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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프터즈] Chapter 2: 사도각성. Episode 07

Papillon, 2020-10-05 17:27:03

조회 수
161

무참히 이어지던 폭력의 연쇄가 멈춘다. 사방으로 튀던 핏물은 공중을 유영하며 보석처럼 빛나고, 살이 찢어지고 뼈가 부서지던 파열음 역시 존재를 감춘다. 시간은 소실되어 공허가 남고, 남은 공허의 자리에는 몽환의 안개가 파고든다. 그 안개의 근원에 있는 것은 거대한 환염의 기둥. 그리고 그 환염의 기둥 근원에는, 나를 찾아 강림한 여신이 있었다.

[변하고 싶지 않으냐?]

여신, 이드라는 나를 향해 꿈속에서 본 것과 다름없는 고혹적인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아름다운 웃음에 나는 순간적으로 지금 상황을 잊어버리고 얼굴을 붉혔으나, 곧 진정하는 데 성공했다.

“어떻게 당신이?”

분명 이드라의 영지는 꿈속에 있었는데?
물론 그녀가 설명하길 꿈이란 단순히 망상이 아닌, 인류의 본질과 관련된 고차원적인 공간이라 하긴 했으나, 그렇다고 그녀가 이리 쉽게 물질 차원에 드나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대가 부르지 않았더냐?]
“제가 말입니까?”
[신이든 악마든 상관없으니 도와달라. 분명 그대의 원망(願望)이었을 터.]
“그건 그렇지만.”

보통 그런다고 실제로 신이 소환되진 않을 텐데?
만약 단순한 바람만으로 신이나 악마가 소환된다면 강령술사 같은 마법학파 따위는 존재할 가치조차 없으리라.

[물론. 그저 그대의 바람만으로 본녀가 이곳에 왕림한 것은 아닐 지니.]

그녀의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내 목덜미를 어루만지듯 따스한 감각이 느껴졌다.

[본녀의 신기. 그대의 원망. 그리고 지금 이 도시에서 일어나는 일들. 그 모든 것이 본녀를 이 자리에 불렀느니.]

이 도시에서 일어나는 일들?
순간 괴물들의 모습이 떠올랐으나, 왠지 그것이 전부는 아닐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애초에 괴물들의 전투력은 에스텔 이하. 평범한 필멸자 선에서 정리될 수준이라는 걸 생각하면 이드라가 직접 나설 필요는 없다.
아니, 그보다도.

“에스텔을 구해주십시오!”

괴물들과 에스텔을 떠올리자, 이드라의 등장 때문에 잊고 있던 상황이 떠올랐다.
에스텔.
비록 지금 시간이 멈춰 있긴 하지만, 여전히 에스텔의 목숨은 풍전등화나 다름없다. 지금 상황에서 그녀의 목숨을 구할 수 있는 건 오직 내 눈앞에 나타난 이드라 뿐.

‘무얼 대가로 바쳐야 하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그녀의 목숨값 정도의 가치는 있으리라.

[흠. 에스텔이라. 소여의 아이로구나.]

에스텔의 이름이 귀에 익은 듯,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겨 있던 이드라는 이윽고 내가 말한 게 누구인지 알아챈 표정을 지었다. 확신에 찬 표정을 보아, 그녀는 에스텔을 알고 있는 것이 분명하리라.

‘좋아. 분명 도와줄 거야.’

그 표정을 보며 나는 희망을 느꼈고,

[도와줄 수 없느니라.]

즉시 배신당했다.

“어째서?”
[본녀는 인세에 직접 끼어들 수 없느니라. 그것은 옛 군주들 사이의 맹약. 아무리 본녀라도 그것을 어길 순 없으니.]
“그런!”

빌어먹을!
그나마 하나뿐인 선택지마저 꽝이라는 사실에 나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성질이 급한 아이로구나. 본녀는 아직 말을 끝마치지 않았으니.]
“돕지 못하신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본녀가 직접 돕지 못할 뿐이니라.]

