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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프터즈] Chapter 2: 사도각성. Episode 06

Papillon, 2020-10-05 17:22:24

조회 수
132

마치 현실의 장막을 찢어버리고 나타나기라도 한 것처럼 녀석은 갑작스럽게 내 앞에 나타났다. 마치 생명이라는 개념을 모독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기괴하게 뒤틀린 괴물이 아무렇지도 않게 대낮에 거리를 활보하는 모습을 보니, 백일몽이라도 꾸고 있는 것처럼 현실감이 증발한다. 하지만 녀석이 숨 쉴 때마다 풍기는 피비린내 나는 두려운 향은,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것이 꿈이 아닌 현실이라는 걸 여실히 알려주었다.?

“드.디.어.찾.았.다.”

녀석은 입속에서 계속해서 부서지고 있는 핏발 선 눈으로 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분명 이미 죽은 것처럼 생기가 느껴지지 않는 눈이건만, 그 눈에 담긴 원념이 불타오르는 지옥의 겁화와 같이 전신을 옥죄어 온다.
도망쳐!
내 안에 생존 본능이 경종을 울리며 나에게 이 자리에서 피할 것을 권고한다. 그 본능에 자연스럽게 몸을 맡기고 싶었지만, 녀석의 공포에 짓눌린 몸은 단순한 변신조차 시도하지 못할 정도로 덜덜 떨고 있었다.

‘빌어먹을, 움직여!’

조금이라도 움직이기 위해서 자신의 몸뚱이에 욕설을 퍼부어보지만, 여전히 묵묵부답일 뿐.

“도.망.칠.수.없.다.”

그런 나를 비웃기라도 하는 것처럼 녀석의 손이 올라갔고,
부웅!
죽기 직전, 흥분 상태 때문에 감각이 가속되기라도 한 걸까? 녀석의 핏빛 주먹과 허공을 찌는 충격음이 느리면서도 너무나 선명하게 느껴졌다.?

‘아, 이걸로 끝이구나.’

이미 피할 수 없는 운명이기 때문일까? 조금 전까지 느껴졌던 공포와 절망이 아닌 그저 허탈한 감정만이 내 마음을 지배했다.
이대로 끝.
그저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 채, 패배자로서 생을 마치는 것. 그것이 서러워서 눈시울이 붉어졌지만, 눈물이 흘러나오진 않았다.
그러나 이렇게 내가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과는 별개로 내게 종말은 내려오지 않았다.
까앙!
철판을 쇠망치로 때린 것 같은 금속음이 울려 퍼지며, 녀석의 주먹이 코앞에서 멈췄다. 가까워진 주먹에서 꿈틀거리는 근육의 흐름이 보이건만, 녀석이 아무리 힘을 써도 한 치도 좁혀지지 않는다.

“혹여나 인질극이 일어날 때를 대비해 휴대하던 것이 도움이 될 줄이야. 참으로 얄궂군.”

그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거기에는 한 손에 작은 공을 든 에스텔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의 왼손에는 작은 구 형태의 물건이 기잉 거리는 기계음을 내고 있었는데, 소리가 낼 때마다 푸른 파장 형태의 마력이 뿜어져 나오는 것을 보아 마도구인 모양이다.

“괜찮나, 그레고르?”
“네, 덕분에.”

그녀의 태연한 목소리 때문에 긴장이 풀린 걸까? 순간적으로 힘이 빠져서 주저앉아 버렸지만, 몸에 상처 하나 없다. 그 말에 안심했는지, 에스텔은 괴물을 향해 눈길을 돌리곤 손에 들고 있던 구 형태의 마도구를 나에게 던졌다. 날아오는 속도가 그리 빠르지 않은 걸 보아 받으라는 의미이리라.

“민간인 보호용 방어 마도구다. 30분 정도는 유지될 테니 거기 있도록.”

지잉.
그 말과 함께 에스텔의 오른손에 들린 마력 검에서 시릴 듯이 푸른 칼날이 뻗어져 나온다.?
그 모습에 괴물 역시 위기감을 느꼈는지 나에게서 한 발 떨어져 에스텔을 마주한다.

“자, 그럼 괴물이여.”

그런 괴물을 향해 태평한 목소리를 내면서 다가가는 에스텔.

“죽을 준비는 되었는가?”

그 말을 시작점으로 삼은 듯, 괴물과 에스텔의 거리가 순식간에 좁혀져 왔다.


