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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프터즈] Chapter 2: 사도각성. Episode 05

Papillon, 2020-10-04 21:49:54

조회 수
136

자취하는 이의 아침 식사는 보통 그리 풍족하지 못하다. 요리하는 취미가 있어서 평소에도 재미 삼아 맛있는 식사를 만든다면 모를까, 그저 하루하루 먹고사는 것이 전부인 보통 직장인들에게 아침 식사 준비는 고단하고 피로한 노동에 불과하다. 그나마 외식이라는 또 다른 선택지가 있는 중식이나 석식과는 다르게 조식은 단순한 차림이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나 역시 평소에는 그저 단순한 육포나 건빵 같은 보존 식량으로 하루 활동에 필요한 영양분을 꾸역꾸역 쑤셔 넣는 것을 아침 식사란 이름으로 포장하곤 했으니까.
하지만 오늘만큼은 그럴 수 없었다.
지금 내 앞에는 상당한 노동이 들어갔을 것이 분명한 풍족하고 호사스러운 조식이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었다.?
우선 눈에 보이는 것은 테이블 중앙에 놓인 커다란 빵. 그리 비싸지 않은 단순한 주식에 불과한 빵이지만, 이제 막 오븐에서 나왔는지 느껴지는 따끈한 열기와 고소한 향은 입맛이 돌게 하기에 충분하다.?
그 옆에 있는 것은 고소하면서도 달콤한 향을 풍기는, 닭고기와 레드 와인, 갖은 야채를 베이스로 한 걸쭉한 국물의 스튜. 분명 밤 동안 빈속을 따스하게 달래 줄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것을 먹고 난 뒤, 하루를 시작할 활기를 내려줄 차갑게 식힌 과일 주스. 마법의 등장 덕에 식당마다 냉장 및 냉동 기구를 구비하긴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부담되는 가격 때문에 쉽게 맛볼 수 없는 진미다.

‘평소라면 이런 건 만찬 때도 먹지 못하는데.’

지금 내 월급으로 이런 식사를 즐길 수 있는 건 오직 길드 회식 같은 특수한 날뿐. 만약 내 돈으로 이런 짓을 했다가는 둘 중 하나의 결과밖에 남지 않을 것이다. 이번 달 월세를 못 내서 쫓겨나거나, 다음 달까지 버티다 강제로 끌려 나오거나.

‘뭐 지금은 물주도 있으니까.’

에스텔 소여. 카다스의 4대 귀족인 소여 백작가 인물에게는 이런 식사 정도는 별일 아니겠지.?

‘그러고 보니 소여 경은 어떻게 먹고 있지?’

괜히 지나치게 수준 낮다고 생각하면 내가 책잡힐 텐데…….
일단 머릿속에서 내가 아는 최고급 식당을 찾아내 데리고 오기는 했지만, 공경귀족(公卿貴族)의 일원인 그녀가 어떻게 여길지는 미지수다. 여태까지 내가 일하면서 만난 귀족들의 인성을 생각한다면 여기서 갑자기 칼을 뽑는 것도 예상 범주 안의 일이다.
제발 무사해라.
나는 마음속으로 내가 알고 있는 온갖 신들에게 기도를 드리며 슬쩍 소여 경의 테이블을 바라보았고, 내 예상보다 추잡하게 음식을 먹고 있는 그녀를 볼 수 있었다.

“우걱우걱.”

누가 빼앗아 가기라도 하는 걸까? 그녀는 어젯밤 검술을 펼치던 것 이상의 빠른 속도로 오른손을 놀리며 커다란 그릇에 담긴 스튜를 빠르게 흡입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왼손은 놀고 있느냐? 그것도 아니다. 왼손에는 그녀의 작은 얼굴보다 두 배 이상 커다란 빵을 들고 있었는데, 그녀가 한 번 베어 물 때마다 빵에는 큼지막한 이빨 자국이 생겨났다.

‘뭐야 저거?’

귀족인 건 둘째 치고 보통 저렇게 밥을 먹나?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오드리가 다람쥐가 수박 베어먹듯 조금씩 빵을 뜯어 먹었던 걸 기억하면, 실로 하늘과 땅 차이가 아닐 수 없었다.
와장창!
지금 내 안에서 간직해왔던 미녀에 대한 환상이 박살 나는 소리가 실시간으로 들려왔다.
분명 어젯밤에만 해도 밤의 여신이 아닐까 생각할 정도였는데, 이래서야 마치…….

