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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SMOPOLITAN] #A4 - Contract

Lester, 2020-10-17 01:53:03

조회 수
192

※ 별개의 소설이 아닌, COSMOPOLITAN으로 편입시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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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ract - 청부



총알은 평등하다. 너도 한 방, 나도 한 방. 이 바닥에서는 구닥다리이다 못해 곧장 총 맞기 쉬운 마법의 주문과도 같은 개그였지만 존 휘태커를 웃기기엔 충분했다. 이 바닥에서 만고불변의 진리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존이 이 바닥에서 온갖 더러운 일을 하면서도 살아갈 수 있는 신념이자 종교이기도 했다. 아무리 위기에 처했다 한들 총알이 남아 있다면 살아날 기회가 있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유치해 보여도 상관없었다. 비웃음이란 살아남은 자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니까.
"뭐가 재밌어서 그렇게 웃지?"
"아, 죄송합니다, 바넬리 부인. 옛날 일이 생각나서."
전화기 너머에서 중년 여성의 날선 목소리가 들려오자 존이 얼른 사과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전화 상대는 알아 모셔야 하는 중개인이 아닌가. 그녀는 엄연히 욜란다 바넬리Yolanda Vanelli이라는 이름이 있었지만 존을 비롯한 '현장직'들 사이에선 마녀니 바바 야가니 하는 온갖 험한 표현으로 불리는 경우가 많았다. 뒷세계의 정보를 담당하는 픽서Fixer로서 여러 사람을 위험으로 내몰고 안전하게 뒷방에 앉아만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녀 앞에서 이런 별명을 입 밖에 꺼냈다간 그 순간부터 '해고'였으므로 존이나 다른 현장직들은 그녀와 통화할 땐 항상 바넬리 부인Mrs. Vanelli이라는 경칭을 썼다. 가방끈이 짧아 유일한 기술이라곤 총 쏘는 것밖에 없는 그들에게 그에 걸맞는 '일'을 주는 바넬리 부인은 그야말로 '주인님'이나 다를 바 없었으니까.

하지만 존에게는 예외였다. 존은 누구보다 긴 밑바닥 생활을 통해 그녀의 이름은 물론 그녀가 실제로는 마피아 조직의 대리인들 중 한 명이란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한 우물만 파지 않고 여러 우물을 오가면서 우물물을 '훔쳐 먹은', 그러니까 다른 픽서나 고용주 밑에서 활동하며 온갖 정보를 주워들었기 때문이다. 누구와 같이 일하는 법이 전혀 없었고, 설령 같이 일해야 할 순간이라도 그래스호퍼"Grasshopper"(줄여서 '호퍼')니 샌드맨"Sandman"이니 텀블위드"Tumbleweed"(줄여서 '위드')니 하고 전혀 다른 별명을 썼기에 가능했다. 모두 어딘가로 옮겨다니는 습성이 있다는 커다란 힌트가 있었지만(심지어 이것도 어느 유명 잡지의 짜투리 코너에서 가져왔다) 알아채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물론 들통날 뻔하거나 실제로 들통난 적이 있었지만 전혀 상관없었다. 그들이 아는 것이라곤 별명뿐이었지 그 외의 정보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고, 애초에 알아낼 수도 없었다. 그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그럼에도 존은 굳이 그들의 신상을 빌미삼아 협박하지도 거래하지도 않았다. 그저 이곳저곳에서 일을 받아 수행하고 돈을 받을 뿐이었다. 오로지 단 하나의 목적, 그만의 '계획'을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것이 여러 조직들이 서로 싸워 자멸하기를 바라는 것인지, 아니면 그저 고용주들을 철저히 털어먹기를 원하는 것인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는 그것에 대해 누구에게도 털어놓은 적이 없었고 앞으로도 털어놓을 생각이 없었다. 이 바닥에서 신뢰란 것은 엄청난 대가가 필요했으니까. 그 점은 누구보다도 본인이 가장 잘 알았고 실제로 날마다 증명하고 있었다. 그런 것도 모른 채 바넬리 부인은 한껏 위세를 부렸다.

