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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프터즈] Chapter 5: 사도야행. Episode 19

Papillon, 2020-10-18 00:10:25

조회 수
156

비켜어어어!”


특유의 여유롭던 말투조차 잊은 채 살인귀는 분노한 어린아이처럼 괴성을 질렀다. 이미 수없이 많은 이들을 죽였던 녀석인 만큼 거기서 흘러나오는 살기는 그 자체로 범인의 심장을 멎게 할 정도로 강렬했으나, 나는 오히려 이를 비웃을 수 있었다.


여유가 사라졌군.’


에스텔의 목숨을 건 일격은 녀석을 향한 치명적인 비수가 되었다. 영구적으로 진흙을 막진 못했지만 적어도 내가 움직일 시간 정도는 충분할 터.


죽어어어어!”


녀석은 곰이 강에서 연어를 잡듯, 그 거대한 손바닥으로 에스텔을 내려쳤지만, 그보다 내 발이 빨랐다.

!

녀석의 손목을 향해 내 발차기가 적중하는 동시에 대기를 찢어버릴 듯한 괴성이 허공을 타고 흘렀다. 그와 동시에 양쪽을 향해 흘러들어오는 충격,


!”


그 충격에 나 역시 잠시 자세를 잡지 못했지만, 나는 여전히 여유를 잃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게 이 충돌의 승자는 나였으니까.


이익!”


공격을 한 녀석의 팔목은 기괴한 방향으로 꺾여버렸다.

애초에 녀석이 진흙을 소환한 이유부터 나에게 육박전에서 밀렸기 때문인데, 분노로 이성을 잃은 지금 나를 상대로 제대로 맞설 가능성 따위가 있을 리 없었다.

물론 그때도 파워는 내가 밀렸지만.


발차기라면 파워도 대등하지.”


녀석의 기괴할 정도로 거대한 팔은 분명 손으로 강력한 일격을 가할 수 있게 해준다. 하지만 그 덕에 신체 밸런스는 엉망. 발차기 같은 기술은 사용할 수 없다.

하지만 나는 다르다.

덩치가 작고, 특별한 것 하나 없는 모습. 그렇기에 인간과 같은 방법으로 싸우는 것 역시 가능하다.

내 압도적 우세.


꺼져!”


녀석 역시 그걸 깨달은 것일까?

내 공격에 팔이 부러진 녀석은 비틀거리며 거리를 벌린 직후, 전신에서 활화산처럼 검붉은 연기를 뿜어냈다.

권능인가?

칠감을 통한 위험 감지가 주변 전체를 위험지대로 알리고 있다. 아마도 공간 왜곡을 이용해 내 주변을 완전히 박살 내려는 것일 터.


히히. 도망칠 수 있다면 도망쳐 보라고!”


살인귀의 그 말과 함께 내 주변 공간이 일그러지기 시작한다. 아마 그냥 이 공격에 휘말린다면 나 역시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것이 분명하겠지. 하지만 이대로 도망쳤다가는 내 등 뒤에 있는 에스텔과, 마찬가지로 옥상에 있는 오드리의 무사를 확신할 수 없다.

거기에 더해서,


도망치는 건 이제 질렸거든.”


인생에서도, 싸움에서도 이미 나는 충분히 도망쳐왔다. 지금 다시 녀석을 눈앞에 두고 도망칠 정도로 가벼운 각오로 이 자리에 오진 않았다.


[‘그걸써보겠느냐?]


그런 내 의지를 읽었는지 이드라는 피하라는 말조차 하지 않은 채 묵묵히 내 선택을 물어왔고,


. 써보겠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양손으로 이드라의 환염을 피어 올렸다.

그와 동시에,


권능 발동. 박살 공간.”

권능 발동. 포식자 군세.”


두 힘이 충돌했다.

?


***?????? ***

?


헤에~ 권능인가~?’


박살 공간을 펼친 직후, 어느 정도 여유를 되찾은 블레어는 여유롭게 눈앞에 적을 바라보았다. 그가 예상한 대로 놈은 주변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도망치지 않았다. 그의 예상과 다르게 흘러간 것은 상대가 수비가 아닌 권능을 통한 받아 치기를 선택했다는 것뿐.


소용없을걸~.’


하지만 무의미하다.

블레어는 박살 공간에 휘말린 상대를 바라보며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박살 공간은 그가 익힌 권능 중 단일 개체를 향한 최강의 공격. 상대가 방심하지 않으면 충분히 방어할 수 있는 다른 기술과는 다르게, 박살 공간은 사도에게조차 치명적인 공격을 퍼부을 수 있다.