*** ***


허공을 찢으며 매서운 장타(掌打)의 연쇄가 폭우처럼 쏟아진다. 일격만으로도 돌로 만든 바닥 타일을 가볍게 박살 낼 정도의 위력이건만, 그 속도 역시 범인의 눈으로는 구분하기 힘들 정도. 평범한 사람이라면 그 앞에 서는 것과 동시에 형태조차 남기지 못하고 찢어져 버릴 것이다. 하지만 괴물에게는 유감스럽게도 그의 상대, 에스텔 소여는 범부가 아니었다.
장타가 쏟아질 때마다 푸른빛이 허공을 수놓았다. 목표는 괴물의 관절. 한 줄기 푸른 섬광이 괴물의 팔 관절에 작은 상흔을 남기는 것과 동시에 공격의 방향이 미세하게 틀어진다. 그리고 그 미세한 틈에서 시작된 틈은 곧 거대한 뒤틀림이 되어 괴물의 공격을 무효타로 변질시킨다.
상대방의 동작을 모두 읽어내지 않으면 엄두조차 낼 수 없는 신기. 그러나 에스텔은 자신이 흐름을 완전히 통제한다는 사실에 자랑스러운 감정이 아닌, 극도의 위화감을 느꼈다.

’어째서 놈의 동작이 읽히지?’

처음 괴물의 주먹과 검을 부딪쳤을 때, 에스텔은 놈의 동작을 읽지 못했다. 그때 녀석의 주먹은 어떤 무리(武理)도 담기지 않은, 단순한 몸놀림. 그저 가진 게 힘뿐인 역사(力士)들이나 사용하는 권법이었다. 그렇기에 에스텔이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상대의 움직임을 직접 보고 쳐내는 것 말고는 없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녀석의 동작이 바뀌었다.’

놈과 공격을 주고받은 지 십여 차례, 녀석의 공격이 크게 변화했다. 주먹질은 장타가 되었고, 단순한 스트레이트는 도끼질 같은 편타(鞭打)로 바뀌었다. 거기에 규칙 없이 힘으로 몰아붙이던 초반과는 달리 동작에 일정한 박자와 호흡이 생겼다. 단순한 막싸움에서 무술로 도약한 움직임. 분명 상대방의 공격은 한 단계 진화했는데도 불구하고 어째서인지 에스텔에게는 너무나 익숙하게 느껴졌다.
마치 언제나 보던 무술처럼.

‘확인해봐야겠군.’?

콰앙!
판단을 끝마치자 에스텔은 괴물의 장타에 칼날을 정면으로 부딪쳤다. 마력으로 이루어진 칼날이 녀석의 손바닥에 닿는 순간, 그녀의 전신을 타고 들어오는 것은 압도적인 충격. 이윽고 그 충격의 반동으로 그녀의 가벼운 몸이 떠올라 뒤로 날아간다.

“에스텔!”

그런 그녀를 보고 그레고르가 놀라서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외쳤지만, 에스텔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애초에 이렇게 날아서 거리를 벌리는 것 자체가 그녀의 목적이었으니까.
탁!
세 걸음.
충분한 거리가 벌어지는 것과 동시에 그녀의 발이 땅에 닿는다. 그와 동시에 구부러지는 그녀의 상체. 언뜻 납작 엎드린 개구리처럼 보이는 자세는 그녀가 큰 충격을 받아 쓰러진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하지만,

“저.건!”

괴물은 무언가 눈치챈 듯, 급하게 뒷걸음질을 쳤고,
쿠왕!
소리의 벽을 찢는 충격파와 함께 에스텔의 몸이 화살이 되어서 괴물을 향해 쏘아져 나간다.?

“큭!”

단 한 순간의 충돌.
그 충돌의 여파로 괴물의 왼쪽 팔은 이미 흔적만을 남긴 채 육편으로 변해 흩어졌다. 이것조차 괴물이 최대한 공격을 피하고자 했기에 얻은 결과일 뿐, 만약 에스텔이 몸을 숙인 순간 그녀에게 다가갔다면, 괴물은 이미 한 줌의 핏물이 되어서 사라졌을 것이다.

“역시…….”

그렇게 살아남은 괴물을 보며 에스텔은 자신의 가설에 확신을 얻었다.

‘저 녀석은 소여 가의 고용인 출신이다.’

그녀가 사용한 초식, ‘두꺼비 사냥’은 소여 백작가 소속 마도기사들만 익힐 수 있는 비기(?器). 자신보다 무예가 뛰어난 이를 속일 수는 없지만, 적어도 비슷한 수준의 상대에게 읽힐 리도 없는 고등 기술이다.

‘저 녀석은 나보다 하수면서도 내 기술을 알아봤다.’

