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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스타 단지에서의 도깨비불 소동이 끝난 다음 날, 5월 30일 토요일 오전 11시 30분. 오늘도 여느 주말과 다름없는, 놀러 나온 사람들로 번화가 거리와 명소, 여행지 등이 붐비는 활기찬 주말이다. RZ타워 중간부 250층에 있는 전망대 ‘스카이 아이즈’도 그렇다. 같은 RZ타워 최상부 420층에 있는 ‘셀레스티얼 세라토’와 함께 매일 사람들이 많은 곳이기는 하지만, 주말이면 두 곳 모두 평일의 2배, 많게는 3배 이상 붐비는 대표적인 명소다.
전망대 남측은 바로 앞에 보이는 주택가와 빌라, 공원 말고는 바다가 바로 보인다. 목이 좋은 곳은 벌써부터 사람들이 꽉꽉 메운 것도 모자라 줄을 서야 할 정도다. 운 좋게도, 현애와 조제, 외제니, 니라차 일행은 오래 기다리지 않고도 좋은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이야- 역시 구름에 안 가리고 탁 트이니까 보기 좋네.”
현애는 눈 앞에 펼쳐진 풍경을 보고 함박웃음을 짓는다. 전망대에 처음 놀러 온 어린아이가 짓는 것과 같은 함박웃음이다.
“그런데 너...”
옆에서 외제니와 함께 구경하던 조제가 묻는다.
“동면하기 전에는 이런 거 없었어?”
“‘이런 게 없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마치 전망대를 처음 보는 것같이 그러니까.”
“무슨 소리야! 내가 살던 데에도 이런 전망대는 많았어.”
“그... 그래?”
현애는 강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조제가 당황했는지 얼른 얼굴을 붉힌다.
“미... 미안! 먼 옛날이라서 잘 몰라서 그랬지.”
“조금 부연해 설명하자면, 어렸을 때 전망대는 많이 갔지. 그런 데서 식사도 많이 했고. 하지만 이 정도로 바다가 잘 보이는 높은 전망대에는 가 본 적은 없어.”
“어... 그렇구나.”
조제와 외제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정면으로 고개를 돌리고 다시 전망을 감상한다.
그렇게 한 1분 정도 지났을 때.
“어? 거기 있었네요, 선배님?”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살짝 돌아보니...
선글라스를 머리에 걸치고 셔츠를 입은 중학생이 손을 흔들며 인사한다. 얼굴을 보니 다름아닌 하야토다. 옆에도 익숙한 얼굴들이다. 전과 똑같이 빨간 야상 재킷을 입고 꽁지머리를 묶은 민, 똑같이 초록색 옷이지만 뭔가 완전히 다른 느낌의 옷을 입은 유, 그리고 해골이 그려진 파란 티셔츠를 입고, 무엇보다도 월요일보다는 훨씬 밝아진 얼굴을 한 료까지. 한 명 또는 두 명씩 본 적은 종종 있는데, 셋을 이렇게 한 번에 다 보는 건 월요일 이후 처음이다.
“현애 누나, 안녕!”
민이 손을 흔들며 장난스럽게 웃는다.
“어, 그래. 잘 지냈어?”
“에이, 그런 걸 다 묻고 그래.”
옆에 있는 조제, 외제니, 니라차도 손을 흔들어 한 번씩 인사한다.
“너희 그런데 전망대는 왜 왔어?”
“우리도 놀러 왔지.”
유가 어색하게 웃는 료의 어깨를 감싸며 말한다.
“우리 료 구경도 좀 시켜 줄 겸해서.”
살짝 보니, 료는 이제 시선을 피하거나 하지도 않고, 모르는 사람과 마주쳐도 시선을 피하려 하지도 않는다. 확실히 조금은 나아진 것 같다.
“그런데 말이지.”
“왜요, 선배님?”
“전망대까지 올라오는 데 시간 좀 많이 걸리거나 하지 않았어? 저렇게 사람들이 많은데.”
“에이, 선배님, 무슨 소리 하시는 거예요? RZ타워는 저희 RZ그룹 소유라고요. 별도의 엘리베이터가 다 있어요.”