‘난쟁이(dwarf)?’

광산 도시에 산다는 키 작고 근육질의 마초 종족의 환영이 왜 이 미녀에게 겹쳐 보이는 걸까?

“음? 뭔가? 안 줄 거네.”
“괜찮습니다.”

내가 대답했는데도 불구하고 팔을 이용해서 혹시나 모를 내 식기의 경로를 차단하는 것이 정말 내가 밥을 빼앗아 먹을지도 모른다고 여기는 것 같다.

‘일단 밥이나 먹자.’

어차피 한동안은 같이 지내야 할 테니, 환상이 깨질 일은 더 많을 거고, 이런 일에 일일이 신경 써봐야 결국 즐거운 휴가만 어딘가로 증발할 뿐이다.
지금을 즐기자.
자신에게 그렇게 최면을 걸어가며, 나는 조용히 아침 식사에 집중했다.


*** ***


어젯밤, 내 선언에도 불구하고 내 목이 몸통과 이산가족이 되면서 내가 그레고르란 이름의 듀라한이 되는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다. 나를 믿은 건지, 아니면 무언가 짚이는 것이 있는지, 에스텔 경은 조용히 생각에 잠길 뿐이었다.
거기까진 좋았다, 거기까지는.

“한동안은 그대와 종일 함께 다니기로 하지.”

자신에 내놓은 답변이 문제가 있다는 것을 전혀 인식하지 못한, 꼭 세기의 대발견을 해낸 마법사처럼 자부심 넘치는 표정으로 선언하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턱뼈가 빠진 것처럼 입을 벌릴 수밖에 없었다.
아니, 상식적으로 남자랑 온종일 붙어 다닌다는 게 말이 되는가? 그것도 귀족 아가씨가?
만약 이 사실을 소여 가문 사람들이 안다면 나는 그날로 그레고르였던 것이 되어서 카다스 지하수로 곳곳에서 발견되는 사태가 발생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항의하려고 입을 열려고 했건만,

“피로하니까 이야기는 나중에 하지.”

지금 당장 자신의 잠을 방해하면 베어버리겠다며 뿜어내는 소여 경의 살기는 특급 자물쇠가 되어서 내 입을 봉해버렸다.
결국, 팔자에도 없이 휴가 첫날부터 밤을 새운 나는 피곤함에 찌들어 실핏줄이 잔뜩 선 충혈된 눈으로 아침 해가 뜨는 걸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오랜만에 실로 훌륭한 식사였다.”

그런 내 상태를 아는지 모르는지, 소여 경은 실로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길을 걷고 있었다.

“만족하셨으면 다행입니다, 소여 경.”
“음, 정말 만족스러웠다. 그게 가문에서는 평소에 건강식밖에 주질 않아서 말이다. 이런 건 실로 오랜만이다.”

설마 소여 백작가는 식사도 훈련용 식단만 먹는 건가?
문득 운동하겠다고 매일 닭가슴살과 약간의 채소만 먹던 동기의 모습이 떠올랐다. 고작 몇 달이긴 하지만 저런 걸 먹고 버티는 동기를 보고 독하다고 생각했는데, 평생 그런 식단만 먹이는 곳이라면 일반식을 먹고 폭주하는 것도 이상하진 않으리라.

‘그건 그렇고 지금 어디를 가는 거지?’

나름대로 카다스의 뒷골목은 많이 안다고 생각했는데, 이곳은 처음 보는 장소다.
우선 보이는 것은 건물들의 특이한 형태였다. 일반적인 서민 가옥이나 귀족 저택과는 다르게, 이곳에 있는 집들은 성벽과 일체화된 형태였다. 그 집들 곳곳에는 무쇠나 황동으로 만든 파이프들이 연결되어 있었는데, 이곳에서는 가끔 기묘한 색상의 증기들이 뿜어져 나왔다.

‘사람들의 옷도 그렇고.’