"쳐웃을 시간이 있으면 제대로 듣기나 해. 난 두 번은 얘기하지 않으니까. 네가 참석해야 되는 '면접'이 있어. '신입사원'이라더라. 면접 시간과 장소는 따로 알려줄 테니까 늦지 말고 재깍재깍 가라고. 알았나?"

누군가에게 도청당할 일이 거의 없는 길가의 공중전화였음에도 바넬리 부인은 픽서답게 암구호를 사용했다. '면접'이란 살인청부를, '신입사원'이란 일반인을 뜻했다. 반대로 '경력자'라고 하면 최소 한 번 손을 더럽힌 적이 있는, 즉 '경력'이 있는 범죄자라는 뜻이었다. 이 바닥에는 이렇게 엄청나게 많은 암구호가 있었고, 좀 외웠다 싶으면 바뀌거나 없어지거나 새로 만들어지는 경우가 허다했다. 만에 하나라도 경찰과 FBI를 비롯한 법집행자들의 추적을 뿌리치기 위해서였다. 막상 그런 법집행자들이 예산과 인력이 딸려 의미를 알아봤자 잡으러 쫓아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대답 안 해?"

"네네, 알겠습니다."

"'네'는 한 번만 하라고 했을 텐데?"

"예스, 맴."

"좋아."

존이 철저히 굴복하는 모양새를 취하자 그제서야 기분이 좋안 바넬리 부인이 먼저 전화를 끊었다. 존은 신호음만 나는 수화기를 내려다보다 낄낄 웃고는 다른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살인청부 전용 음성메시지를 저장하는 곳이었다. 어쩌다 일반인이 잘못 걸 수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결번임을 알리는 낭랑한 목소리를 듣자마자 끊었고, 설령 그것이 위장임을 안다고 한들 현장직 개개인에게 부여된 고유번호를 누르지 않으면 접속할 수 없었다. 존이 본인의 고유번호를 누르자 바넬리 부인의 음성메시지가 나왔다. 존 외에 다른 현장직에게도 똑같이 대하는지, 아까와 마찬가지로 날선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Contract: Marty Cholton


"이번 목표물은 마티 촐튼이다. 이 빌어처먹을 놈은 사료 공장 사장인데,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람들을 이용한 뒤에 죽이고 사료로 만들어서 입막음을 했다고 하더라. 경찰이 이번에 지금까지 벌인 살인들을 의심하기 시작하자 잠적했는데, 빌어처먹을 놈이 숨어봐야 거기서 거기지. 이런 일이 있을 줄 알고 자기 공장에다 식량을 왕창 들여놓고 경찰 수사망이 풀릴 때까지 공장에 짱박혔어. 그러니 당장 공장으로 튀어가서 그 새끼를 죽여라. 그리고 공장은 태워버려. 뒷정리는 경찰이나 소방관이 하겠지."

바넬리 부인의 메시지가 끝나자 존은 자신의 핸드폰 번호를 눌렀다. 얼마 안 있어 목표물의 사진과 주소 등이 포함된 짧은 신상정보가 문자메시지로 도착했다. 원리는 모르겠지만 무슨 서버에서 자동으로 보내는 모양이었다.


바넬리 부인이 말한 마티 촐튼의 사료 공장은 포트 리뎀션의 창고지대, 그 중에서도 거의 폐허나 다름없는 구역에 있었다. 이렇게 쇠락한 곳이니 누가 사람을 죽이고 사료로 만든다는 생각을 하겠는가. 존은 대체 어떤 가엾은 동물들이 그 사료를 먹었을지 궁금했다. 아니, 애초에 팔리기는 하나? 보통 이런 데까지 내몰린 사업체는 망하기 일보직전이거나 이미 망한 지 오래였다. 마티 촐튼도 그 지경까지 갔으니 남의 돈을 뺏어 어떻게든 버티려다 실패한 것이리라.