“아, 그렇지, 참. 그런데 너희, 어디로 온 거야?”
“저기 보세요.”
하야토가 손가락으로 엘리베이터 옆의 화장실 쪽을 가리킨다.
“저기 뭐가 있어? 화장실밖에 안 보이는데?”
“저기 화장실 가는 통로 안에 숨겨진 엘리베이터가 있다고요. 그 엘리베이터가 저희 집하고 바로 이어주거든요? 거기로 올라가면 돼요.”
“아까 화장실 갔다 왔을 때는 그런 거 안 보이던데.”
“그러니까 숨겨진 엘리베이터죠. 겉으로 볼 때는 그냥 ‘자재창고’라고만 쓰여 있을걸요.”
♩♪♬♩♪♬♩♪♬
그때, 현애의 전화가 울린다. 보니까 마르코의 전화번호다. 받는다.
“여보세요?”
“마르코? 왜 전화했어?”
“지금 어디 있어? 꽤 괜찮은 데 있는 것 같은데.”
더 말해 주지 않아도, 단박에 알 것 같다. 이 목소리, 제법 밝은 목소리의 의미를!
“너, 보고 있지?”
“당연하지.”
마르코의 목소리는 여유롭다.
“이미 다 왔는걸!”
동시에 엘리베이터 문이 열린다. 현애, 조제, 외제니의 바로 뒤쪽. 엘리베이터 안에 있는 사람들의 맨 앞에, 카메라를 어깨에 건 땅딸막한 키의 고등학교 남학생이 서 있다. 그 남학생을 보자마자, 조제와 외제니가 바로 손을 흔든다.
“안녕하세요, 오빠!”
“오랜만이에요!”
조제와 외제니를 아는지, 엘리베이터에서 막 나오는 마르코는 흐뭇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 준다. 마르코가 손을 흔들다가, 현애와 눈이 마주친다.
“야! 현애 너! 다시 앞쪽 봐! 나를 보면 어떡해!”
“아니, 내가 왜...”
거기까지 말하려다가, 문득 어제의 일이 떠오른다.
“설마, 또 내 눈으로 보고 있었냐!”
“그렇게 된 거지, 뭐.”
마르코는 태연히 말한다.
“여러 사람들의 눈을 빌려서 보고 있으면 전망대 안에서 보이는 모든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거든!”
“아니, 뭐라고? 여러 사람의 눈을 빌리다니?”
“말 그대로야. 여기 전망대에 선 수많은 사람들이 내게 바깥 풍경을 생생히 중계해 주고 있다고!”
“참 잘 하는 짓이다.”
현애가 빈정댄다.
“정신없지 않냐? 그렇게 많은 걸 동시에 보고 있자면 말이야.”
“아니, 전혀.”
마르코의 말투는 오히려 태연하다. 아니, 오히려 그 자신감에 가득 찬 태도는 주변 사람들을 압도할 듯하다.
“왜 알지. 다큐멘터리 보면 있잖아, 그 협곡을 한눈에 보여 주는 파노라마 보는 거 같다니까? 너도 나 같은 초능력이 있었으면, 아마 해 봤을걸?”
“아니, 그럴 생각은 없거든.”
현애는 딱 잘라 말한다.
“그런데 평소에는 네 능력으로 주로 뭐 보는데?”
“아, 볼 게 참 많지. 땅바닥에 돌아다니는 곤충의 눈으로 지하를 볼 때도 있고, 강에 돌아다니는 조그만 물고기가 천적에게 잡아먹힐 때까지 물속을 본 적도 있어. 그리고...”
거기서 말이 끊긴다.
마치 연설 영상이 갑자기 끊어진 것과도 같이.
마르코가 화장실 쪽을 휙 돌아본다.
잠깐 동안, 마르코의 주위 공기가 확 차가워진다. 마치 몇 초도 안 되는 사이에 겨울이 찾아온 것처럼 말이다. 온도가 내려간 걸 빼놓고서라도, 마르코가 순간 말을 끊자 주위 분위기가 갑자기 묘하게 변했다.
“아니, 왜...”
곧바로 들려오는 현애의 날카로운 목소리.
“이 자식! 도대체 화장실에서 뭘 보는 거야!”
