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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능력자 H] 36화 - 엘리베이터와 그림자

시어하트어택, 2020-08-03 08:02:38

조회 수
159

“그런 건 오면서 다 말해야 하는 거 아니야?”
“아... 미안... 오면서 깜박했다고 했잖아...”
세훈은 말을 다 마치면서도, 숨을 헐떡이며 말한다.
“전화하는 것조차 잊었을 정도였어... 그 정도였다고!”
현애가 또다시 세훈을 노려보며 추궁하려는데...

[곧 워너비 걸의 상영이 시작하오니 입장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안내방송이 들린다.
“알았어, 알았어. 왜 그런지는 아니까, 얼른 영화나 보러 들어가자고.”
알렉스가 현애와 세훈을 돌아보며 재촉한다.
“자, 그건 이따가 들어 보자. 네 것도 챙겼으니까, 받아.”
현애가 내민 티켓과 팝콘을 받아들고서, 세훈은 친구들의 뒤를 따라 들어간다.

영화가 다 끝나고, 어느덧 오후 1시.
점심 식사를 다 마치고, 알렉스와는 헤어져서, 현애와 세훈, 니라차 셋이서 미린역 남쪽의 수변공원을 걷고 있다. 한참 걷다 보니, 현애의 눈앞에 갈대밭이 들어온다. 징검다리도 보이는 건 물론이다. 현애는 문득 뒤를 돌아보며 장난스럽게 웃는다. 니라차는 거기가 어딘지를 알아채고는, 어색하게 웃는다.
거기쯤 갔을 때, 현애가 일부러 크게 손가락을 튕기며 세훈을 돌아본다.
“생각났다. 이제 네가 아까 미나코하고 만난 거 좀 이야기해 봐.”
“알았어, 이제 말할게.”
세훈이 말해 준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진짜 공격이,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다고?”
세훈은, 비틀거리는 몸을 벽에 기대고는 일부러 끝을 흐리며 말했다.
“훗, 맞아.”
미나코는 더욱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내 공격이 괜히 빗나간 건 아니었나 봐?”
“뭐... 뭐라고?”
“좀 어지러울 거다.”
세훈은 침을 꽉 삼켰다.
“흐흐흐흐...”
미나코가, 음침하지만 확실히 승기를 잡은 듯한 웃음을 흘리기 시작했다.
“아마, 빈센트한테나 겪어 봤겠지! 아니, 빈센트한테도 못 겪어 본 건가? 눈이 아주 핑핑 돌아가겠지! 안 그래?”
그 말대로였다. 마치 환각을 보는 듯, 눈앞의 엘리베이터 버튼들이 흐느적흐느적 기어가는 것같이 보이고, 출입문은 도망가는 것같이 보이고, 바닥에는 봉우리가 솟아나는 것처럼 보였다. 거울 속의 자신들이 모두 자신을 향해 웃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머릿속 방향 감각, 중력감도 점점 이상해졌다. 온몸이 점점 어질어질해졌다.
이내, 세훈은 엘리베이터 바닥에 또다시 쓰러졌다.
“이런 건 처음이지? 조세훈. 온 세상이 핑핑 도는 듯한 이 기분은 어때?”
“어떻게... 어떻게 한 거냐...”
세훈은 뭐라고 대꾸하는 대신, 그저 나지막하게 말했다. 사실 그때는 뭐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가 아니었지만, 어쨌든 힘을 짜내서 말해 보기는 했다.
“당연하지! 여기는 내가 지배하는 공간이니까!”
미나코는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 마치 천 년이나 승천을 기다린 이무기라도 된다는 듯, 목에 힘을 주어 말했다.
