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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너를 쓰러트려 주지. 그다음에는, 너한테 능력을 준 녀석을 찾아서 혼내 줘야겠어!”
“좋아, 좋아. 환영이라고?”
현애가 자신을 노려보며 소리를 내지르고 있음에도, 미나코는 오히려 손뼉을 쳐 가며 여유롭게 말한다.
“하지만 이걸 알아야지.”
“내가 또 뭘 알아야...”
그 순간, 현애의 뇌리에 좋지 않은 예감이 스쳐 지나간다. 재빨리, 0.5초 만에, 머리를 왼쪽으로 기울인다.
그 순간!
휭-
뭔가 지나갔다! 현애의 오른쪽 어깨 바로 위로, 머리가 있던 곳으로! 순간 주위를 둘러본다. 숨이 거칠어지기 시작한다. 뭐였지, 방금 그 순식간에 지나갔던 건?
“당황해서 우왕좌왕하는 꼴이 보기 좋은데.”
“말해! 방금 무슨 짓을 한 거야!”
현애는 주먹을 꽉 쥐고 미나코를 노려보며 말한다.
“너, 설마 염동력 능력자냐?”
“아, 나는 염동력 능력자는 아니야.”
“그럼 뭐냐? 속임수를...”
“속임수는 아니지.”
미나코의 손에, 어느새, 저쪽 음료수 코너에 있었을, 음료수 캔이 들려 있다.?
“염동력은 없지만, 나는 이 공간을 지배할 수 있지. 지금 내가 결계를 친 이 편의점 안은, 내가 법칙을 만들고 내가 다스리는 공간이란 말이야. 무슨 뜻인지 알겠어?”
“글쎄다.”
현애는 일부러 삐딱하게 서서 말한다.
“과연 네가 이 공간을 온전히 지배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미나코의 얼굴이 순간 일그러진다. 마치 자신의 말을 부정당한 어린아이처럼, 온 얼굴이 일그러지더니, 잠시 후, 한쪽 입꼬리를 찡그린 얼굴이 된다.
“너, 처음에 봤을 때는 매우 지적이고, 똑똑해 보인다고 생각했지.”
미나코가 언짢은 얼굴로 현애를 가리키며 말한다.
“그렇게 말해 주니 고마운데?”
현애는 태연히 말한다.
“그런데 지적인 거하고, 똑똑한 거하고는 뭔가 좀 다르지 않아?”
“물론 아니지.”
미나코는 여전히 이를 갈며, 하지만 여전히 확신에 찬 말투로 말한다.
“하지만 내가 볼 때, 너는 둘 다 아닌 것 같단 말이지!”
“네가 어떻게 그렇게 확신할 수 있지?”
“발밑을 잘 보라고!”
“무슨...”
현애의 발밑. 어느새인가, 가시밭이 되어 있다. 그것도, 드라이버와 송곳 같은 공구들이,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꼿꼿이 서 있는, 그런 가시밭 말이다! 게다가 그 공구들은 똑바로 위를 보고 서 있는 것도 아니고, 현애를 향해 조금씩 비스듬히 서 있다.
“이걸로 확실히 포위당했지? 둘러봐, 온통 너를 향하고 있는 가시들뿐이야! 네 운신의 폭은 더더욱 좁아졌지.”
“겨우 이거 가지고...”
“몸이나 사리고 있는 게 좋을걸.”
미나코는 여전히 킥킥대며 말한다.
이 정도... 겨우 주변만 둘러싼 정도라면 어렵지는 않다. 현애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한 다리를 들어 옮기려 한다.
하지만!
“역시 지적이지도 않고, 똑똑하지도 않구만?”
“뭐...”
이상한 예감이 든다. 뭔가가 공기를 가르는 느낌...
순간.
퍽-
뭔가가, 강하게 때린다. 현애의 다리, 정강이를 바로!
또다시, 온몸이 마비되는 듯한 감각이 현애의 온몸에 퍼진다. 고막을 띵- 하고 울리는 찌릿찌릿한 것이 머리로 올라오는 것은 덤이다.