물론 더 강력한 권능을 쓴다면 막을 수 있겠지만……,


불꽃이었지?’


불처럼, 공간에 비하면 하위 개념에 불과한 것이 그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을 리가 없다.

하지만 상황은 그가 생각한 바와 다르게 흘러갔다.

찍찍!

귓가에 쥐 소리가 들렸다.

그것이야 이상할 것이 없다. 영주에 의해 폐쇄된 구획인 만큼 시궁쥐 같은 해수들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찍찍찍찍찍찍찍찍!

그 소리가 점점 많아졌다.


뭐야? 뭐야?”


그 소리는 꼭 공기 그 자체인 것처럼 모든 곳에서 들려왔다. 바닥에서, 적에게서, 허공에서, 그리고 블레어가 입은 사도의 갑주 속에서.

까득!

갑주 관절 부분에서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판금.

비록 그 재질이 신의 힘인 만큼, 범속한 것은 아니나 여전히 사도의 갑주를 이루는 주요 부품이 조금씩 무언가에 갉아 먹히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작은 구멍에서,

!

쥐가 모습을 드러냈다.


?”


크기와 형태를 보았을 때, 그것은 분명히 쥐였다. 하나 동시에 그것은 쥐가 아니었다. 고작해야 미물인 주제에, 그것들은 기사라도 된 것처럼 갑주를 입고 있었다. 그리고 다른 것은 색상.

보라색.


이건?!”


이드라의 색상!

기겁한 블레어가 얼른 눈에 띈 쥐를 잡아냈지만, 갑옷 곳곳에서 다른 녀석들이 모습을 드러냈고, 그가 입은 갑주를 쿠키라도 되는 것처럼 사각사각 갉아먹었다.


이익! 쥐 주제에!”


반복되는 쥐 잡기.

하나하나는 블레어의 일격조차 버텨낼 수 없지만, 그의 몸속에 쥐구멍이라도 생긴 것처럼 녀석들의 무리는 끊임없이 몰려나왔다.

그야말로 포식자의 군세.

찍찍!

사각사각!

끊임없이 들려오는 놈들의 울음소리와 조금씩 갈려가는 갑옷의 파괴음을 들으며 블레어는 정신을 잃었다.

?


***?????? ***


?

이드라 님이 관장하는 영역은 무엇입니까?”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살인귀의 은신처를 수색하는 동안, 나는 또 다른 숙제를 처리해야 했다.

권능.

사도의 진정한 힘.

이전에 살인귀와 싸웠을 때 녀석은 그렇게 말했다. 권능조차 쓸 수 없는 사도는 가짜에 불과하다고. 실제로 나는 녀석이 권능을 사용하자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패배하고 말았다.

그렇기에 미리 알아야만 한다.

설령 내가 완전한 사도가 되더라도, 녀석이 숨겨진 권능을 발휘했다가 손도 발도 쓰지 못한 채 패배할지 모른다. 물론 전투 중 자연스럽게 각성하게 될지도 모르지만, 오드리와 에스텔의 목숨을 걸고 그런 도박을 할 순 없다.


[무엇이라 여기느냐?]


내 질문에 이드라는 곧바로 대답하지 않고 의뭉스러운 태도를 취했다. 아무래도 그냥 그녀가 말해주는 것보다는 나 스스로 이해하는 것이 옳다고 여겼을 터.


불꽃입니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환염.

가계약 상태에서도 사용할 수 있었을뿐더러, 꿈에서 본 그녀 역시 걸치고 있던 걸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른 권능이다.


[후훗. 틀렸느니라.]


하지만 역시 쉬운 것은 아니었는지 그녀는 웃으며 내가 오답을 말했다고 지적했다.


[정답은 본녀의 다른 이름에 있느니라.]

다른 이름?’


꿈의 마녀.

이드라는 나를 처음 만난 순간 그렇게 자신을 소개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그 이름에 답이 있다는 것인데…….


“’입니까?”

[옳다.]


혹시나 해서 말한 것이건만 이번에는 긍정의 대답이 돌아왔다.

그런데 꿈이라고?


정신계? 하지만 그건 화염이랑 아무런 연결점이 없는데?’


지나치게 추상적인 개념.

왜곡이나 부패와는 달리, 이름만 들어서는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좀 더 자세히 알려주실 수 있습니까?”

[그대는 을 어떤 의미로 사용하느냐?]

잘 때 꾸는 거죠.”