사료 공장의 정문에는 여봐란 듯이 꽤 굵은 사슬이 자물쇠와 함께 걸려 있었고 담도 제법 높았다. 하지만 이 일을 마쳐야 하는 존에게 그런 건 아무 문제가 없었다. 존은 옆 건물에 들어간 후 2층에서 가볍게 뛰어내렸다. 착지할 때의 충격으로 다리가 저릿저릿했지만 금세 괜찮아졌다. 존은 공장 안뜰을 지나 들어갈 창문을 찾았지만 유감스럽게도 1층 창문은 모두 닫혀 있었다. 하지만 이것도 아무 문제 없었다. 존은 락픽을 창문 틀에 집어넣어 걸쇠를 조금씩 밀어냈다. 이래뵈도 세심한 작업이라 시간이 좀 걸렸지만 마침내 걸쇠가 철컥 하고 돌아가면서 창문이 열렸다.

존이 창문을 넘어 들어가자 존이 있는 곳이 작은 방인지 건물 전체인지조차 알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암흑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저 멀리 멀리 세로로 길쭉한 불빛이 보였다. 존이 발소리를 죽이며 다가가자 그것은 반쯤 열린 컨테이너였다는 게 드러났다. 그 순간 음식 쓰레기의 악취가 풍기자 존은 반사적으로 코를 틀어막으며 얼굴을 찌푸렸다. 컨테이너 주변에 먹다 남은 인스턴트 식품의 포장지가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정말 여기에 짱박혀서 버티고 있는 모양이었다. 존이 악취 때문에 점점 뒷골이 땡기기 시작해서 얼른 처리하려고 발길을 옮긴 순간, 바로 앞에 있던 사료 깡통을 시원하게 걷어차고 말았다. 깡통이 커다란 공장 안에 우렁차게 쇳소리를 울리자 안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거기 누구야? 거기 있는 거 다 알아!"

먼지투성이 코트를 입은 중년 남자가 산탄총을 들고 뛰쳐나왔다. 하지만 말과 달리 촐튼은 벌벌 떨고 있었다. 게다가 햇빛도 안 쬐고 불량식품만 먹어서인지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도 촐튼이 손에 든 산탄총은 충분히 위력적이었다. 촐튼이 총구를 이리저리 휘두르며 말했다.

"내가 겁낼까 보냐! 당장 나와!"

하지만 아무리 촐튼이 산탄총을 휘둘러도 컨테이너 문 바로 뒤에 숨은 존을 찾을 순 없었다. 애초에 숨어사는 몸이라 불을 킬 수도, 위협사격을 해서 경찰을 부를 수도 없었다. 그렇기에 존은 곧장 소음기를 단 권총을 꺼낸 후 순식간에 촐튼에게 다가가 총구를 뒤통수에 들이밀었다. 총을 안 쏴본 사람이라도 누구나 알 수 있는 위험한 감촉이었다. 촐튼이 놀라서 얼어붙자, 존은 조용히 속삭였다.

"잘 자요, 아저씨."

픽 소리가 나더니 촐튼이 머리에서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만약을 위해 존은 시체의 머리에 한 발을 더 쏜 후, 컨테이너 안에 불을 킨 라이터를 던져넣었다. 라이터는 촐튼의 간이 침대에 사뿐히 내려앉더니 금세 맹렬하게 타올랐다. 존은 그 불이 이제 먹을 일이 없는 비상식량 무더기에 옮겨붙은 걸 확인한 후, 열려 있던 창문으로 나왔다. 그리고 안뜰 한 구석에 쌓여 있는 잡동사니를 밟고 담을 넘어 차로 돌아왔다. 존은 차에 시동을 걸며 바넬리 부인에게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늘 그렇듯이 가라앉으면서도 앙칼진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뭐냐?"

"'면접' 보고 왔어요. '탈락'이던데요. 태도가 불량해서."

