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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누구도 알아채지 못했다. 조제가 그렇게, 빨리 내달릴 줄은!
”저... 저 녀석!“
메이링이 조제를 쫓아가려다 말고, 발을 동동 구르며 말한다.
”내가 작전을 설명해 주기도 전에 저렇게 혼자 달려가면 어쩌겠다는 거야!“
앨런과 자비에도 그렇고, 현애와 세훈을 비롯한 동급생들 역시, 누구 하나 조제를 잡으려 섣불리 나서지 못한다. 일단은 메이링이 일러 주는 대로, 조제와의 거리를 유지하며, 호수 데크를 걸어나갈 뿐.
“그러고 보니까 오늘 말이지.”
걸어가던 중, 니라차가 나지막이 말한다.
“조제가 평소보다 엄청 흥분한 것 같던데.”
“아니, 왜?”
“나한테 모욕을 주고 또 두 번 모욕하려고 하기까지 한 녀석은 내가 직접 응징해야 한다, 뭐다, 이러는 것 같던데. 외제니가 그것 때문에 막 뭐라고 하면서 말리는 것 같기도 했고.”
그러고 보니까, 현애가 가면서 보니, 미린역 지하광장에서 만나고 나서부터, 공원까지 가는 길에도 조제는 얼굴이 온통 벌게져 있었고 수시로 씩씩대는 것 같았다. 자꾸 뭐라고 중얼거리는 건 덤이었다.
“지금껏 앙드레 녀석이 그래 왔다는 거지...”
조제는 아무도 없는 데크를 내달리면서 중얼거린다. 소곤소곤 말하지만, 온몸에서 스며나오는 불같은 기운은 숨길 수 없다.
“앙드레 녀석이라니까 더 용서가 안 된다고. 모르는 녀석이 그런 짓을 했어도 용서가 안 되겠지만, 특히 우리 반 녀석이니 더더욱 용서가...”
바로 그때.
“숙청할 녀석은 안 오고, 왜 엉뚱한 녀석이 먼저 왔지?”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높은 남자의 목소리. 조제는 급히 고개를 돌린다. 데크 너머, 호숫가 쪽에서 들린다. 앙드레, 앙드레의 목소리다!
“너, 앙드레 블레즈, 이 자식!”
조제는 자신도 모르게 큰 소리로 내지른다.
“네가 한 짓의 대가를 치를 준비는 됐냐!”
“호오, 조제였나.”
호숫가 너머, 조제의 옆 방향. 목소리가 다시 들린다. 그리고 보인다. 후드를 반쯤 걸친, 앙드레의 얼굴이.
“그래, 이제 똑똑히 보이는군.”
조제는 아직 성이 가라앉지 않은 목소리로 말한다.
“알 것 같아. 네놈이, 나하고 외제니가 앞에 꿇어앉은 걸 보며, 어떤 표정을 지었을지!”
“그래? 좋아, 좋은 지적이야.”
데크 너머에 있는 앙드레가, 비웃음 섞인 목소리로 말한다.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지. 네가 나한테 닿을 수 있는지나 모르겠는걸?”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말해 보실까?”
“오, 조제. 나는 너하고 중학교 때부터 줄곧 같은 반이었지. 많은 시간을 부대껴 지내 오면서, 네가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는지, 무엇에 강하고 무엇에 약한지, 다 알고 있다고. 고등학교 때 다른 반이 된 게 좀 아쉽기는 했지만.”
“하, 그러셔?”
조제 역시 어이없다는 듯 말한다.
“그렇게 운동에 미쳐 있으면서, 볼 건 다 보고 다녔군. 설마, 나하고 외제니가 둘이서 놀러 다닌 데도 다 따라다닌 거냐?”
“말했잖아? 네 생활 패턴은 다 파악하고 있다니까?”
“하, 그렇군.”
조제는 여전히 분이 가라않지 않은 목소리로, 하지만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내가 하나 더 알려줄까? 내 손은 이미 널 잡고 있지.”