그렇다면 답은 단 하나.
저 괴물은 소여 백작가 출신이며, 그것도 ‘두꺼비 사냥’을 본 적이 있을 정도로 높은 직위까지 오른 인물이다.
그 사실을 깨닫자 에스텔의 가슴 속에서 상반된 두 마음이 서로 싸우기라도 하듯 세를 불려갔다. 첫째는 소여 가문 소속이면서도 이런 끔찍한 악행을 저지르는 이를 향한 분노. 그리고 다른 하나는 만에 하나 상대에게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을지 모른다는 일말의 동정.

“넌 누구냐?”
“…….”
“위대한 소여의 사람이 어째서 그런 사마외도(邪魔外道)에 발을 들였지?”
“…….”
“대답해라!”

상대에게 사정이 있기를 바라는 것인지 에스텔은 필사적일 정도로 괴물에게 질문을 퍼부었고.

“큭.큭.큭.”

괴물은 그저 뒤틀린 비웃음으로 이에 답했다.

“네놈!”

그 비웃음에 에스텔은 분노하여 상대방의 몸을 노리고 검을 휘둘렀으나, 분노에 차 예리함이 떨어진 검은 괴물이 한 손으로 쳐내기 충분했다.

“큭!”

다시 한번 거리가 벌어진 괴물과 에스텔.
마음이 흐트러진 상태에서 자신이 선공하는 것은 악수라고 판단했는지 에스텔은 조용히 자세를 가다듬은 채 괴물을 바라본다.
잠시 간의 침묵.
그 침묵은 괴물의 목소리가 들려오면서 깨어졌다.

“내.가.말.한.다.고.해.서.나.를.기.억.할.순.있.나?”
“뭐?”
“너.같.은.잘.난.백.작.영.애.께.서.나.를.알.아.볼.수.나.있.냐.는.말.이.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질문이었기 때문일까? 에스텔은 괴물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채 눈썹을 살짝 추어올렸다. 그러나 괴물은 그런 에스텔의 반응을 예상하기라도 했는지 어떠한 감정의 동요도 없이 차분하지만 뒤틀린 목소리로 자신의 말을 이어갈 뿐.

“너.희.소.여.가.대.체.얼.마.나.많.은.이.를.가.문.에.고.용.한.다.고.생.각.하.나?그.리.고.그.들.중.얼.마.나.많.은.이.가.재.능.이.없.다.는.이.유.로.자.신.의.꿈.을.이.루.지.못.하.고.살.아.간.다.고.생.각.하.나?”
“…….”
“나.는.가.문.을.위.해.평.생.일.했.다.그.런.데.너.희.가.문.이.날.위.해.무.엇.을.해.줬.지?고.작.해.야.고.용.인.누.구.에.게.나.적.선.하.듯.가.르.쳐.준.기.초.무.술.이.전.부.가.아.닌.가?”
“그건 네놈의 노력이 충분치 않아서!”
“노.력.노.오.력!언.제.나.그.렇.게.말.하.지.더.노.력.해.라.너.같.이.노.력.해.서.성.장.한.별.종.의.이.야.기.를.하.면.서.우.리.를.노.력.하.지.않.는.인.생.의.패.배.자.로.여.겨.”

에스텔의 대답이 그의 심기를 거슬렸기 때문일까? 괴물의 목소리에는 전과는 달리 분노라는 감정의 잔향을 담고 풍겨왔다.

“그.래.서.기.회.가.왔.을.때.고.통.받.을.걸.알.면.서.도.기.회.를.잡.은.거.다.그.리.고.이.렇.게.너.같.이.위.대.하.신.기.사.님.과.싸.울.수.있.는.능.력.을.얻.었.지.”

쿵!
감정이 격해졌는지 괴물은 주먹을 근처 벽에 휘두르자, 벽에 주먹 크기의 구멍이 뚫린다. 그 구멍을 괴물은 자신의 입에 씹히면서 피를 흘리는 머리의 눈으로 황홀한 표정을 지으며 바라본다.
마치 자신이 지닌 힘에 취한 것처럼.

“고작 그런 이유인가?”
“내.게.는.충.분.한.이.유.다.”

자명한 진리를 말하듯 다시 담담한 목소리로 자기 뜻을 전하는 괴물. 그 말을 들은 에스텔은 그저 괴물을 조용히 직시할 뿐, 아무런 대답조차 하지 않는다. 하지만 가까이서 그녀의 눈을 볼 수 있는 이가 있다면 그녀의 마음속에서 일어난 변화를 눈치챌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녀에게서 동정이란 촛불이 꺼져버렸다는 사실을.

“알겠다. 더는 제압할 것을 전제로 싸울 필요는 없겠군.”