“크윽...”
“내 예상은 틀리지 않았어!”
미나코가 킥킥대며, 손에 든 것을 보여준다. 공업용 드라이버다. 그리고 격통이 밀려오는 오른쪽 다리를 내려다보니, 역시나... 푸르딩딩하다 못해 시꺼먼 멍이 들어 있다...
오른쪽 다리에 힘이 빠진다. 거기에다가, 공구들로 된 가시밭은, 현애가 설 곳을 점점 더 좁혀오고 있다. 두 발을 짚고 서 있을 곳도 못 된다. 거기에다가!
큰일났다...
몸의 균형이 점점 없어지고 있다...
기울었다...
위험하다...
이대로면 몸이 넘어져, 저 꼿꼿이 선 공구들 위로 떨어지고 말 것이다...
어딘가에 짚지 않으면... 어딘가에 짚지 않으면!
매대가 보인다. 바로 오른쪽에.
짚어야 한다... 짚어야...
하지만 무슨 일인가, 분명 손이 닿을 매대가, 마치 자신의 의지인 듯, 현애의 손을 피한다. 현애의 손은 허공에서 맴돌 뿐이다. 뭔가를 짚어야 하는데... 뭔가를 짚어야 하는데!
“몸으로 확실히 느끼고 있겠지? 내 능력의 진면목을 말이야.”
미나코의 회심에 가득 찬 목소리가 들린다. 몸이 균형을 잃고 넘어지면서도, 현애는 문득 본다. 바로 손이 닿을락 말락 한 곳에, 유리벽이 있다는 사실! 바로 왼손을 뻗는다.
닿을까...
말까...
닿나...
안 닿나...
닿는다!
세 손가락으로 짚을 수 있을 정도는, 된다.
“통유리? 호오... 제법이군.”
미나코는 짐짓 놀란 듯 말한다.
“그런데 그런 건 임시방편밖에 안 된다고?”
그리고...
예감이 좋지 않다... 유리에 손을 짚은 현애의 손에 오는 감촉이, 이상하다! 손가락이, 마치 어딘가로 빨려들어가는 듯한 이 느낌...
돌아본다.
“뭐야, 이게...”
왼손을 짚은 유리벽이, 움푹 패어 있다. 다시 한번, 현애의 몸은 균형을 잃고 기우뚱한다. 분명... 분명, 저건 유리벽일 텐데!
“당황스러운가 보네? 이런 상황이 참 혼란스럽겠지.”
미나코가 현애를 보며 낄낄댄다.
“그렇게 손을 짚으려고 해 봤자 쓸데없는 짓거리야. 여기는, 내가 지배하는 공간이라고!”
균형을 잃어가던 현애의 눈에 보인다. 움푹 패었던 유리벽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간다. 그것도 마치 고무매트처럼, 탄성이라도 있는 듯이!
그것보다도...?
몸이 붕 뜨는 듯하다...
마치 용수철처럼...
튕겨져 날아간다! 반대편으로!
“이... 이런...”
뭐라도 잡아야 한다... 양팔을 버둥거려 본다. 다리도! 하지만, 마치 물건들과 벽에 의지가 있는 듯, 현애의 손발을 다 피해 간다.
“뭐... 뭐야...”
다음 순간.
쿵-
바닥이 울릴 정도로, 엉덩방아를 찧는다. 그리고 엉덩이 쪽에 밀려오기 시작한다. 엉덩방아를 찧은 통증이 말이다. 일어서기도 힘들 정도다. 뭐라도 잡고 일어서려고 해 본다. 하지만 뒤에 보이는 음료수 코너의 손잡이는 미끄러워 잡을 수 없을 정도고, 눈앞에 보이는 매대 역시 손을 뻗으면 뒤로 가 버린다.
거기에다가... 손으로 바닥을 짚어보니, 바닥에는 끈적끈적한 것들이 마구 묻어 있다. 손이 붙어 버리기라도 할 것처럼, 끈적거린다.