그럼 빨리 말해달라고.
나의 반응이 재미있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성격이 나쁜 것인지 한 번에 전부 털어놓지 않는 이드라에게 순간 불경한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억지로 이를 참고 이드라를 바라보았다.

“무엇을…… 해 주실 수 있습니까?”
[그래서 본녀가 묻는 것이니라. 그대, 변하고 싶지 않으냐?]

변해?
그 순간 괴물이 어떤 기회 덕에 힘을 얻었다고 말한 것이 떠올랐다. 녀석은 분명 재능이 떨어져서 마도기사가 되지 못한 소여 가문의 사용인. 그런 녀석을 하루아침에 에스텔과 싸움이 성립하는 괴물로 만들어 놓을 수 있는 것은 신적 존재 정도일 것이다.

“설마 저 괴물과 같은 존재가 되는 것입니까?”
[흐음. 이골로냑의 작품이로구나. 여전히 좋지 않은 취미로고.]
“제 질문에 대답해주십시오!”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괴물을 향해 품평하는 이드라의 모습을 보자, 결국 참지 못하고 큰소리를 치고 말았다.

[정답은 그렇다, 하지만 동시에 아니다.]

다행히 내가 화를 냈음에도 이드라는 분노하지 않은 채, 그저 차분한 목소리로 나에게 답했다. 그러나 그녀의 무감정한 목소리와는 별개로 그 내용은 나로서는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내용이었다.

‘같지만 다르다, 그게 무슨?’
[저 괴물은 이골로냑이라는 옛 군주의 권능이 깃든 존재. 그렇기에 네가 될 것과 본질적으로 같다. 하나, 저것은 옛 군주가 직접 손댄 것이 아닌 그 사도의 장난감. 그대가 변하게 될 사도(apostle)와는 질적으로 전혀 다른 존재니라.]

결국, 질적으로 다를지언정 본질은 그 괴물과 다를 바 없는 존재가 된다는 건가?

‘그 괴물과 같은 존재…….’

인간을 벗어난 마물. 그런 존재가 돼야 한단 말인가?

“다른 방법은 없습니까?”
[없다.]

혹시나 해서 물어보았지만, 이드라는 그저 완고한 대답을 돌려줄 뿐이다.

‘제길.’

분명 직전까지는 에스텔을 위해 무엇이든 바칠 각오가 되어 있었는데, 나 자신이 인간이 아닌 존재가 돼야 한다는 사실에 갈등하고 있다니.
이렇게 비겁하다니.
나 스스로가 역겹다고 느껴진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구나.]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드라는 조용히 다가와 내 옆에 섰다.

[보아하니 저 미물은 소여의 아이를 죽일 생각은 없어 보이는구나.]
“그렇다면……!”

괴물이 되지 않아도 에스텔을 살릴 수 있다는 얘기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읽히는구나. 하지만 이골로냑의 수하를 상대로 죽지 않는 것은 오히려 지옥만이 남은 길이니.]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이골로냑은 부패와 왜곡의 군주. 여태까지 그의 사도는 그에 어울리는 인격을 보인 바 있으니.]

딱!
이드라가 손가락을 튕기는 것과 동시에 허공의 에스텔의 모습이 떠올랐다. 순간 그녀가 변덕으로 에스텔을 구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여전히 멈춰 있는 시간 속에 쓰러져 있는 에스텔의 모습이 보이는 걸 보아 단순한 환각에 불과하리라.
이윽고 허공에 투영된 에스텔의 환상은 서서히 내 곁에 다가왔고, 나는 그 모습에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저게 에스텔이라고!?
분명 가죽은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온몸에 새겨진 수술자국과 겉으로 튀어나온 내장, 그리고 마치 발정 상태의 짐승처럼 진짜 짐승들에게 얽혀 있는 모습은 도저히 내가 기억하는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전대 이골로냑의 사도는 강한 여인을 망가뜨리는 것을 즐겼느니라. 이번 이골로냑의 사도는 어떨지 모르겠으나……, 저 미물의 형태를 보아 그리 다른 취향일 것 같지는 않구나.]

