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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도시의 지하수로는 부랑자들의 천국인 것이 상식이다.?
절대다수의 사람들에게 비밀이던 신비학(Occult), 요컨대 마법이 대중의 상식이 된 이후 도시에는 부랑자로 넘쳐나게 되었다. 학교에서 누구나 배울 수 있게 되었지만, 역으로 배울 기회조차 얻지 못한 이들은 사회에 철저히 외면받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마법을 익혔다고 하더라도 나처럼 둔갑술 같은 비주류 전공을 택한 이들은 주류 사회에 발조차 들이밀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대다수의 도시에서는 마법의 은혜를 받지 못한 부랑자들이 대거 양산되고는 하였다. 그들 중 그나마 수완이 있는 이들은 빈민가에 터를 잡았지만, 그조차 받지 못한 이들은 사람들이 없는 지하수로로 파고들었다. 그랬기에 대다수의 도시에서 지하수로는 부랑자의 천국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 도시, 카다스는 그 상식에서 벗어난 장소다.
듣기로 카다스의 지하수로는 먼 옛날 인간이 이 도시에 자리 잡기 이전, 어떤 선주종족이 지은 장소라고 한다. 약 천 년 전, 지금 이 도시를 지배하는 4대 귀족은 이 지하수로를 발견하고 그 위에 도시를 세웠다. 영주 성을 포함한 이 도시의 주요 시설은 모두 지하수로와 연계하도록 설계되었고, 오늘날 지하수로의 가치는 단순히 고대유물이자 수도시설을 넘어, 도시 전체의 주요 시설과 연계된 비밀통로이기도 한 것이다.
그렇다면 영주가 미치지 않은 이상 부랑자들이 이런 곳에서 살도록 허가해 줄 리가 있겠는가? 부랑자들은 물론, 평범한 시민들도 허가 없이는 지하수로에 진입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만약 그런 짓을 하다 병사들에게 걸리면 운 좋으면 징역, 운 나쁘면 광장 한복판에 목이 걸리는 처지가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아무리 영주라도 모든 구멍을 막을 수는 없는 법이다.
그래, 이런 ‘쥐구멍’ 말이다.
길드 건물의 수도 파이프를 타고 한참을 기어 내려간 나는 바닥이 황동에서 대리석으로 바뀌자 지하수로에 진입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지하수로가 아무리 고대 유물이라고 한들 결국은 수로. 도시의 하수 시설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하수 시설을 자유롭게 타고 이동하는 생물들, 예를 들어 바퀴벌레나 쥐들이라면 그리 어렵지 않게 지하수로에 드나들 수 있다. 물론, 나처럼 둔갑술사 역시 마찬가지다. 둔갑술이 워낙 쓸모없는 전공이기 때문에 영주들 역시 이에 대해 대비는 하지 않은 것이다. 그 덕에 나는 길드에서도 지하수로를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인재라는 이유로 방만한 태도를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이다.
‘뭐, 이게 행운이라고 할지 불행이라고 할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지만.’
나는 속으로 쓴웃음을 지으며 열심히 네 다리를 놀렸다. 사람의 모습일 때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몸을 움직여야 하지만, 이런 모습으로 수없이 변신해본 나에게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물론 이런 적응 기간을 가져야 한다는 것 자체가 둔갑술사가 무가치해진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게 얼마나 바닥을 기었을까?
지하수로의 심부로 상당히 먼 거리까지 들어왔다고 판단한 나는 다시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쥐의 모습으로 걷는 것 역시 익숙하지만, 손님을 만날 때까지 쥐로 둔갑하고 있었다는 게 길드마스터 귀에 들어가면 휴가 자체가 취소되어 버릴지도 모른다.
“그건 그렇고 정말 언제와도 장관이네, 여긴.”
잠시 스트레칭을 하며 사람의 움직임에 적응하는 와중에도 수로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매끄럽게 깎은 대리석 벽돌이 틈새 하나 없이 벽을 이룬 것 또한 대단하긴 하지만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지하수로에 흐르는 물은 도시 전체의 생활 하수가 섞여 흘러 들어가고 있음에도 지하수로에 섞이는 순간 투명하고 맑은 계곡물처럼 정화된다. 심지어 풍기는 냄새 역시 완벽하게 처리되는지 오수 특유의 역한 냄새조차 전혀 나지 않는다. 그저 약간의 물 냄새와 피비린내가 날 뿐……,
잠깐, 피비린내?