“일어서, 일어서!”
미나코가 현애를 내려다보며, 마치 자신이 이긴 것처럼 의기양양하게 말한다.
“다시 한번 일어서서 자신만만한 그 얼굴을 보여주란 말이야!”
“......”
현애는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
“뭐야, 흐흐흐흐... 벌써 패배를 인정한 건 아니겠지?”
“......”
“왜 말을 안 하는 거야? 뭐라고 말이라도 좀 해 봐! 설마, 너무 충격을 받아서 말하는 걸 까먹은 건가?”
미나코가 낄낄대다가 문득 보니, 현애가 말없이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키고 있다.
“뭐야? 왜 뜬금없이 손가락으로 거기를 가리키는 거지?”
미나코는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네가 가리키고 있는 쪽은 유리벽 쪽이라고!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서 어떻게 해 보려는 모양인데, 소용없어! 쓸데없는 시도는, 그만두라니까?”
미나코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신경이 쓰이기는 했는지, 뒤를 돌아본다.
“뭐... 뭐야.”
유리창에는, 어느새 서리가 짙게 꼈다.
“제법인데.”
미나코는 조금은 놀란 듯, 조금 전보다는 진지해진 눈으로 현애를 돌아본다.
“하지만 잊지 말라고. 여기는 내가 지배하는 공간이야. 허튼 짓은...”
“아니...”
그 순간, 미나코는 깨닫는다.
밖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것도, 다른 것을 보러 온 것도 아닌, 바로, 이 편의점을 똑바로 보고 있는 것이다!
“뭐... 뭐야? 누가 와 있잖아? 그것도 다섯... 아니, 일곱 명씩이나!”
밖에 모인 사람들은, 다들 하나같이 뭔가를 가리키고 웅성거리고 있다. 그 사람들이 가리키는 것, 하나다. 유리창에 묘하게 짙게 낀 서리. 그것도, 유리창 바로 앞에 서 있는 미나코를 똑바로 가리키고 있는 듯한 서리 말이다.
“너, 이건 어떻게 된 거야!”
“말해 줘?”
현애는 음료수 코너 아래에 앉아 있는 채로, 붉어진 얼굴을 한 미나코를 보고 살짝 웃어 보이며 말한다.
“손이 유리벽에 닿았을 때, 혹시나 해서 거기다가 냉기를 좀 불어넣었지.”
“하지만 이 편의점 안은 내 공간... 내가 지배하는 공간일 텐데!”
“나도 그래서 혹시나 해서 써 보긴 했는데, 여기가 아무리 네 공간이라고는 해도, 바깥으로 스며들어 나간다거나 하는 건 못 막나 봐?”
미나코가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리며 뭐라고 해 보려는데...
“뭐... 뭐...”
“왜? 뭐 재미있는 거라도 봤어?”
창밖을 보고 말을 잇지 못하는 미나코를 보며, 현애가 실실 웃으며 말한다.
“뭐 재미있는 거 있으면 말해 줘!”
“너... 도대체 무슨... 무슨 짓을...”
창밖에 모인 사람들. 그중에서도 미나코의 눈에 들어오는 건, 올림머리를 한 중년 여성이다. 그 중년 여성, 바로 미나코를 가리키며 뭐라고 하고 있다!
“사장님... 사장님이 어째서...”
미나코의 이마에, 식은땀이 흐른다. 사장은 바로 편의점 출입문으로 다가가 문을 열려고 한다. 하지만 열리지 않는다. 그러자 사장은 미나코에게 손찌검하며 얼굴을 일그러뜨린다. 편의점 안쪽에서는 잘 들리지 않지만, 사장이 바락바락 악을 써가며 소리지르고, 그 뒤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뭐라고 한마디씩 하는 걸로 봐서는, 굉장히 상황이 좋지 않다.
“자,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는, 네가 더 잘 알겠지?”