“내가 가장 원했던 순간이지. 안 그래?”
“.....”
그때.
세훈은 무의식중에 자신의 능력을 발동하기 시작했다. 자신도 모르는 새에, 초능력의 스위치가 켜진 것이다. 그것을 깨달은 순간, 세훈의 앞이 캄캄해졌다. 하필이면 이럴 때, 초능력이 발동하면 어쩌자는 말인가...
세훈이 얼핏 위를 올려다보자, 엘리베이터 안이 구겨지고 있는 것이 보였다. 세훈 자신 또한, 거인이 자신의 몸 전체를 움켜쥐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오, 뭔가 힘이 솟아나는 것 같은데? 조세훈 녀석의 능력에 대해 대충은 들어 봤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미나코의 얼굴을 보니, 감탄 반, 승리에 대한 확신 반이 섞여 있었다. 한참 엘리베이터 안을 손으로 쥐락펴락하는 듯한 자세를 취하다가, 미나코가 세훈을 내려다봤다.
“이제 정신이 오락가락하니 네 능력이 뭔지도 생각이 잘 안 나나 봐?”
“......”
“무슨 능력도 그런 쓸데없는 능력이 생겼는지!”
세훈은 굳이 대꾸하려 하지는 않았다. 세훈의 능력은 분명, 누군가에게는 쓸모없다고 여겨질지 모른다. 하지만 세훈 자신은 조금 이상하거나 황당하다고 생각할지언정, 쓸모없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물론 그때도 그랬다.
다시 위를 올려다보니, 미나코는 오른손을 높이 들었고, 안 그래도 강하게 뿜어져 나오던 아우라는 더욱더 강하게 분출되었다.
“자! 그럼 마무리다!”
순간, 안 그래도 핑핑 도는 듯한 세훈의 시야가, 갑자기 확 뒤집혔다. 뭔가 날아오는 느낌. 도대체 무엇이 날아오는지도 모를 정도였다. 아니 어디서 날아오는지도 감을 못 잡았다. 분명 날아오는 건 맞는데, 머리 위로 날아오는지 옆으로 날아오는지, 아니면 아래에서부터 오는 건지...
순간.
세훈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손을 휘둘러 걸리는 것을 잡았다. 뭘 잡았는지는 모르겠다. 방향 감각도 이상해지고, 눈앞이 소용돌이처럼 보이는 상황에서, 한 바퀴 돌았다.
그리고 3초 후.
쿵- 하는 소리가 들렸다.
다음 순간, 세훈의 감각이 모두 돌아왔다. 눈앞의 소용돌이도 사라지고 엘리베이터로 돌아왔고, 낙하하는 듯한 감각도 사라졌다. 손에 잡힌 것을 봤다. 그건 미나코의 팔. 머리를 한번 흔들고 보니 미나코는 뭔가를 맞은 듯, 입을 헤 벌린 채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엘리베이터 출입문을 한번 봤다. 숫자가 다시 바뀌고 있었다. 다행이다.
뭐가 어떻게 된 것이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 미나코는 자신의 능력에 자신이 당했고, 그래서 정신을 잃고 쓰러져 능력이 해제되었다는 것만은 사실이었다. 지하 1층에 도착하자,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미나코를 놔둔 채, 세훈은 숨을 헐떡거리면서도, 안도하며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호... 그랬단 말이지.”
이야기를 다 들은 현애가 아직 궁금증이 남아 있다는 듯 팔짱을 풀지 않은 채로 말한다.
“미나코에게서 정보는 못 얻었지?”
“맞아. 워낙에 경황이 없어서 그냥 두고 나왔어.”
“하, 뭐라도 정보를 얻었다면 좋았을 텐데 말이야...”
현애가 실망 섞인 한숨을 내뱉으며 말한다.
“그 후드 쓴 녀석 누군지 꼭 알아냈으면 좋겠는데.”

