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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프터즈] Chapter 6: 소여 백작의 초대, Episode 24

Papillon, 2020-11-07 18:01:57

조회 수
151

로즈마리와 만난 다음 날.

에스텔과 함께 소여 백작의 저택을 찾은 내가 그 화려함에 놀라는 일 따위는 없었다. 이는 방문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다. 예정대로 나와 에스텔은 아침부터 마차를 타고 소여 가의 저택으로 향했고, 그리 오래지 않아 저택 대문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거기서 내가 본 것은, 도저히 귀족의 저택이라고 볼 수 없는 기묘하기 그지없는 건축물.

감옥 혹은 요새.

그것이 내가 소여 백작의 저택에 품은 첫 감상이었다.

우선 대문. 일반적으로 귀족 저택의 대문은 방범을 위해 내구성이 높으면서도 아름다운 소재로 제작한다. 하지만 소여 가의 저택은? 군부대에서나 쓸 법한 단단하고 투박한 소재로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주변에 바리케이드까지 준비해 둔 상황. 누가 봐도 삼엄한 경비시설이다.

이걸로 끝이 아니다. 장벽은 그저 내구성만을 생각해 단단한 회색 화강암을 쌓아 제조했고, 건물 외벽 역시 아무런 장식도 없는 석재. 복도에도 장식품의 흔적 따위는 보이지 않고, 심지어 어느 정도 재력이 있는 평민 가문에서도 당연히 하는 도배 역시 하질 않았다.

, 이 정도는 소여 가가 기사 가문이라는 걸 고려하면 그럴 수 있다고 여기겠는데……, 응접실의 모습을 본 순간 나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저기 여기가 응접실이 맞나요?”


당황한 내 모습에 로즈마리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묵묵히 고개를 끄덕일 뿐. 혹시나 그녀가 장난치는 게 아닐까 에스텔의 표정을 살폈건만, 마찬가지로 변화가 없는 게 거짓은 아닌 모양이다.


정말 여기가 응접실이라고?’


취조실이 아니라?

창문이 없는 거야 저격을 막기 위해 어쩔 수 없다고 치겠다. 하지만 대체 왜 제대로 된 조명을 갖추질 않은 것일까? 그나마 있는 조명이라고는 테이블 위에서 빛을 내는 작은 촛불뿐이라, 영지 병사들이 범인을 취조하기 위해 사용하는 방이라고 해도 어색함이 없을 정도다. 여기에 더해 테이블과 의자 역시 불편하기 그지없는 철재라,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등 허리에 차가운 감촉이 돌아 불쾌하기 그지없을 정도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기다리는 동안 마시라고 내놓은 차 정도인데, 정작 같이 나온 다과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기묘한 건식. 먹는 순간 전신에 있는 수분을 한계까지 빨아먹는 이 기묘한 다과는 퍽퍽하기 그지없어서 대체 무슨 맛인지 알 수 없을 정도다.


이래서 에스텔이 음식에 집착했던 거구나.’


이런 곳에서 살면 수도사가 아닌 한 오래지 않아 미쳐버릴 것이다.


마음 같아서는 빨리 나가고 싶은데……,’


처지를 생각하면 내가 아쉬운 입장이니 아무래도 그럴 순 없겠지.

그저 가능한 한 빨리 이 상황이 지나가길 바라며 나는 묵묵히 차를 들이켰다.

그로부터 10분 후. 하늘이 내 소원을 들어주었는지 다행히도 이 기다림은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끝을 고했다.

금속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방문이 열리며 눈앞에 처음 보는 중년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제드 소여, 또는 소여 백작.

에스텔과 같은 검은 머리칼을 짧게 기르고, 운동으로 다져진 근육질 몸매를 고풍스러운 기사단 제복으로 감싼 카다스 4대 귀족의 일좌.

문을 열고 들어온 사내는 아무런 말도 없이 묵묵히 한 사람을 응시했다. 그 사내의 눈길의 끝에 있는 것은 내가 아닌 나와 함께 이 방에 들어온 여성.

에스텔.

소여 백작의 눈은 그녀에게서 떨어질 생각을 몰랐다.


오랜만에 딸을 만나서 그런가?’


당장 그와 대화하고 싶은 나로서는 조금 아쉬운 상황이지만, 그렇다고 부녀의 감동적인 재회를 방해할 만큼 눈치가 없지는 않다.


혹시 에스텔도 반가워하려나?’