“뭐... 뭐라고?”
적잖이 당황한 듯, 앙드레의 목소리가 올라간다. 그와 동시에, 앙드레는 불안스러운 눈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리기 시작한다. 마침 주변에는 가로등도 없고, 큰 나무들이 하늘을 덮고 있어, 빛은 더욱 적게 들어온다. 어디인가... 도대체, 어디서, 조제 녀석이 손을 잡고 있다는 말인가!
문득, 후드티가 좀 무거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상의가 좀 처진 것 같다. 그렇다면, 설마... 가슴 언저리를 만져 보는데...
“너, 이 자식, 어느새, 목까지!”
앙드레는 황급히 후드티를 벗어버린다. 아직 옷자락을 잡고 있다면, 빨리 떼어내야 한다! 성공이다. 다 벗었다! 후드를 쓰지 않은 앙드레의 얼굴이, 완전히 드러난다. 앙드레가 벗은 후드티를 꽁꽁 싸매려고 하는데...
“뭐 하냐, 너?”
다시, 데크 쪽에서, 조제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러고 보니, 후드티 안에,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다! 다급히 돌아본다. 주위를. 여기저기 본다. 하지만 손은 보이지도 않는다.
“내 패턴은 다 파악했다고 했는데, 내 손이 어디 갔는지는 파악 못 했나 봐?”
“뭐... 뭐?”
아뿔싸...
앙드레는 그제야 눈치챈다. 목덜미가 무겁다. 만져 본다. 손가락의 감촉이다. 어느새, 조제의 손이, 앙드레의 목덜미를 붙잡고 있다! 거기에다가 점점 더 강해지는 이 악력은, 숨통을 조여 오는 것 같다. 큰일났다! 이대로 가다가는, 정작 만나려고 했던 ‘그 녀석’은 만나지도 못하고... 이렇게... 당해 버린다!
“너 이 자식, 비겁하게, 먼 거리에서...”
“왜 그러시나? 나한테 굴욕을 준 분께서 겨우 내 손 따위에 당해서야 되겠나?”
조제의 큰소리에도, 앙드레는 뒤를 흘끗흘끗 돌아보며, 슬금슬금 뒷걸음질 친다.
“어쭈, 도망가시게?”
돌아본다.
어느새, 조제는 가까워져 있다. 호숫가와 데크 사이에 있는 바위에, 저녁 하늘을 등지고 서 있다.
“내 능력은 근거리에만 쓸 수 있는 능력이거든. 네가 뒷걸음질 칠수록, 나도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야 하니까, 떨어져 있는 손이 나를 가까워지도록 유도하지. 네가 뒷걸음질 쳐봤자, 소용없어.”
“이 자식, 도대체 어쩔 셈...”
앙드레가 말을 미처 끝내기도 전. 또 없다. 조제가! 조금 전까지 서 있던 바위에도, 보이지 않는다. 대체 어디로 갔단 말인가...
“드디어, 네놈의 앞에 왔군.”
들린다. 바로, 앙드레의 눈앞이다!
돌아본다.
조제가 서 있다. 그것도, 앙드레를 똑바로 노려보고!
“숙청이니 뭐니 했던 것 같은데, 네가 나한테 먼저 숙청당하게 생겼어. 안 그래?”
동시에, 앙드레의 목덜미를 잡은 조제의 손이, 더욱더 강하게 앙드레의 목을 틀어쥔다. 이제는, 말하기도 힘들어질 정도다...
“이... 자식... 놔, 당장 안... 안 놔?”
“아니.”
조제가 딱 잘라 말한다.
“내가 왜 놔 줘? 나하고 외제니가 겪은 공포를 너도 느껴야지. 아니, 그것보다 더한 두려움도 느껴야지. 안 그래?”
“당장 놔. 놓지 않으면...”
앙드레가 한 손으로는 조제의 손을 움켜쥐고, 또 한 손으로는 조제에게 손찌검을 하며, 힘겹게 입을 뗀다. 하지만, 앙드레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
“자, 말도 제대로 못 하는 상태가 되었지. 2주 전의 나처럼 말이야.”