지금처럼 좋지 않은 상황. 코너에 몰린 듯한 상황. 미나코는 어떻게 해야 할지 알고 있다. 미나코는 현애를 한번 흘겨보고는, 한숨을 푹 내쉬며, 출입문 앞으로 간다.
잠시 후.
그 중년 여성이 안으로 들어오더니, 말없이 미나코를 노려본다. 미나코는 바로 카운터로 돌아간다. 현애도, 자리에서 쉽게 일어선다. 뭔가 자신을 붙잡고 있었던 듯한 기운이 더 이상은 없다.
과자 코너로 가 본다. 과연, 치즈파티가, 현애의 눈길이 미치는 곳에 딱 있다.
치즈파티를 들어, 계산대로 간다. 카운터에 1,500리라가 찍힌다. 돈을 지불하고, 현애는 유유히 편의점을 나선다.
“너... 월요일에 보자고. 기대하고 있어!”
미나코는 분하다는 듯, 편의점을 빠져나가는 현애의 등뒤에 대고 작은 목소리로 독기를 담아 내뱉는다. 현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편의점을 나선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아까보다 더 어두워졌다. 아파트에는 조명이 아까보다 더 들어왔다. 시계를 본다. 오후 10시.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어? 빨리 들어가야겠네.”
주리의 집의 문이 열린다.
“야옹-”
에이미가 문앞에 마중나온다. 들어오는 사람은, 다름아닌 현애. 에이미의 뒤에 이어, 주리도 문앞에 나온다. 주리는 약간 못마땅하는 듯한 얼굴이다.
“야! 과자 사러 무슨 공장에까지 갔다 와?”
“아... 그런 일이 있었어.”
주리는 현애의 여기저기를 훑어본다. 그리고서 뭔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아... 뭐, 어쨌든 좋아. 자세한 이야기는 내일 하고, 지금 우리 엄마하고 아빠도 너 오는 거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같이 먹자고.”
“아, 그래? 좋아!”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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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댓글
SiteOwner
2020-07-24 19:42:14
특정공간을 지배할 수는 있어도, 그 공간의 소유주는 지배할 수 없군요.
그리고 가공할 능력으로 허튼 짓을 한 도이 미나코는 현애의 기지 덕분에 편의점 내에서 한 행동을 점주에게 들켜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냥 곱게 끝날 것 같지는 않을 듯합니다.
정말 과자 하나 사려다가 무슨 봉변인 것인지...
그래도 무사히 돌아올 수 있어서 천만다행입니다.
시어하트어택
2020-07-25 23:46:35
저런 일을 저지를수록, 더욱 굽신대야겠죠. 안 그러겠습니까... 정말이지, 뭐 하나 사러 갔다가 몇십 분, 심지어는 몇 시간이 걸리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럴 때마다 설명하느라 애를 많이 먹었죠.
마드리갈
2020-07-26 21:10:12
뭔가 엄청난 배틀이 될 것 같았고 실제로 위기일발의 상황도 일어났지만, 정말 의외의 방법으로 평정되었네요.
별로 좋은 표현은 아니고 어디까지나 이용규칙 게시판 제10조 및 추가사항에 따라 인용하는 것이지만, "하던 지랄도 멍석 펴 놓으면 안한다" 라는 속담이 있어요. 약간 다르게 표현하자면, "판은 일부러 크게 벌이라" 고도 할 수 있는 것. 결국 이러한 소동이 여러 사람의 눈에 띄게 상황을 만들어 놓으면 억지력이 발휘되기 마련.
특정 공간이 자신의 지배하에 있을 때에도 제대로 목표달성을 못한 도이 미나코가 다른 곳이라고 힘을 쓸 리는 없겠죠.
시어하트어택
2020-07-26 23:29:51
나름대로 '의외의 해결책'을 생각하다 보니, 일단 1차전은 저런 식으로 매듭을 지었습니다. 그렇다는 건 2차전이 있다는 거겠죠...
역시 여러 사람이 보고 있다면 그 시선이 무서운 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