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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프터즈] Chapter 1: 기묘한 하루. Episode 04

Papillon, 2020-10-04 21:45:58

조회 수
142

일어나보니 눈앞에 미인이 기다리고 있었다.
남녀를 가리지 않고 사람이라면 꿈꿀 법한 로망 중 하나이다. 인생이라는 기나긴 항해에 비하면 지나치게 찰나에 국한된 휘발성 행복이지만, 수많은 사람은 그 소소한 기쁨을 매일 누리기 위해 연애를 하고, 애인을 만들고, 결국 결혼이라는 인생의 큰 관문을 넘게 된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인생의 파트너가 자신이 생각하는 미인과 다르다는 사실에 좌절할 수도 있지만, 뭐 어쩌겠는가? 마음대로 안 되니까 신생(神生)이 아닌 인생(人生)인 거지. 그런 면에서 볼 때 지금 갓 각성한 내 눈앞에 있는 여인은 외모로만 보면 충분히 내 인생을 걸어볼 만한 미인이었다.
시야에 가장 먼저 들어오는 것은 밤하늘을 찢어 그대로 섬유질로 만들어 놓은 것처럼 윤기 있고 부드러운 장발이었다. 편한 움직임을 위해서인지 포니테일로 묶어 올렸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아름다움만은 쇠하지 않는 것이 실로 인상적이라, 만약 어떤 고명한 화백이 밤의 여신을 화폭에 담고자 한다면, 나는 주저 없이 그녀를 모델로 삼아 그릴 것을 권할 것이다.?
밤하늘 같은 앞머리 아래에는 겨울의 여신을 조각한 것과 같이 차갑지만 아름다운 얼굴이 기다리고 있었다. 갓 스물을 넘었는지 구체적으로 보면 살짝 앳된 티가 나기는 했지만, 여인의 얼굴에서 풍기는 냉엄함은 그녀를 애송이라고 보는 것을 거부하도록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아름다운 얼굴에서도 유별나게 인상적인 것은 그녀의 호박색(Amber) 두 눈동자. 심야의 어둠 속에서도 샛별처럼 빛나는 그녀의 두 눈은 마치 태초에 신들과 경쟁했던 용들이 지닌, 별의 마안(魔眼)을 연상케 했다.
마지막으로 느껴지는 것은 내 몸을 짓누르고 있는 그녀의 탄탄한 육체였다. 꾸준한 단련으로 다져진 것인지 우락부락 거대하진 않았지만, 단단하고 유연한 근육의 감촉이 그녀와 나의 옷이라는 천 두 장을 지나 내 신경을 통해 넘어오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흘끗 보이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굴곡을 자랑하는 그녀의 상의를 바라보면, 오드리나 마스터가 본다면 반칙이라고 외칠 정도다.

‘정말 오늘은 미인을 많이 보는구나.’

마치 인세의 것이 아닌 듯한 그녀의 아름다움 때문인지, 아니면 아직 잠에 취해서 맨정신을 각성하지 못했기 때문인지 문득 그런 실없는 생각이 떠올랐다.
확실히 오늘은 미인을 많이 봤다.
일단 깨어나자마자 본 오드리는 예쁘기보다는 귀여운 쪽이긴 하지만 어찌 되었든 미인 카테고리에 들어갈 만한 녀석이다. 마스터는……실제 나이가 내 할머니뻘인 주책맞은 늙은이이기는 하지만 겉모습은 가끔 오는 귀족 손님들도 혹할 정도의 쿨 뷰티이다. 그리고 지하수로에서 만난 개 괴물도 일단은 미인이었는데……, 음. 이건 제외. 아무래도 이것까지 미인으로 취급하면 가뜩이나 바닥을 기는 내 인생이 더욱 비참하게 떨어질 것 같다.?

‘미안합니다, 개 괴물 씨. 일단 얼굴은 미인이셨는데, 아무래도 그 몸은 아니에요.’?