“으... 당장... 당장 이 손을...”
“어쩌라고? 나는 아직 시작하지도 않았거든?”
“놓지... 놓지 않으면...”
앙드레가 뭐라고 하든 아랑곳하지 않고, 조제는 이글거리는 눈으로 앙드레를 내려다보며, 그리고 여전히 분이 풀리지 않은 목소리로 말한다.
“자, 이제 경험할 시간이다. 나하고 외제니가 겪은, 그런 공포를 말이야!”
조제의 손이 앙드레의 목을 더욱 세게 움켜쥐려는 그때...
“그래... 넌 아직 시작하지 않았을지도 모르지.”
앙드레가 여전히, 힘겹게 입을 떼며 말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거 하나 알려 줄까?”
앙드레의 입꼬리가 올라간다. 조제는 순간 위험을 감지한다. 빨리 승부를 내야 한다. 빨리! 다음 수를 써야 한다! 조제의 손은 다급히 목덜미를 타고 올라가, 앙드레의 얼굴 쪽으로 방향을 돌린다. 좋다! 다행이다! 귀가 만져진다... 입끝이 만져지려고 한다...
그때.
“내 공격은 이미 끝나 있거든.”
“뭣, 뭐라고...”
예상치 못한 호기로운 목소리와, 비웃는 웃음! 순간, 조제의 발밑이 심상치 않다! 뭔가가 붙잡고 있는 것 같다. 내려다본다.
호수의 물이, 물이, 조제의 무릎 아래를 적시고 있다!
분명, 물가에서는 세 걸음 정도 떨어져 있을 터다. 하지만 어떻게?
“이 자식, 도대체 무슨 수작을...”
“호수의 물을 좀 끌어왔을 뿐인데? 내가 무슨 능력을 쓰는지도 모르고 나한테 이렇게 감히 덤벼왔단 말이지?”
조제의 얼굴이 굳어진다. 급히 발을 물속에서 빼 보려고 한다. 하지만 그럴수록, 조제의 발을 감싼 물이 더욱 조제를 휘어 감는다. 어느새, 허벅지까지!
순식간에 공포에 사로잡힌 조제의 눈에, 들어온다. 완전히 얼굴을 편, 앙드레가!
“주제도 모르고 덤벼든 나약한 녀석은, 숙청이다아아앗!”
순간.
조제의 몸이 붕 뜨는 듯한다. 두 발을 휘감은 물이, 조제를 휘어잡고 이리저리 뒤흔든다! 눈앞이 팽팽 돈다. 야경과 호수, 그리고... 외제니가 떠오른다. 외제니가...
풍덩-
호수 한가운데로부터, 파문이 전해진다. 앙드레를 쥐고 있는 조제의 손이 스르르 앙드레의 목에서 미끄러진다. 그 손을 잡는다. 호수에 떨어진 조제에게로 돌아가려는 듯, 앙드레를 강하게 잡아당긴다.
“훗, 돌아가고 싶다고? 좋아. 네 주인에게 돌아가.”
앙드레는 조제의 손을 호수 쪽으로 멀리 던진다.
그 시간, 데크 한가운데.
“아니, 그런데, 조제는 왜 안 오는 거야?”
주리가 투덜대듯 말한다.
“조제? 글쎄...”
“정말 무슨 일이 생긴 거 아니야?”
현애와 세훈도 불안했는지 목소리가 올라간다.
“나타샤, 너 혹시 조제가 어떻게 됐는지 알 것 같아?”
세훈이 뒤를 돌아보고 나타샤에게 묻는다.
“아니.”
하지만 나타샤의 답은 바로 나온다.
“내 능력은 직접 손을 대 봐야 알지, 그렇지 않으면 알지 못해. 조제가 좀 빨리 뛰어갔고, 데크를 넘어 어디론가 갔다는 것까지는 알겠는데...”
“어디론가 갔다고?”
