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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안 저편에서 의식이 돌아온 순간, 괴물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주변을 바라보니 그와 충돌한 여파로 주변의 벽들이 산산조각이나 흩날리고 있었지만, 단단하기 그지없는 그의 몸에는 아무런 이상도 없었다.
“여.기.는?”
얼마나 멀리 날아온 것일까? 주변 거리의 형태가 유사한 걸 보아 아예 다른 구획까지 날아간 것은 아닌 걸 추측할 수 있었지만 확신할 수는 없었다.
“네가 처박힌 곳이다, 멍청한 놈.”
그러나 다행히도 그에게는 자신의 상황을 설명해줄 만한 동료가 근처에 있었다.
여인의 머리를 하고 대형견의 몸통을 한 괴물은 심드렁한 표정을 지으며, 근처 벽 위에 앉아있었다. 한쪽 앞발로는 간식으로 잡아 왔는지, 아직 신음성을 흘리고 있는 젊은 남성을 짓누르고 있는 것이 동료가 당했음에도 그저 남의 일이라 여기고 있는 것이 틀림없으리라.
“어.떻.게.된.거.냐?”
“굳이 설명이 필요한가? 네가 적에게 얻어맞고 하늘을 날아 여기에 날아왔다. 그리고 주변을 순찰하고 있던 나는 네 녀석이 ‘그것’에게 두들겨 맞고 투포환처럼 내던져지는 걸 보고 여기에 왔다. 그게 전부다.”
“내.말.이.그.런.게.아.니.란.건.알.텐.데.진.저.”
“알지. 하지만 말하기 싫은 거다.”
개 형태의 괴물, 진저는 말하면서도 귀찮음이 그득한 표정으로 자신이 잡아 온 사내의 얼굴가죽을 산채로 뜯어냈다. 한순간에 얼굴을 잃은 희생양은 처절한 비명을 질렀지만, 거기에 대한 그녀의 대응은 그저 발톱으로 성대를 도려내 희생양이 떠들지 못하게 하는 것일 뿐.
“그.건.분.명.주.인.과.같.은.존.재.였.다.”
“그래. 그리고 주인도 그런 괴물이 여럿 있다고 설명해주긴 했지.”
그들을 만든 주인, 이골로냑의 사도(apostle)는 그들에게 다른 사도들의 존재를 주지 시켜 놓았다. 그리고 그 대응 방법 또한 마찬가지.
“이대로 귀환해서 주인에게 보고한다. 그게 원칙이다.”
비록 그들은 괴물이지만, 그래 봐야 진짜들 앞에서는 무의미한 수준. 그리고 사도는 그런 초월자에 속하는 이들 중에서도 가장 상위에 속하는 존재. 철수하는 것이 지혜로운 선택이다.
하지만,
“아.니.지.금.놈.을.친.다.”
진저의 판단과는 다르게 큰 입 괴물은 그들의 주인의 뜻을 어길 것을 권해왔다.
“잭, 네가 미쳤다는 건 진작 알았지만 지금 이건 도를 넘었다.”
“그.런.게.아.니.다.”
“뭐가 아니라는 거지? 고작 10분 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내가 상기해 줄 필요가 있을 정도로 그 머리통에는 아무런 생각이 없나? 아, 하긴. 머리통을 계속 씹고 있으니 생각 같은 고등 정신 활동을 하지 못할지도 모르겠군.”
“그.런.게.아.니.라.고.했.다.”
“그럼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망발을 지껄이는 건데?”
언제나 유지하던 싸늘한 태도를 버린 채, 잭을 비난하는 진저. 그녀의 입장에서 지금 잭이 한 선택은 광인 그 자체의 행동이나 다름없으리라.
‘주인님의 힘을 생각하면 맞선다는 것 자체가 자살행위다.’
그들의 주인, 이골로냑의 사도는 가히 초월적인 힘을 자랑했다. 사창가 출신의 버려진 여인에 불과했던 진저를 한순간에 성인 남성을 포식할 수 있는 맹수로 바꿔 놓았고, 창고에서 셈이나 하던 뒷방 중늙은이였던 잭을 하루아침에 상위 마도기사인 에스텔과 겨룰 정도로 만들어냈다. 그런 존재가 자신과 동급의 힘을 지니고 있다고 설명한 것이 바로 다른 사도들.
그런데 그런 사도와 싸움을 권한다고? 방금 맞고 와서.
‘저놈이 미쳤군.’
