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란 쓰다 보면 언젠가는 고장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제대로 작동되지 않거나 멈추거나 하는 일도 있고, 그 자체를 나무라서는 안될 것입니다. 오늘 조선일보에 보도된 최신예 잠수함 214급의 기능고장도 그래서 일단 큰 틀에서는 이해하고 있습니다.
기사는 아래의 바로가기에 있습니다.
[단독] 4500억짜리 최신예 잠수함, 동해상에서 기능고장으로 예인 (2021년 1월 23일 조선일보)
사실 아무리 설계단계에서는 완벽하더라도 시운전이나 취역 이후에는 문제가 불거져 나올 수 있습니다. 자동차같은 일반소비자도 널리 쓰는 기계도 완전 재설계의 신모델이 나오면 1, 2년차의 품질은 그다지 미덥지 못하다 보니 각종 불만이 터져나오기 마련이고 그런 문제점 해결이 반영되어 나오는 3년차 이후부터가 품질이 안정화되기 마련입니다. 생산량이 적은 항공기나 선박 같은 것은 그 문제가 더욱 두드러질 가능성이 크다 보니, 보통 특정 함급의 1번함은 시험함으로서의 성격도 강하다고까지 불립니다.
그런데 정작 씁쓸하게 느껴지는 것은 다른 곳에 있습니다.
독일 HDW의 214급 잠수함은 국내에서는 손원일급이라는 함급으로 명명되어 9척이 건조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두 부분이 마음에 걸립니다.
독일 설계사에서 제시한 것보다 낮은 강도의 볼트 사용, 독일제 프로펠러에 없는 문제가 국산 프로펠러에서 나타난 것의 이 2가지.
낮은 강도의 볼트 사용은 대체 왜 이랬어야 하는 것인지. 아직 우리나라의 소재부품기술수준이 독일보다 낮은 분야도 꽤 많다 보니 백번 양보하여 그것까지는 이해한다 치더라도, 왜 설계사의 제시기준을 무시하고 저강도의 볼트를 채택한 것인지. 이것만큼은 이해할 생각 자체가 없습니다. 설계대로 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문제가 일어났다는 게 참으로 속이 쓰립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독일을 칭송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여러모로 모범적인 부분이 많아서겠지요.
그런데 칭송하는만큼 실천하는 건 정녕 안되는 것일지. 말 따로 행동 따로가 큰 일을 내기 전에 달라져야 할 것 같은데, 현실은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2018년 10월에 썼던 글인 "당신은 아이의 안전을 단속 시간에만 지키나요?"의 제목이 된, 베를린의 택시운전수가 한 간결하고도 힘있는 그 발언이 다시금 떠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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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왕고래
2021-01-23 20:45:32
원가 절감한다고 싼 부품을 쓴 걸까요. 원가절감하려다가 투자된 금액 전부 날리게 생긴 거 같은 기분이...
볼트 몇원씩 아끼려다가, 몇천억을 날리게 생겼어요.
SiteOwner
2021-01-24 19:33:07
이런 것을 소탐대실이라고 하지요.
게다가, 백번 양보하여 원가절감 차원이라고 하더라도 문제는 여전히 남습니다. 그 원가절감이 반드시 동기와 결과 모두가 건전하다고 단언할 수는 없어서입니다.
오래된 유머 중 지구본이 기울어져 있는 것을 "국산이 다 그렇죠" 라고 빈정대는 게 있었습니다.
이게 그냥 과거의 유머가 아니라 현재진행형인 현실이라는 게 더욱 씁쓸합니다.
마키
2021-01-24 12:05:53
독일제가 믿음과 신뢰의 상징이 된것도 그 기대에 부응하기위한 까탈스러울 정도의 품질관리가 있었기 때문이겠죠.
기왕 배울거면 좋은 점만 배워도 모자를텐데...
SiteOwner
2021-01-24 19:48:54
독일 제조업 하면 떠오르는 유명한 어구가 있습니다.
독일제국 때부터 사용되어 온 원산지 표기인 "Made in Germany", 독일의 놀라운 공학적 성과를 말하는 "German Engineering", 그리고 고급차의 대명사 메르체데스-벤츠의 구호인 "최고가 아니면 만들지 않는다(Das Beste oder nichts)", 아우디의 "기술을 통한 진보(Vorsprung durch Technik)" 같은 것들은 역시 다른 설명이 필요없습니다. 이것은 그냥 주장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실제환경에서의 가혹한 검증을 이겨낸 결과로 성립된 것입니다.
사실 직도입보다 라이센스생산이 비싼 경우가 많은데, 그럼에도 라이센스생산을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기술습득, 자국내의 고용창출, 산업생태계 조성, 원제작사의 생산용량사정, 라이센스생산이 더욱 바람직한 특단의 상황 등의 것이 그 이유가 됩니다. 우리나라 해군에서 초기에 209급 잠수함을 장보고급이라는 이름으로 도입할 때 초도함은 독일에서 직도입했지만 이후의 것은 국내의 조선소에서 만들어졌습니다. 후속함급인 손원일급이 된 214급은 1번함부터 국내에서 건조되었습니다. 이렇게 한 이유도 위에서 열거한 것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원래의 설계를 무시한 부품을 썼다는 것은, 이렇게 라이센스생산을 한 의미를 약화시킬 따름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누구의 손해도 아니고 어디까지나 우리의 손해로 귀결되어 버립니다.
원칙대로 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먼 길을 돌아가는 것 같더라도. 이것이 정답입니다.