"그러냐. 알았다."

바넬리 부인은 하고 싶은 말만 하고 전화를 끊었다. 존은 핸드폰을 바라보다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 오피니언 프라임 (3월 22일) ]

사회면 - "개처럼 살다가 개처럼 잠들다"

지인들에게 다수의 사기를 쳐서 금품을 갈취하는 것도 모자라 살해하여 인멸해놓고 정작 법의 처벌이 무서워 잠적했던 범죄자 마티 촐튼(남, 58세)이 본인 소유의 개밥 공장에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발견 당시 공장은 원인 불명으로 발생한 불이 대량으로 쌓여 있던 개밥들에 붙어서 그런지 거세게 타오르고 있었고, 화재 진압 후 컨테이너 안에서 발견한 소사체 1구를 조사한 결과 그가 촐튼임이 밝혀졌다. (중략) 시신의 머리 부분에서 총탄이 관통한 흔적이 밝혀짐에 따라, 경찰은 원한에 의한 범죄라 판단하고 피해자들을 먼저 조사하고 있다. (중략) 어느 경찰 관계자는 말했다. "진실이 어떻게 밝혀지든, 확실한 건 마티 촐튼은 천벌을 받았다는 겁니다. 개처럼 살다가 개처럼 죽었으니까요."



(추가 에피소드 4화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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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24 개편 후 추가)

편입시키기 이전의 이 작품의 목적이라고 한다면 트와일라이트 시티의 '뒷세계'에 대해 묘사하는 것이었습니다. 코스모폴리턴에서 풀어내려니 레스터 일행과 버무리기 힘들 것 같아 별개의 작품으로 분리했었죠. 처음에 '화이트 버전과 블랙 버전', 그러니까 순수 범죄물Hard-boiled과 하프보일드Half-boiled를 나눠서 연재해보면 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그러니까 '레스터 일행과 별개로 범죄를 저지르며 세계관을 악화시키는, 레스터 일행의 정체를 알 수 없는 적'을 상정한 거였죠. 그리고 소설 마지막에 '사실 이 인물은 존 휘태커였다'는 반전을 뿌려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정도의 분량이면 그냥 코스모폴리턴에 넣어도 문제가 없겠고, 뭣보다 철저히 존의 입장에서 벌어지는 일이라 레스터가 알 리도 없다고 생각했겠고요. 앞서 말한 반전 이후에 레스터가 알게 되는 전개를 넣으려고 했으나 앞 내용이 너무 길어질 것 같아 그냥 편입시키고, 알고 있지만 힘으로도 논리로도 어쩔 수 없다는 전개가 쉬울 것 같아 그렇게 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편입시키긴 했지만, 어찌 됐든 선택지 개념은 무조건 넣을 겁니다. 존이 무자비한 살인귀가 아니라는 모습은 꼭 보여주고 싶으니까요.

Lester

그거 알아? 혼자 있고 싶어하는 사람은 이유야 어쨌든 고독을 즐겨서 그러는 게 아니야. 사람들한테 계속 실망해서 먼저 세상에서 모습을 감추는 거야. - 조디 피코

8 댓글

마드리갈

2020-10-23 12:53:27

청명한 가을하늘 아래에 갑자기 오한이 들 정도...

정말 그렇죠. 누구라도 간단히 죽일 수 있는 게 총알이라는 작은 물체인데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기 마련. 그러니 범죄조직이 먹고 살만한 환경은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 충분히 만들어질 수 있는 거네요. 게다가 바넬리 부인같은 픽서의 존재는 흑막이라는 표현 그것에 딱 어울릴만 해요. 사실 바넬리 부인을 죽이려면 죽일 수는 있겠지만, 그것을 감행해야 할만큼 이익도 없는데다 들이닥칠 손해를 생각하면 그건 생각안해도 좋을 듯...


전화사서함 수법에 감탄했어요!! 저렇게 없는 번호라고 나오는 것을 계속 들을 사람은 없으니까...