그녀로서는 그렇게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녀의 생각과는 달리 잭에게는 나름대로 근거가 있었다.
“나.를.봐.라.”
“그 추한 몸뚱이를 자랑하고 싶나?”
“그.런.게.아.니.라.잘.봐.라.”
잭은 자신의 몸을 활짝 펴서 진저에게 살피게 했다. 하지만 진저가 살피기에는 이전과 다를 바 없는 추판 모습만이 들어올 뿐.
‘잠깐, 다를 바가 없어?’
“이.해.했.나.”
“그래. 너 멀쩡하군.”
의기양양한 잭의 태도가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진저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놈.이.제.대.로.된.사.도.라.면.내.가.멀.쩡.할.수.없.다.”
“주인님이 상대였다면, 지금 너는 흔적조차 남기지 못했겠지.”
실제로 힘을 얻었다고 주인에게 하극상을 시도했던 녀석은 진저가 눈을 깜빡이는 잠깐에, 가루가 되어서 눈앞에서 사라졌다.
“녀.석.은.분.명.맹.수.다.하.지.만.아.직.어.린.맹.수.지.그.러.니.힘.을.쓰.는.법.을.배.우.기.전.에.죽.여.야.한.다.”
“그래. 그리고 우리가 사도를 죽인다면 주인님도 우리를 높게 대우해 주시겠지.”
“아니.”
“?”
“우리가 놈의 힘을 뺏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
비록 인간과 같은 표정을 지을 수는 없었지만, 잭의 목소리에는 기대감이 가득했다.
“언제까지 우리가 주인 밑에서 일해야 하지? 그렇지 않나, 진저.”
“음.”
“만약 우리도 사도가 된다면, 주인 따위는 무시해도 그만이다.”
‘확실히.’
잭과 진저의 주인은 힘은 엄청날지 몰라도 두뇌 면에서는 어린애나 다름없는 자. 만약 사도의 힘을 손에 넣는다면 오히려 그들이 주도권을 잡는 것 역시 가능할지 모른다.
“이봐, 잭. 그거 알아?”
“뭐냐?”
“난 여태까지 네 의견은 전부 성에 차질 않았다. 멍청한 계획이라고 생각했지. 하지만 말이야, 지금 이 의견은 마음에 들어.”
“그.럼.교.섭.성.립.이.군.”
그 말을 끝으로 잭은 천천히 주변에 있던 벽으로 다가갔다. 그가 손을 휘두르자, 단단한 돌벽은 두부처럼 잘려 나갔고, 한 여인의 모습이 드러났다. 벽이 부서진 여파로 양다리를 다쳤는지 여인의 바지는 붉은 피로 젖어 있었지만, 이와는 대조적으로 공포의 질린 여인의 얼굴은 백지장처럼 새하얗다.
“사, 살려!”
여인의 말에 대답하지 않은 채, 잭은 손을 들어서 여인의 머리에 올려놓았다. 언뜻 보아선 여인을 위로하기 위해 머리를 쓰다듬는 것 같은 구도. 그 모습에 여인은 희망을 가졌지만,
퍽.
잭이 손을 움켜쥐는 순간, 그녀의 머리는 창밖으로 떨어진 화분처럼 처참하게 부서져 주변에 뇌수가 섞인 끈적한 피를 뿜어냈다.
“자.그.럼.”
“손님을 불러 볼까?”
약속이라도 한 듯, 두 괴물은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고 곧이어 지옥과도 같은 비명과 파괴음이 거리를 가득 메웠다.
*** ***
약간 발을 재촉한 것만으로도 시야에 담긴 풍경이 순식간에 바뀐다. 비교적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동물로 변신했을 때도 도달하지 못했던 압도적인 속도. 하지만 그 이상으로 놀라운 것은 그런 초고속 이동에도 불구하고, 내 감각이 주변의 모든 것을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제길!’
가능한 최고 속도로 움직이고 있긴 하지만, 역시 현장에서 직접 난동을 부리고 있는 녀석들보다 빠를 순 없었다. 녀석들이 지나온 길에는 시체가 즐비했으며, 그중에서 온전한 형태로 사망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나마 멀쩡한 시체만 해도 사지가 모두 분해된 채 바닥을 굴러다니고 있는 형국이니 가히 인세의 지옥도가 아닐 수 없었다.
빌어먹을 괴물 자식.