나타샤는 고개를 끄덕일 뿐.
“그건 그렇고, 앙드레는 도대체 어디 갔길래 보이지도 않지?”
앨런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한다.
“분명 여기로 온다고 하지 않았나?”
“그러게요. 약속시간이 다 됐는데...”
다들 AI시계를 본다. 시계는 오후 6시 57분을 가리키고 있다. 하지만, 앙드레는 어디 갔는지, 털끝도 보이지 않는다. 데크 위에 혹시 누가 더 있나 자세히 봐도,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하... 내가 찾아봐야겠는걸.”
니라차가 불쑥 말을 꺼낸다. 말을 마치자마자, 일행의 한가운데에서 뭔가가 소리없이 솟아오른다. 위를 올려다보니, 어느새 손바닥 크기만 한 드론이 떠 있다.
“그걸로 찾으려고?”
“맞아.”
친구들이 묻자, 니라차가 자신있게 말한다.
“그리고 이걸로 하려는 건 또 하나 있지.”
“너 그걸로 뭐 하려고 그러는데?”
이번에는 메이링이 걱정스러운 눈을 하며 묻는다.
“혹시, 제 능력이 통할까 해서요.”
“무모한 시도는 하지 마.”
니라차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인다.
AI폰의 신호도 잡히지 않는다. 아무리 주위를 봐도 조제는 보이지 않는다. 몇 번이나 불러 봐도, 답은 없다. 안 보인다. 감지되지도 않는다. 조제는.
그러던 중,
“뭐야, 이게.”
현애의 발에, 뭔가가 걸린다. 조금 물컹하다. 물에 흠뻑 젖어 있다. 들어 보니, 느낀 적 있는 감촉이다. 남자의 오른손, 그리고 손목 밑의 검은 공간.
“조제의 손이잖아.”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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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댓글
SiteOwner
2020-09-02 21:04:48
조제 엔히크스와 앙드레 블레즈의 일대일 대결이군요.
사실 비겁하니 어쩌니 하는 것은 따져 보면 상당히 웃기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특히 어릴 때 남자아이들의 싸움에서 이런 경우가 많습니다. 집단으로 누군가를 공격한 것에는 아무도 말하지 않으면서 당한 누군가가 물건을 휘두르면 거칠게 저항하면 비겁하게 무기를 쓰니 어쩌니 운운...앙드레의 비겁 운운에서는 그래서 실소가 느껴집니다.
앙드레는 조제의 손에, 그리고 조제는 앙드레가 끌어온 물에 위기를...
그리고, "조제의 손이잖아." 라는 대사에서 공포를 느꼈습니다. 초능력으로 분리했다는 것을 모른다면...시어하트어택
2020-09-09 23:07:37
역시 처음에는 이런 식으로 조연과 메인 빌런을 싸우게 하는 게 효과적인 듯합니다. 둘의 능력도 확실히 보여 줄 수 있을 뿐더러, 주인공에게는 시간을 벌어주고 조연도 좀 띄워 주고 할 수 있는 파트죠.
마드리갈
2020-09-14 13:01:46
이렇게 조제와 앙드레가 직접 격돌을...
불같이 돌진하는 조제, 그리고 물을 다루는 능력을 가진 앙드레의 싸움은, 조제가 밀어붙였다가 결국 앙드레가 그를 압도하는 것으로 낙착되었군요. 역시 사슴을 쫓는 자는 산을 못 보고 산 속으로 깊이 들어가고, 주변 상황에 눈치채지 못하다가 저렇게 당하는 걸까요...
조제의 손이 저렇게 발견되었는데 비명조차 지르지 않는다는 상황이 꽤나 기괴하게 여겨지고 있어요.
시어하트어택
2020-09-15 23:20:01
맞습니다. 보통의 사람들이었다면 손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면 비명부터 질렀겠죠. 이 장면은 죠죠 4부의 오쿠야스의 손을 놓고 죠스케와 죠타로가 보이는 반응을 변용해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