거기에 지금 와서는 내 눈앞에 있는 이 정체 모를 미녀까지.

‘혹시 오늘 연애운이 좋나?’

학창 시절에 교수님께서 점쟁이들은 극소수를 제외하면 죄다 사기꾼이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그래도 혹시 모르니 알아보는 게 나쁘진 않겠다.
그런데 이 여자 아까 뭐라고 하지 않았나?

“다시 한번 요구한다, 도둑.”

그런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인지, 여인의 입술에서 서릿발이 흩날리는 것처럼 냉정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움직이지 말아라. 거기에 더해, 기분 나쁜 표정도 짓지 말도록. 기분이 나쁘더군.”

이런 또 생각하는 게 표정에 드러났나? 직장 동료 중에 도박꾼 녀석들에게 표정 숨기는 법이라도 좀 배워야 하나? 아니, 그런데 잠깐…….

“저기, 저 보고 뭐라고 하셨죠?”
“움직이지 말라고 했다.”
“아뇨, 그 이전에요.”
“도둑이라고 했다.”
“…….”

도둑. 음, 그러니까 타인의 거처에 침투해서 물건을 훔쳐 가는 그런 불법적인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을 말하는 것 맞나?

“……여기 제집이죠?”
“글쎄. 적어도 당신이 숙식을 해결하는 곳은 맞는 것 같군.”
“뭔가 이상하지 않으세요?”
“뭐가 말이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것처럼 초롱초롱한 눈동자를 보니 아무래도 진짜로 모르는 모양이다.
음, 이럴 때는 아무래도 스트레이트로 질러줘야 하는 게 맞겠지?

“여기가 제집이면 그쪽이 불법 침입자나 도둑이라고 보는 게 정상 아닐까요?”
“…….”

갑자기 세상이 정지하기라도 한 걸까? 고작해야 1분 전까지 차가운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던 여인은 순간적으로 멍한 표정을 지으며 허공을 응시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진짜 의표를 찔린 모양이네.’

이 아가씨 겉으로는 완숙한 베테랑처럼 보이던데, 실제로는 영 맹탕이 아닌가 싶다.

“후후후.”

예상보다 충격이 컸던 것인지 여인은 이내 무언가 허탈한 목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이래서야 완전히 그 사실을 지적한 내가 나쁜 놈이 된 것 같은 기분이지만 그래도 요구사항은 분명히 밝히는 게 맞겠지.

“음, 저기. 혹시 용무가 끝났으면 나가 주시지 않겠습니까? 제가 어제 피곤한 일이 있었기에 좀 더 자고 싶어 서요.”

“후후후.”
“그 꼭 대화할 필요가 있으시면 내일이라도……”
“아무래도 대화로는 안 되겠군.”

눈 깜짝할 새에 여인의 혁대에 달려있던 작은 단봉(短棒) 과 같은 물건이 여인의 오른손에 들려 있었다. 그저 손에 잡기 쉽게 만든 단순한 형태의 막대기. 보통 사람이 본다면 개에게 던져주고 물어오게 하는 장난감이 아닐까 착각할 만한 물건이다. 하지만 비록 둔갑술사 나부랭이이지만 마법사인 나에게는 결코 잊을 수도 없고 경시할 수도 없는 물건.
카드드드드득.
금속을 갈아내는 것 같은 소음이 허공을 찢어내고, 그 자리에 푸른 빛으로 물든 빛의 칼날이 모습을 드러냈다. 반투명한 칼날은 성인 남성의 종아리 정도로 짧은 길이에 불과했으나, 그것이 발하는 빛은 내 좁은 방을 환하게 밝힐 정도가 되었고, 열기 역시 심야의 저온을 잊게 해줄 정도로 강렬했다.
마력 무기.
마법사 중에서도 가장 전투에 특화된 두 계파 중 하나인 마도기사의 상징.

“우리 가문에 내려오는 격언이 있지.”
“…….”
“범죄자 놈들은 말로는 대화가 통하질 않는다.”