북풍이 불어오는 것처럼 차가운 목소리를 내뱉으며, 에스텔은 자세를 고쳐 잡았다.?
방어를 일절 포기한 듯, 언제든 모든 공격을 쳐내기 위해 몸 중심부를 벗어나지 않던 검이 장전된 화살처럼 뒤로 뻗어 나가는 동시에 그녀의 자세가 낮아지기 시작한다. 언뜻 보면 ‘두꺼비 사냥’을 시전했을 때와 비슷한 자세. 하지만 그녀의 몸에서 풍기는 기세와 전신에서 흘러나오는 강렬한 마력 파동은 이것이 ‘두꺼비 사냥’ 같은 기습용 기술과는 궤를 달리하는 기술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저.건?”

괴물 역시 이 자세는 본 적이 없는지 딱딱한 목소리로 말하면서도 의아함을 숨기지 못한다.

“하아…….”

이윽고 준비가 끝난 듯, 에스텔의 입에서 한줄기 숨소리가 흘러나왔고,

“!”

에스텔과 괴물 사이의 공간을 지우기라도 한 것처럼, 그녀의 몸은 한 줄기 섬광이 되어 괴물에게 쏘아졌다.
콰앙!
소리의 벽 따위는 진작에 뛰어넘었음을 알려주듯, 괴물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진 뒤에 서야 강렬한 충격음이 공기를 찢고 울려 퍼졌다. 괴물이 서 있던 자리에 남아있는 건, 그저 발 두 개뿐. 발목 윗부분은 마치 지우개로 지운 것처럼 깔끔하게 소멸해 괴물이 존재했다는 것 자체가 거짓말이라고 주장하는 것 같았다.
비검 용 삼키기.
소여 기사단 최고의 검술이자, 대상에게 모든 힘을 집중해 소멸시키는 최강의 검초.

‘조금 과했나?’

그 기술을 펼쳐낸 대가로 마력 부족을 느끼며 에스텔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주변에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도 강력한 기술이긴 했지만, 아직 에스텔의 경지로는 몸에 부담이 가는 기술이었다.

‘그래도 적은 쓰러뜨렸으니.’

결과적으로 보면 이득이다.
결국 그렇게 판단을 내린 에스텔은 검에서 마력을 끊은 채, 그레고르에게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위험해!”

그레고르는 비명에 가까운 목소리로 소리쳤고,

‘어?’

그녀의 등에서 따끔한 감각이 느껴지는 것과 동시에, 무언가 뜨거운 것이 목을 타고 입에서 흘러나왔다.

‘설마……!’

그리고 에스텔에 최악의 가능성을 떠올리며 뒤를 돌아보자,
후웅!
살가죽이 벗겨진, 녀석의 붉은 주먹이 그녀의 코앞에 다가와 있었고,

“에스텔!”

귓가에 울리는 그레고르의 비명을 들으며 에스텔의 인식은 심연으로 떨어졌다.


*** ***


‘굉장해!’

에스텔과 괴물의 싸움을 바라보며, 나는 놀람을 거듭했다. 그녀가 강하다는 것 정도야 어젯밤부터 알고 있던 사실이긴 하지만, 지금 그녀가 보여주는 모습은 상상 이상. 그리고 최후의 일격에 이르러서는 감탄을 넘어 경악하고 있는 나 자신을 볼 수 있었다.

‘저런 게 가능하단 말이야?’

솔직히 에스텔이 강하다는 건 알아도 그래 봐야 얼마나 강하겠나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기껏해야 나보다 어린 20대 초반에 불과하지 않은가? 마법사라는 건 본디 나이가 들수록 강하고, 이건 육체 능력에 영향을 받는 마도기사조차도 예외는 아니다. 육체의 노쇠 따위는 그저 비약으로 해결하면 그만이니까.
저런 게 천재라는 거겠지.
그렇게 생각하자, 문득 괴물이 절규하듯 외쳤던 말이 떠올랐다
노력하지 않는 인생의 패배자.
괴물이 싫어했던 호칭인 동시에 나도 수없이 들어온 멸칭.

‘나도 저렇게 될 수 있었던 건가?’

괴물의 끔찍한 모습을 생각하니 척수를 타고 차가운 감각이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고개를 휘휘 저어 그 끔찍한 감각을 털어낸 뒤, 현재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괴물이 있던 자리를 돌아보았고,

‘응?’

