 표시되는 온도는 60도, 70도 식이어도, 이 안의 실제 온도는 120도, 130도 이렇게까지 올라가지! 네가 현명한 판단을 내리지 않으면, 바비큐가 되는 건 시간 문제란 말이다아아아앗!”
외제니는 의기양양하게, 승리자의 웃음을 지으며, 현애의 바로 앞까지 다가가 얼굴을 들이대며 말한다.

“얼른 무릎을 꿇으라고, 이 예의도 없고 부모도 없는 것아!”
현애의 바로 눈앞에서, 외제니가 독기와 살기를 모두 토해낸다. 이제껏 본 적 없는 악의가, 현애의 온몸을 휘어잡는다. 마치, 인간의 영혼을 막 빼앗으려는 악마와도 같이.
”안 그러면, 너한테 빌던 조제보다 더한 꼴로 만들어 줄 테니까 말이야아아아!”
현애의 온몸이 떨린다. 외제니의 독기 앞에. 눈이 떨리고, 이가 맞부딪쳐진다.
거기에다가 비 오듯 흐르는 땀과 점점 거칠어지는 숨.
온몸이 서서히 익어 가는 것만 같다.
이 더위, 지옥과도 같은 더위 속에.

하지만 현애는 여전히 말이 없다.
“왜 그래? 더위를 먹어서 그래? 빨리 입을 열란 말이야!”
외제니는 자신도 땀을 흘리면서도, 다시 한번, 현애의 얼굴에 대고 소리 지른다. 입꼬리는 올라간다. 마치 이미 승리를 쟁취하기라도 한 듯.

“맞아. 네 작전은 완벽했어. 인정할게.”
땀마저 증발해 버리는 더위 속에서, 현애는 거친 숨을 쉬며 입을 연다.
“그래, 좋아. 그런데 다음 말을 듣고 싶다고?”
외제니는 여전히 낄낄대며 자신의 귀를 현애에게 가까이 가져간다.
“좀 제대로 말하란-”
그때. 외제니의 손이 잡힌다. 얼른 팔을 비틀어 빼려는데, 현애가 또 속삭인다.
“그리고 덕분에, 잘 배웠지 뭐야. 고마워해야겠어.”
그리고 외제니는 깨닫는다. 뭔가 잘못됐다!
손에 감각이 없어져 가고 있다. 손을 움직일 수 없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점점, 온도가 내려가고 있다! 외제니가 이제껏 더위에 흘렸던 땀도 전부 차갑게 식어 버렸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이제껏 열을 전달했던, 금속으로 된 방이, 이제는 반대로, 창고 전체로 냉기를 증폭시키고 있다. 창고 안에 히터를 최대한으로 가동했음에도 불구하고, 히터의 열이 점점 약해지고 있다. 오히려 현애에게서부터 뿜어져 나오는 냉기가, 히터의 열기를 모두 잡아먹고, 오히려 냉기를 점점 더 키우고 있다.
어느새, 금속으로 된 창고 안에, 서리가 끼기 시작하더니, 선반에는 고드름이 끼고, 외제니의 머리에도 눈송이가 끼기 시작하고 있다. 외제니의 이는 호두까기 인형마냥 딱딱 소리를 내고 있고, 얼지 않은 손도 움직이지 않았는데도 저절로 벌벌 떨리고 있다.?
하지만, 외제니는 그만둘 생각이 없는지, 여전히 독기어린 눈으로 현애를 노려보며 말한다.
“이런다고 내가 무릎 꿇을 것 같아!”
“그러니까 처음부터 그 후드 쓴 녀석의 말을 안 들었으면 됐을 거 아니야.”
“보자 보자 하니까!”
외제니는 독기를 가득 담아 소리 지르지만, 그것이 채 다 나오기도 전에...
퍽-
외제니의 오른쪽 뺨을 주먹이 강타한다. 순간 외제니의 몸이 허공에 붕 뜬다. 뺨이 얼얼해지는가 싶더니, 얼어붙는다. 외제니의 몸이 채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
퍽-
퍽-
퍽-
퍽-
“크으윽...”
빠른 속도로, 주먹들이 날아든다. 허공에 뜬 상태에서, 속절없이 얻어맞는다. 거친 숨, 그 거친 숨마저 쉬지 못하겠다. 숨이 나오는 족족 얼어붙는다...
외제니는 바닥에 쓰러진다. 그 순간, 마치 빙하지대에서 탐험하다 쓰러진 탐험가가 된 것만 같다... 그대로 정신을 잃는다.?
“후...”
외제니가 정신을 잃은 그 순간, 창고 안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온다. 일단 창고 문 쪽에 있는 히터부터 끄고, 현애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쓰러져 있는 외제니를 내려다본다. 정신을 잃은 채로, 입은 다물지 못하고 있다.
“처음으로 제대로 싸운 것 같은데. 남자친구보다 더 꼴사나웠지만 말이야.”
창고 문을 열고 발걸음을 내딛기 전, 시계를 본다. 시계는, 3시 20분을 가리키고 있다.
“어, 뭐야? 3시 20분? 하... 늦어 버렸네. 이 녀석 때문에 몇 분이나 잡아먹은 거야. 어쨌든, 빨리 가야지!”
창고 문을 열어 두고, 쓰러져 있는 외제니를 거기 놔둔 채로, 현애는 서둘러 만화부실로 발걸음을 옮긴다.