일반적인 서민들은 무명이나 아마천, 그도 아니면 무두질한 털가죽으로 만든 옷을 입는다. 이렇게 만든 옷들은 형태도 투박하고, 문양 역시 가능하면 피한다. 괜히 그런 거 넣었다가 자칫하면 옷의 수명이 짧아지는 사태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반대로 귀족들의 평상복은 비단이나 모직을 이용한다. 그들에게 옷은 지휘이며, 자신의 존재감이다. 그렇기에 공경귀족들은 자신에게 허락된 한 가장 화려한 옷을 입어 자신의 권위를 증명하고자 한다.
하지만 이 거리를 돌아다니는 이들의 옷은 달랐다. 그들이 주로 입는 옷은 약물을 먹여 손질한 가죽이었으나, 귀족들의 의상과는 달리 철저한 기능성만을 강조한 형태다. 거기에 두꺼운 장갑을 끼고 석영으로 만든 보안경을 끼고 다니는 이도 있는 걸 보아, 평범한 일터에서 일하는 이들로 보이진 않는다.
이런 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들이라면……,

“연금술사 거리입니까?”

내 질문에 소여 경은 고개를 한 번 끄덕여 긍정의 뜻을 표했다.
연금술사 거리. 길드에 소속되지 않은 연금술사 공방이 몰려 있는 거리다. 이렇게 단순한 설명만 들어서는 왠지 쉽게 구할 수 없는 마도구와 비약이 널려 있는, 꿈과 비밀이 가득한 장소처럼 보이지만, 유감스럽게도 현실은 그것과는 멀었다. 정말 제대로 된 연금술사라면 멀쩡한 길드에 들어가지 공방에서 홀로 지원도 못 받고 연구하고 싶겠는가? 그런데도 이런 곳에 자리 잡았다면 그건 둘 중 하나이다.
구제 불능의 사이비 연금술사거나, 인성이 쓰레기라서 길드에 들어갈 수 없거나.
어느 쪽이든 무언가 도움을 얻을 만한 곳은 아니다.

“’왜 이런 곳에 왔는지 이해가 안 된다.’ 그렇게 생각했나?”

이런 또 표정이 읽혔나?

“솔직히 잘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소여 경. 이런 곳에서 만날 수 있는 연금술사라고 해봐야 대형 길드에 속한 이들에 못 미칠 텐데요.”

솔직히 오드리보다 잘나기만 해도 다행이다.

“후후, 보통은 그대의 말이 맞지. 하지만 드물게 예외가 있는 법이다.”
“그렇습니까?”
“보면 알게 될 거네. 그보다 그대에게 요청할 것이 있는데…….”
“요청이요?”

설마 또 이상한 걸 요구하진 않겠지?
솔직히 소여 경이 우리 집에서 머무른 것만으로도 나로서는 미치기 일보 직전인데 말이야.

“앞으로는 에스텔이라고 불러다오.”
“네?”
“에스텔이라고 부르라고 했네. 소여 경이라고 부르면 다른 이들이 경계하지 않나?”

확실히 식당 주인부터 길가의 꼬맹이까지, 내가 그녀를 부르는 호칭을 듣자마자 극도로 긴장하는 것을 쉽게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건 원래 그런 건데?
대다수의 귀족은 평민들이 자신 앞에서 긴장하는 것을 즐긴다. 평민들의 두려움 자체가 그들의 권위가 살아있음을 보여주는 생생한 증거. 그런 그들에게 두려움은 지루한 일상을 발전시켜주는 지고의 양념과 다를 바 없었다.

“정말 그래도 괜찮습니까?”
“뭐, 나를 모욕하려고 이름으로 부르는 것도 아니잖은가? 거기에 무슨 문제가 있나?”
“하지만 권위가……”
“권위는 그렇게 세우는 게 아니다.”
“…….”
“명예를 알고, 약자를 지키며, 자신을 갈고닦을 때 얻는 것이 진짜 권위인 법.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이런 사람이 정말 있었구나.
교과서에 나올 법한 옳은 말을 ‘아침에 해가 동쪽에서 뜬다.’ 같은 상식을 말하듯 확고하게 선언하는 모습에 나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이런 게 진짜 기사인가.’

내가 어린 시절 읽던 영웅담에 나오던 기사의 모습.
그리고 내가 되고 싶었던 모습.

‘부럽네.’

나도 능력만 있었다면 저렇게 될 수 있었을까?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보지만, 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변하고 싶지 않으냐?]
‘뭐지, 이 목소리는?’
“방금 뭔가 말씀하시지 않았나요?”
“음? 아무 말도 안 했다.”