[그게 전부였느냐?]


물론 아니다.

미래, 이상, 목표. 그것들은 모두 꿈이라는 단어 하나로 치환되곤 한다.


[꿈이란 현실을 덮어씌우는 것이니라. 물론 무에서 유를 만들 수는 없으나, 유를 더 큰 유로 발전시키는 것은 가능할 터.]


무언가를 더 발전된 상태로 덮어씌운다.

그 말을 들은 순간, 나는 이 능력을 어떻게 사용할지 감을 잡을 수 있었다.

그것이 내가 포식자 군세를 떠올린 배경이다.

찍직!

나는 수의 폭력을 동원해 박살 공간을 상쇄한 쥐 중 한 마리를 쓰다듬은 뒤, 그 힘을 거두었다. 그와 동시에 땅에 떨어진 한 방울의 붉은 물방울.

.

내가 살인귀와 싸우면서 수없이 흘린 것.

권능을 사용해서 내가 한 것은 지극히 간단했다.


[전부 로구나.]


핏방울 하나하나를 로 여기게 했을 뿐.

나는 사도다. 그렇기에 녀석들도 소량이나마 사도의 힘을 지니고 있다.

나는 둔갑술사다. 그렇기에 녀석들도 쥐 정도로는 변신할 수 있다.

그야말로 쥐의 형태를 한 사도의 군세.

개체 하나하나는 약할지 몰라도, 수가 충분하다면 살인귀처럼 직접 전투능력이 떨어지는 사도 하나쯤은 충분히 제압할 수 있다. 물론 녀석이 나에게서 계속 떨어져 있었다면 불가능했겠지만, 녀석이 나를 조롱하기 위해 뒤집어쓴 내 피는 녀석의 갑옷 틈새 곳곳에 스며든 지 오래.

그어어어.

살인귀가 쓰러진 것과 동시에 지상에 남아있던 이골로냑의 권능이 흩어진다.

녀석의 권능으로 뒤틀린 괴물들은 시체처럼 쓰러지더니 이윽고 재가 되어 거리를 뒤덮은 눈이 되었다.

이골로냑의 권능으로 모든 것을 먹어 치우던 부패의 진흙은, 여름철 길거리에 뿌려진 한 잔의 물처럼 순식간에 증발해 사라졌다.

!

그것을 확인한 이상 더는 군세를 유지할 필요는 없다.

내가 손가락을 튕기는 것과 동시에 살인귀를 뒤덮은 쥐의 군세는 순식간에 불꽃으로 돌아가 사라졌다.

그리고 그 자리에 있는 것은 그저 한 사람의 그림자.


…….”

[예상과는 전혀 다른 외모로구나.]


내가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다른 외모에 잠시 당황하긴 했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녀석을 바라보았다.


[죽일 것이냐?]

그래야만 하면요.”


지금 녀석을 처리하지 않는다면, 녀석은 사도의 힘으로 다시 범죄를 저지를 것이다. 비록 아직 살인을 저지를 각오는 되어있지 않지만, 녀석이 앞으로 일으킬 해악에 비하면 이 손을 더럽히는 것은 각오한 바이다.


[사도의 힘을 없애는 것만이라면 방법이 있노라.]


이런 내 각오와는 다르게 이드라는 손쉽게 다른 선택지를 제시해주었다.

지잉.

시야에 무언가를 덧씌운 것처럼, 갑자기 눈앞이 일변했다. 옅은 자색으로 물든 것이 마치 이드라의 불꽃이 세상을 뒤덮기라도 한 모양. 그 불꽃 속에서 살인귀의 팔목에 위치한 팔찌만큼은 썩은 고기처럼 검붉은 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신물인가?’


이골로냑의 신물. 그것은 상당히 기괴하게 생긴 팔찌였다. 이드라의 신물은 재질 불명이긴 했으나 그저 평범하게 생긴 초커에 불과했으나, 상대가 찬 팔찌는 그와는 전혀 달랐다. 아니 단순히 특이한 것 이전에,


저걸 팔찌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것은 팔찌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크고 두꺼웠다. 멋쟁이라고 자부하는 사람이 이런 걸 차고 다니면, 금방 손목이 망가져서 손으로 숟가락조차 들기 힘들 터. 그것만 봐도 특이한데, 내부는 더 가관이었다.

고문 도구.

팔찌에서 시작된 수많은 가시와 칼날이 살인귀의 팔목을 찌르고 있었다. 단순히 찌르고 연결된 것만은 아닌 것이, 아무래도 움직일 때마다 저것이 살을 찢어서 상처를 내는 구조이리라.


