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주제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이미 6년도 더 전에 쓴 기술에 무지한 글쓰기의 폐해 제하의 글에서 비판해 둔 것이 있습니다.
최소한 인용하는 사항만큼은 어느 정도 사전조사를 해야 하는 법이고, 그것이 제대로 되지 않은 글이 좋게 될 수도 없다는 것. 그리고 그 글에서는 대만의 문필가 임어당(林語堂, 1895-1976)의 수필이 정확한 측량 없이 대충대충 일하는 폐해를 중국인의 미덕 운운하면서 합리화하는 기술에의 무지가 비판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때에 지적했던 그 문제는 이제 국내에서 발생했고, 임어당의 자기합리화와는 반대로 타자를 비난하는 데에 기술에의 무지가 활용되고 있다는 것이 참으로 기묘합니다.
문제는 바로 이 기사.
[최원석의 디코드] 일본 최대 ‘국뽕 프로젝트’ 스페이스제트 사업의 종말 (2020년 10월 23일 조선일보)
일단 제목부터가 저열합니다.
"국뽕" 이라는 저속한 인터넷 속어를 무분별하게 쓴 제목에서부터 이 글이 제대로 되었다고 기대할 수 없습니다. 포럼의 제원칙 중 제목에 대한 것이 있고, 그 중에 게시물의 가치를 스스로 떨어뜨리지 않도록 어휘를 선정할 것이 있다 보니, 국내 제일의 언론사의 기사가 소규모 커뮤니티만큼의 언어기준이 세워지지 않았다는 것부터 실망스럽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내용으로.
사실, 미츠비시 스페이스제트(Mitsubishi SpaceJet)의 사업은 종말을 고한 것이 아닙니다.
예의 기사는 프로젝트가 실패로 종료되었다는 전제하에 작성되었습니다만, 어디까지나 동결이지 종료가 아니며, 종료로 확언될만한 정황도 제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즉 의미없는 이야기입니다.
비즈니스 인사이더의 10월 23일 기사에 공개된 미츠비시중공업의 입장(일본어)은 "개발을 동결한 사실이 없습니다(開発の凍結を決定した事実はありません)" 이며, 공식입장은 공지된대로 10월 30일에 "동결" 로 나왔습니다(지지통신, 일본어). 게다가 이것 말고도 항공기의 개발에 도중에 동결되었던 프로젝트가 부활하거나 다른 사업으로 이어진 경우도 없지 않으니까 단정은 그때가 되어도 늦지 않습니다.
또한, 일본의 항공산업이 YS-11 이후에 한동안 없었다가 스페이스제트로 재추진되는 것같은 뉘앙스로 쓰여진 기사는, 사실을 보면 전혀 정당화되지 않습니다. 당장 미츠비시중공업의 경우(미츠비시중공업 사이트, 일본어), 캐나다 봄바르디어(Bombardier Aerospace)의 글로벌 시리즈 비즈니스제트의 주익, 중앙익 및 중앙동체를 납품함은 물론 보잉 737 및 747의 내측플랩, 보잉 767의 후부동체 및 화물실 도어, 보잉 777의 후부동체, 보잉 787의 주익 등 여객기의 부품을 납품하고 있으며 특히 보잉 787의 경우 일본기업이 제조한 구성품은 35%에 달합니다. 이외에도 항공기엔진 분야에도 관여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만 봐도 일본의 항공산업이 스페이스제트 프로젝트를 무리하게 추진했다고 보기에는 난점이 많습니다.
리저널제트에 대한 정보도 업데이트가 안 되어 있습니다.
물론, 리저널제트 시장은 작고, 캐나다의 봄바르디어 및 브라질의 엠브라에르(EMBRAER)가 장악해 온 것도 사실입니다. 적어도 2019년까지는.
그런데 현재의 봄바르디어는 이미 리저널제트에서 손을 떼고, 기존의 CRJ 시리즈에 대해서는 생산 및 유지보수의 모든 권리를 일본의 미츠비시중공업에 매각하고 DHC-8 Q400 터보프롭 여객기사업을 드 하빌랜드 캐나다(De Havilland Canada)로 독립시켰습니다. 현재의 봄바르디어 에어로스페이스는 비즈니스제트 사업에 집중하고 있으니, 현 시점에서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습니다.
또한 엠브라에르는 미국의 보잉(Boeing)과의 여객기 사업부의 분사가 올해에 결렬되어 여객기 사업부를 여전히 유지하고 있습니다만, 여기도 들여다 보면 의외의 사실이 나옵니다. 엠브라에르의 리저널제트인 E170/175, E190/195는 일본의 카와사키중공업과 공동개발되어 분담생산중이어서 그렇습니다(카와사키중공업 사이트, 일본어).
그렇다 보니 봄바르디어도 엠브라에르도 여전히 일본기업과 협업중입니다. 이런 나라가 항공산업의 신장을 노린다고 해서 그게 문제의 "국뽕" 이라는 저열한 어휘로 폄하되어야 할까요?
조금 더 나아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엠브라에르는 브라질 최대의 기업입니다. 그리고 세계 유수의 항공산업 기업입니다.