혹시나 해서 소여 경, 아니 에스텔에 물어보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듯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돌아본다. 다른 사람이라면 혹여 장난을 치는 게 아닐까 의심해 볼 법도 하지만, 지금까지 관찰한 이 아가씨의 저돌성과 순진함을 고려한다면, 고작 이런 일로 나에게 거짓말을 할 리는 없다.
그렇다면 그 목소리는 뭐지?
단순한 환청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선명하고, 마치 뇌에 직접 꽂아 넣는 것처럼 분명한 목소리. 그리고 어째서인지 너무나 그리워서 다시 듣고 싶어지는 유년기의 꿈과 같은 목소리.

‘이드라.’

옥좌에 앉은 환염과 몽환의 옛 군주.
문득 그녀의 이름이 떠올랐지만, 동시에 다른 의문들이 연속해서 이어진다. 어째서 지금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는가? 아무리 신물이 있다지만 그녀가 직접 현실에 개입할 수 있는가? 그리고 그랬다면, 어째서 에스텔이 아닌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가?

“잠깐.”

무한히 계속될 것처럼 보이던 질문의 홍수는 에스텔의 목소리라는 댐을 만나는 것과 동시에 종식되었다.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

소리?
얼핏 들어서는 그저 행인들의 대화를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순간 에스텔의 장난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고개를 들었지만, 그녀의 목소리에서 묻어나오는 진지함은 그런 의심을 단칼에 없애버렸다.

“울음소리가 들린다.”

울음소리?
이번에는 눈을 감고 집중해보지만, 역시 들리진 않는다. 아마, 어지간히 먼 곳으로부터 들려오는 소리인 모양이다.

‘빈민인가?’

전에 마스터가 말하길, 빈민가의 부모 중에는 아이를 일부로 마법사들이 사는 거리에 버리는 이들이 있다고 한다. 혹여나 아이들이 마법사의 제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헛된 희망이 그들의 동기다. 하지만, 그들의 희망은 100에 99, 헛된 희망으로 끝난다.

‘운 좋으면 보육원행, 운 나쁘면 합성수 재료.’

애초에 대형 길드에 소속된 마법사들이라면 모를까, 대부분의 마법사는 제 코가 석 자인 경우가 태반이다. 아이를 기를 정도로 여유가 있는 이는 극소수. 거기에 일부는 인성을 버리고 마성에 물든 극악인 또한 존재한다. 그런 극악인들에게 버려진 아이는 실험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도와줘야 하나?
순간 그런 미혹이 마음속에 피어났다.
내가 도와준다면 저 아이는 최소한 보육원에 맡겨질 수는 있겠지. 거기에 운이 좋다면 길드에서 돌봐도 된다는 허락이 떨어질지도 모른다. 마스터가 수전노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버려진 아이를 가져다 버리라고 할 정도로 악인은 아니니까.
하지만 지금은 에스텔의 용무가……,

“뭘 하고 있지? 울음소리는 이쪽에서 들렸다.”

하지만 내 걱정이 무색하게도 에스텔은 어느새 아이의 울음소리를 찾아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바쁘신 것 아니었습니까?”
“아이 목숨보다 바쁜 일은 없다.”

우와 저런 말을 실제로 하는 사람이 있네.
솔직히 오글거리긴 하지만 무언가 마음을 간질이는 따스한 감각이 있었다.
얼마 만이지, 이런 기분?
학창 시절, 하루하루 정의라고 생각하며 활동하던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감각. 그 감각이 부끄러우면서도 동시에 너무나도 그리웠다.

‘가끔은 이렇게 사는 것도 좋을 것 같은데.’

그렇게 생각하며 걸음을 걷다 보니 어느새, 내 귀에도 어린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으앙으앙.
자신을 버린 부모를 원망하는지 아니면 그저 배가 고플 뿐인지, 세상이 무너질 듯 우는 아이의 목소리가 귓가에 박혀오자 아이를 돕기로 하길 잘했다는 확신이 섰다.
하지만, 그 확신이 경악으로 변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저건, 뭐야?”