게다가, 한 편의 미국 범죄영화의 장면같은 게 선명하게 그려지네요. 길모퉁이의 공중전화, 그 전화를 이용하는 평범한 사람, 퇴락한 지역에서 이상한 사업을 영위하는 악덕업자 등이 생각나면서...

이렇게 한 에피소드에서 생생한 장면이 모두 다 그려지면서, 바넬리 부인이 장악하는 이 세계의 사정이 파악되고 있어요. 오한이 들 정도로 실감나게 읽을 수 있었어요.

Lester

2020-10-23 13:51:18

그런데 제 생각으론 그렇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범죄자들 역시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법과 질서가 통치하는 세상은 법과 질서가 악의를 갖지 않는 이상(ex. 독재) 법과 질서를 따르더라도 별다른 손해가 없지만, 총알이 지배하는 세상에선 따르든 따르지 않든 감정이 우선하기 때문이죠. 미국 마피아들이 통치하던 시절에 자기들끼리 권력을 잡겠다고 이전투구한 걸 봐도 말이죠.


음... 초중반부에 '바넬리 부인에 대해 이미 정체도 다 알고 있지만 돈 때문에 굳이 놔두고 있다'고 충분히 묘사한 줄 알았는데요. 뭐 죽이더라도 손해가 있는 건 분명히 사실이지만요. 일단 돈줄 하나가 끊기고 바넬리 부인이 속한 조직을 적으로 돌려야 하니... 이해를 돕기 위해 GTA2를 예시로 들었습니다만 모르실 수도 있다는 점을 깜박했습니다.


전화사서함 수법은 상술한 GTA2에서 미션을 받으려면 공중전화를 이용하는 것에 착안한 것인데, 이제 와서 보니 영화 "매트릭스"에서 전화기를 통해 세계관을 넘나드는 것도 생각나네요. 얼핏 듣기로는 우리나라야 이제 공중전화가 거의 장식이지만 미국에선 아직도 공중전화를 쓴다고 들은 것 같은데, 한 번 더 참고자료를 찾아봐야겠습니다.


오한이 들 정도로 읽으셨다니 정말 감사드립니다.

SiteOwner

2020-12-03 23:38:58

태어나서 자라 사람 구실하기까지는 시간이 매우 많이 걸리는데다 제대로 된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그런데 죽는 것은 한 순간이고 또한 비가역적인 반응이지요. 그래서 참 무서운 것이고, 또한 놀라울 정도로 공평하다는 것. 이렇게 인간성이 증명된다는 현실이 정말 기막히지만 달리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처음부터 공포를 느끼면서 읽어 내려갑니다.


바넬리 부인이라는 사람 개인은 별 것 아니겠지요.

하지만 그녀를 죽이게 되면 치루어야 할 대가가 무섭게 크고, 영영 회복이 안 될 것도 충분히 예견 가능합니다. 그러니 어느 정도 생각을 한다면 앞뒤를 재서 그 바넬리 부인을 자발적으로 따르겠지요. 물론 절대적인 충성맹세의 동의어는 아니겠지만. 이런 것이 바로 헤게모니이고, 바넬리 부인은 그 헤게모니의 핵심은 아닐지라도 최소한 말단은 아닌 것입니다. 그러나 존은 확실히 말단. 이렇게 층위가 형성되는 것에서 인간이 평등하면서 또한 평등하지 않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닫습니다. 분명 모순적인데 이상하지는 않고, 그리고 그 모순이 무서움을 증폭시킵니다.


존은 정말 용의주도하고 담대하군요. 비록 그가 맡은 일이 범죄이고, 그것도 청부살인이지만,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상대가 운신의 폭이 좁다는 것을 제대로 간파하고 문제해결의 최단루트를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결과도 성공시켰습니다. 최적의 솔루션이라는 그 본질만큼은 충분히 경의를 표할 가치가 있습니다.