마르코의 몸이 기우뚱한다. 다음 순간, 현애의 손에 마르코의 멱살이 잡혀 있고, 마르코의 얼굴을 둘러싼 공기는 영하 30도는 되는 것 같다!
“대체 뭘 보길래 그렇게 얼굴이 빨개졌어, 응?”
“아니, 야, 그게 아니라니까!”
“아니면 뭔데?”
“그... 그게...”
“말 안 해?”
“어떤 녀석이 남자 화장실 세면대 밑의 쓰레기통에 폭탄을 넣고 갔다고!”
“아, 아니, 폭탄?”
‘폭탄’이라는 말을 듣자, 현애의 머릿속에 짚이는 게 있다. 전에 진언한테 들었고, 세훈과 주리도 수시로 이야기했고, 무엇보다도 몇 주 전에 미린 시사이드 센터 근처에서 목격했던...
“그 녀석이잖아!”
“아니, ‘그 녀석’이라니?”
멱살 잡힌 걸 겨우 풀린 마르코가 머리를 긁으며 어안이 벙벙한 채로 묻는다.
“그 녀석이 누군데?”
“어... 선배님. 앞으로 기자 할 거라면서 그런 뉴스도 안 봤어요?”
외제니가 AI폰의 홀로그램을 보여 주며 말한다.
“세상 돌아가는 거에 관심 없는 저도 아는 건데.”
“아니, 내가 기자 하려는 건 어떻게 알았어?”
“선배님네 학교 사이트 들어가 보면 기자 이름에 선배님 딱 뜨는데요.”
“아... 그랬냐?”
“잠깐만요.”
이번에는 조제가 입을 연다.
“그러면 그 폭탄 넣은 녀석은 어디 갔는데요?”
“잽싸게 사라지더라. 내가 어떻게 손쓸 새도 없이 엘리베이터로 가 버리더라고.”
“그걸 잡았어야죠!”
“아니, 내가 알아채는 순간 엘리베이터 타고 내려가 버린 걸 어떡하냐.”
잠시 후, 남자화장실 세면대 앞. 화장실 입구는 ‘청소중’ 표지판을 세워 놓았다.
“여기 쓰레기통에 있다는 거지?”
조제가 침을 삼키고 말한다. 옆에 있는 하야토는 수시로 씩씩거리며 말한다.
“하... 어떤 녀석인지는 몰라도 참 가지가지 하네. 사람 많은 빌딩인데, 이런 데서 폭탄을 터뜨리면 어쩌자는 거야? 하...”
“잠깐! 형들 뭐 하고 있어! 그 전에 폭탄을 어떻게 해야 할 거 아니야!”
“어, 맞다, 민아! 아니, 너희들!”
조제가 민을 돌아보며 다급하게 말한다.
“무슨 좋은 방법이라도...”
“벌써 하고 있지.”
민이 가리킨 곳을 조제가 보니, 유의 왼손에서 뻗어 나온 전류가 쓰레기통을 휘감고 있다.
그리고 잠시 후.
“내가 고장은 냈는데, 이거 좀 위험해.”
“그럼 어떡해? 꺼내야 하는데. 내가 꺼내면 되지 않을까?”
조제가 막 오른손을 분리하려는데...
“그럴 필요 없어, 조제 형. 손으로 들면 안 되고, 이렇게 해야지.”
검은 테이프로 꽁꽁 싼 폭탄이 쓰레기통 위에 둥둥 떠 있다.
“민이 너, 제법인데.”
“에이, 이 정도 가지고 뭐.”
“잠깐.”
둥둥 떠 있는 폭탄을 보던 하야토가 말한다.
“그거 떠다니는 거 보면 사람들이 더 주목하거나 그러지 않을까?”
“아, 그, 그거! 여기, 여기 넣으면 될 것 같아.”
어느새 료의 옆에 보라색의 구체가 만들어졌다. 민이 그 폭탄을 움직여 구체에 넣고, 그 구체가 모습을 감추자...
“후-”
다섯 명 모두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수고했어, 모두.”
조제가 벌게진 이마에서 흐르는 땀을 닦으며 말한다.
“에이, 선배님. 저는 뭘 한 것도 없는데요.”