거기에는 ‘꽃’이 있었다.
뿌리, 줄기, 잎, 꽃잎. 형태로 보아 그것은 꽃이라는 말 이외로는 설명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걸 보고 그것을 진짜 꽃이라고 판단하는 사람이 있을 리 없었다.
으앙으앙.
본디 수술과 암술이 있어야 할 꽃의 중심부에는 아이의 머리가 있었다. 그 아이의 머리는 지금도 우렁차게 울음을 터뜨리고 있었지만, 그것이 연결된 부위는 유아의 몸통 따위가 아니었다.
우선 꽃잎이라고 생각했던 부위는 꽃잎이 아니었다. 얇은 붉은 색의 막이라는 것은 꽃잎과 동일할지도 모르나, 그 정체는 박피하고 얇게 펴낸 인간의 피부. 너무나 얇다 못해 내부의 핏줄이 드러난 그 피부는 아이의 얼굴을 감싸고 있었다. 그 밑에는 달린 꽃받침은 아이가 울 때마다 부풀어 올랐다 쭈그러드는 행동을 반복하고 있었는데, 그것이 본디 아이의 폐였다는 것을 알아보는 데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 외에 줄기, 잎, 그리고 뿌리까지. 혈액의 붉은 빛과 골격의 백색이 어우러져 있긴 하지만, 저것이 본디 인간의 신체 부위였음을 알아보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으리라.
지하수로에서 본 것과 같은 놈들이다.
서늘한 감각이 척추를 타고 흘러내린다.
그날 지하수로에서 만난, 생물학과 마도학을 초월한 기이한 마수. 그것이 아니 고서는 설명할 수 없는 구조의 생물이다.

‘하지만 놈들이 어째서 여기에?’

문득 의문이 떠올랐지만, 그 생각은 그리 오래갈 수 없었다.

“피해라!”

그 말과 함께 무언가 부딪힌 듯한 충격이 들었다. 아무래도 급한 마음에 에스텔이 나를 발로 찬 모양이다. 순간 화가 나서 그녀에게 뭐라고 말하고자 했으나, 내가 서 있던 자리를 본 순간 그 분노는 태풍 앞에 촛불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후드득.
내가 서 있던 곳은 강렬한 충격 때문에 가루가 되어 본래 형태를 가늠할 수 없는 타일만이 흩날리고 있었다. 그런 상황을 유발한 것은 어제 지하수로에서 나를 쫓던 배에 입이 달린 괴물.

“찾.았.다.”

녀석의 기괴하게 뒤틀린 목소리가 거리에 울려 퍼졌다.

Papillon

딱히 할 말은 없습니다.

4 댓글

마드리갈

2020-10-11 14:16:06

상상할 수 있는 온갖 배드엔딩의 잔혹한 장면, 그리고 현실 속의 홀딱 깨는 실제장면의 중첩...

이래서 살아 있는 게 좋은 거겠네요. 주인공 그레고르의 인생역전이라고 해도 좋을 듯...

에스텔의 의외의 모습, 이제 3번째네요. 그럴듯한 논리를 폈다가 자승자박이 된 것에 이어, 이번에는 걸신들린 듯이 먹는 모습은 물론 주인공에게 자신을 소여 경 대신 이름 에스텔로 부르게 한 것까지...


빈민층 아이들의 운명, 그리고 꽃의 모습을 한 괴생물...

갑자기 토할 뻔 했어요. 그래서 방 안에 있는 정물화조차도 갑자기 보기 싫어질 정도로...

게다가 갑작스런 충격과, 다시 만나기 싫은 괴물은 대체 어떻게 되려는 건지...

Papillon

2020-10-11 14:58:06

이 세계 자체가 사실 겉으로는 괜찮은데 속은 지옥인 동네지요.

SiteOwner

2020-10-21 22:08:19

대학생 때 일이 생각나서 웃으며 읽다가, 읽어내려오는 도중에 얼굴 표정이 굳어졌습니다.

그리고, 속이 쓰려집니다.


에스텔같이 먹는 미인을 만나본 일이 있습니다. 진짜 문화충격이었습니다.

그래서 식사장면을 보고 큰 소리로 웃어버렸습니다.

그래도 에스텔은 훌륭한 사람이군요. 권위의 원천과 실질을 잘 알고 추구하는. 그래서 실제로 에스텔을 만난다면 그런 문화충격에도 불구하고 학실히 반할 것 같군요.


그런데, 서술만으로도 끔찍한데 그림으로 그린다면 정말 제 정신으로는 못 볼 것들이 나오는군요.

크게 웃었던 얼굴이 갑자기 굳으면서 통증까지 느껴집니다.

그리고 오싹해집니다. 창밖의 비 오는 소리조차 무섭게 느껴질만큼.

Papillon

2020-10-22 01:10:58

일부 먹방 유튜버도 그렇고 확실히 미인인데도 많이 먹는 사람은 있는 모양이더라고요. 솔직히 어떻게 가능한 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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