아버지와 오랜만에 만나서 감격하는 에스텔이라……. 솔직히 상상되질 않는데.

궁금증이 도진 나는 에스텔을 흘겨보았지만, 어째서인지 에스텔에게서 반가운 기색은 전혀 보이질 않았다. 오히려 굳이 따지자면,


공포?’


그렇게 내가 의아해하는 순간,


늦었구나, 머저리 년.”


중후한 목소리로 내가 상상도 못 한 말이 튀어나왔다.

?


***?????? ***

?


역시 이렇게 되었나…….’


자신을 향해 돌아오는 매도에 에스텔은 속으로 쓴웃음을 흘렸다.

소여 백작. 그녀의 생물학적인 아버지.

그는 한 번도 에스텔을 살갑게 대해주질 않았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그는 에스텔을 포함해 자신의 자식 중 그 누구에게도 애정을 보이질 않았다.

모든 것은 가주를 위한 도구.

모두는 가주에게 복종하는 병사.

그것이 소여 가의 규율.

그랬기에 알고 있었다. 그가 실패한 자신을 따스하게 감싸주지 않으리라는 것 정도는 사무칠 정도로 깊게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무뎌진 건가…….’


그레고르와 함께 지낸 짧은 시간이 지나치게 편했던 모양이다. 죽을 위기도 몇 번 있었건만, 그는 자신을 언제나 존중해주며 살갑게 대해주었고, 그녀는 집에 있을 때보다 편안한 나날을 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런 삶은 끝이다.


죄송합니다, 가주님.”


에스텔은 사죄의 뜻을 담아, 차가운 돌바닥에 무릎 꿇었다.

자신은 실패자.

가주에게 처벌을 받는 운명만이 남아있을 뿐.

어쩌면 당장 목을 칠지도 모르고, 아니면 노예로 삼아 전장에 팔아버릴 수도 있다. 아니면 지금 당장 군화를 신은 저 발로 수없이 구타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받아들여야 한다.

자신은 소여의 기사니까.

에스텔은 눈을 감고 처분을 기다렸다.


최소한 배운 건 있는 모양이군.”


그런 에스텔의 태도가 마음에 들었는지, 소여 백작은 천천히 에스텔에게 다가왔다.

뚜벅뚜벅.

차가운 돌바닥 위에서 울리는 발소리. 그것이 점점 다가올 때마다 에스텔의 심장은 터질 듯이 방망이질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그 걸음이 언젠가부터 좁아져 오질 않았다.


왜지?’


가주가 자비를 보인다?

그럴 가능성은 한없이 영에 수렴했다. 적어도 그녀가 아는 한 소여 백작은 자신이 처벌하기로 한 이에게 자비를 보여준 적이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고개를 들고 상황을 알아보고 싶지만, 그녀의 몸에 각인된 명령은 이를 철저히 거부했다.

하나 다행히도, 그녀의 궁금증은 다른 이의 목소리로 금방 해결되었다.


그만하시죠.”


그레고르.

자신과 함께 온 동반자가 백작의 앞을 막고 있었다.


비키게.”


그런 그에게 백작은 살기를 실은 목소리로 비킬 것은 명했지만, 그레고르의 몸은 비킬 기색이 없었다. 하긴, 이골로냑의 사도라는 희대의 살인귀와 목숨 걸고 싸운 그에게 이제와서 인간에 불과한 백작의 살기가 통할 리는 없겠지.


아뇨, 저는 비킬 생각이 없습니다.”


그레고르의 목소리에 살기는 담겨 있지 않았지만, 놀라울 정도로 차갑게 느껴졌다.


에스텔은 제 동료. 그런 사람을 해하려는 이에게 양보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그레고르의 뒷모습은 어째서인지 에스텔에게는 너무나도 눈부시게 느껴졌다.

?


***?????? ***

?


동료라…….”

하찮은 말이로군.’


소여 백작은 자신을 막아선 사내의 말에 고소를 자아냈다.


그레고르라고 했던가?’


이드라의 사도로 선택된 평민 사내.

듣기로는 야심도 없고 배짱도 없다고 들었거늘, 아무래도 후자는 잘못된 정보였던 모양이다.


정보 담당자를 문책해야겠군.’


자신에게 잘못된 정보를 전한 담당자를 문책할 생각을 떠올리며 소여 백작은 그레고르를 노려보았다.


그대는 내 봉신이 되겠다고 들었는데?”