당황하는 내 모습이 재미있기라도 한 것일까? 이드라는 콧노래라도 부르듯 흥얼거리며 나에게 말을 전했다.
에스텔을 저렇게 만들 순 없어.

“……변하겠습니다.”

결국 번민 끝에 나는 씹어 뱉는 것처럼 대답을 토해냈다. 비록 언젠가 후회할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에스텔이 저렇게 전락하는 것을 보는 것보다 후회할 것 같지는 않다.

[후훗. 여전히 망설임을 보이다니, 참으로 나약한 사내인지고. 그러나 본녀도 악마는 아니니 이번만큼은 선심을 쓰겠노라.]

여전히 내 마음속에 있는 망설임을 읽어낸 것인지, 나를 껴안듯 바싹 붙은 이드라는 내 귓가에 속삭였다.?

[이번엔 가계약으로 끝내주마. 권능을 못 쓰고 출력 역시 떨어지겠지만, 그대는 본녀의 사도일지니.]
“어떻게 하면 됩니까?”
[그저 본녀가 시키는 대로 외치면 되느니라.]

주문 같은 건가?
혹시라도 어려운 주문일까 봐 바싹 긴장한 나를 보며 이드라는 키득거리며 고소를 지었다. 그녀가 웃을 때마다 몸에 달라붙은 환염이 간질거리는 것이 묘한 기분이었지만, 일단 지금은 집중하는 수밖에 없으리라.

[자 외치거라, ‘강림(降臨)’.]
“…….”
[강림.]
“……그게 다입니까?”

정말로??
보통 이런 건 엄청나게 긴 주문을 외우는 것이 정상일 텐데?
하지만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이드라의 모습을 보아, 아무래도 진실인 모양이다.

“강림.”

작지만 묘한 울림을 지닌 단어.
그 단어가 내 입에서 흘러나오는 것과 동시에,
세계가 찢어졌다.


*** ***


“크.하.하.하.”

이미 상대는 저항할 수조차 없음에도 괴물은 여전히 무자비한 주먹을 휘둘러 피해자의 몸을 망가뜨리고 있었다.

“이.게.내.힘.이.다!”

자신을 얕보던 마도기사들에게 따위는 바닥으로 둘 수 있을 정도의 힘. 비록, 에스텔이라는 눈앞의 여인에게 한순간 죽음을 맛보긴 했으나, 결국 승리한 것은 그였다.

“이.걸.로.는.부.족.하.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부족하다 여겼다. 폭력만으로는 재미가 없다. 저 여인, 젊은 마도기사를 더 망가뜨리고 싶다. 그 충동이 모순적이게도 에스텔의 목숨을 살리고 있었다. 만약 그녀가 죽게 된다면 그것으로 끝. 더는 고통을 줄 수 없었다.?
하지만 살려서 그의 주인에게 데려간다면?

‘실.로.재.미.있.으.리.라.’

얼마나 망가뜨릴 수 있을까? 얼마나 괴롭힐 수 있을까? 얼마나 비참하게 떨어뜨릴 수 있을까?
그의 머릿속에 다양한 가능성이 벌어졌다.
그러나 그의 행복한 망상은 한순간 느껴진 기괴한 감각에 멈추고 말았다.
쨍그랑!
시작은 유리 같은 것이 깨지는 소리였다. 그리고 이어진 것은 이질감.?

‘뭐.냐?’

마치 세계의 한 공간이 갑작스럽게 뒤틀린 것 같은 지독한 이물감이 그의 모든 감각을 통해 느껴졌다. 그리고 잠시 후, 그 감각이 사라진 것과 동시에 다가온 것은 압도적인 존재감.

“이.건.설.마!”

그의 주인이 풍기던 것과 같은 기세.
놀란 그가 기운의 발원지를 돌아보았지만, 거기에는 아무 것도 없었고, 그것이 그를 더욱 두렵게 했다.