놈을 향한 분노를 연료 삼아 조금 더 속도를 내자, 어느새 녀석의 모습이 시야 한쪽에서 감지되기 시작한다. 이제 막 식사를 끝마쳤는지, 녀석의 거대한 입에는 붉은 피가 아직 굳지 않고 떨어져 있었고, 한 손에는 허리가 잘려 두 동강이 난 노인의 시체가 살아서 바둥거리고 있었다.?
실로 지독하기 그지없는 광경.
순간 머릿속이 뜨거워지며 아무 생각 없이 녀석에게 달려들고 싶었지만,
[한 놈이 더 있구나.]
차가운 목소리로 적이 하나 더 있다는 사실을 이드라 덕에 겨우 머리를 식힐 수 있었다.
하나 더?
이드라가 알려준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그 당시 지하수로에서 마주했던 개와 여인을 합성한 괴물이 모습을 드러났다. 녀석 역시 노파 한 명을 붙잡아 내장을 뜯어먹고 있는 걸 보아, 이 살육에 동참한 것이 분명하다.?
“이.제.야.왔.나.”
“목이 빠지는 줄 알았군.”
드디어 녀석들이 나를 발견했는지, 녀석들은 자신들이 괴롭히고 있던 노인들의 숨통을 끊고 나를 향해 다가왔다. 마치 나를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것처럼 여유로운 표정.
‘설마 내 쪽이 밀리나?’
순간 그런 미혹이 다시 고개를 들이밀었지만, 숨을 가다듬으며 마음을 다잡았다.
‘설령 내가 밀리더라도 여기서는 싸워야 해.’
지금 이 상태로 녀석들을 방치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이 근방 거리만으로 끝난다면 그나마 다행이긴 하지만, 어쩌면…….
오드리나 마스터 역시 희생자가 될 수도 있어.
피 흘리는 후배의 모습을 상상하니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지인이 좋지 않은 꼴을 당한다는 상상을 하지 않으면 싸울 수 없다는 사실이 순간 자괴감이 들었지만, 지금 싸울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리라.
“죽.어.라!”
어느새 가깝게 다가온 큰 입 괴물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며, 녀석의 장타가 매섭게 나를 향해 날아오는 것이 감지된다. 순간 깜짝 놀라서 녀석의 공격을 막아내려고 했던 나는,
탕!
녀석의 공격이 몸에 닿자 작은 소리를 내며 튕겨 나가는 것을 보며 순간 얼이 빠지고 말았다.
땅! 땅!
계속해서 큰 입 괴물의 공격이 나를 향해 퍼부어졌지만, 여전히 느껴지는 충격은 전혀 없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에스텔이랑 싸울 때는 범접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 보였던 공격들이 지금 내 몸에는 아무런 타격도 줄 수 없었다. 아니, 그 이전에.
왜 이렇게 느린 거야?
나는 느리다 못해 하품이 나올 정도의 속도로 휘둘러지는 녀석의 팔을 가볍게 한 손으로 잡아챘다.
“큭!”
큰 입 괴물은 내 손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른 손으로 내 손목을 후려쳐보았지만, 여전히 그 어떤 타격도 주지 못한다.
“잭!”
그 모습을 보고 뒤에서 기습하듯이 개 형태의 괴물이 덮쳐왔지만, 내가 보지도 않고 휘두른 다른 손에 가볍게 튕겨 날아간다.
‘이 녀석들이 이렇게 약했나?’
그런 의혹이 뇌를 꿰뚫고 지나갔지만, 그게 사실이 아닌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애초에 녀석들이 정말 별거 아니었다면 에스텔이 그렇게 다칠 일도 없었을 테니까.
[그러니까 본녀가 말하지 않았더냐?]
충격받은 내 모습이 재미있는지, 이드라의 웃음 섞인 목소리가 내 귓가를 간질였다.
[그대와 이 괴물은 급이 다르다고.]
우득.
“크.아.아.아.악!”
조금 힘을 준 것만으로도 쥐고 있던 큰 입 괴물이 으스러진다. 녀석은 비명을 질러 대며 다른 한 손으로 내 머리를 후려치려고 했지만,
펑!
역으로 내가 녀석의 손을 머리로 받아버리자, 그 손이 풍선처럼 터져 나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비록 괴물일지라도 한 생명에 고통에 몸부림치며 발악하는 모습에 동정심이 들 법도 하건만, 어째서인지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내 마음속을 가득 채운 것은 전혀 다른 감정.
환희.
‘기분 좋아.’
처음이다. 이런 감각은.