역효과였나?!
위기감에 몸이 바닥을 구르는 것과 함께 섬광이 내 팔이 있던 허공을 횡으로 갈라왔다. 검이 지나간 궤적을 보아 나를 죽이려는 것은 아닌 모양이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팔이 잘리는 것을 달가워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뭐 하는 짓입니까?”
“너야말로 뭐 하는 짓이지?”
“네?”

설마 칼 피했다고 이러는 건 아니지?

“죄인이면 죄인답게 벌을 받아라. 피하는 것은 사내답지 못해.”
“어떤 죄인이 칼이 날아오는데 그걸 그냥 맞아줍니까!?”
“나랑 같이 훈련하던 기사들은 훈련 중 잘못을 했으면 한 번 베이고 시작했다만?”

고개를 갸웃하는 것이 진짜로 그렇게 생각하는 모양이다.
빌어먹을. 오늘 연애운이 좋은 것 같다는 건 취소다.?
외모가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저 정도면 돼지 목의 진주목걸이. 아무리 마도기사들이 마법사 중에서도 과격한 이들이라고 하더라도 이런 식으로 저돌적이고 단순 무식한 소리를 하는 경우는 거의 없으리라.

‘잠깐. 무식? 마도기사?’

무언가 생각이 날 것 같은데…….
분명 이전에도 이런 과격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다. 구체적으로 하면 대략 한 달 전쯤. 마스터가 의뢰인을 만나고 와서 투덜거리면서 한 말이었는데.

‘그때, 의뢰인이 분명, 소……!’

미친!
등에서 칼을 피할 때와는 다른 의미의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차라리 떠올리지 못했다면 모를까, 지금 그 이름이 나온다면 나 혼자서 감당할 수 없는 일이라는 얘기가 된다.

“저기 아가씨…….”
“아가씨?”
“아니, 경(sir). 제가 질문 하나만 해도 되겠습니까?”
“도둑과 말을 섞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이지만, 그대가 이후 협조적으로 나온다고 약속하면 못할 것도 없지.”
“물론 협조하겠습니다. 그보다 질문은?”
“하도록.”

다행히 진짜 죽일 생각까지는 없는지 조금 눈꼬리가 올라간 것 말고는 공격적인 행동은 하지 않는다. 그건 다행이지만, 만약 지금 질문의 답이 내가 생각하는 것이 나온다면 그냥 칼 맞고 죽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혹시 경의 성함이?”
“에스텔.”
“……성은?”
“그리 대단한 가문은 아니다.”

하하하, 그래. 설마 그런 어마어마한 가문을 뒤에 업은 사람이 고작 나 같은 놈의 집을 방문할 리가 없겠……,

“소여.”
“네?”
“에스텔 소여. 그게 내 이름이다.”

그냥 칼 맞아 죽을 걸.
아무래도 오늘은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일들만 일어나는 모양이다.


*** ***


카다스의 최고 지배자는 영주인 카다스 백작이다. 이것은 적어도 왕실로부터 법적으로 공인된 사실이다. 하지만 사실과 진실이 언제나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일반적인 도시의 영주와는 다르게, 카다스의 영주는 법과 행정 절차를 집행하는 집행자일 뿐, 도시를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권력자라고 할 수는 없었다.
현재 카다스의 진정한 권력자는 카다스의 설립자라고 할 수 있는 4대 백작가.
우생학적 방식으로 강함을 추구하는 광인 가문, 보어헤스.
돈이 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하는 배금주의 가문, 크루거.
철저한 비밀주의를 지향하는 연구자들의 가문, 마이어스.
마지막으로 무기술과 마투술(魔鬪術)만을 추구하는 저돌적인 마도기사 가문, 소여.
카다스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결코 이 4대 귀족을 향해 이를 드러내서는 안 된다. 그것이 평범한 카다스 시민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이다. 거기에 의뢰로 먹고사는 심부름꾼들에게 있어서 이들을 피하는 건 지식이 아닌 생존의 문제다. 괜히 이들과 얽혀 있는 의뢰를 받았다가 자칫하면 쥐도 새도 모르고 실종되는 경우도 흔했으니까.
그러니 나도 가능하면 만나고 싶지 않았는데.