‘도.망.쳐.야.한.다!’

그렇게 괴물은 에스텔을 챙기기 위해 다시 그녀를 향해 고개를 돌린 순간,
거기에 ‘녀석’이 있었다.
언뜻 보기에 녀석의 모습은 판금갑주를 입은 고전적인 기사와 같았다. 그 갑주는 세상에서 벗어난 것처럼 탁한 무채색으로 칠해져 있었는데, 화염처럼 생긴 문양은 조금 밝은 빛이었다. 분명 재질이 금속임에도 불구하고 태양 빛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는지 갑주에서는 광택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는데, 그 모습이 마치 세상의 법칙에서 벗어난 무언가를 보는 것 같았다.
기익.
여인, 에스텔을 보고 있던 녀석은 고개를 돌려서 괴물을 바라보았다. 그 얼굴 부위는 마치 거울처럼 반들반들한 형태였는데, 그 외의 투구 부분은 넝쿨 같은 것이 얽혀 있는 기묘한 형태였다. 그러나 전체적인 형태는 묘하게 쥐를 닮은 것이 묘하게 우스꽝스럽다는 기분도 들었다.

‘선.공.해.야.한.다!’

녀석의 모습을 바라본 순간, 공포에 질린 괴물은 전력을 다해 장타를 내리쳤다.
쿵!
강철 요새라도 내리친 것처럼 강렬한 통증이 괴물의 손을 달구었지만, 녀석은 그저 잠시 고개가 틀어졌을 뿐, 어떤 고통도 느끼는 기색이 없었다.
잠시 후,
펑!
무언가 몸통과 충돌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괴물은 자신이 허공을 날고 있다고 깨닫는 동시에 의식이 끊어졌다.


*** ***


“정신 차려요, 에스텔!”

괴물을 날려버린 직후, 나는 허둥거리며 에스텔의 상태를 살폈다. 이드라가 말했던 것처럼 죽일 생각은 없었는지, 치명적인 상처는 입지 않은 것 같지만, 이대로 라면 최소 불구 정도는 각오해야 할 것이다.
젠장! 어떻게 해야 하지?
예상보다 강한 힘 덕에 괴물은 쉽게 날려버렸지만, 도저히 어떻게 해야 에스텔을 살릴 수 있는지 모르겠다.?
이럴 줄 알면 둔갑술이 아니라 치유술을 배울 것을.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은 법이다.

‘방법이 없나?’

그 순간 목덜미로부터 구원의 손길이 찾아왔다.

[흠. 그 아이를 치유할 방법을 찾는 것이냐?]?

이 목소리는!

[가계약일지라도 그대는 본녀의 사도. 언제든 대화할 수 있는 것이 당연하니라.]

내 의문에 답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나와 계약한 여신, 이드라는 별일 아니라는 듯 나에게 말을 전해왔다.

“에스텔을 고칠 방법은 없습니까?”
[본녀에게는 없다. 하나 그 자리에 없는 것은 아니리라.]

그녀의 단호한 대답에 한순간 희망이 꺼질 뻔했으나, 이어지는 말에 한숨 돌릴 수 있었다.

[소여의 아이가 가진 혁대 주머니를 뒤져 보아라.]

이드라가 말한 것처럼 에스텔의 혁대에는 동전 한 움큼 정도가 들어갈 법한 작은 가죽 주머니가 달려 있었다. 그 입구를 풀고 손을 넣자, 겉보기와는 다른 제법 넓은 공간이 느껴진다.

[그곳을 뒤지다 보면 약병 같은 것이 있을 것이니라.]

그 말을 믿고 다시 주머니 안을 뒤지기를 5분 정도 계속하니, 작은 약병 같은 것이 손에 잡혀 왔다.

“이건?”

손에 잡힌 유리병 안에 담겨 있는 건, 피를 수십 배는 농축한 듯 점성이 강한 붉은 액체.?