그랬었죠. 그에 대해 논하고자 왔습니다만,”


흘끗 시선을 돌려 에스텔을 훑어본 그레고르는 이내 차가운 눈으로 백작을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이것 먼저 해결해야 할 것 같군요.”

.”

마음에 안 드는군.’


배짱이 있다는 것은 마음에 들지만, 그것은 항시 적을 향해야만 했다. 가주를 향해 봉신이 보여야 할 것은 절대복종. 본래라면 이런 식으로 반항하는 이는 단번에 목을 쳐야 하건만,


사도를 그런 식으로 처리할 수는 없지.’


지금은 사도야행 기간.

이미 대책을 수립했다고 하더라도, 굴러들어온 사도를 쳐내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그렇다면 이 실패자의 처분은 나중에 하도록 하지.”


그 말을 끝으로 소여 백작은 자신의 자리에 앉아 상대방의 대응을 기다렸다.


“……그러죠.”


무언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것 같았지만, 그레고르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굳이 말다툼을 이어가려고 하진 않았다.


에스텔도 자리에 앉으세요.”


물론 소여 백작에게 사죄하던 에스텔을 방치하지도 않았지만.

잠시 고민하던 에스텔은 결국 자리에서 쭈뼛쭈뼛 일어났지만, 소여 백작은 거기에 눈길조차 두지 않았다.

저 문제는 다음에 처리하기로 한 이상 굳이 거기에 신경 쓰지 않았다.

그것이 가문을 이끌어오던 그의 자세였기에.


우선 차부터 들지.”


상대방이 자리에 앉은 것을 확인한 소여 백작은 조용히 자신의 앞에 놓인 차를 들이켰다. 이미 식어서 딱히 맛이 있지는 않았으나, 어차피 그에게 차는 두뇌 회전을 돕는 약품에 불과한 이상 그리 중요한 일은 아니다. 상대 역시 그런 그를 따라 차를 마셨지만,


로즈마리는 어떤가?”


소여 백작이 말을 하자 사레라도 들렸는지 캑캑거리며 찻잔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무슨 말씀이신지?”

로즈마리에게 들었을 텐데?”


백작의 눈길에 로즈마리를 향하자 그녀는 고개를 끄덕여 자신이 확실히 말을 전했음을 말했다. 하지만 그런 사실과는 관계없이 여전히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갸우뚱거리는 상대.


머리는 나쁜 모양이군.’


그의 안에서 그레고르의 평가가 다시 한번 빠르게 하락했다.


나는 핏줄 외에는 수하로 들이지 않는다. 그리고 로즈마리는 방계이긴 하지만 우리 가문의 혈연이지.”


그 말에 경악한 표정을 짓는 것을 보니 상대 역시 이제야 그의 말을 이해한 모양이다.


에스텔의 유모이기도 하지만 그대와 나이 차도 크게 나진 않을 텐데?”

그야 그렇습니다만……저랑 로즈마리 씨는 어제 처음 만났습니다.”

그게 무슨 상관이지?”

?”

애초에 결혼은 필요해서 하는 것뿐일 텐데?”


귀족 가에서 결혼이란 그저 사회적 계약일뿐. 애정 따위는 그저 무가치한 감정놀음일 뿐이다. 그런 만큼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사항 따위는 소여 백작에게 아무런 문제가 없는 사항이었다.


, 굳이 결혼까지 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그러면 무엇으로 그대의 충성을 확인하지?”

그 충성 맹세라든가, 계약서라든가…….”

난 그따위 건 믿지 않네.”


맹세는 단순한 글귀. 계약서란 무가치한 종이 쪼가리. 백작은 그런 소소한 것을 믿지 않았다.

그가 믿는 것은 오직 둘 뿐.

하나는 핏줄, 그리고 다른 하나는 힘. 이 둘 중 후자는 지금 선택할 수 없다. 적어도 필멸자 중에서 사도를 힘으로 제압할 수 있는 존재 따위는 없을 테니까.


그냥 동료로는 안 되겠습니까?”

동료?”

, 에스텔이랑은 잘 지내왔습니,”

과연 그런 건가…….”


에스텔.

상대방의 말할 때마다 거론되는 이름이자 자신의 딸.

그 이름을 듣고 소여 백작은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상대는 지금 자신의 딸에게 호의를 느끼고 있을 터. 그가 자신에게 대항하는 것도, 자신이 그녀를 벌하려는 것을 막는 것도 전부 그 호의에서 나온 것 일터다.