“꽤 괜찮은 차가 아닌가?”

이 앞에 아가씨 때문에 완전히 망해버렸네.
내가 협조하기로 한 것을 믿었는지, 조금 전까지 내게 칼을 휘두르던 아가씨, 에스텔 소여는 방에 있던 조그만 탁상에서 감탄을 터뜨리고 있었다. 내가 차를 내온다고 했을 때도 그리 기대하진 않는 표정이었는데, 지금 마시는 페이스를 보아서는 아무래도 한 잔 정도 더 달라고 할지 모르겠다.?
뭐, 솔직히 내가 산 차도 아니니까.
내가 말하긴 뭐하지만, 당장 누군가가 말 한 마리를 데려와서 ‘오늘부터 여기가 마구간이다.’라고 해도 전혀 위화감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허름한 곳이 지금 내가 사는 곳이다. 그런데 그런 곳에 살면서 좋은 차를 살 여유?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나에게는 운 좋게도 상등품의 찻잎이 주기적으로 공급되는 장소를 알고 있었다.

‘꼰대에게 들키면 큰일이긴 하지만.’

뭐, 마스터도 소여 가문의 영애에게 드렸다고 하면 아무 말도 못 하겠지. 오히려 마음에 든다고 말하면 한 상자 챙겨주지 않을까?
나는 조용히 차를 마시고 있는 소여 경을 바라보았다.
아까 날뛰던 모습은 대체 어디로 사라졌는지 귀족 영애다운 다도 매너를 보여주는 것이 과연 명문가의 자제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방심은 금물. 다시 그녀가 칼을 뽑는 일만은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럼 이걸 어떻게 한다.
머릿속에서 조용히 퍼즐을 맞추기 시작했다. 그녀가 주기적으로 나에게 말한 키워드는 하나.
도둑.
하지만 내가 훔친 거라고 해봐야 숙직실에 있던 찻잎밖에 없다. 거기다 그건 애초에 이 아가씨도 즐겁게 마시고 있으니 완전히 논외.
그러면 대체……,
그 순간 목덜미에서 왠지 느껴진 차가운 감촉에 손을 들어 올려 목을 쓰다듬었다. 손끝에 차가운 금속 질의, 내가 잊고 있던 물건의 형태가 고스란히 촉감으로 다가온다.
초커.
오늘 고객이 내게 의뢰한 배달 품목이자, 괴물들이 쫓던 물건.
그리고 꿈의 마녀, 이드라의 신기.

‘그건 단순한 꿈이 아니었던 걸까?’

꿈에서 만난 그 초월자는 처음 만난 나에게 말했다.

‘[참으로 긴 시간 만에 소여의 아이가 아닌 다른 아이가 왔구나.]’

소여의 아이…….
그 당시에는 몽롱한 기분에 우연히 넘겼던 내용이지만 지금 내 앞에 소여 가문의 사람이 와있는 이상 결코 우습게 넘길 수 없는 사안이다.

‘빌어먹을 자식. 이런 위험한 물건을 심부름꾼을 시켜 배달하면 어쩌자는 거야?’

이미 살아 있다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는 상태인 걸 확인했지만, 도저히 욕을 하지 않고는 못 버틸 것 같다.

“그럼 차도 마셨으니 슬슬 대화로 들어가도록 하지.”

영원한 부정의 사이클을 향해 나아가던 나의 사고는 다행히도 소여 경의 목소리에 현실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대, 그러고 보니 이름이 뭐였지?”
“그레고르입니다.”

‘이름도 모르면서 칼질을 하고 본 건가?’ 하는 생각에 어이없는 감정이 솟구치지만, 뭐 힘없는 내가 참아야지.