[이골로냑 녀석의 악취미는 유명하니라.]


악취미.

신에게 덧붙이기에는 상당히 불경한 단어일지도 모르겠지만, 확실히 그 이상 어울리는 말은 없으리라.


이걸 어떻게 해야 하죠?”

[그곳에 본녀의 힘을 흘려 보아라. 그 이후에는 본녀가 진행하리라.]


이드라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나는 이골로냑의 팔찌에 손을 올려 힘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마치 거부 반응이라도 보이는 것처럼 스파크가 튀었지만, 사도의 갑주를 뚫을 정도는 아니다.

그러길 잠시.


[정지. 기다리거라.]


비열하지만 동시에 위엄 있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골로냑.

살인귀와 계약한 옛 군주.

자신이 사도야행에서 탈락할 상황이란 걸 파악했는지 녀석은 상당히 다급한 목소리로 나를 불러 세웠다.


[요청. 거래를 원한다.]


거래?


[. 그대 같이 분별을 모르는 옛 군주가 무슨 자격으로 본녀의 사도를 유혹하느냐?]

[정숙. 그 꼰대 같은 입을 다물도록. 이건 본좌와 이 사내의 대화이니라.]

[?!]


꼰대라는 발언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이드라는 씩씩거렸지만, 이골로냑은 그녀의 말은 무시한 채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제공. 본좌는 그대에게 극도의 쾌락을 제공하마. 거기에 있는 계집들도 그대 마음대로 다룰 수 있을 터. 그 외에도 모든 것을 그대의 뜻대로 다룰 수 있을 것이니라.]

“…….”

[제안. 그러니 그 노파를 버리고 본좌와 계약하라. 그대는 실로 뛰어난 가능성을 지녔다.]

[놈의 제안을 듣지 말거라, 본녀의 사도여. 이 자는 믿을 수 없는 이일지니.]


혹시나 내가 그 유혹에 넘어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지 당황한 목소리를 내는 이드라. 이후 잠시간 두 신은 옥신각신 말싸움을 이어갔으나, 나는 조용히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잠시 뒤, 두 신 역시 이를 눈치챘는지 입을 다물고 내 대답을 기다렸고,


결정했습니다.”


나는 뒤늦게 입을 열었다.

Papillon

딱히 할 말은 없습니다.

4 댓글

마드리갈

2020-10-25 15:20:12

역시 무엇에 특출나다는 것은 달리 말하면 그것을 빼면 보잘없다는 의미가 되고, 별 특징이 없다는 것은 올라운더로서의 대응력이 좋다는 의미가 되기도 하네요.

평정심을 잃어버린 이골로냑의 사도 블레어는 그냥 허둥지둥할 뿐이고, 그러면서 드러나지 않은 약점까지 드러나 버렸어요. 게다가, 상대가 약하더라도 감당할 수 없는 다수라면 이건 이야기가 달라져요. 쥐들이 블레어의 갑주를 갉아먹어 무력화시키는 장면은 역시 통쾌해요.


이제 결단의 시간이 왔네요. 다른 선택지가 없는.

Papillon

2020-10-27 00:53:45

그래서 가면라이더를 비롯한 특촬 히어로물에서 기본폼은 주로 올라운더 스타일이지요. 특출난 것도 없지만 여러 곳에 대응할 수 있으니까요. 특수한 상황에는 대응하기 힘들지만요.

SiteOwner

2020-12-03 23:55:28

역시 냉정함을 잃고 격정에 사로잡히면 안되는 것이 분명해졌습니다.

강력한 무기인 거대한 팔을 제대로 못 쓰게 된 이상 신체밸런스도 엉망인데다 나머지 부분이 제대로 힘을 발휘해 줄 여지조차 이미 봉쇄되어 있으니 이골로냑의 사도에게 상황은 더욱 불리해질 것이 분명합니다.

이골로냑의 신물, 참으로 고약한 물건입니다. 저것만 봐도 이골로냑의 유혹을 뿌리칠 근거는 충분합니다.


결단의 시간이 왔군요. 제가 주인공 그레고르라도 어느 쪽인지는 이미 결심을 굳혔을 것입니다.

Papillon

2020-12-06 02:46:28

냉정을 지키는 건 중요하지요. 블레어가 사실 저 당시에 이성만 찾았어도 이길 방도가 있었겠지만, 본능적으로 싸우는 그에게는 아무래도 힘든 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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