머저리로군, 저 남자도.’


그의 머릿속에서 그레고르에 대한 평가가 더할 나위 없이 떨어져 내렸다.

호의.

그 감정에 따라 움직이는 이를 누구보다도 혐오하는 백작으로서는 그럴 수밖에 없을 터.

거기에,


감히 평민 주제에 본가의 직계를 탐하다니.’


그레고르가 들으면 펄쩍 뛰면서 부정할 만한 내용을 떠올리면서, 소여 백작은 속이 이글이글 타올랐다. 그 분노가 향하는 것은 주제를 모르는 이 평민 출신 사도와, 임무에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쓸데없는 추문까지 만들어낸 자신의 딸.


‘’에게는 사과해야겠군.’

미안하지만 그대를 내 딸과 이어질 수는 없겠군.”

아뇨, 에스텔과는 그런 관계가 아니,”

인제 와서 부정할 필요는 없네. 그렇다고 말을 뒤집지도 못하겠지만.”

진짜로 아닌데…….”


상대의 태도는 상관하지 않는 듯, 소여 백작은 자신의 말을 이어갔다.


미안하게도 내 딸에게는 다음 임무가 내정되어서 말일세.”

다음 임무라니 어떤……?”

기사의 임무는 아니라네.”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응접실의 문이 열리며 새로운 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모습을 드러낸 것은 백작 이상의 근육질을 한 젊은 남성. 그 사내, 자신이 사도야행을 위해 구한 새로운 대책을 바라보며 백작은 미소 지었다.


혼약이지.”


에스텔과 그레고르가 경악할 말을 이어가면서.

?

Papillon

딱히 할 말은 없습니다.

4 댓글

마드리갈

2020-11-08 20:24:40

소여 백작의 저택은 정말 너무할 정도군요...

왕족, 귀족의 주거공간으로 사용되는 성을 독일어로 슐로스(Schloss)라고 하죠. 원래의 의미는 "닫힌 것" 인데, 그 의미에 가장 충실한 시설일까요. 현대로 치자면 적국의 핵공격에 대비하는 벙커가 이 저택과 거의 같을 것 같아요.

게다가, 소여 백작의 딸 에스텔에 대한 태도는 정말 인간이 맞나 싶을 정도로 싫네요. 개를 기르며 살았던 유년기의 나날은 더없이 소중했고 비록 동물이라도 마음이 통하는 것을 느껴서 지금도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을만큼 좋았는데...


소여 백작은 공포로 수하의 사람을 통제할 수는 있겠죠.

그러나 수하의 사람이 진정으로 따르는 것은 아닐 거예요. 그리고 그 결말이 행복할 리가 없겠죠.

Papillon

2020-11-09 00:22:33

사실 소여 백작도 공포만 사용하진 않습니다. 그 다른 도구가 질이 더 나빠서 문제지만요. 자세한 건 추후에 밝혀질 것입니다.

SiteOwner

2020-12-16 19:36:16

이런, 미적감각이라고는 아예 처음부터 포기해 버린 건물이군요, 소여 백작의 저택은.

순간, 볼보(VOLVO) 승용차의 국내광고에 쓰였던 문구인 스칸디나비안 럭셔리(Scandinavian Luxury)가 연상되었는데, 그 어이없는 문구가 차라리 양반이다 싶을 정도인 듯합니다. 볼보뿐만 아니라 가구로 유명한 스웨덴 기업인 이케아(IKEA) 또한 미니멀리즘이 두드러지는데, 이것 또한 소여 백작의 저택에 비하면 엄청나게 화려한 건가 싶습니다.


그건 그렇다고 치더라도, 소여 백작은 지위만 귀족이지 인성은 결코 고결한 것은 아닌 게 분명하군요.

딸에게 "머저리 년" 이라는 비칭을 쓴다든지 하는 데에서 이미 결론이 나 있습니다. 설령 딸 에스텔이 그렇게 자질이 모자란다 하더라도 결국 누구의 딸도 아니고 자신의 딸이기에 딸에의 욕설은 곧 자기 자신을 향한 것.

Papillon

2020-12-20 03:46:51

소여 백작 역시 사실 저렇게 된 이유가 있기는 합니다. 사실 전대 소여 백작은 검소하고 실용주의적인 인물이긴 하지만, 인격자였거든요. 왜 이리 되었는지는 자세히 밝혀지진 않을 겁니다. 단지 힌트는 중간에 나올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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