“그레고르. 내가 왜 찾아왔는지 알겠나?”
“이 초커 때문이겠지요.”
“알고 있었나?”
“그래. 그건 우리 소여 가문의 신물이다. 수일 전 도둑맞았지.”

도둑이라. 그 녀석이?
솔직히 이해가 가질 않는다. 로이라는 녀석이 그렇게 유능해 보이진 않았는데. 다른 곳이라면 모를까, 어떻게 소여 백작가에서 이걸 훔쳐낸 거지?

“저는 이걸 배달해달라는 의뢰를 받았습니다.”
“배달? 심부름꾼인가?”
“네. 심부름꾼입니다.”

내가 심부름꾼 길드 소속이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나?
갑자기 소여 경의 표정이 무언가 큰 잘못을 저지른 어린아이처럼 변하자 나는 의아해했다. 여태까지 귀족에게 심부름꾼임을 밝힌 적은 여러 번 있었지만, 무시하는 경우는 있었지만 이런 경우는 한 번도 없었는데 영문을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미안하다.”
“네?”
“도둑인 줄 알고 과하게 폭력을 썼다. 이건 씻을 수 없는 나의 죄다.”

이거 지금 누가 장난치고 있는 건가?
순간적으로 그런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어떤 광인도 소여 백작가의 이름을 팔아 이런 장난질을 칠 리는 없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지금 상황은 비현실적이다.

‘귀족이, 그것도 4대 백작가가 심부름꾼에게 고개를 숙여?’

차라리 둔갑술이 내일 당장 최고 인기 전공이 되어서 내가 카다스 영주로 부임하는 게 더 현실성 있는 장면이다.
그런 나의 공황을 무시하는 건지, 아니면 애초에 눈치채지 못한 건지. 소여 경은 내 앞으로 슬쩍 조그만 물건을 내밀었다.

“이건…….”

문장인가?
소여 경이 내놓은 금속판에는 기묘하지만 익숙한 문양이 음각되어 있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덩굴식물이 불꽃을 휘감고 있는 것 같은 기묘한 모양.

“초커에 새겨진 모양과 같군요.”
“소여의 직계만이 쓸 수 있는 문장이다. 어떤 존재의 권위를 상징하지.”
“어떤 존재라고 하심은……?”
“그것까지 말해줄 수는 없다.”

아무래도 이드라의 존재는 비밀인가?
처음 나를 깨웠을 때처럼 냉정한 목소리로 선을 긋는 걸 보아서 아무래도 내가 알아서는 안 되는 내용인 것 같다.

“어찌 되었든 돌려드리면 되는 거죠?”
“그렇게만 한다면 용무는 없다.”

뭐, 그렇다면 다행이고.
혹시라도 말만 이렇게 하지 초커의 정체를 숨기기 위해 나를 죽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떠올랐지만, 같은 마법사에게도 쓰레기 취급받는 심부름꾼에게 고개를 숙이는 모습을 봐서 그러진 않으리라 믿기로 했다.

‘어쩌면 다행일지도 모르겠네.’

애초에 이 초커를 어떻게 처분해야 할지 갑갑하던 차다. 이거로 해결해버리면 나야 좋지.
자, 이제 이 초커를 풀어. 풀……어?

“저기.”
“뭐지?”
“이거 안 풀리는데요.”

순간 소여 경의 눈매가 처음 만났을 때보다 차가워진 것 같지만 기분 탓이길 바란다.
제발.

Papillon

딱히 할 말은 없습니다.

4 댓글

마드리갈

2020-10-11 13:36:20

주인공을 도둑놈이라고 부른 자는 미녀였군요. 그것도 세계최강으로 여기더라도 의심의 여지 없는.

게다가, 그 미녀가 주인공을 제압하고 있는 장면의 묘사와 주인공이 느끼는 감촉이 굉장히 실감나고 있어요.

