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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능력자 H] 29화 - 발 조심!

시어하트어택, 2020-07-15 08:51:45

조회 수
124

목요일 저녁 7시, 미린구 북부 법조타운의 카페 ‘술탄 팰리스’. 매그넘 골드 타워의 1층에 있으며, 이 주변에서 근무하는 검사, 변호사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카운터에서 가까운 테이블에, 야구모자를 쓴 메이링이 앉아 있다. 옆에는 남성 2명이 앉아 있다. 앨런과 자비에는 아니다. 메이링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홀짝대며 마시면서도, 태블릿을 들고 자꾸 뭔가를 유심히 살펴보고 있다.
“뭘 그렇게 열심히 보는 거야?”
메이링에게 말하는 갈색 머리의 남성의 이름은 제리 듀폰. 그리고 그의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는 남성의 이름은 ‘계우준’이다. 둘 다 메이링과는 친한 친구 사이지만, 연인 관계는 절대 아니다.
“아, 면접 온 사람들 프로필 한 번 더 보는 거야.”
“야, 카페에까지 와서 일하기냐.”
“그래. 모처럼 만났으니까 잠깐 좀 접어 두라고.”
제리와 우준이 한목소리로 말하자, 메이링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태블릿을 가방에 넣는다.
“자, 그래. 너희들은 요즘 어떻게 지내?”
“나? 하... 이놈의 과장.”
우준이 푸념을 늘어놓는다.
“맨날 성질부리고 말이야. 나 같은 신입이 만만하니까 그렇지.”
“뭐야, 내가 인터넷에서 유머글로만 봐온 거잖아.”
옆에서 제리가 우준을 토닥이며 말한다.
“힘내, 힘내라고.”
“하... 고맙다.”
우준은 한숨을 푹 쉬고는 커피를 쭉 마신다.
“역시 이렇게 친구들하고 만나야지 위로를 받지.”
“쩝...”
메이링도 무겁게 고개를 끄덕인다.
“내가 그래서 검사를 그만둔 거라니까.”
셋은 약 1분간을 아무 말 없이 커피와 디저트만 먹고 마신다. 말은 안 해도 눈빛만으로 서로가 하려는 말을 알 것 같다.
“그건 그렇고 말이야.”
메이링이 침묵을 깨고 말한다.
“너희 주변에, 요즘 혹시 이상한 일 안 일어나냐?”
메이링의 말에 제리와 우준은 입이 근질근질해져서는, 기다렸다는 듯 말한다.
“말도 마. 오늘 아침에도 우리 아파트 103동에 고양이집 있지? 그게 산산조각이 나 있더라. 새벽에 무슨 폭발음 같은 게 들리길래 ‘별 것 아니겠지’ 하고 그냥 잤는데, 오늘 출근하려다 보니까 그 고양이집이 박살 난 걸 봐 버린 거 있지.”
“맞아. 나도 어디서 들었는데, 며칠 전부터 어느 공원묘지 근처 주택가에 좀비 같은 게 나타난다더라. 그래서 구청 같은 데에 민원도 들어오고 그랬다는데...”
제리가 한참 이야기를 풀려는 그때.
“어, 메이링 씨, 제리, 여기 다 있었네.”
메이링과 제리, 우준이 목소리가 들린 쪽을 돌아본다. 정장을 잘 차려입은 은발의 변호사 한 명이 서 있다. 이 사람은 제임스 듀폰. 유명 로펌 소속으로, 제리의 사촌 형이기도 하다.
“제임스 듀폰 씨, 웬일이야. 이 시간에도 바쁘게 지내야 할 분이.”
“아, 오늘은 좀 빨리 나왔어.”
하지만 제임스는 전혀 즐거운 얼굴이 아니다.