코의 점막으로부터 시작한 감각이 등골을 타고 내려가 온몸에 서늘한 감촉이 스며들었다. 혹시 잘못 맡은 것이 아닐까 생각해 다시 한번 코를 벌름거려 봤지만, 불행히도 내가 잘못되지 않았다는 확신만을 얻었을 뿐이다.
‘아, 젠장. 이러면 안 되는데.’
길드 업무의 특징상 피 냄새를 맡은 일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가끔 배달한 물건이 장물이었다든가, 어떤 범죄와 연루되어 있다든가 하는 일도 허다했다. 특히 마스터는 위험한 냄새가 나는 의뢰는 어느 정도 고참에게 맡겼기 때문에, 나 역시 그런 경험은 풍부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기분이 좋은 건 아니라고.’
가뜩이나 휴가 약속까지 받아온 상태에서 이런 상황이 연출되는 것은 그리 바람직하지 못하다. 상황이 지나치게 꼬여버리면 휴가 반납은 물론 마스터한테 도와 달라고 빌어야만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빌어먹을.’
다시 한번 쥐의 모습을 취한 채, 나는 점점 가까워지는 피비린내를 느끼며 조용히 벽 근처의 그늘 한구석에 달라붙었다. 근처에 수도관도 있으니 여차하면 수도관 내부로 달아나 도망칠 수 있을 것이다.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제발 그냥 지나가라! 제발.’
최소한 귀족만은 아니길 바라면서 피 냄새가 풍겨오는 복도에서 시선이 떨어질 줄 몰랐다. 이윽고 그 비릿함이 정점에 올랐을 때.
“그어어어어어.”
내 눈앞에 ‘녀석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사람과 같은 크기의 생명체였다. 하지만 그저 크기가 비슷할 뿐, 그것이 사람이냐고 묻는다면 본 사람들은 누구나 고개를 저을 것이다. 우선 눈에 들어온 것은 그 피부였다. 누가 박피 작업이라도 했는지 피부는 모조리 도려내진 채 붉고 흰 근육계가 꿈틀거리는 모습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여기에 더해 불룩 튀어나온 배는 세로로 길게 찢어져 흉측한 이빨이 엇갈려 난 거대한 입이 지속해서 쩝쩝거리며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자세히 보이진 않았지만, 그 이빨이 맞물린 곳에는 사람의 머리로 보이는 형상이 있었는데, 이 괴물의 머리 부분이 사람의 머리가 아닌 내장 다발이 꽂혀 있는 것을 보면 아마 머리를 잘라내고 내장과 위치를 바꾼 것처럼 보였다.
다른 하나는 아름다운 여인의 얼굴을 한 녀석이었다. 얼굴만 생각하면 내가 아는 여성 중에서도 마스터나 오드리조차 한 수 뒤처질 정도로 아름다운 그녀의 얼굴은 뭇 남성들의 마음을 흔들 수 있으리라. 만약 얼굴이 사람의 몸통에 달려있기만 했더라면 말이다. 그 얼굴에 연결된 것은 어지간한 성인 남성보다 큰 대형견의 몸통이었다. 그러면서도 다리는 없이 몸통으로만 바닥을 기고 있었는데, 그 대신이라고 할지는 모르겠지만 인간의 척추처럼 보이는 기관이 뱀의 꼬리라도 되는 양 살랑살랑 움직이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들어온 것은 귀족으로 보이는 젊은 남성이었다. 같이 들어온 괴물들과는 달리 평범한 그의 모습에 나는 한순간 그는 인간일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아쉽게도 그것이 헛된 바람임을 깨닫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사내의 뒤통수에는 어지간한 어린아이 머리 크기의 거대한 안구가 달려있었는데, 그 안구 주변에는 내장과 비슷한 기관들이 사내의 머리에서 안구가 떨어지지 않도록 고정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이 고깃덩어리를 연상시키는 기분 나쁜 고정 기관 끝에는 다시 촉수들이 달려있었는데, 이 촉수들은 주사기 같은 끝을 달고 있어서 사내에게 하나씩 정체 모를 약물을 주사하고 있었다.