“무슨 소리야, 하야토, 너도 수고했고. 특히 민이하고, 유, 료. 너희 없었으면 큰일 날 뻔했어. 정말.”
“하... 하하하...”
“뭐, 이런 걸 가지고 다.”
잠시 후 전망대.
“응? 다들 나오네.”
외제니가 화장실 쪽에서 나오는 일행을 가리키며 말한다. 현애, 니라차, 마르코도 돌아본다.
“어, 뭐야. 다들 웃는 얼굴이네?”
현애가 일행의 얼굴을 한번 훑어보더니 말한다.
“그래서 폭탄은 어떻게 됐어?”
조제는 대답하는 대신 오른손 엄지손가락을 들고 웃는다.
“아, 알겠어. 이따가 좀 보여 줘. 여기서는 보여 주지 말고.”
한편 미린역 사거리. 모자를 덮어쓴 한 사람이 횡단보도를 건너며 누군가와 통화하고 있다.
“...네, 네. 이번에는 실패했습니다.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번에는 불발했습니다. 정말, 정말 죄송합니다.”
“아, 그런가. 일단은 다음 목표를 찾아라. 만약에 잡힐 위기에 놓이면 내게 연락해라.”
“명심하겠습니다.”
모자를 덮어쓴 사람은 전화를 끊고, 인파에 섞여 사라진다.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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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댓글
마드리갈
2020-11-18 13:05:56
여기저기서 고층건물을 많이 봐 왔고 방문도 해봤지만, 작중의 RZ타워같이 420m도 아니고 420층이라면...
도쿄 여행 때 봤던 도쿄스카이트리만 해도 이 세상 건축물이 아닌 것 같았어요. 아사쿠사에서 본 그 도쿄스카이트리의 높이는 634m, 그런데 마치 우주공간에 세워진듯한 착각도 일었는데 RZ타워의 위용에 놀라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할 거예요.
역시 그렇죠. 비밀통로라든지 전용 엘리베이터같은 그런 게 있어야 업무수행 및 보안유지에 절대적으로 필요할 거니까요. 이런 점도 꼼꼼하게 설정되어 있는 게 좋아요.
고층 건축물은 역시 화재, 폭발 등에 특히 조심해야 하죠.
이미 9.11 테러같은 끔찍한 실제사례도 있었으니. 목적이 무엇이든간에 전혀 용납할 수 없어요.
시어하트어택
2020-11-19 07:36:39
저도 이리저리 상상을 많이 해 가며 전망대의 모습을 그려 봤습니다. 2년 전에 롯데월드타워의 서울스카이를 다녀온 것도 떠올려 봤고요.
고층 건물에서 저런 사고가 일어나면 그 피해는 상상 이상일 겁니다. 작중에서는 저렇게 끝났지만 정말 아찔한 일이죠.
SiteOwner
2020-12-29 19:08:29
정말 큰일날뻔 했군요. 미연에 막을 수 있어서 천만다행입니다.
군생활 때의 경험 몇 가지가 같이 생각납니다.
미군의 비상 중에는 Bomb Threat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막사에 폭탄이 설치되어 있다는 가정하에 발령되는 비상으로, 당시의 군부대에서는 그 비상이 발령되면 지체없이 비행장에 모여야 했습니다. 그리고 인원확인.
또한, 반미세력의 미군부대 점거나 기타 수상한 자들의 사보타지에 대한 신속대응훈련. 훈련이라는 것을 알고 임한 것이었지만, 부대 내의 클럽에서 최루탄을 폭발시켜서 일시적으로 혼란한 상황이 연출된다든지 등등, 그때의 충격은 아직도 잊을 수 없습니다. 그때 다치기도 했다 보니...그나마 저는 다행이었습니다. 다른 중대에서는 인명사고, 장비도난 등의 사태가 일어나서 대소동이 벌어지고 그랬습니다.
시어하트어택
2020-12-29 23:18:08
사실 작품 전개상 꼭 한번은 저것 관련 에피소드가 나와야 했는데, 심각성과 '무사히 넘김' 이 두 가지를 동시에 만족하는 장소를 찾다 보니 마천루 전망대가 선정되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