그동안 병신처럼 무시당한 반동인 걸까? 나를 괴롭히고, 사람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던 괴물이 내 눈앞에서 바닥을 기는 모습이 너무나도 즐거웠다.
“네.놈.따.위.가!”
그런 내 모습에 모멸감을 느꼈는지, 큰 입 괴물은 양팔 대신 그 입으로 내 팔을 물어뜯으려고 시도했지만,
와장창.
내 몸을 깨문 녀석의 이빨이 그 자리에서 깨져 나가고.
“크.윽!’
입속에 있던 머리가 내 손에 그대로 잡혔다. 그 상황에서도 녀석은 살아남기 위해 다시 몸부림치려고 노력했지만,
퍽!
녀석에겐 유감스럽게도 내 손아귀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 훨씬 빨랐다.
괴물의 머리가 터져 나가며, 사람의 것과 그리 다를 바 없는 붉은 피가 흘렀다. 혹시나 에스텔에게 당했을 때처럼 재생할 가능성에 긴장을 놓지 않았으나, 이드라의 힘에 당했기 때문인지 내가 아무 짓도 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녀석의 몸체는 재가 되어 흩어졌다.
“역시 무리였나!”
그 모습을 두려움에 떨며 지켜보고 있던 개 형태의 괴물은 결국 비명을 지르며 나에게서 멀어지려고 시도했지만,
쿵!
한 번 발을 구르는 것만으로 나는 녀석을 앞질러 설 수 있었다.
“살려……!”
마지막으로 괴물은 그 아름다운 얼굴로 나에게 자비를 구걸했지만, 녀석이 노파에게 했던 짓을 생각하면 살려 둘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고작해야 1분.
내가 녀석들 상대하는 데 걸린 시간.
“하하하.”
그걸 생각하니 웃음이 흘러나왔다.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이렇게 기쁜 거였구나.
이렇게 충만한 만족감을 느끼는 게 가능했다니! 꿈을 포기한 이래, 느껴본 적 없던 환희가 어떠한 마약보다도 강렬하게 내 신경을 타고 내달렸다.
“하하하하!”
누구 하나 듣는 이가 없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그 정체 모를 쾌감에 취해 허공을 향해 목놓아 웃었다.
*** ***
‘여기는?’
생사의 경계에서 겨우 현세를 향해 돌아온 에스텔은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아직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듯 타는 듯한 통증이 그녀의 전신 신경을 따라 내달렸지만, 어린 시절부터 지옥 같은 훈련을 받아온 그녀가 버티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어떻게 된 거지?’
그녀는 기절하기 전 자신의 상황을 떠올렸다. 그녀가 보지 못한 사이에 괴물은 부활하는 데 성공했고, 결국 그녀는 방심의 대가를 치렀다. 그리고 꺼져가는 의식 속에서 느끼는 것은 전신이 부서지는 것 같은 지독한 통증.
‘나는 어떻게 멀쩡히 살아있는 거지?’
의문을 느낀 그녀는 전신에 마력을 흘려 자신의 상태를 관조했다. 마력이 지나칠 때마다 그 부위가 상처에 소금을 뿌리기라도 한 듯 아팠지만, 만약 그녀가 파악하지 못한 내상이 있다면 추후 어떠한 부작용을 겪을지 모르니 어쩔 수 없는 조치다.
‘이건?’
그렇게 신체 구석구석을 살피던 그녀는 자신의 몸 안에 본인의 마력과는 다른 익숙한 기운이 고여 있는 것을 확인했다.?
“소생약?”
혹시나 해 혁대 주머니를 뒤지자 본래 있었던 약병이 사라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대체 누가?’
기절의 여파인지 여전히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에스텔은 생각에 잠겼다.?
도대체 누가 그녀의 혁대에서 소생약을 꺼내서 그녀에게 먹였단 말인가? 아니, 어떻게 소생약을 휴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는가? 그 이전에 그녀는 왜 괴물과 싸웠던 것일까??
잠시 간의 정적.
직후, 그녀의 뇌리에 한 사내의 이름이 떠올랐다.
“그레고르!”
그 이름이 떠오르는 순간, 에스텔은 마력을 운용해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회복을 위해서는 가능한 휴식을 취하는 것이 좋겠지만, 유감스럽게도 지금 그녀에게는 시간이 없었다.
‘구해야 해.’