“찍찍찍찍.”
쥐의 모습을 취한 덕에 다행히 비명 대신에 평범한 울음소리가 흘러나온 것과 함께 전신이 떨려온다. 쥐의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인지 동물 특유의 생존 본능이 끊임없이 경고를 울리며 도주하라고 머릿속에서 외치고 있었다.
‘저건 대체……!’
있을 수 없는 생물이다.
마법사로서 지닌 상식이 자연스럽게 도출해낸다. 세상에는 온갖 기괴한 마수들이 존재하지만, 그것들 역시 결국은 생물. 생물학의 기본을 벗어나진 않는다. 마법으로 만들어낸 합성수라도 저런 식의 기괴한 신체 구조라면 몇 분 버티지 못하고 전신이 괴사상태에 도달하게 된다.
하지만 그렇다면 저건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있을 수 없는 생물인데, 분명히 살아있을 수 없는 존재인데, 왜 저것들은 멀쩡히 움직이는가? 어떻게 저것들이 이곳에 있는가? 아니 그 이전에 왜 내 앞에 나타났는가?
공황 속에서 끊임없이 이어져 가는 질문의 행렬. 하지만 이 무한의 나선은 그 순간 들려온 소리에 끊어질 수밖에 없었다.
“다시 한번 묻겠다, 로이.”
여인의 얼굴을 한 괴물은 머리에 작은 괴물을 단 채 몽롱한 얼굴을 한 청년을 바라보며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잠깐 로이라고? 그건 의뢰인의 이름인데.
나는 머리에 괴물을 달고 있는 남성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약에 취해 있어서 그런지 멍청하게 보이기는 하지만 머리카락 색과 얼굴형 모두 의뢰서에 쓰여 있던 모습과 일치한다.
그렇다는 건 설마……?
“초커는 어디에 있지?”
안타깝게도 부정하고 싶은 일은 반드시 일어나기 마련인 모양이다.
눈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목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금속성 감촉이 꼭 내 목을 조이고 있는 교수대의 밧줄처럼 느껴졌다. 아니, 저 괴물들이 원하는 것이 지금 내 목에 걸린 이 물건이라는 거 생각하면 그 이상으로 위험한 것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풀어놓고 싶지만……,
“찍찍.”
쥐의 모습으로는 초커를 푸는 건 물론, 만지는 것조차 할 수 없다. 애초에 배달 품목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기 위해 변신술을 하기 전에 장착했던 것이 아닌가?
그렇다고 인간으로 돌아가서 상대방에게 전해준다는 선택지는 완전히 배제해도 무방하리라.
“끄아아아아악!”
당장 눈앞에 초커가 없다는 것만으로 로이라는 사람의 눈알을 뽑아버리는 걸 보면 말이다.?
약에 취했는데도 불구하고 안구가 그대로 적출되는 통증이 사라지진 않는지 로이는 실실 웃으면서도 비명을 내지리는 기이한 모습을 하며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잘못하면 죽는다.
무의식적으로 떠올렸지만 애써 부정하고 있던 사실을 머리가 받아들이자 전신이 차갑게 식으며 뻣뻣하게 굳어간다. 분명 이성으로는 도망쳐야 하는 걸 아는데도 불구하고 몸은 겁을 집어먹었는지 극도로 부자연스러운 움직임만이 가능하다.
‘한 발, 두 발.’
조금씩 움직이다 보면 살 수 있을 거야. 그래, 조금씩. 조금.
‘뭔가 이상한 느낌이……?’
“저.기.다.”
그 소리가 들려온 순간, 생각하는 것보다 일찍 몸이 움직였다.
쿵!
방금까지 내가 있던 자리로부터 거대한 충격음이 울려 퍼졌다. 소리의 원흉은 자신의 머리를 짓씹는 걸 제외하면 조용히 있던 박피 괴물의 손.
‘무슨 위력이!’
기괴하게 변한 모습이지만, 인간형이라 힘은 평범하리라고 생각했건만, 단순한 주먹질 한 번에 박살 난 대리석은 내가 착각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한 대만 맞으면 죽는다!’
곰이나 코끼리 같은 모습으로 변해도 버틸 수 있으리라고 장담할 수 없다.
“도.망.치.지.마.라.”