그렇게 걷다가, 현애와 세훈, 니라차가 징검다리 앞에 막 다다랐을 때.
“너희들, 도이 미나코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지?”
누군가가 현애와 세훈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린다. 현애와 니라차는 누구인지 감을 못 잡고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는데, 세훈은 그 목소리를 알고 있는지, 그쪽을 바로 돌아본다.
징검다리 너머에는, 갈색 머리의 키 큰, 흰 운동복을 입은 여성이 한 명 서 있다.
“어, 파라 씨네요!”
세훈은 그 여성을 바로 알아보고는 손을 흔든다. 파라라고 불린 여성도 웃으며, 현애와 세훈, 니라차에게 이리로 오라는 듯 손짓한다. 세 명이 모두 징검다리를 건너오자, 여성은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연다.
“네 이름은 남궁현애, 그리고 너는... 니라차 아리야눈타카였지?”
“네...”
“맞아요.”
현애와 니라차는 고개를 끄덕인다.
“세훈이는 전에 주리하고 한번 봤지?”
“아... 맞아요. 파라 씨하고는 쿠쿠스 가든에서 봤었죠.”
세훈은 어색한 얼굴을 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그래, 기억하고 있구나.”
갈색 머리의 여성 역시 세훈을 보고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자, 정식으로 내 소개를 할게. 내 이름은 파라 사라고사. 지금은 저기 시립 과학기술연구소에 다니고 있어. 나 역시도 너희들과 마찬가지로 초능력자고, 이런 능력이 있지.”
말을 마침과 동시에, 파라의 손에는 가방이 하나 들려 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파라의 손에는 아무 것도 들려 있지 않았을 텐데! 순간 현애와 니라차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뭐... 뭐죠? 방금 전까지는 가방은 메고 있지도 않았잖아요?”
“맞아. 그림자 안에 넣어 갖고 왔지.”
“그... 그림자요?”
현애와 니라차가 파라가 들고 있는 가방과 그 발아래 드리워진 그림자를 신기한 듯 번갈아 보자, 파라는 그 모습이 재미있었는지 미소를 짓는다.
“그런데 도이 미나코는 어떻게 아는 거죠?”
“아, 어떻게 아느냐고?”
파라는 별것 아니라는 듯 말한다.
“꼭 초능력 같은 건 아니더라도, CCTV나 인공지능 간 통신 같이,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은 많아.”
“어... 어떻게요?”
“메이링 씨가 어제 저녁에 나한테 미나코에 대한 자료를 보내 줬지. 그래서 다음에는 어디로 갈 건지 예측했는데, 마침 우리 집 근처더라. 아침 산책도 할 겸 해서 겸사겸사 갔다가, 미나코를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 온 거야.”
“그래요? 어떻게 이야기를 들었죠?”
“아... 그러니까, 처음에 보니까, 제대로 몸도 못 가누고 비틀거리고 있어서, 일부러 부축해 주고 하면서 환심을 샀지. 그렇게 해서 어느 정도 좀 정신을 차리니까, 무슨 일이 있었냐고만 물어봤지. 그런데, 너희들하고 싸운 이야기는 그냥 ‘싸웠다’고만 하고, 거의 대부분이 자기 아픈 과거에 대한 넋두리하고, 그 후드 쓴 녀석 만난 이야기던데?”
“정말요? 그것참 신기하네요.”
세훈이 머리를 갸우뚱하며 말한다.
“도대체 뭐가 그렇게 맺힌 게 많길래...”
“일종의 ‘상실감’ 같은 걸 보충하려던 거겠지. 그리고 그 후드 쓴 녀석은 그런 걸 노리고 접근했을 테고. 장소도 어딘지 나왔으니까, 거기 폐쇄회로 영상 같은 걸 확보하면, 누군지 금방 나오겠지. 그 장 박사가 뭐라고 할지는 모르겠지만.”
파라의 입에서 ‘장 박사’라는 말이 나오자, 현애는 약간 불쾌한 듯 얼굴을 찌푸리고 한숨을 푹푹 내뱉고는, 파라를 다시 보며 말한다.
“그런데, 왜 파라 씨도 후드 쓴 녀석을 쫓는 거죠?”
“그야, 뭔가 좀 많이 의심스러워서 말이지.”
“의심스럽다고요?”
현애와 세훈, 니라차가 한 목소리로 묻는다.
“그래. 자세한 이야기는 좀 나중에 해 주겠지만, 지금까지 주변인들이 모아 준 정보를 분석해 보면, 내가 나서야 할 것 같아서 그래.”
“아... 일단은 뭔지 알 것 같아요.”
세훈은 어렴풋이 뭔가를 떠올리고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혹시 여기서 말하기는 좀 그런 건가요?”
“아, 그런 건 아닌데, 내가 오늘은 또 약속이 있어서 자세히는 못 말해 줄 것 같고...”