“그건 그렇고 메이링 씨, 나 좀 도와줘.”
“왜 그래? 듀폰 씨까지.”
“주변에 요즘 이상한 능력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어. 시간 되면 우리 동네에 조사 좀 해 줄래?”
“걱정 마. 그런 건 다 할 거니까.”
“아... 고마워.”
제임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5월 16일 금요일 아침, 하늘에는 구름 몇 점만 떠 있고, 바람은 시원하게 부는 아침이다. 여느 금요일과 마찬가지로, 현애와 주리는 함께 미린고등학교 근처의 주택가를 걷고 있다.
“야, 너희들만 먼저 가기야?”
현애와 주리 뒤에서 한 남학생의 목소리가 들린다. 돌아보니 세훈이다.
“어후, 나도 좀 같이 가자!”
“그럼 빨리 와!”
세훈은 잰걸음으로 걸어, 현애와 주리 바로 뒤에까지 따라온다.
“하... 좀 같이 가자니까.”
세훈이 잠깐 숨을 돌리기 위해 뒤를 돌아보는데, 누군가 얼굴이 벌게진 채, 이리로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
“음? 앙드레는 아닌데...”
좀더 가까이 오자, 누군지 알 것 같다.
“미셸! 왜 그렇게 서두르는 거야?”
“아... 빨리 가서 할 게 있어!”
미셸은 세훈의 말도 들은 척 만 척하며 점점 더 빠르게 발걸음을 재촉한다. 길에 가는 다른 친구들이나 선배, 후배들이 인사를 해도 손만 흔들며 뛰어갈 뿐이다.
그런데...
“엇!”
현애의 눈에, 보인다. 미셸이 뭔가 묘한 자세로, 두 팔을 버둥거리며, 몸의 균형을 잃고, 앞으로 고꾸라지고 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다. 주위에 특별히 수상한 건 보이지 않았는데!
하지만 금방, 미셸은 손으로 땅을 짚는다. 그나마 다행이다. 완전히 고꾸라져 넘어졌다면 어떻게 될 뻔했는가!
“야! 미셸, 괜찮아?”
세훈과 주리가 일제히 미셸에게 달려가며 말한다.
“어떻게 된 거야?”
“아... 갑자기 뭔가 발이 걸리더라. 분명히 눈앞에는 아무것도 보이자 않았는데...”
“그래?”
세훈은 마치 범행 현장을 수색하는 형사라도 된 듯, 미셸이 넘어진 곳 주위를 살핀다.
“발에 바위나 실 같은 게 걸렸어. 순간 균형을 잃고 넘어졌는데, 땅을 짚고 보니까, 그런 실 같은 건 하나도 안 보이네.”
미셸은 불안했는지 계속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한다. 현애와 주리도 주위를 돌아보지만, 실 같은 건 보이지 않는다. 전혀.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길을 잘만 지나다니는데...
“좀더 조심했어야지.”
“그래. 내가 너무 서둘렀던 것 같네.”
미셸은 손을 털고 자리에서 일어서며,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그리고 다시 걸음을 재촉한다. 이번에는 뛰지 않고, 그냥 발걸음만 빠르게 해서, 교문 쪽으로 빠르게 사라진다.
“뭐가 어떻게 된 거지?”
세훈은 미셸이 넘어진 곳에서 여전히 떠나지 않은 채, 계속 주변을 살피며 말한다.
“이 주변에는 돌부리나, 실 같은 건 하나도 안 보이는데...”
“지금은 신경 쓰지 마. 이따가 생각하자고.”
주리가 세훈을 돌아보며 말하자, 세훈은 바로 현애와 주리를 따라온다. 여전히 머리를 긁으면서.