Lester

2020-12-31 19:29:29

두 분께서 제 소설을 읽을 때마다 공포소설이 아님에도 '무섭다'고 계속 말씀하시는 게 이해가 안 가긴 했습니다만, 한편으론 미국이라면 저런 게 일상다반사니까 무서울 법도 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 대한민국에 살고 있다는 걸 감사히 여겨야겠죠. 죽더라도 총에 맞아 죽을 일은 거의 없으니까요.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조직범죄 자료를 이래저래 섭렵하다 보니 하나 깨달았는데, 분명히 뒷세계에서도 위계질서는 존재하지만 이익 때문에 그렇게 보일 뿐이더군요. 미국 마피아의 경우 2차대전을 거쳐 반백년이 넘는 역사가 되면서 그럭저럭 체계화되긴 했지만 단 하나의 멍텅구리로 인해 본인은 물론 조직이 거덜나는 경우도 있었으니까요. 그렇기에 '일반인'의 입장에서 보면 아무리 무서워 보인다 한들 결국엔 그들만의 리그, 아니 아귀다툼이라 전혀 무서워할 이유가 없다고 봅니다.


그나마 이 경우는 상황이 하나부터 열까지 다 준비(?)된 경우죠. 목표물이 개방된 곳이나 군중들 사이에 있으면 시끄러운 방법을 쓸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게 아니라도 존은 주인공이니까 어지간한 일에선 다 성공할 거에요. 아마도.

마드리갈

2021-01-06 00:01:04

"개처럼 살다가 개처럼 잠들다" 라는 표현...

개라는 동물을 좋아하는 저로서는 저항감이 있긴 하지만, 좋지 않은 것을 개에 비유하는 일반적인 언어관습에서 볼 때 마티 촐튼의 죽음에 대한 보도와 경찰 관계자의 발언은 그의 인생을 압축하는 표현이 아닐 수가 없어요.


인생을 저렇게 살아서는 안되겠죠.

Lester

2021-01-07 06:42:07

개인적으로 아무리 좋아하는 것이라 해도 사회적 통념이 부정적으로 잡혀버리면 참 곤란할 것 같긴 합니다. 특히 개에 비유하는 것은 워낙 역사가 깊기도 하고...


애초에 원판이 악당들의 집합소인 GTA 시리즈 중에서 GTA3에 나오는 보조 캐릭터 마티 청크스Marty Chonks이다 보니, 행적도 최후도 개같을 수밖에 없는 건 당연한 일이라 봅니다. 과거에 GTA 시리즈를 너무 '추종'했던 것에 대한 자기혐오와 반성(?)도 약간 들어가 있고요.

SiteOwner

2021-03-09 19:19:56

부가된 사항에 대한 코멘트 4.


누구도 슬퍼하지 않을, 오히려 누군가는 장기간의 묵은 현안이 드디어 해소했다고 좋아하든지 할 그런 죽음은 피해야겠지요. 마티 촐튼의 인생은 그런 점에서 완벽히 실패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요즘 세상에 환력을 맞이하지 못하고 수명을 다했다는 것은 아무래도 단명이겠지요. 마티 촐튼은 딱히 존이 아니더라도 누군가에게 죽음을 당할만큼 원한을 많이 샀으니 제 명대로 살기란 일찌감치 불가능하게 정해진 게 아닌가 싶습니다.

Lester

2021-03-10 18:34:26

소설이기에 이런저런 형태로의 권선징악, 정의구현이 가능했다고 봐야겠죠. 이번 에피소드는 순도 100% 범죄 게임의 캐릭터를 패러디해서 그런지 전혀 좋게 봐 줄 수가 없네요.


한편으론 그 게임에서는 깨도 그만 안 깨도 그만인 사이드 미션이고 주인공의 손에 죽는 것도 아니지만, 사람의 죽음에 대해 '둔감해지게' 만드는 측면이 분명히 있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이런 류의 게임이 굉장히 질타를 많이 받는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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