[소생약이니라. 소여의 아이들은 늘 그걸 혁대에 가지고 다녔으니, 당연히 있으리라 여겼노라.]
“먹이면 되는 겁니까?”
[외상이라면 그냥 바르면 그만이니라. 하지만, 그 아이는 충격에 의한 내상이 더 클 것이니, 직접 섭취하는 걸 권하니라.]

이드라의 말이 끝나기 무섭기 나는 병뚜껑을 열고 에스텔의 입으로 약물을 쏟아 넣었다. 혹시나 기도로 약이 흘러 들어갈까 걱정했으나, 아직 의식을 완전히 잃지 않은 듯 에스텔은 무리없이 약물을 삼켰다.
효과가 있어!
이윽고 약 한 병을 비우자, 에스텔의 호흡이 눈에 띌 정도로 안정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전에 듣기로는 소생약은 작은 병 하나가 어지간한 집 한 채 가격이라고 하던데, 괜히 비싼 값을 하는 게 아닌 모양이다.

“하아.”

에스텔이 무사한 걸 확인하자 다리에 힘이 완전히 빠져버렸다. 사실 마음 같아서는 여기에 드러누워 잠들고 싶었지만, 아무래도 지금 상태로는 그럴 수 없다는 생각에 나는 억지로 의식을 추슬렀다.

‘그건 그렇고 이제 어떻게 하지?’

손을 들어보니, 차가운 금속 건틀릿이 시야에 들어왔다. 내 몸이기에 전신을 살피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아마 전신 갑주를 입은 것 같은 꼴을 하고 있을 거란 건 바보라도 알 수 있을 거다.
이런 모습으로 살 수는 없는데.
아무래도 심부름꾼이 이런 갑옷을 입고 다닌다면 엄청나게 수상해 보이겠지. 마스터는 나를 자르는 걸 고려할지도 모르고, 오드리는 기겁할 거다.

“뭐, 그래도 그 괴물 같은 모습이 아닌 건 다행인가.”
[무슨 걱정을 하는지 읽히는구나. 그러나, 걱정할 필요는 없느니라. 그대가 원하면 언제든 본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으니.]
그럼 걱정할 필요는 없겠지?
‘그렇다면 이제 위기에서 벗어났으니 슬슬 집으로 향해야…….’

쾅!
내가 이제 슬슬 집에 가자고 판단하자마자, 근처 거리에서 거대한 폭발음이 들려왔다.?
저 방향은.
내가 엉겁결에 괴물을 날려버린 장소.

[이골로냑의 미물이 난동을 부리고 있는 모양이로구나.]

태평스럽게 말하는 이드라의 목소리와는 달리 나는 다시 심각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싸워야 하나?’

이 모습으로 변하자 상상할 수도 없는 힘이 생겼다는 건 알고 있다. 나를 보고서 녀석이 한 공격에 타격을 입지 않았다는 것도 머리로는 충분히 인식했다.
하지만,

‘찾.았.다.”

그 목소리. 내 한 걸음 앞으로 다가왔던 죽음의 그림자가 내 심장을 옭아맨다.

‘무섭다.’

분명 내가 강하다고 머리로는 알고 있는데, 도저히 녀석과 싸울 엄두가 나질 않는다.

[흠. 쓸데없는 걱정을 하고 있구나.]
“죄송합니다.”
[후훗. 괜찮도다. 그대가 이런 겁쟁이인 거 알고도 택한 것이 본녀의 의지일지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녀는 그저 그대에게 한마디만 하고 싶구나.]
“……”
[귀를 기울이거라.]

쿵!
이드라의 말에 귀에 감각을 집중하자, 좀 더 자세한 상황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부서지는 거리, 날뛰는 괴물. 그리고,

“꺄악!”