그런데, 주인공의 반론에 갑자기 다운된 듯한 모습에는 실소를 금할 수가 없어요. 적어도, 주인공이 문제의 장소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있다면 그 장소가 사실상의 거처인 것이고, 문제의 미녀의 행위야말로 곤란하다는 결과로 귀결되니...

읽고 나서 한참을 웃고 있었어요.


바로 앞에서 언급된 "소여" 가 나오네요. 카다스의 실권자 4대 가문 중의 하나인 소여 가문. 그리고 그 미녀 에스텔 소여는 바로 그 소여 가문의 일원. 주인공이 배송해야 하는 물건이 소여 가문의 것이군요. 주인공의 이름도 드러났네요. 그레고르.

낮은 신분의 주인공에게 무례를 사과하면서도 문제의 초커가 풀리지 않자 눈빛이 차갑게 변하기도 하는 소여 경의 모습을 보면서 어떤 게 진짜 모습인지...주인공처럼, 기분 탓이기를 바라고 있어요.


그런데 의문 하나가 있어요.

경의 영어표현에 대한 것. 주인공이 여성인 에스텔 소여를 경으로 불렀더라면 Sir 보다는 Dame이 더 좋지 않을까 싶은데, 이 세계에는 딱히 성별구분 없이 귀족가문의 인물이면 그렇게 Sir로 쓸 수 있는 건가요? 이 점을 알고 싶어졌어요.

Papillon

2020-10-11 14:51:58

음, 사실 에스텔이 세계관 최강급은 아닙닌다. 다만 주인공처럼 평범한 사람이 만날 수 있는 마도기사 중에서는 최강급이 맞습니다. 하이스쿨 DxD를 예시로 들면 라이저 피닉스랑 그 권속들만 해도 범속한 사람들 입장에서는 굉장히 강력한 악마지만, 발리 루시퍼나 서젝스 루시퍼 같은 진짜 최강자 라인에는 미치지 못하는 것처럼요.


이 세계관에서 Dame 같은 여성형 작위는 반쯤 사어화한 상황입니다. 마법이 대중화되면서 왕권과 귀족권 사이에 권력 개편이 이루어졌는데, 왕권을 확대시키기 위해 한 조치 중 하나가 평민이라도 뛰어난 마법사들의 준귀족화입니다. 귀족이 많아져서 특권을 나누게 되면 정작 개개 귀족이 같는 권한은 약해진다는 점에서 착안한거죠. 여기에 한술 더 떠서 여자 건 남자 건 아무에게나 모든 작위를 줄 수 있도록 남녀 구분을 반쯤 파기해버린 상황입니다. 물론 일부 귀족가는 여전히 칼 같이 따지긴 하는데, 에스텔이 소속된 소여가는 가주 밑에 전원 동등한 실력제라, 그냥 통일해서 쓰고 있죠.

SiteOwner

2020-10-21 21:51:34

미인이란 역시 선망의 대상이지요.

그 미인이 이성이라면 반려로 삼고 싶다는, 동성이라면 동경의 대상인 생각이 드는...

주인공의 삶이 조금은 윤택해지는 것 같습니다. 문제는 현재 눈앞의 미인이 적의를 보이는 것, 그리고 한방 먹으니 제대로 대응을 못하고 순간이나마 맹한 상태가 되는 것. 역시 이런 상황, 재미있습니다.


주인공 그레고르, 그리고 저돌적인 마도기사 가문의 에스텔 소여, 이렇게 통성명을 했고 만나게 된 목적도 달성하려 했지만, 정작 그레고르의 목적인 초커 전달에서는 예기치 못한 문제가...갑자기 소름이 끼칩니다.

Papillon

2020-10-22 01:10:16

보이 미츠 걸(이 경우에는 맨 미츠 우먼이겠습니다만)을 통해 미녀를 만나는 건 새로운 이야기의 시발점이 되곤 하죠.

에스텔은 개인적으로 제 취향을 넣어 만든 캐릭터라 매력적으로 보였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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