한편 만화부실.
“현애는 아직도 안 온 거야?”
한가운데 홀로 서 있는, 안경을 쓴 웨이브 머리의 2학년 남학생이 초조해하며 말한다. 이 학생의 이름은 자윤진. 만화부장이다. 4개의 원탁에 둘러앉은 사람들은 대부분 미린고등학교, 미린중학교 학생들이고, 미린초등학교 학생도 몇 명 보이고, 미린대 선배도 2명 앉아 있다.
“대체 어떤 녀석이 메시지를 위조해서 보낸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때, 부실 문이 열리고, 여학생 2명이 들어온다. 다름아닌 레아와 사이. 윤진이 벌떡 일어나며 말한다.
“너희들... 현애는 안 데려왔어?”
“그게... 일 좀 처리하고 먼저 오라고 해서요.”
“일? 무슨 일?”
“아, 그러니까... 그런 게 있다고 하네요.”
사이가 대충 둘러댄다.
“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윤진 앞에 앉은 나타샤도 한숨을 쉰다.
바로 그때.
지잉- 하고 문이 열리더니, 갈색 머리의 여학생 한 명이 부실에 들어선다.
“제가 좀 늦었죠?”
여학생의 생기발랄한 목소리. 듣자마자, 바로 모두들 알아듣는다.
“어? 왔잖아!”
나타샤가 여학생을 보고 반갑게 말한다.
“야, 남궁현애, 너 어디 갔다가 이제 온 거야?”
“아, 별거 아니라니까. 그냥 일이 있어서 그런 거야.”
“정말이야?”
“그럼.”
현애는 겉으로는 아무 일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나타샤는 어느 정도 알 것 같다. 그 이상할 정도로 강한 웃음은, 무슨 큰일이 있었다는 이야기. 그리고 아마도 그걸 감추기 위해서일 것이다. 하지만 굳이 묻지 않기로 한다. 현애가 지금 무슨 상황인지 잘 알 뿐만 아니라, 나타샤 자신도 ‘평범한 일상’이란 게 얼마나 소중한 건지 잘 아니까.
“다행이네. 자! 여기 너를 위해 비워 둔 자리니까, 앉으라고.”
“감사합니다!”
윤진이 비어 있는 자리를 가리키자, 현애는 바로 그 자리로 가서 앉는다.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내쉬어진다.
“자, 그럼 현애도 왔으니까, 본격적으로 한번 시작해 볼까?”
“네, 선배님!”
윤진의 말에, 만화부는 다시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띠기 시작한다.
시어하트어택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3 댓글

마드리갈

2020-06-26 16:28:43

외제니의 금속화 능력의 양면성이 여기서도 다시 잘 드러났네요.

금속은 열전도율이 높은 물질. 물론 이것은 가열에서도 냉각에서도 동일하다 보니, 이 두 가지를 다 생각하지 않으면 안될 일이죠.


새로운 캐릭터가 나왔네요. 만화부 부장 자윤진.

이름이 꽤 특이하네요. 한국계인가요? 한자가 어떻게 될지가 궁금해지네요.

SiteOwner

2020-06-27 18:28:11

외제니의 회심에 찬 공격, 그리고 현애의 카운터펀치.

역시 이것도 명장면이 아닐 수 없습니다. 뭐랄까, 현애의 냉기 능력은 외제니의 금속화 능력에 대한 일종의 상평형(Phase equilibrium) 구현같이 보이기도 합니다. 상평형은 고체, 액체, 기체의 상태 중 둘 이상이 동시에 존재할 수 있는 경우인데 이럴 때에는 온도나 압력의 변화로 그 상태가 달라지기도 합니다. 즉, 금속화된 상태가 되도록 가해진 힘을 역으로 조종하여 상대에게 타격을 입히는 것같이 보이기도 합니다.


그나저나 그 큰 일을 겪고도 회복이 빠르군요, 현애는...

역시 가장 감정이입이 되는 캐릭터답습니다.

시어하트어택

2020-06-28 21:59:23

저 장면은 죠죠에 기묘한 모험에 나오는 여러 장면들을 상상하며 썼죠. 그러다 보니 하이라이트는 뭔가 죠죠와 많이 닮아지는 것 같군요... 오너님이 그렇게 봐 주셨다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저 '자윤진'이라는 이름은 표기를?慈允珍으로 씁니다. 성씨의 경우 희귀하기는 합니다만 실제로 있는 성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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