너 같으면 그러겠냐?
속으로 녀석을 욕하면서도 전력으로 네 발을 놀려 근처에 있는 다른 수도를 찾는다. 방금 녀석의 공격으로 내가 본래 생각한 도주 경로가 망가진 이상, 다른 수도관을 찾지 못하면 죽는 것 외에는 다른 미래가 없었다.
‘빌어먹을!’
어째서 이렇게 상황이 꼬이는 건데?
어떻게 살아나가는 데 성공한다면 마스터에게 반드시 위험수당을 추가로 받아내겠다고 생각하며 나는 그저 도망치기 시작했다. 녀석들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 ***
얼마나 뛰었을까?
토할 것 같은 몸을 억지로 끌고 진행되던 추격전도 결국 끝을 고했다. 다행히 괴물 셋 모두 기동성이 떨어지는지 녀석들이 보이지 않게 된 것은 금방이었지만, 만에 하나라도 있을 추격을 피하고자 끊임없이 수도관을 뛰고 또 달렸다. 그렇게 태양이 밤하늘의 검은 커튼에 얼굴을 숨기고 달이 중천에 떠오르게 될 때가 되어서야 나는 도주를 끝내고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낡은 경첩 소리와 함께 어제 출근 이후 돌아오지 못하던 집이 나를 반겨준다. 비록 헛간이랑 크게 다를 바 없는 작은 방에 불과하지만 적어도 내게는 지금 유일한 쉼터다.
눈에 짚단을 가득 채워 놓은 커다란 침상이 보이자 그대로 몸을 던져 풍겨오는 풋내와 푹신한 감촉을 즐긴다. 평소라면 최소한 옷이라도 벗고 눕겠지만 괴물들과 한참 추격전을 벌이고 온 오늘 같은 날에도 그런 식으로 체력을 빼앗고 싶지는 않았다.
‘결국 녀석들은 뭐였을까?’
피로에 절어 몸은 물에 젖은 솜이불처럼 무거워졌지만, 과다한 긴장감이 머리가 잠드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 있었다.
인간은 물론 내가 아는 어떤 생명체도 아니고 마법적으로도 전혀 설명할 수 없는 생명체. 만약 내가 심부름꾼이 아닌 학자라면 증거를 모아 연구를 해볼 법한 주제다. 하지만 그런 건 지금 내가 생각해볼 만한 내용이 아니다.
‘녀석들은 분명 이걸 노리고 있었어.’
손을 뻗어 목을 가리키자 차가운 금속 특유의 감촉이 느껴졌다. 마력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물건임에도 불구하고 마도구 이상의 가격을 받고 배달을 의뢰한 품목인데, 거기에 더해 이제는 괴물들까지 이걸 가져가려고 하는 판국이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벗어서 타인에게 넘겨주고 싶을 정도다.
‘하지만 남에게 넘겼다가 죽으면?’
그 괴물들의 전투력은 솔직히 곰이나 사자 같은 맹수와 비교하는 것조차 실례였다. 어디 명망 있는 전투마법사(Battle Mage)나 마도기사(Mystic Knight)라면 모를까, 평범한 마법사가 상대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그나마 마스터 정도라면 살아남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랬다가 마스터가 살해당하기라도 하면 찜찜한 것을 넘어 하루아침에 직장이 소멸해 버린다.
‘그렇다고 경비대에게 넘길 수도 없고.’
경비대에게 물건을 맡기면서 신변 보호를 요청한다면 잠깐은 안전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왜 괴물들에게 살해당할 뻔했는지 설명을 해야 하고, 그러자면 의뢰와 지하수로 침입 건을 얘기하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살아남는다고 해도 결국 감옥 직행 코스다.
‘옛날에는 이런 고민 따위 안 했을 텐데…….’
그렇게 머리를 쥐어짜면서 안전한 방법을 떠올리다 보니 문득 우스워졌다.
학창 시절의 나라면 분명 전혀 다른 반응을 보였겠지.
영웅을 꿈꾸던 시절인 만큼 오히려 신나서 길길이 날뛰었을 것이 분명하다. 도시에 숨어든 괴물들을 잡고 사람들을 구하겠다며 주제도 모르고 여기저기 쑤시고 다니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운이 좋으면 정말로 도시를 지키는 영웅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리라.