그리고 길가에 있는 한 가게. 갈색 머리, 짙은 피부의 미린고 남학생 한 명이, 가게 안에서 물건을 고르고 있다. 그는 자꾸만 가게 밖 길가를 곁눈질로 흘끗흘끗 본다.
갑자기, 그가 홱 하고 길가를 돌아본다. 마치 덫에 걸린 먹이감을 돌아보듯 말이다.
과연 누군가 넘어졌다.
하지만...
“흐으...”
남학생은 주먹을 꽉 쥔 채 분함을 감추지 못한다.
“왜 걸리라는 녀석은 안 걸리고 엉뚱한 녀석이 넘어진 거냐...”
남학생은 일단은 물건을 계속 고르는 척하며, 속삭이듯 말한다.
“하지만 안심하지 마라. 조만간 무릎을 꿇릴 테니까.”
남학생은 다시 한번 주먹을 꽉 쥔다.

어느덧 점심시간. 여느 날과 다르지 않게, 미린고 학생들은 하나둘씩 운동장, 분수대, 정원 등에 나와 시간을 보내고 있다. 특히 오늘은 금요일이라 더 활기가 넘친다. 하지만 미린고 산책길은 여전히 한적하고, 시원한 바람이 불고, 여유로운 맛이 난다.
오늘도 마찬가지로 현애는 혼자서 이 산책길을 음미하며 걷고 있다. 이 여유, 이 상쾌함, 이 만족감. 좁고 길지도 않은 길이지만, 여기를 혼자 걸을 때면 뭔가 부족한 게 채워지는 듯하다.
하지만...
“엇?”
뭔가가 걸린다. 발에도 걸리고, 손에도 걸린다. 투명한 벽 같은 게 막고 있는 듯. 아니면 앞에 보이지 않는 그물이 쳐 있는 듯.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뭐야, 이게.”
아무리 눈을 비비고 봐도,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 있다. 현애의 앞을 가로막는, 질기고 억센 실 말이다. 이거, 설마... 현애는 뒤를 돌아본다. 그쪽에도 손을 이리저리 휘저어 본다. 뭔가가 팽팽한 게 느껴진다. 실... 실인데, 보이지 않는다! 손가락으로 다시 한번 그 자리를 훑으니, 눈에 확실히 보인다. 그 실은 보이지 않지만, 손가락의 피부가 실에 눌리고 있다. 역시, 실이다! 그리고, 현애의 앞뒤로 촘촘히 그물처럼!

“흐흐흐히히히, 걸려들었구나!”
뒤쪽에서, 누군가가 크게 웃는 소리가 들린다. 돌아본다. 짙은 피부의 남학생이, 이를 드러내고 웃고 있다. 뭐 저렇게 음흉하게 웃는 거지? 현애의 몸에 소름이 다 오른다. 그나저나, 몇 번 본 것 같다. 저 얼굴은... 저 얼굴은!
“너, 분명 B반에 ‘샘 나이트’였지?”
얼굴을 한번 보니 알 것 같기도 하다. B반 교실 근처를 지나갈 때쯤이면, 자기네 친구들과 시끌벅적하게 떠들며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 많이 보였다. 본명은 ‘새뮤얼 존 나이트’. 아버지가 유명 야구선수 출신 코치라고 들었다...
“훗, 바로 나오는구만?”
샘은 현애를 보고 더욱 의기양양하게 웃으며 말한다.
“여기 산책길이 어떤 곳인지는, 잘 알겠지?”
“알고말고. 양옆으로 매우 좁은 데다가, 달리 옆으로 나갈 만한 방법도 없지.”
현애는 샘을 똑바로 보고 말한다.
“그래서 여기 내가 있는 곳 양옆으로 실 같은 걸 쳐 놓은 거 아니야? 내가 빠져나가지 못하게.”
“맞아. 그렇게 잘 아는 분이 여기를 걸려들어? 흐흐흐...”
“그럼 혹시 아까 등교길에 누가 걸려 넘어진 것도, 네 짓이냐?”
“맞아. 원래는 너하고 조세훈, 공주리를 노린 건데, 엉뚱한 녀석이 걸려 넘어졌지 뭐야. 그 애한테는 안 됐지만, 어쩔 수 없지.”
샘은 태연하다.
“그러셨어?”
현애는 한 다리를 뒤로 빼고, 앞과 뒤를 차례로 돌아본다. 마치 금방이라도 위로 뛰어오르려는 듯이, 무릎을 굽혀 보이기까지 한다.
“뭐 하는 거지? 왜 헛수고를 하는 거야?”
“보면 몰라?”
“흐흐흐흐하하핫, 내가 그런 것도 모를 줄 알고? 이미 그런 건 다 예상해 놨단 말이야!”
샘은 이미 자신이 원하는 것을 쟁취한 것처럼 웃는다.
“네가 아무리 뛰어도 나가지 못하게, 실을 5m 높이까지 쳐 놨단 말이지!”
현애는 위를 올려다본다.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5m라니! 2층 중간까지 쳐 놨단 이야기 아닌가?
“자,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지는 잘 알겠지? 다른 녀석들도 못 받은 너로부터의 항복을, 내가 받는 거다! 흐흐흐하하하...”
현애는 잠시 앞뒤를 돌아본다. 말없이. 그리고 잠시의 시간이 흐른 후.
“흐흐흐... 무슨 수작을 부리는 거지?”
자신의 주위가 추워졌음을 알고 있음에도, 샘은 낄낄거리며 웃는다. 하지만, 그의 눈에 보인다. 어느새, 초겨울의 기운이 현애의 주변에 서려 있고, 보이지 않는 실들에 서리가 껴서 빛나 보이는 것이 말이다.
“흐흐흐흐, 머리 하나는 제법 좋은데? 하지만 그거 가지고는 안 되지. 얼음이 얼어붙어도, 팽팽한 실은 그대로거든!”
과연, 샘의 말대로, 서리가 낀 줄은, 마치 거미줄처럼 촘촘히 현애의 앞뒤를 에워싸고 있다. 마치, 감옥에 가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하하하하하하...”
현애도 무슨 생각을 한 건지, 샘이 보기에는 알 수 없는 만족스러운 얼굴을 하며, 소리내어 웃는다. 샘은 어이가 없었는지 헛웃음을 짓는다.
“하, 왜 웃어? 너는 포위되었다고! 네 앞의 선택지는 하나야! 상황 파악 좀 하란 말이야!”
“내가 왜 웃냐고?”
현애는 자신을 둘러싼 서리 낀 줄들을 보며 여전히 웃는다.
“알려 줄까?”
시어하트어택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4 댓글