그곳을 향해 여태까지 신경 쓰지 않고 있던 ‘꽃’이 기어가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으앙으앙.
녀석은 여태까지 에스텔과 괴물의 싸움에는 일말의 관심조차 보이지 않은 채, 홀로 울음소리를 내며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렇기에 녀석은 위험이 되지 않는다고 나도 에스텔도 무시하고 있었건만, 지금 녀석은 여전히 울고 있기는 하지만 묘한 기세를 풍기며 남아있던 괴물의 발에 들러붙어 왔다.
그리고, ‘꽃’의 덩굴이 괴물의 발에 닿는 것과 동시에,
주룩.
녀석의 몸이 녹아 괴물의 발에 달라붙기 시작했다.

‘저건!’

그러고 보니 들어본 적이 있었다. 오지에 사는 마물 중 일부는 약한 개체를 희생해 강한 개체를 부활시키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그렇기에 그 마물을 상대할 때는 방심하지 않고 모든 개체를 소탕해야만 안심할 수 있다고 했다.
꾸득.
눈 깜짝할 사이에, 괴물은 이전과는 달라지긴 했지만 거의 온전한 형태로 부활하고 있었다.

“위험해!”

나는 에스텔에게 지금의 이상 사태를 알리기 위해 비명을 질렀지만,
푸욱!
‘꽃’의 줄기와 융합한 녀석의 길게 늘어난 왼팔은 어느새 에스텔의 등을 꿰뚫었고,
쾅!
돌아본 에스텔의 얼굴을 녀석의 무자비한 오른손이 타격했다.

“에스텔!”

구해야 해!
그녀가 의식을 잃고 쓰러지는 것과 동시에 내 몸은 무의식적으로 앞으로 달려 나갔다. 하지만, 그런 내 앞을 막아서는 것은 여태까지 나를 지켜주던 투명한 벽.
퉁!

‘빌어먹을!’

특정 시간 동안 나를 지켜 주기 위해 에스텔이 발동한 마도구는 지금 나를 가두는 감옥이 되어, 그녀를 향해 다가서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감히 나를!”

결국 몸을 완전히 재생해낸 괴물은 분노한 목소리로 에스텔에게 다가가 그녀에게 폭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일격만으로도 평범한 사람은 불구로 만들 정도로 강렬한 일격이 에스텔의 몸을 놀리고 쏟아진다.

“네.년.은.최.고.의.고.통.을.선.보.여.주.마.”

괴물은 에스텔을 죽일 생각은 없는지, 급소를 피해서 쳤지만 그것만으로도 그녀의 몸이 성할 가능성은 없었다.

“으악!”

부서져라! 부서져!
마음속으로 아무리 외쳐본다고 해도 눈앞의 벽은 부서지지 않은 채, 나는 맥없이 비명만을 지르고 있었다.

‘젠장! 어떻게 해야 하지?’

어떻게 해야 그녀를 도울 수 있지? 아니, 그녀를 도울 수 있기는 한가?

“제발 누가 도와줘!”

신이라도 악마라도 좋으니, 제발!
그런 내 마음이 하늘에 닿은 것일까?
갑자기 시간이 멈추기라도 한 것처럼 세상이 멈추는 것과 동시에,

[변하고 싶지 않으냐?]

내 앞에 여신이 강림했다.

Papillon

딱히 할 말은 없습니다.

4 댓글

마드리갈

2020-10-11 15:18:04

주인공 그레고르를 쫓던 그 괴물의 실체가...

그 괴물은 소여 백작가 출신이군요. 그것도 높은 지위까지 올라갔던.

그리고 에스텔과 그 괴물의 싸움은 골육상쟁 그 자체가 되는군요. 이것만 해도 비극인데, 에스텔이 불의의 일격에 저렇게 되다니...

게다가 문제의 "꽃" 이 가져다 준 결과도 끔찍하기 짝이 없어요.


위기는 곧 기회라고 하지만, 여신이 너무 늦게 나타난 것 같네요...

Papillon

2020-10-12 01:23:38

애초에 여신은 목적이 있어서 움직이는 존재니까요. 결코 선한 존재가 아닙니다.

SiteOwner

2020-10-21 22:33:11

에스텔도 엄청난 능력을 가졌음이 분명한데, 소여 가문의 일원이었다가 괴물이 된 그는 더욱 무서운 존재군요.

게다가 에스텔에게 일부러 고통을 극대화하려는 것을 봐서는 심성이 지독하게 뒤틀린 것임도 드러납니다.

그렇게 끔찍한 장면을 목도한 주인공 그레고르의 간절한 마음이 여신 이드라에게 닿은 것인지...


안타까움을 어떻게 할 도리가 없습니다...

Papillon

2020-10-22 01:11:30

사실 순수 전투력 자체는 에스텔이 조금 더 높습니다만, 방심은 금물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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