비명을 지르며 괴로워하는 시민들.
단순히 나를 향해 달려오는 걸 넘어, 근처에 있는 모든 사람을 공격하고 있는지, 무수히 많은 사람의 비명이 귀를 비수처럼 찔러온다.?
남자, 여자, 어린아이, 노인.
그들이 공황에 빠진 소리, 도망치는 소리, 울부짖는 소리, 신음하는 소리. 그 모든 소리가 저주라도 되는 것처럼 나를 옭아맸다.

“제가 도망친다면 저들은 죽게 됩니까?”
[아마도. 이골로냑은 그리 성질이 좋지 못하니까.]
“그렇다면 어쩔 수 없군요.”

설사 자신이 없다고 해도, 도망칠 순 없다.

“자, 변할 시간이다!”

자신에게 최면을 걸듯, 나는 그 한 마디를 외치는 것과 동시에 녀석을 향해 전속력을 달려갔다.

Papillon

딱히 할 말은 없습니다.

6 댓글

마드리갈

2020-10-11 17:00:36

여신 이드라가 재등장했네요.

처음에 읽었을 때에는 뭐 이런 여신이 다 있어 하는 생각에 순간적으로 분노가...

시간을 좀 두고 다시 읽으면서 감상을 정리하고 있어요.


이드라는 주인공 그레고르에게 타력본원이자 자력본원이 되는 행동을 요구하는 것 같네요.

그리고, 주인공은 눈앞에 닥친 상황에 숙고할 여유도 없이, 무조건 행동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 이 절체절명의 상황을 바꾸는 에너지가 될 수 있을지가 관건인데...

다음 회차에서 보답을 받을 수 있길 바랄 뿐이예요.

Papillon

2020-10-12 01:25:22

이드라 자체가 선신은 아닙니다. 다만, 사실 이 세계관 신들의 평균 인성(?)을 고려하면 이드라 정도면 인간에게 호의적인 신에 가깝다는게 우습지만요.


음, 그리고 이는 여담입니다만 혹시 떠오르신 제목이 있는지 여쭐 수 있을까요???

마드리갈

2020-10-12 12:25:56

떠오른 제목이라면, 저는 이걸 제안해 볼께요.

SHIFTERS. 한글표기는 "시프터즈" 로.


운명이 갑자기 수직적으로 바뀌는 것이라든지, 또한 주인공 그레고르 뿐만이 아닌 에스텔 소여, 이드라 등이 그러한 운명의 변화자가 된다든지, 빈민들이 어린아이들을 헛된 믿음에 의지하여 버린다든지 하는 것에서 다양한 행위자들이 그렇게 다른 사람들의 운명을 수직적으로 바꾸는 행위자, 즉 시프터(Shifter)가 되는 것에 착안했어요. 게다가 로마자 표기는 8자이고 한글표기는 4자라서, 사주팔자라는 말과도 이어지다 보니 이렇게 만들어 봤어요.

Papillon

2020-10-12 15:01:50

시프터즈라 멋진 이름인 것 같네요. 감사합니다.

SiteOwner

2020-10-21 22:49:32

신에게는 신의, 그리고 인간에게는 인간의 고유영역이 있다 보니 절체절명의 순간이지만 그게 지켜져야 하는 것이군요. 약간 저항감이 느껴지긴 했습니다만, 납득했습니다. 그 사이에서 달라지는 운명과 함께하거나 맞서는 사람들, 동생이 지은 제목처럼 시프터즈 그 자체.

일단 에스텔에게 소생약을 먹이는 것은 성공했지만, 주인공 그레고르에게 맞아 날아간 괴물은 폭주하고 있군요. 저것 또한 큰 문제입니다. 게다가 무고한 사람들이 마구잡이로 희생당하는 게 끔찍합니다.


이골로냑은 크툴루 신화의 그 이골로냑이 맞는지요?

Papillon

2020-10-22 01:12:05

이드라도 그렇고 이골로냑도 그렇고 옛 군주들의 이름은 크툴루 신화에서 차용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름만 같을 뿐, 성향이나 특성은 제 개인적인 어레인지가 담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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