브라질 따위가 무슨 비행기를 만들어 하는 사람들도 있겠습니다만, 사실 브라질의 항공산업 역사는 매우 장대합니다. 이미 1940년대 후반부터 항공산업에 관심을 가진 브라질 정부가 1969년에 발족한 국영기업 엠브라에르는 미국의 항공기 면허생산 및 자체항공기 개발에 주력하였고, 1994년에 민영화된 뒤로는 리저널제트는 물론 비즈니스제트 사업에도 진출하여 착실히 내실을 다져 왔습니다. 브라질의 항공산업은 바로 이렇게 세계를 호령하는 수준으로 성장했고, 특히 주력제품인 리저널제트 시리즈인 E-시리즈, 그에 기반한 대형 비즈니스제트인 리니지(Lineage), 중형 비즈니스제트인 레거시(Legacy), 소형 비즈니스제트인 페놈(Phenom) 시리즈 모두 2000년대에 데뷔한 것입니다. 즉 전통도 유구하면서 이렇게 최근에 들어서 세계 항공산업에서 두각을 보인 것입니다. 이런 브라질을 브라질 따위라고 비난할 수 없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위의 "국뽕" 운운하는 기사는 비난을 위한 비난의 저열한 형태밖에 못되는 것입니다.
저열한 어휘, 성급한 판단 및 부정확한 사실관계가 하나의 글 속에서 모두 나타난 이상, 이러한 글의 운명은 이미 정해진 거나 다름없을 것입니다.
올해 상반기에 기고한 세계 항공산업에 예상되는 거대 지각변동을 참조하셔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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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왕고래
2020-11-06 23:42:19
기사가 그냥 쓰기만 하면 그만인 것으로 바뀐 걸까요. 제대로 조사해서 똑바로 기사를 쓰면 이미 한참은 지난 뒤라서 그러는 걸까요.
회사에서도 일을 때 맞춰서 빨리 하려고 하다가 오히려 그르치고, 혼나는 일이 많죠. 기사 쓰는 일도 마찬가지일텐데...
아직 제가 이해하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나봐요. 아직 사회 초년생이라서 그런 걸까요?
SiteOwner
2020-11-07 20:44:40
오래전에 나왔던 말 중에 "반일상업주의" 라는 게 있는데, 그게 주된 원인이 아닌가 싶습니다. 게다가, 일본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 필요도 없고 알아봤자 이득도 안되니까 대충 해도 일본을 비난할 수만 있다면 상관없다는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이 여전히 유효하니까 좀처럼 고쳐지지도 않는 듯합니다. 20년 전의 국내사정과 현재의 북한사정이 묘하게 닮은 것 제하의 글을 쓴지 3년이 넘은 시점에서도 달라진 게 없습니다.
일을 빨리빨리 해치우면 다라고 생각하는 사고방식도 여전히 만연해 있습니다. 그러는 사람들이 속도를 칭송하다가도, 문제가 생기면 실무자에게 "그건 네 책임" 운운합니다. 대왕고래님이 사회초년생이라서 이해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사회의 악폐습이 잘못되어 있으니 불합리한 것이 노정될 따름입니다.
SiteOwner
2023-03-12 15:56:11
[2023년 3월 12일 추가]
미츠비시중공업이 주도한 리저널제트여객기 개발프로젝트인 스페이스제트(SpaceJet)가 공식종료되었습니다. 여기에 대해 미츠비시중공업의 대표이사인 이즈미사와 세이지(泉澤清次, 1957년생)는 해당 프로젝트의 종료 요인으로 기술, 제품, 고객 및 자금문제로 진단했습니다. 기술에서는 프로젝트 개시 때부터 시간이 많이 지나서 일부 기능이나 장비품이 최신의 기술에 비해 경쟁력이 낮고 지속가능한 항공연료(SAF)나 전동화 등에의 대응에 설계를 바꾸어야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제품에서는 해외 파트너에서 조달되는 상당수의 장비품이 코로나19 및 환율급변 등으로 예측이 어려워졌습니다. 고객에서는 코로나19에 의한 시장혼란이 가중되었는데다 조종사 부족의 영향도 커서 리저널제트의 앞날이 불투명해진 것이 있습니다. 자금에서는 일부기능 보정, 형식증명 등에 더욱 많은 자금 및 기간이 필요한 것을 알아서 사업성을 충분히 확인할 수 없었던 게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캐나다 봄바르디어의 여객기사업부를 인수하여 사업을 계속중인 CRJ 등도 있고 구축해 둔 각종 설비는 국내외 항공산업기업과의 연대, 차기전투기의 개발 및 항공기엔진을 필두로 한 민간항공기 방면의 사업에 계속 활용할 것입니다.
자세한 보도는 이하를 참조하시면 되겠습니다.
「SpaceJet」は機体完成も事業化に至らず、三菱重工が中止を正式決定
(스페이스제트는 기체완성도 사업화에 도달하지 않았다고 미츠비시증공업이 중지를 정식결정, 2023년 2월 8일 ITMedia MONOist, 일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