‘하지만 십중팔구는 죽겠지.’
괴물들에게 잡혀서, 나라는 존재가 있었다는 흔적조차 남기지 못한 채.
그렇지만 세상에 흔적을 남기지 못하는 건 지금도 마찬가지 아닐까?
‘멍청한 소리.’
마음 한구석에서 헛된 망집의 불씨가 피어나는 것이 느껴지자 억지로 생각의 방향을 틀며 진화에 나섰다.
인제 와서 무언가 바꾸려고 해봐야 결국 얻는 건 아무것도 없으리라.
‘잠이나 자자.’
지금 내가 무슨 생각을 한다고 해도 결국 답은 나오지 않을 거라는 판단이 서자, 억지로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단순히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는 어리석은 자의 선택일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지금, 이 순간의 단잠으로 최소한의 피로 정도는 불 수 있을 테니까.
내일 하루가 지나면 분명 평소와 같은 나날이 펼쳐지기를…….
그런 작은 기도를 남기며 나의 의식은 꿈의 세계로 서서히 침잠해 들어갔다.
딱히 할 말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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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댓글
마드리갈
2020-10-10 19:58:47
이제는 작중의 세계에 대한 대략적인 사정.
이 세계도 격차사회네요. 게다가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그냥 생지옥.
주인공이 가진 둔갑술이라는 게 쓸모없게 여겨져 무시되고는 있지만 오히려 그렇게 무시되는 것 덕분에 쥐의 모습으로 둔갑하여 이곳저곳을 이동가능하다는 게 정말 역설적이예요. 뭐랄까, 죠죠의 기묘한 모험 5부의 포르마조가 지닌 스탠드 능력인 리틀 피트가 물건을 작게 축소시키는 것이라서 별로 가치가 없다고 경멸당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상상도 못한 큰 위력을 지니는 것처럼...
주인공이 쥐의 모습을 하는 것에서 친근감이 느껴지기도 해요. 제 별명 중에 쥐가 있다 보니 특히 그런 건가 봐요(쥐 관련으로 이것저것 참조). 그래서 읽으면서 주인공에 감정이입이 되고 있어요.
그런데, 역시 사건은 어딘가 먼 곳에서 갑자기 운석충돌같이 날아오는 게 아니라 세계의 지극히 평범한 일상 속에 있었어요. 게다가 어떻게든지 자신의 이력을 내보이게 되면 배드엔딩 직행...진짜, 한숨 자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반대할 수 없어요. 저 정도는 아니었지만, 생활 속에서 갑자기 생각 자체가 꼬이게 되는 일도 있었으니까요.
Papillon
2020-10-11 02:32:42
일종의 역설이죠. 사다리가 없을 때는 못살아도 타고난 것이 그러니 어쩔 수 없다고 할 수 있지만, 사다리가 있으면 올라가지 못한 것만으로 실패한 인생 취급을 받으니까요.?
SiteOwner
2020-10-21 19:52:18
제2화를 읽고 있습니다.
중학생 때 사회교과서에서 읽었던 유럽 중세사회의 면모 중에 "도시의 공기는 자유를 준다" 라는 구절이 떠오르면서 지하수로의 광경, 사회상 등도 같이 떠올리고 있습니다. 카다스의 지하수로를 만들었던 선주종족들이 그 지하수로가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를 안다면 그들은 과연 어떻게 생각할지...예전에 구 수인선이 철거될 때를 떠올리면서 생각이 복잡해집니다.
둔갑술이라고는 해도, 문제가 꽤 있군요. 변신하고서 적응기간을 거쳐야 한다면...
그래도 둔갑술조차 없으면 그건 그것대로 더 문제니 일단 둔갑술 자체에 만족해야겠습니다. 지금 상황으로서는.
주인공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지옥도 그 자체.
그렇습니다. 잠이라도 안 자 두면, 못 견딜 게 분명할테니까요.
Papillon
2020-10-22 01:08:13
선주종족이 나올 일은 없습니다만, 그쪽도 그리 좋은 종족은 아니었는지라 별 생각이 없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사실 둔갑술이 사장된 이유가 여러 약점들 때문이니까요. 괜히 주인공 말고는 익힌 사람이 거의 없는게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