바로 그때, 수변공원의 개울 맞은편.
모자를 눌러쓴 한 사람이 운동복 차림으로 산책로를 걷다가, 뭔가를 보고 걸음을 멈춘다. 개울 너머에 있는, 현애, 세훈 일행을 보고서, 그는 눈이 휘둥그레진다. 다물고 있던 입 역시 벌어진다.
“오, 저기 보인다!”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며, 갈대밭에 몸을 숨기고서, 그는 개울 너머에 시선을 고정한다. 한참 대화에 열중하고 있다. 주위는 신경 쓰지도 않고서.
“지금이다... 지금이 기회야! 저렇게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을 때, 이때가 딱 최적이란 말이지! 그럼... 간다!”
모자를 눌러쓴 그 사람에게서, 아우라가 방출된다. 동시에, 갈대밭의 그림자가 점점 커지기 시작한다.
시어하트어택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4 댓글

마드리갈

2020-08-04 19:08:00

아무리 강력한 능력이라도 방향성이 중요한 법. 그리고 강하면 강할수록, 작용하는 방향이 잘못되면, 특히 그 방향이 자신이라면, 그 뒤는 배드엔딩 확정이죠. 도이 미나코의 능력이 아무리 강력하다 한들, 그녀 자신이 제압당해버리면 그 능력은 전제 자체가 부정되는터라 무력화될 수밖에 없고, 결국 그 꼴이 나 버렸으니...

그래도 또 싸움을 걸어온다면 그건 제압당해서 고생한 보람이 없는 거겠죠.


모자를 눌러쓴 사람이 등장했군요. 대체 누굴까요.

일단은 문제의 후드 쓴 남자와는 별개의 인물같은데...

시어하트어택

2020-08-04 23:27:09

그래서 능력이 아무리 강해도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중요하죠. 아무리 강하다고 한들 사용자가 그만한 머리가 안된다면 꽝입니다.


모자를 눌러쓴 사람은 후드남과는 별개의 인물입니다. 이 사람도 후드남의 사주를 받았습니다. 자세한 건 다음 화에...

SiteOwner

2020-08-04 23:24:19

공간을 장악하는 능력을 가졌어도, 그 능력의 발휘자가 저 꼴이 나서야 답이 나올 리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세훈에게 발현된 초능력의 장점이 이렇게 의외의 곳에서 나와 준 것도 꽤 놀랍습니다.

합기도에서 반드시 자신의 힘만을 쓰는 게 아니라 상대의 힘을 역이용하듯이, 그렇게 상황을 역전시켜서 위기를 아주 잘 모면했습니다.


갈대밭의 그림자가 점점 커진다...혹시, 죠죠의 기묘한 모험 5부의 골드 익스피리언스같은 것일지, 그게 궁금해집니다.

시어하트어택

2020-08-05 22:31:01

오너님이 잘 보셨네요. 세훈의 능력은, 단지 아군만 강화해 주는 게 아니라 적대적인 대상의 능력도 강화해 주거든요. 저 역시, 그런 측면을 포인트로 잡아서, 그 약점을 역이용하는 걸 보여 주려고 했는데, 잘 보셔서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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