마드리갈

2020-07-16 14:00:57

아무리 규모가 작다고 하더라도 폭발사고는 정말 신경쓰이죠.

간혹 풍선 같은 것이 터져도 깜짝 놀라기 마련인데, 그것보다 더 큰 물건이 터져 있다면...얼마 전에 저희집의 자동차 타이어가 손상당한 일이 벌어지기도 해서 특히나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게다가 좀비같은 것이 나타나면 정말 흉흉해지기 마련...

요즘은 빈도가 크게 줄긴 했지만, 예전에는 늦게 귀가하는 도중이나 일찍 출발하는 길에 누군가가 다가와서 호객행위를 하는 경우도 겪어봐서 그것까지 같이 생각났어요.


이번에는 샘 나이트의 능력인 보이지 않는 실로 옭아매기...

하지만, 온도가 낮아지면 그 실도 경화되겠죠. 그러면 경도는 높아지지만 취성(brittleness)이 높아지는 결과로 이어지고 그 끝은 배드엔딩일 것 같네요.

시어하트어택

2020-07-16 21:29:16

큰 스토리 진행 중에 저런 식으로 조그만 스토리들을 하나둘씩 넣어서 이런저런 떡밥을 뿌리는 묘미도 있죠. 특히 초능력을 보유한 사람들이 나쁜 마음을 먹고 사고를 칠 수도 있으니까, 저런 에피소드들을 넣는 것도 나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온도가 낮아진다고 실이 굳어질지, 그리고 과연 끊어질지... 다음 화를 기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SiteOwner

2020-07-19 14:16:47

업무와 휴식의 완전한 분리, 사실 정말 실행하기 힘든 경우가 많습니다.

게다가 평소의 관심분야가 업무의 내용과 겹치는 부분과 많다면. 그래서 카페에서도 지원자의 프로필을 확인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되고 있기도 합니다.


폭발 등의 사건은 확실히 반갑지 않습니다. 게다가 도쿄지하철 사린가스 사건 및 서울 삼풍백화점 붕괴사고가 일어난 다음해에 서울에서 대학생활을 시작했다 보니까 저는 예의 문제에 꽤 민감합니다. 이상징후가 보이면 바로 자리를 뜨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게 생각나다 보니 역시 신경이 안 쓰일 수가 없습니다.

이번에는 샘 나이트의 보이지 않는 실로 옭아매기 능력. 진짜 그렇게까지 해서 얻으려는 건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무서운 능력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삼국지연의의 관우를 잡은 것도 명검이 아니라 매복전에서 던져진 그물이었음을 생각하면...

시어하트어택

2020-07-19 22:27:12

저도 그런 걸 많이 느끼죠. 일과가 끝나고 저녁시간은 오롯이 저의 시간이어야 하건만, 저녁시간에도 가끔 업무 전화 같은 게 오고 하는 걸 보면 말입니다... 뭐 저 같은 경우야 하는 일이 제 관심분야가 전혀 아니긴 합니다. 이래저래 고달프죠... 직장이 있는 이상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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