괴물은 만전 상태의 그녀라면 그리 어려운 적이 아니지만, 그레고르 같은 둔갑술사가 상대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곰으로 변신한다고 해도 상대방보다 힘이 약하고, 코끼리로 변신한다고 해도 녀석의 공격을 막아서는 건 불가능하다.
“크윽!”
마력으로 고통을 완화하긴 했지만, 여전히 움직일 때마다 지독한 통증이 느껴졌다. 아무래도 그녀의 몸 자체가 걷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리라.
‘그래도 가야 해.’
망가진 몸을 마력을 연료로 억지로 움직이며 그녀는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하하하하!”
무리한 마력 운용 때문에 눈에 실핏줄이 터져 시야가 붉게 물들었을 때, 에스텔의 귓가에 누군가의 환희에 찬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광인이나 극도로 약에 취한 이처럼 기쁨에 가득 차 웃음을 터뜨리는 사내. 어딘가 이질적이면서도 그 목소리는 그녀에게 너무나도 익숙했다.
‘그레고르?’
조금 전까지 그녀가 걱정하며 찾아 헤매던 남자. 그녀의 염려와는 다르게 사내는 너무나 건강한 목소리로 웃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거지?’
자신이 예상하던 상황과는 너무나 다른 소리에 당황한 에스텔. 그녀는 눈에 차오르는 핏물을 옷자락으로 대충 닦아낸 뒤, 눈에 마력을 집중해 소리가 들려온 것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거기에 있는 것은,?
“하하하하!”
광인처럼 웃으며 괴물을 짓밟고 있는 전신 갑주를 입은 사나이.
‘사도!”
이 도시에서 가장 위험한 존재.
그 모습을 보자 에스텔은 도망치고 싶은 충동이 차오름을 느꼈지만, 사도의 웃음소리가 그녀의 발목을 부여잡고 있었다.
‘설마 그레고르가?’
그녀를 속였던 걸까?
순간 그런 의심이 들었지만, 이는 곳 먼지처럼 사라졌다. 애초에 그가 처음부터 사도였다면 그런 괴물 따위에게 겁을 먹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생각할 수 있는 건, 단 하나.
“그레고르.”
그 가능성을 되새기며, 에스텔은 웃고 있는 사도를 향해 다가갔고,
“에스……텔?”
사도, 그레고르가 그녀의 모습을 보고 놀라는 것과 동시에 그를 감싸고 있던 갑옷이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일어났느냐, 소여의 아이여.]
그런 에스텔을 반기기라도 하듯이 그레고르의 초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그사이에 선택받았다.’
자신이 우려한 가능성이 실현된 것을 확인하자, 에스텔은 힘이 풀려 바닥에 주저앉는 것과 동시에 시야가 검게 물드는 것을 보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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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2화씩 올리니 도배에 가까운 상황이 되는 것 같아서 앞으로는 하루에 1화씩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딱히 할 말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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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댓글
마드리갈
2020-10-12 13:05:33
상황이 이렇게 극적으로 변하다니...
굉장히 험악한 상황이었는데, 그레고르는 이 상황에서 완전히 달라졌어요. 그리고 이전에 받았던 온갖 차별과 핍박 등이 있었다 보니 더욱 그 반작용은 컸을 거예요. 이미 피해가 많이 발생한 이후라는 게 참 뼈아프지만...
겨우 살아난 에스텔은 이렇게 그레고르가 각성할 것을 예상하고 있었던 걸까요.
그레고르의 초커의 주인은 그레고르 그였던 것인가...제가 에스텔이라도 상황이 정리되지 않아 힘이 풀릴 것 같아요.
Papillon
2020-10-12 15:02:51
극적인 변화죠. 하지만 그게 좋은 방향으로 갈지는.......
SiteOwner
2020-10-21 23:29:14
악인은 오로지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싸우면 될 뿐이고 그 목적은 파괴, 살육, 약탈 같은 것이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그 악인과 싸우는 존재는 그렇지 않습니다. 지켜야 할 것은 많고, 그래서 역량은 한정되어 있고, 그러니 여러모로 어렵습니다. 절대적으로 우월하다면 모를까...
주인공 그레고르가 드디어 적들을 압도하게 되었지만, 이것으로 끝이 아닌 것 같군요.
또다른 복잡한 운명으로 내닫는 한 걸음이 된 것 같습니다. 에스텔의 우려는 바로 그것같습니다.Papillon
2020-10-22 01:12:39
싸울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은 필요하지만, 그런 능력을 가졌다는 것이 좋게 진행된다는 보장은 없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